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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양주 마트 분신 사건의 숨겨진 비극

글·김관진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5. 03. 05

2014년 2월 1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 한 중형 마트에서 50대 여성이 분신,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성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우발적으로 낸 사고로 알려진 이 사건의 이면에는 한 중년 부부의 안타깝고 기구한 사연이 있다.

양주 마트 분신 사건의 숨겨진 비극

지난 2월 양주 마트 분신 사건은 전 재산을 잃은 50대 여성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이날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오후 5시 15분쯤. 사건 발생 몇 시간 후 경찰은 숨진 여성 김모(50) 씨가 남편이 체결한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고 계약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마트 건물주와 1시간가량 마트 뒤편 사무실에서 언쟁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화가 난 김씨는 건물주가 나간 사이 휘발성 물질을 몸에 뿌리고 라이터를 켰다는 것. 이내 인터넷에는 김씨가 홧김에 분신했다며 ‘분노 조절 장애가 부른 또 하나의 우발 범죄’라는 내용과 제목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들 기사 중에는 김씨의 사례를 들며 우리 사회에 분노 조절 장애가 팽배해 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의 글도 있었다. 김씨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힌 가해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일 정도라면, 특히 함께 마트를 찾았던 아홉 살 난 어린 딸까지 내보내고 분신했다면 분명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때부터 김씨가 마트를 방문하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한 취재에 들어갔다.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을 사람은 김씨의 남편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김씨의 시신이 안치된 양주 소망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몇 시간을 기다렸을까. 2월 2일 새벽 남편 이모(53) 씨가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충격과 슬픔에 잠긴 그에게 차마 말을 걸 수 없었다. 그가 직접 얘기를 들려줄 때까지 기다림은 계속됐다. 오전 3시가 넘어서야 남편 이씨가 말문을 열었다. 이씨의 남동생과 친척, 이씨 부부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직원도 곁에 함께했다.

1백50억원대 재산 사기로 잃은 후 재기해 열심히 살아보려 했는데…

남편 이씨가 기자에게 가장 먼저 내보인 것은 아내의 휴대전화였다. ‘사장님 우리 세 식구의 목숨이 달렸습니다. 더는 바라지 않겠으니 돌려주세요’ ‘지금 사장님이 저희를 버리시면 갈 곳이 없습니다’. 김씨의 절규가 문자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씨는 담담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그는 자신을 한때나마 1백50억원대 자산을 가졌던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변변한 자본금 한 푼 없이 맨손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었고, 10년 전쯤엔 수도권에 마트 대여섯 곳을 운영해 꽤나 큰돈을 벌었다고 했다. 이씨는 그 무렵 김씨를 만나 결혼했고, 늦둥이 외동딸도 얻었다.

이씨는 “하지만 2005년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었다”며 “이후 10년간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고 말했다. 아내 김씨가 사망하기 전, 이들 부부는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에서 작은 마트를 운영해 돈을 마련했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작년 말 서울 송파구 강일동의 한 지하상가에 마트를 열기로 하고 2천2백만원을 들여 리모델링까지 마쳤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양주에 상권 좋은 큰 마트가 있는데 인수해보라”는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남편 이씨는 “그 제안을 거절했어야 했다”고 고개를 떨궜다. 그해 12월 19일 마트 사장 A씨를 만나 5억5천만원에 달하는 권리금 계약서를 썼다. 계약금으로 전 재산인 5천만원을 건넸다.



당장 가진 돈이 없었지만 이렇게 큰돈을 주기로 한 건 A씨의 약속 때문이었다. 이씨는 “A씨가 금융 기관에서 6억원을 대출받아 넘겨줄 테니 돈을 벌어 천천히 갚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약속을 믿은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A씨의 호의에 부부는 운영하려던 강일동 마트를 투자 비용도 받지 않고 A씨의 친구에게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1월 20일 A씨가 약속한 6억원은 이씨의 통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A씨의 약속을 계약서에 적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불안한 부부는 A씨에게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A씨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이니 돌려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 당일. 김씨는 남편의 만류에도 “양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마트를 찾았다. 남편은 뒤늦게 아내를 쫓아갔지만 마트는 이미 화염에 휩싸인 뒤였다. 기자는 부부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은 이유, 이씨의 주장에 대한 해명 등을 듣기 위해 A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통화가 어렵다”며 전화를 끊었다.

디자인·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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