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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MEN

여긴 어디, 우린 누구?

남성지를 통해 본 우리 시대 남자들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박해윤 홍중식 기자

2015. 10. 08

잡지는 욕망의 보물창고다. 남자가 알고 싶다면, 그들이 보는 잡지를 펼칠 일이다. 최신호 남성잡지를 통해 우리 시대 남자들의 욕망과 고민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여긴 어디, 우린 누구?
‘맥심코리아’ 표지와 김일곤 사건의 데자뷔

‘맥심코리아’ 9월호가 범죄 화보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출판사가 책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요절’했다. 물론 일찌감치 팔려나간 책들은 어디선가 희귀본이나 소장본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코스모폴리탄’ 영국판이 “역대 최악의 커버(In perhaps the worst cover idea of all time)”라고 비난한 데 이어 ‘맥심’ 본사마저도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강력히 규탄한 ‘맥심코리아’ 9월호 표지는 한 손은 자동차 트렁크에 얹고, 한 손에는 담배를 쥔 채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 김병옥의 모습이 담겨 있다. 김병옥이 누르고 있는 트렁크 안으로는 청테이프로 다리가 묶인 여성의 모습도 보인다.

비난이 확산되자 ‘맥심코리아’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서점에서 책을 회수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그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화보를 다시 연상시킨 엽기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9월 9일 30대 여성을 납치해 이틀 만에 살해한 후 트렁크에 싣고 다니다가 차에 불을 지른 김일곤 사건이 그것이다.

‘맥심코리아’ 9월호 표지에는 화보의 콘셉트가 친절하게 설명돼 있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하잖아? 이게 진짜 나쁜 남자야. 좋아 죽겠지?”라고. 도대체 이런 터무니없는 착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다른 남성지들도 견해를 같이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한 마음으로 9월호 남성지들을 살펴봤다.

멋지고 강해지고 싶은 욕망



당신이 오랜만에 남성지 최근호를 펼친다면 먼저 에르메스와 구찌, 페라가모, 지방시 같은 명품 하우스들이 남성들을 위해 내놓은 신상 가방과 신발에 질투심 혹은 배신감을 느낄지 모른다. 여성들이 하이힐이 자신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남성들은 시계와 자동차가 자신을 하늘 끝까지 올려 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어느 잡지도 시계와 자동차 화보를 빼놓지 않았다. 가을의 잇 아이템 레더 재킷 (‘아레나’)과 ‘패션 고자도 스타일 가이로 만드는 유행 쇼핑 리스트’(‘긱’) 기사, 이 계절에 꼭 필요한 옷으로 꽉 채운 패션 화보(‘GQ’) 등을 보노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그들의 욕망이 여성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남자, 남자를 말하다!

여긴 어디, 우린 누구?
‘이 시대의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도 엿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의 조직이나 권력 상층부에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을 향해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남성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수의 남성들은 그 역학 관계의 반전을 경험한다. 여학생들에게 치이고, 군 입대 문제로 스트레스 받고, 취업은 어려운데 데이트나 결혼 비용 등 경제적인 부담은 늘어간다. 그럼에도 이런 불만을 입에 올리는 순간 ‘네가 남자냐’는 힐난, ‘지질한 놈’이라는 비난, ‘평생 혼자 살라’는 저주의 3단 콤보 공격을 받는다. ‘맥심코리아’ 9월호 표지가 이런 불균질한 남녀 관계를 왜곡해서 사드적 판타지로 상품화했다면, 대부분 남성지들은 이 문제에 나름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우선 많은 잡지들이 슈퍼맨과 요리하는 남자 신드롬,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나아가 ‘GQ’는 ‘역차별은 없다’라는 칼럼에서 “한국에선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 약자이니, 억울해하지 말자”고 스스로 위로한다. 반면 ‘에스콰이어’는 ‘2015년 대한민국 남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편집장 칼럼을 통해 전통적인 성 역할에 보태 최근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더해진 압박감을 이야기하며 남자로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 칼럼은 남자들의 허세가 힘에 부치면 분노로 표출돼 여성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언한다.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이렇게라도 ‘이 시대 남성상과 남녀 관계’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소통이 활발해질수록 꼭꼭 숨겨두었던 불편하고 서운한 감정이 양지로 나와 건강하게 해소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여자들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남자가 불행한 세상에서 여자만 행복할 수 없다고.

디자인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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