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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하다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박제성 음악평론가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2015. 12. 16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17회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에서 열린 그 역사적인 순간의 감동, 조성진과의 인터뷰, 그리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전주곡과 같았던 갈라 콘서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하다

조성진은 5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클래식 역사의 한 장을 수놓았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10월은 보석과도 같은 계절이다. 도시 전체에 짙게 스며든 가을의 정취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실 바르샤바의 분위기는 동유럽의 대도시들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 전체가 파괴되다시피 했던 터라 옛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바르샤바의 진정한 매력은 도시 중심부에서보다는 오히려 공원에서 느낄 수 있다. 넓고 오래된 공원을 걷노라면 숲이 울창해 도시인지 시골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쇼팽의 동상과 아름다운 수상 궁전이 있는 와지엔키 공원이다. 쇼팽(1810~1849년)이 살던 19세기와 비교해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을 듯한 이 공원은 가을을 한껏 머금고, 스러지는 생명력의 마지막 찬란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와지엔키 공원에 쇼팽의 동상이 있다면, 왕의 거리에 위치한 성십자가 성당 안에는 쇼팽의 심장이 있다. 쇼팽의 유언에 따라 그의 누이 루드비카는 파리에서 세상을 뜬 동생의 심장을 알코올이 담긴 단지에 넣어 밀봉, 당시 점령국이던 러시아 출입국 관리의 눈을 피해 폴란드로 몰래 가지고 들어왔다. 여러 친척의 손을 거친 뒤 폴란드가 독립한 뒤에야 비로소 성십자가 성당에 안장된 쇼팽의 심장. 그 앞에 서 있노라니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음악을 통해 인류를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안내한 그 뜨거운 심장이 그날 밤 펄떡거리며 다시금 새로운 생명을 가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스타 피아니스트 등용문에 한국인 최초 우승

2015년 10월 바르샤바는 쇼팽 콩쿠르가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1927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1955년부터 5년마다 열리는 쇼팽 콩쿠르는 폴란드가 낳은 거장 쇼팽을 기리기 위한 대회로,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스타 피아니스트를 발굴하는 최고의 등용문으로 꼽힌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짐머만, 스타니슬라프 부닌, 라파우 블레하츠 등이 이 콩쿠르를 거쳐갔다. 심사위원들 또한 모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들로, 그들이 선택한 우승자와 6등까지의 입상자들은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보장받을 뿐 아니라, 그들을 배출한 국가의 문화적 위상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그만큼 심사 기준이 엄격해 참가자들의 기량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수상자를 내지 않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 임동민 · 동혁 형제가 출전해 나란히 3위에 입상한 적이 있다.

10월 20일,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 1백60명 중 1~3차 경연에서 살아남은 10명이 경합을 벌인 파이널 연주회장. 조성진(21)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으로 가장 먼저 연주를 마쳤다. 경연이 끝나고 10월 21일 새벽 1시 무렵, 올해의 우승자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평소보다 발표가 늦어 애를 태우고 있던 세계 각국의 취재진이 앞 다투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홀을 뒤덮었다. 일본은 공주부터 외교관과 관람객까지 2백 명 가까운 응원단이, 중국도 이에 지지 않는 많은 응원단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자국의 입상자들을 응원하고 축하해주었지만, 한국은 유학생과 관람객, 촬영팀을 포함하여 10명 남짓한 인원만이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필자도 파이널 티켓을 구하지 못해 연주회장 밖에서 응원했는데, 나중에 실황 영상을 통해 확인한 결과 조성진의 결선 무대는 안정적인 템포로 디테일을 섬세하게 다듬어내는 한편, 서정성과 구조의 균형이 매주 강건한 훌륭한 연주였다. 현지 유일한 촬영팀이던 아르테 TV를 통해 다음 날 아침 조성진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동이 터오를 때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지만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격앙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쇼팽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듯한 그러한 경이로운 바르샤바에서의 새벽이었다.



