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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솔직하게, 도올과 아인

EDITOR 김지영 기자

입력 2019.02.18 17:00:01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남자가 뭉쳤다. 세대 차와 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철학자 김용옥과 배우 유아인의 허심탄회한 고백.
거침없이 솔직하게, 도올과 아인
도올 김용옥(71)과 배우 유아인(33)이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도올아인 오방간다’의 공동 진행을 맡아 화제다. 이 프로그램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백 주년을 맞아 특별 기획된 ‘신개념 지식 버라이어티 쇼’로 두 사람이 기획 단계부터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했다. 

김용옥은 역사, 종교, 철학, 한의학, 생물학 등 다방면에 걸쳐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철학자 겸 대학교수이며 방송 강연자로도 유명하다. 한때는 연극 연출가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과 ‘취화선’은 그가 대본을 집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2003년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으로 연기에 입문한 유아인은 배우 겸 복합 문화 공간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이력엔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은 다른 듯 닮았다. 소신이 뚜렷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으며 말솜씨가 뛰어나다는 점에서다. 1월 5일 방송을 시작한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도 이들은 나이 차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의 장을 펼치고 있다. 도올이 역사적 인물을 끄집어내면 유아인은 스스럼없이 의문을 던지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식이다. 

배우가 아닌 자연인 유아인의 인간적인 고백은 매회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방송에서 그는 “데뷔 당시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많았다”며 “유명해지지 않으면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 같았고, 주목받고 싶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만들어가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또 그에게 큰 위안을 준 어머니의 조언을 떠올리며 “나를 더 찾고, 진짜 나다운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다. 주변과 고민을 나누고 공감대를 이루며 나를 둘러싼 사회와 함께 그 가치를 만들어가고 싶다”고도 했다. 그 소망에 다가가기 위해 큰 용기를 낸 유아인, 그를 통해 젊은 세대의 생각을 헤아리고 있다는 도올 김용옥을 1월 초 첫 방송을 앞두고 만났다.


거침없이 솔직하게, 도올과 아인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맡은 역할이 뭔가요. 



도올 한 세기 동안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 역사적인 지식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강의나 설교가 아닌 토론 형식으로요. 사전에 논의하는 과정에서 (유)아인이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방식으로 얘기해달라고 주문하더라고요. 

아인 저는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귀한 이야기가 요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전달될 수 있을지, 또 어떤 의미 있는 담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가장 저다운 일상적인 목소리로 공감대를 만드는 메신저 역할을 해나갈 겁니다.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함께하게 됐나요. 

도올 지난해 5월 ‘버닝’이라는 영화를 보고 무척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버닝’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과 평소 교류하는 사이라 그 영화에 대한 얘기를 사석에서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유아인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내적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인이가 저를 불쑥 찾아왔어요. 우리 집 밥이 맛있는데 그 흰쌀밥 하나에 이 친구가 반해버렸어요. “어떻게 이렇게 독특하고 순수한 쌀밥을 저한테 주시냐?”고 했는데 그 말에 제가 반했죠. 많은 음식 속에서 그 흰쌀밥의 맛을 느낄 줄 안다는 것은 대단한 경지거든요. 그 일이 있은 후 KBS에서 강연 프로그램을 하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걸 아인이랑 같이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여러 사람을 앉혀놓고 일방적으로 설교하는 기존 스타일이 아닌 색다른 방식으로요. 아인이라면 이 프로그램의 메시지를 제가 접근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하지만 아인이에게 그 얘기를 전화로 할 순 없었어요. 배우가 자기 영역이 아닌 교양 프로그램에 나와 떠든다는 건 아무리 잘해도 큰 득이 없어요. 헌신적인 마음으로 나와야 하죠. 그래서 이 친구를 집에 모셔다 놓고 협박을 했죠. “너, 안 나오면 죽어!” 하고요. 하하하. 

아인 친구들은 제게 무슨 걱정이 있겠냐고 하지만 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안고 살고 있어요.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리고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요. 집으로 찾아간 것도 제가 아는 가장 큰 어른인 선생님이라면 친구들과는 다른 식견으로 제 고민에 답해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고요. 그런데 때마침 선생님이 방송을 같이하자는 특별한 제안을 해주셨고, 그동안 제게 큰 사랑을 보내주신 대중들과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죠. 

기획과 연출, 진행까지 함께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두 사람 간의 소통은 원활한 편인가요. 


아인
다행히 선생님께서 제게 말을 자를 수 있는 권한을 주셔서 대화 도중 의문이 생기거나 이해가 되지 않으면 뜸 들이지 않고 바로바로 반론을 제기해요. 선생님도 그걸 언짢아하시지 않고요. 

