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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신상’ 이정재 님이 도착했습니다

EDITOR 김명희 기자

입력 2019.03.04 17:00:01

콰트로 천만 배우 이정재가 영화 ‘사바하’로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 ‘관상’에서 돌계단을 런웨이로 만들고, ‘신과함께’ 시리즈에서 모래지옥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던 그가 이번에는 종교계를 비주얼로 정화한다.
‘영원한 신상’ 이정재 님이 도착했습니다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죠. 관객들이 워낙 신상을 좋아하시니까, 공급자 입장에서 신상을 안 내놓을 수가 없어요.” 

앞에 이정재(46)가 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기자에게 이정재는 청춘의 얼굴이었다. 1998년 영화 ‘태양은 없다’로 함께 성인식을 치르고 그 이후로도 쭉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정우성이 순수하고 어리바리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부유하는 젊음의 단면이라면 이정재는 영리하게 그러나 아찔한 속도로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청춘의 또 다른 얼굴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데뷔 26년째, 마흔 중반의 이정재는 여전히 능수능란하게 캐릭터를 바꿔가며 독보적인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스크린에서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18년 ‘신과함께-인과 연’에서였다. 저승을 관장하는 염라대왕으로 분한 그는 특별 출연이라는 역할이 무색하게 관객들을 모래지옥 속으로 빨아들였다. 그에 앞서 ‘대립군’에서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나라가 망해도 달라질 것이 없는 밑바닥 출신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대립군 대장 토우 역을 맡아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도둑들’과 ‘관상’에서의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정재가 인터뷰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신상론’은 브랜드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후 새로운 것을 덧입혀 ‘뉴트로(New+Retro)’라는 트렌드를 제시하는 명품 브랜드의 전략을 연상시킨다. 

영화 ‘도둑들’과 ‘암살’ ‘신과함께’ 시리즈로 콰트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이정재가 새롭게 도전한 작품은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사바하’(2월 20일 개봉)다. ‘사바하’는 사슴동산이라는 신흥종교 집단을 쫓던 박웅재 목사가 의문의 인물, 의문의 사건과 마주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이정재는 사이비 종교 전문가 박 목사 역을 맡아 장 감독이 정교하게 설계한, 선과 악이 뒤틀린 세계 속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장재현 감독은 이런 이정재에 대해 “중후한 무게감과 재기 발랄함을 유연하게 잘 보여주었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우”라고 말했다. 

시사회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장 감독은 영화에 대해 설명하던 중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피를 토하고 뼈를 깎으며 만든 작품이다.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갑자기 오열했다. 이 순간 장 감독의 눈물만큼이나 화제가 된 건 옆에 있던 이정재가 센스 있게 건넨 손수건이었다. 노련하게 자신을 변주하며 정상을 지켜온 배우, 그리고 페이즐리 문양의 실크 손수건을 갖고 다니는 남자 이정재와 나눈 일문일답.




시사회에서 장재현 감독이 울음을 터트리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 이정재.

시사회에서 장재현 감독이 울음을 터트리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 이정재.

시사회 때 감독님이 갑자기 오열하는 바람에 옆에서 당황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까 감독님은 심각하게 울고 계신데, 저는 너무 웃었나 싶더라고요. 감독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배를 띄우는 사람의 심정이랄까요. ‘감독님이 그동안 정말 영화에 몰입해 있었구나’란 생각도 들고, 다른 한편으론 ‘이 분이 이렇게 여린 분이었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배우와 감독이 영화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결이 좀 다른가요. 

그럼요. 연출자는 모든 걸 다 관장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장재현 감독 같은 경우는 특히 첫 작품인 ‘검은 사제들’이 워낙 성공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 대한 부담감이 더 컸을 거예요. 그래서 촬영을 시작하기 전부터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박 목사의 연기 톤을 어떻게 가져갈지, 의상이나 분장 같은 세세한 부분도 같이 상의하고 결정했죠. 이런 게 영화 작업의 재미이기도 하고요. 감독님이 우실 때 저는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그런 여러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본 소감은 어땠나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재미있었지만 후반 작업에서 음향과 CG가 덧입혀지니까 훨씬 더 좋았어요. 연출자의 의도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표정이나 감정 조절도 훌륭했습니다. 

다른 배우들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요. 

