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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계는 서울과 연애중

기획 · 김지영 기자 | 글 · 김지은 자유기고가

2015. 09. 15

패션은 언제나 시대의 예술적 가치를 반영해왔지만 예술의 카테고리와 교류를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된 ‘문화 샤넬전’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국내 갤러리에 잇따라 전시되고 있다. 서울의 미술관 곳곳을 화려하게 수놓은 패션의 세계를 만나보자.

세계 패션계는 서울과 연애중
세계 패션계는 서울과 연애중

1947년부터 지금까지 디올 하우스가 보여준 예술적 작품 세계를 담아낸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展’.

2001년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창립 24주년을 기념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회고전’이 열렸다. 회고전에서는 1975년 론칭 이래 25년간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5백여 벌의 의상이 전시됐다. 이 회고전은 구겐하임 미술관이 패션 디자이너의 작품을 기념하고자 연 첫 번째 전시였다. 런던의 빅토리아 앤드 알버트 박물관은 상설 전시관으로 의상 전시실을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영국의 패션 역사가 시대별로 정리돼 있는 이곳에서는 존 갈리아노,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영국이 낳은 당대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만든 의상도 만날 수 있다. 2011년에는 전년도에 타계한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독창적 예술 세계를 기리는 회고전이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렸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상표로 내걸고 지극히 상업적인 태도로 대중과 마주해온 패션계가 이처럼 ‘예술성’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로 접어들어서다. 예술계 전반에 불어닥친 대중운동은 예술의 권위를 내려놓고 실용성과 시대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삶에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시대적 예술 사조를 밀접하게 반영해온 패션이 예술의 영역에서 손쉽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덕분이다.

서울을 접수한 패션 전시들

최근 세계 패션계가 주목한 도시는 ‘서울’이다. 샤넬과 루이비통, 디올 등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이 앞다퉈 패션쇼와 전시회를 열고,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디자이너와 패션 디렉터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단순히 비즈니스 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행보가 아니다. 5월 4일 샤넬은 서울 DDP에서 ‘2015-2016 샤넬 크루즈 컬렉션’을 개최했다. 이번 시즌 샤넬 크루즈 컬렉션의 모티프가 된 도시가 바로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샤넬은 2000년부터 매년 여행과 휴식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크루즈 컬렉션을 개최해왔지만, 한국에서 샤넬의 글로벌 정기 패션쇼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 샤넬 측은 이번 컬렉션의 개최지로 서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전통과 최첨단 기술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다이내믹하고 창조적인 도시 서울은 이번 크루즈 컬렉션을 위한 완벽한 장”이라고 평가했다.

디자이너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전시들도 잇따랐다. 3월에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드레스가 한국을 찾았다. 10꼬르소꼬모 서울 청담점과 에비뉴엘점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아름다움의 기본은 몸이다’라는 아제딘 알라이아의 패션 철학을 담은 26점의 드레스를 통해 인체의 유연한 곡선과 건축적으로 변형된 실루엣에 대한 심미적 탐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4월에는 컨템퍼러리 하이 주얼리 브랜드 레포시의 스페셜 컬렉션이 분더샵 청담에서 열렸다. 전시 기간에는 전 세계 패션 피플을 커넥티드 반지와 이어 커프스에 열광하게 만든 레포시의 디렉터 가이아 레포시가 직접 내한해 한국 전시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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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영역을 순수예술과 음악 등으로 확장해온 헨리 빕스코브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루이비통이다. 5월 1일 광화문 D타워에서 막을 연 ‘루이비통 시리즈2-과거, 현재, 미래전’은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당초보다 전시 기간을 8일 연장해 5월 25일까지 진행됐다. 전시를 통해 루이비통은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올 봄·여름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받은 영감을 ‘장인정신’ ‘액세서리 갤러리’ ‘백스테이지’ 등 총 9개의 주제로 세분화해 테마별 갤러리를 선보였다. 제스키에르는 패션하우스 발렌시아가에서 젊고 혁신적인 컬렉션으로 주목받던 디자이너로, 지난 14년간 루이비통을 진두지휘하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뒤를 이어 지난해 3월부터 루이비통 컬렉션 무대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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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헨릭 빕스코브-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전은 세계 패션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아티스트이자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인 헨릭 빕스코브의 작품 세계를 아시아 최초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과감한 시도를 통해 패션의 영역을 순수예술과 음악 등 여러 형식으로 확장시켜온 헨릭 빕스코브의 예술 세계를 독특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게 된다. 전시와 함께 진행되는 #PlayLikeMe 캠페인은 헨릭 빕스코브처럼, ‘나답게’ 인생을 즐기며 도전할 준비가 된 이들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계속된다.

8월 25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展’은 1947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디올 하우스가 보여준 예술적 작품 세계를 한눈에 만나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전시. 디올의 코드를 보여주는 10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파리’ ‘디올과 예술가 친구들’ ‘디올 가든’ ‘디올 얼루어’ ‘디올 아틀리에’ ‘미스 디올’ ‘핑크에서 레드로’ ‘베르사유 : 트리아농’ ‘디올의 스타들’ ‘자도르’가 그것. 전시에는 서도호, 이불, 김혜련, 김동유, 박기원, 박선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6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각자의 예술 세계를 디올의 작품들에 투영해 디올의 몽환적인 예술성을 부각시켰다.

콜래보레이션, 다양하게 진화하다

작가들과 함께하는 콜래보레이션 형태의 전시는 이미 국내에서도 자생적으로 꾸준히 시도돼왔다. 시몬느의 새로운 핸드백 브랜드인 ‘0914’의 론칭을 기념하기 위해 2013년 10월부터 진행된 ‘BAGSATGE展 by 0914’는 회화, 설치, 사진, 퍼포먼스, 문학, 음악 등 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가방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 좋은 사례로 꼽힌다.

6월 19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된 ‘BAGSATGE展 by 0914’ 프로젝트의 여덟 번째 마지막 전시 ‘0914 BAG BEGINS展’이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위치한 백스테이지 지하 2층 갤러리 0914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가방을 만드는 장인들의 집념과 장인정신, 그리고 소재에서 발견되는 독창성, 정형화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과 가죽 본연의 색상이 주는 깊이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줬다. 또한 이러한 장인정신과 그 순수한 결정체인 가방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작가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가방의 본질을 또 하나의 미적 오브제로 표현하고자 했다.

시몬느의 ‘0914 BAG BEGINS展’에 대해 김노암 세종문화회관 시각예술전문위원은 “예술가들 개개인의 감각과 비전에 대해 기업이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고자 하는 미덕의 사례”로 평가했다. 그는 “예술과 일상이 만나는 것에 익숙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라고 하지만, 사실 예술가들이 자신의 비전과 창의를 자유롭게 함께 고민하고 협업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기가 그리 녹록지 않은 현실”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2년간 꾸준히 지속돼온 우리의 패션 브랜드와 예술인들의 만남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바야흐로 서울은 전 세계 패션 디자이너들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아시아의 뮤즈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패션을 넘어 예술의 세계와 교감하며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세계 패션계는 서울과 연애중

시몬느의 핸드백 브랜드 ‘0914’의 론칭 기념 전시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한 ‘0914 BAG BEGINS展’. 장인 정신의 결정체인 가방의 본질을 감각적인 오브제로 표현한 점이 이채롭다.

사진 · 대림미술관 디올 백스테이지0914

제공 디자인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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