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기사

COLUMN

[PAGE.214]

Sense&Sexibility

글 · 미소년 | 일러스트 · 곤드리

2015. 11. 10

나는 섹스를 못할 것 같다. 정말 못할 것 같다. 한 사람의 마음을 찾는 일, 그 마음을 찾아 헤매는 일이 피곤하다. 체력도 없고, 흥미도 없다. 생각해본다. 한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일은 어떤 것일까?

섹스를 더 이상 못할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익명으로 쓰는 글이라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나는 30대 중반이다. 그것밖에 안 된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든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밤에 집에 들어와서 쓰러지듯 잠들 때가 있다. 한 달에 서너 번은 그러는 것 같다. 나는 혼자 살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신경 쓰지 않으니 더 약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결혼도 해봤는데, 그때도 약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혼자 있을 때보다…. 나이 탓만은 아니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섹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름 에너자이저였다. 전성기가 지나긴 했지만,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 김연아가 은퇴하고 복귀해도 여왕 김연아이듯, 나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할 거라고 믿었다. 솔직히 자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달 갑자기 누군가와 밤을 보내게 됐다. 뭐, 혼자 사는 남자와 여자가 애정이 싹트면 생길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내가 좀 버거웠다. 좀이 아니라 많이. 예를 들어 “우리 집에 갈래?”라는 식으로 작업을 걸 때 예전 같았으면 아주, 별의별 미사여구를 동원해 유혹할 텐데,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본능이 있고, 좋아하는 감정도 있으니까,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 역시 있는데, 별로 적극적으로 ‘들이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일단 피곤했다. 여자는 딱 두 번 곤란함을 표시했다. 그게 다였다. 우리 집에 가겠다고 했다. 음…. 좋고 안 좋았다. 복잡했는데, 안 좋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내가 밉고 안쓰러웠다. ‘야, 너 왜 그래? 벌써 이러면 어떡해? 세상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괴로웠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내 ‘능력’을 불신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난데. 나잖아. 나야, 나!’ 하지만 ‘역시 나는 나였어’라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면 이런 글을 쓸 이유가 없었겠지. 결론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

직접적인 묘사를 생략하더라도, 하지만 뭐 섹스에 관한 묘사는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러 작품에서 했고 그렇게 대중적인 게 돼버렸다고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이렇게 쓸데없이 보호막을 치고 적자면… 걔가 별로 안 좋아했다. 나는 열심히 했고 걔도 열심히는 했는데 그냥 그랬다. 표정에 그게 다 드러났다. 그래서 걔도 나도 당황했다. 걔가 안 좋아하니까 내가 계속 이것저것 물어봤다. “왜? 뭐가 문제야?” “이렇게 해봐. 아까, 아니, 그거 말고. 안 좋아? 이게 안 좋아?” 이딴 말을 나는 정말 걔한테 했다. 그럴 수밖에 없어서 했다. 처음이었다, 여자한테 그런 말 한 거. 물론 남자한테는 한 번도 안 해봤고.



섹스를 할 때 나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여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 정작 나는, 다른 남자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만족하지 못해도 괜찮다. 아, 이 말은 틀리다. 내 만족은 여자의 반응에서 온다. 여자가 흥분할 때, 쾌감을 느낄 때, 나도 좋다. 나는 그 순간에 흥분하고 쾌감을 느낀다. 어쩌면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다. 자존심이 본능적인 성적 감각보다 우위에 있는 것일까… 나는? 어쩌면. 그런데 걔가 안 좋아했다. 나랑 했는데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걔’라고 적지 말아야지. 무시하는 말, 함부로 하는 말 같으니까.

[PAGE.214]
다시 섹스를,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두서없이 이것저것 묻고 말하니까 그녀도 말했다. “잘 좀 해봐요.” “별로 느낌이 없어요.” 그래서 나도 “아,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라고!” 화를 냈다. 그녀는 잘못한 게 없다. 섹스가 끝나고, 아니, 끝났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아무튼 섹스를 멈추고 나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적이 처음이야. 나, 막, 무능한 막대기가 된 기분이야. 늙은 건가?”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아니야. 우리가 잘 안 맞는 거야. 늙은 거 아냐….” 그 말을 듣고 아주 조금은 안도했다. 안도할 일이었을까? 우리가 잘 안 맞는 거야, 라고 말할 때 그녀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그때 난 한 사람과의 진실한 관계보다, 내가 무능한 남자가 된 것인가 아닌가가 중요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하니 분명해진다. 나는 정말 무능한, 무능력한, 남자가 되었다. 성적으로만이 아니라 더 큰 무엇인가에서도.

그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섹스였다. 우리는 며칠 더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만나지는 않았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사이가 되었다. 언젠가 밤에 통화를 할 때 그녀는 말했다. 후회했다고. 정확하게는 소외감을 느꼈다고. 내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한다는 건 내 마음이 그녀의 마음과 만나는 것일 텐데, 내 마음은 온통 다른 데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나쁜 거다, 나. 그녀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섹스를 못할 것 같다. 정말 못할 것 같다. 한 사람의 마음을 찾는 일, 그 마음을 찾아 헤매는 일이 피곤하다. 체력도 없고, 흥미도 없다. 생각해본다. 한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일은 어떤 것일까? 그 사람의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까지 알게 되겠지. 그 사람이 나에게 줄 기쁨들은 내가 그녀에게 줄 기쁨에 상응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나는 많은 시간을 그녀에게 할애해야 하겠지. 자주 통화를 하고 주말에는 그녀를 만나야겠지. 가을엔 함께 나무 아래로 난 길을 걷고 겨울엔 내 외투 주머니 속으로 그녀의 손을 넣어주어야겠지. 어쩌면 그건 설레는 일이기도 할 테지만, 지금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 설렘이 더 이상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 남자가 벌써 왜 이렇게 비관적인지. 아마 나만 그럴 거다.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잘되는 건 아니다. 열정적이었던 청춘의 한때가 끝나버렸다는 걸 이제 막 깨달았기 때문일까? 세상이 너무 크다. 너무 무겁고 아프다. 짊어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혼자서도 이런데, 다른 사람의 삶이 여기 더해지면….

아닌가? 아닐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손을 잡아야 할까? 내 마음과 그녀의 마음이 만나면 더 큰 희망이 솟아날까? 나는 힘도 없고 무능하고 무능력한데 누가 내 옆으로 와서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려고 할까?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무엇일까? 속마음을 꺼내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게 언제였지?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오래 듣고 있던 적은… 언제였지? 나는 사람과, 사랑을 다시 배워야 할까? 그게 가능할까? 벌판 위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집을 짓고 있다. 우연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이곳을 지나가면 좋겠다.

미소년

작업 본능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남성들의 통속화된 성적 비열과 환상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

디자인 · 유내경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