21일 오전 수상자들의 갈라 콘서트를 위한 리허설이 열렸다. 조성진은 한 번도 쉼 없이 리허설을 마친 뒤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열한 살이던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를 사사하고 있는 조성진은 이번 우승을 계기로 클래식 음악계의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물론 그의 천재적인 연주를 수년 전부터 지켜봐왔던 바, 그가 조만간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내보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기대대로 그는 이번 콩쿠르에서 예선 때부터 다른 연주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연주와 빼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군계일학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어떻게 콩쿠르에 임했는가라는 질문에 조성진은 “쇼팽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파리에서 살며 움직이던 곳을 방문해보고, 친구들과의 편지나 기록을 읽어보면서 음표가 아니라 작곡가의 마음 그 자체를 이해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이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한정지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쇼팽의 다른 작품에도 도전해야 하고, 더 나아가 프랑스와 러시아의 많은 작곡가들 작품 또한 신중히 공부하고 싶습니다. 집중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작곡가는 프란츠 슈베르트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유럽에서 조금 더 많은 활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스타덤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하자 조성진은 정색을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조금 두려움이 있어요. 그저 제 연주를 좋아하고, 티켓을 사서 제 연주회에 와주신 청중에게 최선을 다해 음악을 들려드려야 한다는 마음뿐이거든요. 콩쿠르에 입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그렇게 해서 널리 알려져야 무대에 더 많이 서고 더 많은 청중을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웃음). 나이가 들어서까지 오래오래 좋은 음악을 들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끝난 후 열린 갈라 콘서트는 모두 3부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시상식, 그리고 2등부터 6등까지 수상자들의 솔로 무대, 마지막으로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조성진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가 이어졌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내외와 심사위원 및 조직위원회가 참석한 시상식은 무려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시상식 중반부에 등수 외 별도로 선정하는 상에 대한 시상식이 이루어졌고, 여기서 조성진은 본선 2차에서의 폴로네즈 ‘영웅’ 연주로 폴로네즈 상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이 상은 1등 상만큼이나 의미 있는 것이다. 폴로네즈는 폴란드를 대표하는 양식이므로 한국으로 말하자면 전주 대사습놀이에서 폴란드인이 장원을 받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어찌 됐든 쇼팽 해석에 있어서 조성진이 그 정통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예선과 결선에서 연주한 폴로네즈를 들어보면 리듬과 뉘앙스를 너무나 정교하게 다듬어낸 동시에 폴란드적인 느낌이 물씬 배어난다. 그리고 시상식 마지막에 진행된 1등상 수여식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완벽한 연주, 군계일학의 존재감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하다
2~5등 수상자들의 공연(6등을 한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시쉬킨은 컨디션 때문에 다음 날 두번째 갈라부터 등장했다)에 이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3부가 시작됐다. 조성진은 결선 때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집중력 높으며 자신감에 찬 연주를 선보였다. 마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영웅 같은 느낌이랄까. 오전에 진행된 리허설 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을 훑고 지나가면 탄식이 흘러나왔고 그의 페달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야 숨을 쉴 수 있었으며 맹렬한 옥타브, 현란한 아고긱(Agogics·연주할 때 템포에 미묘한 변화를 붙여서 다채롭고 풍부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펼쳐질 때마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짜릿했다. 눈물을 흘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가 끝나자, 홀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기립 박수로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축하했다. 이제야 비로소 감격의 눈물이 눈에 맺히기 시작했다.

조성진은 앙코르로 폴로네즈 ‘영웅’을 스피디한 템포와 카리스마 넘치는 옥타브, 강렬한 악센트를 곁들여 연주해 폴로네즈 상과 1등 상을 수상한 우승자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청중은 연주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그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고 홀에 남아 있는 마지막 잔향까지를 끝까지 몸에 두르고 가려는 듯했다. 이날 이후 택시, 호텔, 레스토랑, 쇼핑몰에서 만난 바르샤바의 시민들, 심지어 우연히 만난 일본인 파이널 리스트인 고바야시까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필자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조성진은 콩쿠르 우승 후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며 우승자로서의 살인적인 연주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마음 놓고 오로지 자신의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기에 더없이 기뻐할 조성진을 생각하면 흐뭇한 마음이 든다. 내년 2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에서 젊은 영웅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때까지만 기다리도록 하자.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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