진선규(해안 스님 역) 씨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보고 현장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이렇게 여리고 부드러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배역을 했지?’ 싶었어요. 박정민(나한 역) 씨, 이다윗(요셉 역) 씨는 전부터 좋아했던 배우들이라 전작들을 모두 챙겨 봤습니다. 두 분 모두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고 신선하게 연기하는 분들이에요. 연기를 하다 보면 내가 의도하는 바가 잘 전달되지 않을까 봐 꾸며서, 과장되게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두 분은 그렇지 않거든요. 함께 작품을 하면서 ‘저 사람들의 호흡을 좀 배워야겠다’ 생각했죠. 

박 목사의 독백 중에 과연 신이 존재하는지 묻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딘가에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의 부조리한 일들이 왜 일어날까란 의문에서 비롯된 질문인데, 살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나요. 


안 좋은 뉴스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개인사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 말은 못 하지만 저도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기독교)를 믿게 된 것도 있어요. 어디 가서 마음을 달래야 하니까.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 종교 전문가 박 목사로 분한 이정재.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 종교 전문가 박 목사로 분한 이정재.

현대극은 오랜만이에요. 이정재 씨가 코트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관객들도 있더군요. 

그러잖아도 저도 현대극을 하고 싶었는데 그 무렵 받은 시나리오의 캐릭터들이 형사, 안기부 요원, 그리고 ‘사바하’의 박 목사 역이었어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박 목사 캐릭터에 끌렸죠.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게 배우들의 숙명인데, 서양 배우들은 이목구비가 크고 헤어스타일로도 변주가 가능하고 수염 같은 걸로도 변화를 줄 수 있지만 동양 배우들은 외모로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아요. 직업군을 달리하거나 독특한 캐릭터 설정은 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장점이 있죠. 

배우로서 경력이 쌓일수록 배역 선택에 대한 고민은 더 커질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간 출연했던 모든 작품들이 새로운 캐릭터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물이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야겠다는 욕심만 컸지 잘 표현하지 못한 캐릭터도 있었지만 그래도 늘 새로워야 한다는 고민은 했었어요. 

시나리오에 대한 갈증이 큰 것 같아요. 영화 제작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요. 

정우성 씨와 2017년 아티스트컴퍼니라는 연예기획사를 설립했는데 이제 거기서 영화와 드라마도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이면 좋다고 해서 저도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고 하는데 반영은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영원한 신상’ 이정재 님이 도착했습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나요. 

그런 것보다 우성 씨와 영화를 다시 한 번 하고 싶어요. ‘태양은 없다’ 이후로 같이 하자, 하자 이야기만 하고 아직 못 했는데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몇 번 기회가 있긴 했는데, 그때마다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든가 아니면 다른 이유로 무산됐거든요. 

20년 이상 한결같은 우정을 이어오기 쉽지 않은데, 정우성 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네요. 서로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저희는 일이 됐든 개인사가 됐든 상대가 선택한 것에 대해 같이 의견을 맞춰주고 격려해주거든요. 

정우성 씨가 출연한 영화 ‘증인’도 ‘사바하’와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데, 서로 응원도 하나요. 

그럼요. 문자 메시지로 열심히 ‘증인 파이팅’ 하고 써서 보내고 이모티콘도 막 날리고 그러죠. 

20년 전 ‘태양은 없다’ 때나 지금이나 두 분이 주는 에너지, 톱스타로서의 존재감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일에 대한 책임감은 확실히 커졌어요. 소중함도 많이 느끼고요. 아직까지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 비해 촬영 현장의 여건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틀씩 밤새우며 강행군하고 그런 게 없어져서 할 만해요(웃음). 

달라지지 않은 건 잘생김(웃음)? 

아유, 저도 이제 예전 같지 않아요. 감독님이 박 목사가 안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이왕 쓰는 거 제대로 맞추자는 생각에 안경점에 갔는데 노안이 왔더라고요. 안경에 도수를 넣었더니 세상이 달라보이던걸요. 그거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색깔이 또렷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간 제가 봐온 색깔은 실제보다 10% 정도 채도가 낮은 거였더라고요. 나름 색이나 음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디 가서 색깔 예쁘네, 이러면 절대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주지훈 씨가 “이정재, 정우성 선배는 술 마신 다음 날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장에 간다”고 하던데, 운동은 얼마나 열심히 하나요. 


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데 그것만 하면 지루하니까 요가도 했다가 스포츠 댄스도 했다가 테니스도 치고, 종목을 바꿔가면서 하는 편이에요. 근육을 다양하게 사용해야 몸의 균형이 잡힌다고 해서요. 

올해 계획이 있다면. 

도전할 만한 새로운 신상을 찾는 것? 좋은 작품과 인연이 닿기를 기다려야죠.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여성동아 2019년 3월 6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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