도올 아인이의 반론은 돌직구 스타일이에요. “선생님이 귀한 지식을 알려주시는 건 좋은데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젊은이들은 그것에 관심 없어요. 젊은이들이 미래의 주인이니까 그들과 소통해야 해요. 선생님 스타일로만 얘기하면 결국은 선생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듣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제게도 그것은 고민스러운 문제예요. 지금은 멀리 생각하지 않고 아인이 한 명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비우고 이 친구의 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쓰고 있어요. 


거침없이 솔직하게, 도올과 아인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서도 호흡이 잘 맞나요. 

아인 호흡이 시원하게 맞을 순 없죠. 이 정도로 나이 차가 많은 어르신과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거든요.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걸 방해하는 격식을 벗어던지고 선생님과 방송을 함께하면서 그동안 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는지, 타인과 얼마나 호흡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는지 새삼 깨닫고 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코드를 중심에 놓고 선생님은 물론 방청객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돼요. 우리의 새로운 시도가 삶과의 관계성을 돌아보게 하고 ‘한 명의 개인 혹은 이 땅의 국민으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도올 첫 회는 특정한 주제 없이 한 세기 동안 일어난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아인이와의 호흡이 착착 들어맞진 않았어요. 하지만 2회부터는 동학을 테마로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 과정에서 아인이가 너무도 멋지게 젊은이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어요. 이 프로그램은 지금껏 전하지 못한 중요한 메시지와 의미를 던져줄 것 같아요. 

서로에게서 새삼 발견한 매력이 있다면. 

아인 순수함요. 단순히 어떤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선생님의 의지가 순수하게 느껴졌어요. 그 순수함에는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도올 요즘 젊은이들에겐 지식으로는 안 통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의미 있게 만들려는 섬세한 배려, 그 자신이 품고 있던 실존적 의문을 아주 일관되게 묻는 진정성, 또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이 사회에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자세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런 열정적인 모습으로 저와 함께해주는 아인이에게 고마울 뿐이에요. 저는 아인이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류 문화를 선도하는 배우에서 더 나아가 이 사회에 의미 있는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프로그램을 장식하는, 두 사람이 부처님처럼 앉아 있는 걸개그림을 유아인 씨가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배경 음악도 직접 선곡하고요. 프로그램 제목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도올 아인이가 정했어요. 처음엔 ‘아인아, 도올 해볼래?’였는데 아인이가 마음에 안 든다며 ‘도올아인 오방간다’로 하자고 하더군요. ‘오방 간다’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뿅 간다’ ‘홍콩 간다’ 같은 뜻으로 쓰이는 비속어라는데 사실 저는 그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이런 제목을 만들어낸다는 자체가 좋았어요. 

아인 오해를 살 수 있어 제가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한국적인 신조어를 제시해보고 싶었어요. 기분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오방 간다’는 말을 쓰는 분들이 있어서 ‘오방’이 뭔지 찾아봤더니 동서남북 사방의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 말이 의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느낌이었고, 재미있고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대화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주는 이 쇼가 보는 분들에게 새로운 느낌과 의미로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신조어를 프로그램 제목으로 제안했는데 방송사에서도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두 분의 얘기를 듣다 보니 유아인 씨가 왜 예고편에서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말했는지 가늠이 되네요.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나오기까지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많은 부담감을 이기고 출연을 결정한 이유는 뭔가요. 

아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타인과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로 편 가르기와 투쟁이 계속되고 있죠. 물론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릴 때는 단합된 의지와 결기를 보이지만 그 축제가 끝나면 다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좋은 의미에서 타인과 함께 성숙한 소통의 방식을 만들어가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한편에 서는 순간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고민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한 일은 아니지만 저는 솔직하기로 작정했고 그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밟고 있어요. 도올 선생님은 이 프로그램이 제게 득이 될 게 없다고 하셨는데 배우로서는 그럴지라도 개인적으로는 이득을 보고 있어요. 평소 가질 수 없었던, 대중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 시간이 이 프로그램을 함께하는 모든 분들과 시청자들에게도 재미가 되었건, 흥미가 되었건,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이득이 되었건 간에 보다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드는 과정이 되길 기대합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요. 

아인 이 땅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젊은이로서 제 솔직한 마음과 생각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그 과정이 그동안 배우 유아인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또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나,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해보고 싶은 마음도 의미 있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도올 이 프로그램에는 저희뿐만 아니라 ‘오방신’으로 불리는 국악인 이희문도 함께하고 있어요. 팬들에게는 BTS 못지않게 좋은 평가를 받는 아주 대단한 친구예요. 수백 개의 민요 중 방송 테마에 맞는 곡을 골라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해요. 그 친구도 아인이가 섭외했어요. 세 사람의 조화가 얼마나 멋지게 이뤄지는지를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사진 김도균 디자인 김영화




여성동아 2019년 2월 6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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