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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백지연이 물구나무서서 바라본 인생

글·김명희 기자 | 사진·북폴리오 제공

2015. 03. 13

방송인 백지연이 소설책을 펴냈다. 뉴스를 전달하는 그가 보여주는 팩트 너머의 세상은 딱딱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고등학교 동창과 와인 한잔을 앞에 두고 나누는 진한 수다 같기도 하고, 책을 덮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우리 모두의 인생 이야기 같다.

백지연이 물구나무서서 바라본 인생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한 글자 차이지만 정반대 포지션이다. 공격권을 쥔 쪽은 어디까지나 질문을 하는 인터뷰어 쪽이다. 2월 3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층에 자리한 프렌치 레스토랑. 늘 인터뷰어로 대중 앞에 섰던 방송인 백지연(51)이 인터뷰이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1987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해 6개월 만에 뉴스의 꽃이라는 9시 뉴스 앵커에 발탁된 이래 몇 년간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롤 모델 1위로 꼽혔고, 1999년 프리랜서로 독립한 이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건 여러 뉴스와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신은 극구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방송인보다 셀레브러티에 가까운 관심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질문을 하는 쪽이었다. 그가 소설책을 펴내고 기자들과 마주 앉은 건,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됐다는 큐 사인 같다.

‘물구나무’는 27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생 6명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물구나무를 못 선 공통점을 안고 뭉치게 된 민수, 수경, 문희, 하정, 승미, 미연 6명은 이후 몰려다니며 돈독한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극 중 화자인 민수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친구 그룹에서 떨어져 나왔고, 27년 만에 만난 수경으로부터 하정이 죽었다는 황망한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민수는 하정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고, 그 와중에 순탄하게만 사는 줄 알았던 친구들의 뜻밖의 삶의 편린들과 마주한다.

백민수는 인터뷰를 전문으로 하는 프리랜스 기자다. 직업뿐 아니라 서울 신촌에 있는 이대 옆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점(백지연은 연세대 심리학과 출신이다), 그 밖에 여러 정황에서 백지연의 자전적 분신 냄새가 물씬 난다.

“독자들이 백민수에게서 백지연을 찾을까 봐 처음에는 1인칭 화자의 직업을 다르게 설정했어요. 그랬더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여기에 백지연은 없습니다. 소설이잖아요. 글을 쓰는 데 자신감이 생기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치면 그때는 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여기에 못다 한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물구나무’에서의 백민수는 관찰자이자 기록자일 뿐이에요.”

소설 속에서, 고교 시절 학교 성적처럼 열심히만 하면 정직한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6명의 인생은 저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좋은 대학에만 가면, 아버지에게서만 벗어나면, 결혼만 잘하면 원하는 미래가 펼쳐지리라는 낙관을 비웃듯 인생은 여섯 여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비극이다. ‘물구나무’라는 제목은 이런 예기치 못한 삶의 반전을 의미한다.



사소한 다툼으로 헤어진 친구들이 다시 모이게 된 것은 하정의 미스터리한 죽음 때문이다. 하정과 관련한 사건은 백지연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1995년 언론에 도배됐던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 피해자였던 친구에게서 모티프를 차용했다.

“제 소설로 인해 누군가 혹시라도 정신적 피해를 당하거나 힘들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조심스럽네요. 당시 저는 영국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억울함을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 소설에 모티프로 가져왔죠. 하지만 이 소설은 그때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사건의 결과 역시 100% 허구예요. 인간의 삶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해야 보이는 세상살이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다양한 삶을 반영하고 싶었어요.”

아들이 성인 될 때 10번째 책을 선물하자는 다짐, 계획보다 일찍 달성해

방송인, 사업가, 교수로 바쁜 그가 언제 소설까지 썼을까 싶은데, 그는 잠을 줄여가면서 썼다고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가 종종 뒤로 미루는 것들은 어쩌면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일 거란 말도 덧붙였다.

“이번 작품을 쓰는 동안 여행이나 운동을 하는 것처럼 즐거웠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웬만하면 삼시 세끼를 거르지 않는데 밥 먹는 것도 잊고,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허리가 아플 정도였죠. 글을 쓰는 것은 분명 인고의 작업이고 스스로와의 싸움이에요. 어떤 날은 한 단락을 못 나간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 자체도 행복했어요.”

백지연은 아들(18)이 두 살 되던 해 생일 선물로 줄 비행기 그림을 그리다 망친 후, 문득 아이가 스무 살 성인이 되는 해 생일에는 직접 쓴 책 10권을 선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물구나무’는 ‘MBC뉴스 백지연입니다’ ‘앵커는 닻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나를 경영한다’ 등에 이은 그의 딱 10번째 책이다. 백지연은 “아이가 스무 살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 계획보다 일찍 목표를 달성한 셈”이라며 웃는다. 그는 새 책이 출간되면 첫 번째 책은 멘트를 써서 아들에게, 두 번째 책은 어머니에게 드린다. 습관이자 자신만의 의식 같은 것이다.

백지연은 2월 말 방영되는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를 통해 연기자라는 직업을 하나 더 갖게 됐다.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안판석 PD는 그와 MBC 입사 동기다. 안 PD는 “가끔씩 만나서 그간 겪은 경험들을 나눌 때면, 자기 이야기를 연기를 하면서 한다. 연기 재주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자격’을 보고 나서부터 그가 ‘나도 좀 시켜줘’ 하더라”며 백지연을 캐스팅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재색을 겸비한 재벌가 안주인이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사람들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는 에너지의 근원과 그 행보의 종착점이 궁금했다.

“제가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인가 봐요(웃음). ‘말이 씨앗이 된다’는 말을 제 인생에 긍정적인 의미로 활용해왔어요.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가까운 지인들한테 ‘언젠가 소설을 쓸 거다’라고 해왔는데, 이렇게 해냈어요. 지금도 5년 후, 10년 후에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다녀요. 그게 뭐냐면,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과 힐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쓰는 것이 목표인데 능력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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