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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과 강남의 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EDITOR 김지영 기자

2019. 02. 26

마약 유통, 폭행, 성폭력, 경찰관 유착 등 각종 범죄 의혹에 휩싸인 이른바 ‘클럽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서울 강남 일대의 클럽 문화를 밀착 취재했다.

서울 강남의 문제적 클럽 ‘버닝썬’이 2월 17일 문을 닫았다. “지난해 11월 24일 버닝썬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한 후 관할 지구대 경찰관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김모 씨가 1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를 폭로하고 수사를 요청한 지 19일 만이다. 게시 하루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김씨의 글로 논란의 중심에 선 버닝썬은 그 사이 경찰이 캐면 캘수록 의혹이 불어나 압수수색을 당한 데 이어 대대적인 조사를 받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클럽 버닝썬의 폭행 및 경찰 유착 의혹을 제기한 김모 씨(가운데)가 2월 1일 클럽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소환돼 서울 강남경찰서에 들어가고 있다. 아래 사진은 클럽 고객에게 마약을 판매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버닝썬의 중국인 MD ‘애나’(가운데). 김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두 여성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클럽 버닝썬의 폭행 및 경찰 유착 의혹을 제기한 김모 씨(가운데)가 2월 1일 클럽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소환돼 서울 강남경찰서에 들어가고 있다. 아래 사진은 클럽 고객에게 마약을 판매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버닝썬의 중국인 MD ‘애나’(가운데). 김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두 여성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국민청원을 통해 김씨가 제기한 집단 폭행과 경찰관 유착 의혹 외에도 마약의 일종인 속칭 ‘물뽕(GHB)’ 판매와 유통, VIP 화장실 내 성추행 동영상 촬영, 성폭행 등의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김씨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두 여성 중 한 명은 중국인 파모(26) 씨로 버닝썬에선 ‘애나’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MD다. MD는 ‘상품 기획자’라는 의미로 클럽에서 고객 유치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을 말한다. 애나는 중국, 태국 등 해외 VIP를 주로 상대하면서 버닝썬에 물뽕을 유통시킨 판매책으로 의심받고 있다. 애나가 버닝썬 직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 버닝썬은 “두 고소녀 모두 모르는 사람”으로, 경찰은 “둘 다 클럽 직원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경찰은 애나의 집에서 성분을 알 수 없는 액체와 흰색 가루를 찾아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맡겼다. 또한 애나가 주변에 마약을 권유했다는 참고인 진술과 목격자도 확보해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또 다른 버닝썬 직원의 집에선 ‘파티 마약’으로 불리는 흥분제의 일종인 ‘엑스터시’, 풍선으로 환각 물질을 흡입하는 일명 ‘해피 벌룬’, 향정신성 약물인 ‘케타민’ 등 여러 불법 마약류가 나왔다. 

이들을 조사해 마약 유통 경로를 파악 중인 경찰은 MD가 한 클럽에 정착하지 않고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직업이니만큼 강남 전체 클럽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강남의 또 다른 유명 클럽 ‘아레나’에서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종업원과 손님, 판매책 등 5명을 입건해 조사 중인 부산지방경찰청과도 공조하기로 했다.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29)의 ‘절친’으로 알려진 버닝썬의 이문호 대표도 세 차례에 걸쳐 경찰 조사를 받았다. 2월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늘부로 클럽을 폐쇄한다”고 발표한 이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 모든 의혹이 풀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경찰 관계자는 “버닝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라며 “서울 강남, 홍대 근처 등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대규모 클럽에서는 마약과 성폭력 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버닝썬은 김씨를 폭행한 인물로 지목된 영업이사 장모 씨를 2월 초 퇴사 조치하는 것으로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대했으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버닝썬은 지난해 2월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호텔 르메르디앙 서울 지하 1층에 오픈했다. 이 호텔의 이성철 전 등기이사와 이문호 대표가 공동 대표로, 승리는 사내이사로, 승리의 어머니 강모 씨는 감사로 법인 등기부에 이름을 올렸다. 승리는 버닝썬을 오픈할 때부터 대외적으로 대표로 불리며 홍보에 주력했다고 한다.

1억원짜리 양주 세트 메뉴, 해외 갑부들도 찾아와

경찰이 2월 14일 오후 클럽 버닝썬에서 마약 투약과 경찰과의 유착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오른 쪽 위 사진은 버닝썬이 VVIP를 대상으로 판매한 1억원짜리 양주 메뉴 ‘만수르 세트’.

경찰이 2월 14일 오후 클럽 버닝썬에서 마약 투약과 경찰과의 유착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오른 쪽 위 사진은 버닝썬이 VVIP를 대상으로 판매한 1억원짜리 양주 메뉴 ‘만수르 세트’.

