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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제일모직 떠나 서울시로 간 디자이너 정구호

‘소란한’ SEOUL FASHION WEEK 총감독 신고식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2015. 08. 25

2013년, 10년 동안 몸담은 제일모직을 떠나 한동안 잠행하던 정구호가 5월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에 선임된 데 이어 스포츠 브랜드 휠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부사장으로 임명됐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K-패션의 선두주자로 인정받아온 그이기에 이번 복귀는 업계에서도 반길 만한 일. 하지만 2016 S/S 서울패션위크를 앞두고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보이콧’을 결정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제일모직 떠나 서울시로 간 디자이너 정구호
지난 2013년, 제일모직 여성복사업부 전무직에서 물러나 국립발레단 무용 작품의 무대 디자인과 연출을 맡으며 새로운 형태의 예술 활동을 이어온 정구호(52). 그가 그간의 ‘방황’을 마치고 다시 패션업계로 돌아왔다. 지난해부터 업계에서는 ‘정구호 S그룹, F기업 영입설’이 나돌았는데, 지난 5월 소문은 현실이 됐다. 서울디자인재단(서울시 산하 기관)에서 개최하는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에 선임된 데 이어 며칠 차를 두고 휠라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부사장으로 임명된 것. 사실 그동안 패션업계 수장 역할을 해온 이상봉(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회장) 디자이너가 ‘열정 페이’ 논란 등으로 입지가 축소된 상황에서 그의 등장은 업계는 물론이고 넓게는 디자이너로서 그를 애정하는 대중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귀환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많다. 2016 S/S 서울패션위크를 3개월가량 앞두고 주관사인 서울디자인재단과 행사의 주체인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 · 이하 디자이너연합회)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것. 논란의 시작은 서울패션위크 참가 디자이너 모집 공고문에서 비롯됐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 6월 중순 홈페이지에 서울패션위크 디자이너 참가 신청 요건을 공지했는데, 행사 참가자 자격 조건이 기존의 그것과 상당 부분 달라져 있었다. 그러자 디자이너연합회는 조건 변경과 관련해 서울디자인재단이 사전에 디자이너연합회와 아무런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결국 이들은 지난 6월 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2016 S/S 서울패션위크 참가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서울패션위크를 주최하는 서울시와의 소통을 요구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디자인재단은 이례적으로 참가 신청 마감일을 7월 1일에서 6일로 변경하고, 7월 3일 디자이너 참석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디자이너연합회 이상봉 회장과 홍은주 부회장, 신장경 부회장, 박윤정 이사를 비롯해 임선옥 · 이도이 · 강민조 등의 디자이너가 참석했다. 간담회를 통해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구호는 예전에 비해 한결 젊어진 모습이었다. 미리 공지된 시간보다 일찍 행사장에 도착한 정구호는 디자이너들이 하나 둘 들어올 때마다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며 “가까이 와서 앉아달라”는 부탁도 했다. 간담회는 정구호가 서울패션위크 참가 지원 자격 변경에 대해 설명한 뒤 디자이너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먼저 디자이너연합회가 문제를 삼은 부분은 3가지다. 참가비 인상, 참가 자격 변경(사업자 대표 또는 공동 대표인 디자이너만 신청 가능하게 바뀜), 이 모든 과정이 디자이너연합회와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는 점이다.

정구호는 먼저 ‘참가비 인상’에 대해 ‘서울패션위크의 자립’을 중요한 근거로 들었다. 그는 “원래 패션위크라는 게 디자이너들의 비즈니스 활성화와 영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사다. 전 세계 어느 컬렉션도 관이 주도하지 않는다. 자립성 있는 민간 단체가 행사를 주최하고 공동 마케팅 개념으로 협찬금을 받는다. 그런데 서울패션위크는 아직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또 현재로선 협찬받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콘텐츠도 아니다. 그래서 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받고 있는 지원금이 27억원인데 앞으로 연간 30%씩 지원금을 감소시키겠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패션위크가 자체적인 펀딩을 통해서 독립해 비영리 단체로 만들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수순으로 디자이너들도 일부의 책임을 가져가는 것이 어떨까 해서 금액을 조정했다. 서울패션위크는 전 세계 프레스와 바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페셔널한 행사인 만큼, 이 정도의 참가비는 낼 수 있는 수준의 비즈니스 기반을 갖고 있는 디자이너들만이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번째 ‘디자이너가 사업자 대표이거나 공동 대표여야 한다’고 바뀐 조항에 대해서는 “서울패션위크는 어려운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디자인과 사업을 이끌어가는 디자이너를 위한 행사다.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는 디자이너가 아닌, 기업에 소속된 디자이너의 참여를 제한하고자 한다. 기업에 소속된 디자이너는 ‘패션 기업쇼 참가 모집’을 통해 접수하거나, 행사장 외부 쇼(오프 쇼)를 통해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서울디자인재단은 홍보와 바이어 연계를 돕겠다”고 밝혔다. 또한 ‘자가 매장을 보유해야 한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하는 바이어들이 단순히 패션쇼만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디자이너의 매장을 방문해 전체적인 비즈니스 규모와 제품 수준을 파악하고 지속적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바이어와의 수준 높은 상담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쇼룸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 때문에 온라인 판매 또는 쇼 의상 제작만을 하는 패션업체의 참여를 제한하고, 2016년부터 개최되는 트레이드 쇼를 통해 이런 업체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K-패션 발전을 위한 혁명 vs. 소통의 부재는 의미 없다

제일모직 떠나 서울시로 간 디자이너 정구호
마지막으로 정구호는 디자이너연합회의 가장 큰 공분을 산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디자이너연합회의 입장이 디자이너 개개인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사 진행에 있어 앞으로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주최자가 제시하는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가를 하지 않으면 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이날 간담회는 소통과 관련해 양측의 입장 차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3시간 만에 끝이 났다. 디자이너연합회 측은 “세계 무대에서 성장하기 위한 방향이 맞다면 제도의 변화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수용할 의지가 있다. 하지만 패션쇼 주체인 디자이너들과의 소통을 거부한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논란을 두고 업계 의견은 극명하게 나뉜다. 디자이너연합회의 의견대로 서울디자인재단이 패션쇼의 주체인 디자이너들의 의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측과, 서울패션위크의 발전을 위한 정구호의 ‘개혁’을 지지한다는 측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정구호의 독단적 행보에 분기탱천하는 디자이너연합회 측과 달리 다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서울디자인재단의 입장을 옹호하는 신진 디자이너도 꽤 많았다. 실제로 디자이너연합회는 개개의 디자이너에게 참가 거부를 강제할 수 없는 데다,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하는 모든 디자이너가 디자이너연합회 소속은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어찌 됐든 서울패션위크 참가 신청은 마감이 됐다. 서울디자인재단 측은 기성 디자이너들이 참가하는 서울컬렉션의 경우 40명 정원에 53명이 신청을 마쳤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놀랍게도 기자회견장에 나온 원로 디자이너 일부도 포함됐다. 물론 그렇다고 ‘정구호의 승리’라 말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서울디자인재단(서울시)과 디자이너연합회 간의 분열이 단기간에 끝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언제쯤 서울패션위크가 민간 주도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결국 디자이너연합회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번 일로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반목과 분란이 일어난다면 업계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패션 산업 전반에 걸쳐서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유 불문하고 소통은 이루어져야 한다.

디자인 · 유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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