버닝썬의 영업 관리와 운영을 총괄한 실질적인 리더는 이문호 대표였다. 이 대표는 2014년부터 아레나에서 파티 기획 등을 담당하는 ‘펄스팀’을 이끌었고, VIP를 상대로 테이블 영업을 하는 MD이기도 했다. 승리는 당시 이 대표의 VIP 고객 중 한 명이었고 둘은 1990년생 동갑내기여서 금세 절친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이 대표는 아레나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버닝썬 설립 과정 전반에 관여하고 영업 방식, 내부 구조 등을 기획, 설계한 것으로 전해졌다. 클럽 가드와 MD, ‘수질(클럽과 고객의 퀄리티)’ 관리 방식까지 아레나를 벤치마킹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관계자에 따르면 아레나의 실질적인 주인인 강모 회장은 서울 강남에서 수십 개의 룸살롱과 가라오케를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화류계의 여성들을 아레나에 유치해 수질 관리와 테이블 영업에 활용했다고 한다. 버닝썬의 이 대표도 아레나에서 인연을 맺은 유흥업소 여성들을 업장으로 자주 불러들였다고. 또한 ‘입뺀(입장 금지)’의 기준을 엄격히 해 수질 유지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버닝썬은 아레나와 쌍벽을 이루는 강남 최고의 클럽으로 급부상한다. ‘승리가 직접 운영하는 물 좋은 클럽’이라는 입소문과 VVIP를 위한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 모객의 발판이 됐다. 세계 최고 갑부의 이름을 딴 1억원짜리 양주 세트 메뉴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만수르 세트’로 불리는 이 메뉴엔 세계 최고가 샴페인인 ‘아르망 드 브리냑’ 1병이 포함돼 있다. 이보다 한 단계 저렴한 3종의 ‘대륙 세트’는 5천만원, 그 밑인 ‘천상 세트’도 1천만원에 이른다. 

내부자들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만수르 세트를 주문한 고객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1억원짜리 메뉴가 있다는 자체가 국내외 재력가의 호기심과 소비 심리를 부추기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꿈꾸는 이들을 유인하기에 좋은 미끼가 돼준다고 한다. 한 직원은 “최근 ‘에미넴’이라는 이름으로 예약한 손님이 1억원 넘게 쓰고 갔다”며 “만수르 세트를 시킨 건 아니고 이것저것 합한 가격”이라고 말했다. 

버닝썬의 모객을 담당했던 한 MD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가와 정치인의 자제가 자주 찾는 테이블이 따로 있었고, 승리의 팬인 대만 재벌의 부인 A씨가 단골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한 비밀처럼 종업원들 사이에서 오갔다”며 “국내보다 중국, 태국 등 해외 갑부가 씀씀이가 컸다”고 전했다. “A씨는 버닝썬 오픈에 기여한 여러 투자자 중 한 명으로 알고 있다”고 여러 관계자가 입을 모았다.

버닝썬 손님 유치 MD만 3백 명, ‘제2의 버닝썬’ 오픈은 시간문제

클럽의 규모에 따라 MD 인원이 달라진다. 버닝썬에선 약 3백 명의 MD가 활동했다. 강남의 여느 클럽에 비해 많은 편은 아니다. 이들은 인터넷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서비스로 고객을 감동시킬지를 홍보하고 영업용 휴대번호를 남겨 고객을 유치한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테이블은 100% 예약제로 채워지고, 10만원 정도의 선금을 보내야 자리를 찜할 수 있다. 여성 고객은 1988년생까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영업시간은 밤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10시까지인데, 대학생이 여자 손님의 약 70%를 차지한다고. 나머지는 유흥업소 종사자와 전문직, 일반 직장인 등 다양한 부류가 채운다. MD들은 무료입장을 원하는 여자 손님의 사진을 카톡으로 남자 고객에게 보내 테이블 예약을 유도한다. 테이블을 예약하는 고객 중에는 부유층 자제도 있지만 직장인들이 여러 명 같이 와 더치페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테이블당 기본 술값은 평일 30만원, 주말엔 1백만원이라고. 

MD들의 수입은 얼마나 돈 잘 쓰는 고객을 유치하느냐에 달렸다. 테이블 예약을 유치해 고객이 쓰는 술값의 15%를 커미션으로 받기 때문. 강남 일대의 MD들의 수입은 고객 유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지금까지 최고 월수입이 5백만원이라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달에 3천만원 이상을 벌었다는 이도 있었다. MD들은 고객 관리를 명목으로 업장 밖에서 만남을 갖기도 한다. 

이문호 대표가 영업 종료를 선언하기 사흘 전인 2월 14일, 호텔 르메르디앙 서울은 버닝썬에 내용증명을 보내 임대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호텔 로비 화장실이 버닝썬 손님들의 마약 흡입 장소로 이용되고 호텔 룸이 성범죄의 장으로 쓰인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버닝썬 내부자들은 머잖아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제2의 버닝썬’이 문을 열 것으로 전망했다. 한 직원은 자신의 SNS에 ‘업장 내부 사정으로 영업이 종료되고 새로운 업장으로 2〜3개월 뒤 재오픈할 예정’이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버닝썬이 당장 문 닫는 게 지금 강남의 클럽에서 일어나는 온갖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사진 뉴시스 뉴스1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연합뉴스TV 유튜브채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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