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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데이트 폭력의 모든 것

이별이 최선이다!

글·구희언 주간동아 기자 | 사진·REX 제공

2014. 10. 01

“이 남자의 이 행동, 그린라이트인가요?”라는 당신의 질문.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좋은 연애’를 하고 싶다면 질문을 바꾸자. “이 남자의 이 행동, 레드라이트인가요?”

데이트 폭력의 모든 것
‘썸 탄다’는 말이 유행인 요즘,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조금 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서로 즐겁고 행복하자고 시작한 연애가 자칫하면 일상의 행복마저 앗아가고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나를 끌어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수 이효리는 SBS ‘매직아이’에서 “데이트 폭력 피해와 가해 경험이 모두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20대 땐 자존감이 낮아서 상대방이 날 거부하면 분노 조절이 안 됐다. 남자친구가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인데 ‘날 사랑하지 않는 거냐. 끝내자’며 물건을 던지고 화를 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데이트 폭력은 더 이상 이성 간의 사랑싸움이 아니다. 5월 대구에서 발생한 중년 부부 피살 사건의 범인은 딸의 전 남자친구였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남자는 연인 사이였을 때도 술을 마시고 여자친구를 때리는 일이 잦았다. 이에 여자의 부모가 남자의 부모를 찾아가 “댁의 아들과 우리 딸이 만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자 앙심을 품고 참혹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이 8월 26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 사이 1백43명이 애인으로부터 살해당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데이트 폭력은 타고난 ‘사이코패스’만이 저지르는 ‘운 나쁜 남의 일’일까. 전문가의 대답은 No.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구 살인사건의 원인은 딸과의 교제를 반대한 부모에 대한 보복, 복수 심리”라며 “이러한 정신과적 장애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른 유형”이라고 밝혔다. 결국 부모의 잘못된 양육이나 주변인과의 갈등으로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 평소 약자 함부로 대하는 성향 보여

Q.데이트 폭력이 무엇인가.



데이트 폭력에는 데이트 관계에서 발생하는 강간, 성추행, 음란 전화, 스토킹, 사이버 성폭력 외에도 언어적·정서적·경제적 문제가 포함된다. 여기에는 공식적 통계에 잡히지 않는 폭행, 감금, 납치 등의 신체적 폭력도 포함된다. 또한 데이트 폭력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강화된다.

Q.데이트 폭력은 어느 연령대에 집중돼 있나.

단순히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데이트 폭력은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여성의 전 생애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최소 1백23명의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으로부터 살해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 범죄의 피해자 연령을 살펴보면 40대(33.1%)가 제일 높았고 50대(22.7%), 30대(14%) 순으로 나타났다. 20대(9.5%)와 10대(1.5%)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에 2013년 한 해 동안 전화·이메일을 통해 접수된 상담은 총 2천4백48건이었는데, 이 중 애인·과거 애인, 채팅 상대자 등 데이트 관계에서 폭력이 발생한 경우는 4백14건(16.9%)이었다. 이 중 데이트 폭력 피해자는 20대(1백24건, 30%), 가해자는 30대(70건, 16.9%)가 가장 많았다.

Q.뉴스에서 연일 데이트 폭력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최근 들어 피해 사례가 증가한 건가.

아니다. 연인 사이의 폭력은 줄곧 있었지만 그동안은 폭력이라고 인지하기보다 연인 간의 흔한 사랑싸움으로 치부해왔다. 이런 피해 사례가 ‘데이트 폭력’으로 명명되고 스토킹이 범죄라는 인식이 강해진 2000년대 후반부터 사건 보도가 많이 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 내담자 자체가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고 인지하며 상담해오는 경우가 늘었다.

Q.가해자의 수법은 대체로 어떤가.

유형은 정말 다양하지만,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수법이 너무나 비슷해 ‘가해자 매뉴얼’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장 흔한 수법은 성관계 사실이나 동거 혹은 임신했던 사실을 가정 또는 회사에 알리거나 성관계 사진·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이다. 피해자 상담을 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례다. 헤어진 남자친구라면 ‘내 존재를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알리겠다’는 식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협박 도구로 쓰기도 한다.

Q.연애하기 무서운 세상이다. 특별히 조심해야 할 유형이 있다면.

데이트 폭력 가해자는 동떨어진 별에서 온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이나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가해자는 상대를 통제하고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하려는 성향을 조금씩 보인다. 상대의 일상을 통제하고 자신의 규칙 내에서 움직이길 바라며 상대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싶어한다.

남자가 평소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유심히 살피자. 약자를 대할 때 함부로 하거나 지배하려는 성향을 보인다면 연애 관계에서도 그러할 가능성이 있다. 가해자 중에는 여성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연애에 모든 걸 걸고 몰두하는 성향도 있다. 친구를 다 끊고 둘만이 고립되는 연애는 굉장히 위험하다. 실제로 가해자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등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피해자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걸 어렵게 한다. 상대가 아래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상담받기를 추천한다.

□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 하루 종일 많은 양의 전화와 문자를 한다.

□ 통화 내역이나 문자 메시지 등 휴대전화를 체크한다.

□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을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하게 한다.

□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 날마다 만나자고 하거나 기다리지 말라는데도 기다린다.

□ 만날 때마다 스킨십·성관계를 요구한다.

□ 내 과거를 끈질기게 캐묻는다.

□ 헤어지면 죽어버리겠다고 한다.

□ 둘이 있을 때는 폭력적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태도가 달라진다.

□ 싸우다가 외진 길에 나를 버려두고 간 적이 있다.

□ 문을 발로 차거나 물건을 던진다.

데이트 폭력의 모든 것
이별이 최선, 이별 의사는 단호하고 확실하게

Q.남자친구에게서 데이트 폭력 성향이 보인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상대방이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대화를 통해 관계를 바꿔나가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다. ‘너의 이런 부분은 싫다’ ‘이런 부분은 나를 힘들게 한다’는 식으로 감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관계를 조율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선 가능성이 없다면 최대한 빨리 헤어지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여성이 데이트 폭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좋은 이별’을 하고 싶은 심리 때문인데, 남자 쪽에서 아직 헤어질 마음의 준비가 안 됐으니 연락만이라도 받아달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만나달라고 해서 관계를 끌어오다 피해를 입기도 한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와 ‘좋은 이별’이란 없다. 이별 의사는 단호하고 확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Q.가해자의 정신적·심리적 상태가 궁금하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 중 특정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가 많은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대개 평소에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거나 충동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잠재적인 적개심이나 사회적·문화적인 우월감을 가진 사람에게서 데이트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버지가 어머니나 자식에게 자주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 환경에서 자란 남자들의 경우 데이트 폭력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좀 더 높다. 평소 공격적·충동적 성향을 자주 보이거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경우, 혹은 여성 비하적인 사고방식을 많이 갖고 있거나 아니면 가정 폭력을 자주 목격 또는 본인이 가정 폭력의 피해 당사자일 경우 좀 더 유의해서 살펴봐야 한다.

Q.치료를 받고 가해자의 상태가 호전되기도 하나. 만약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

가해자가 갖고 있는 잠재적 충동성, 공격성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 찾아서 교정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자존감의 저하나, 여성과의 관계에 있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여성 비하적 사고방식이 문제가 된다면 그에 대한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치료는 약물치료와 심리치료가 주종을 이루는데, 지나친 충동성 또는 공격성을 낮추는 약물을 사용하거나 심리적인 문제를 다뤄주는 정신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Q.연애 전 조심할 부분이 있다면.

제일 좋은 건 ‘나쁜 놈’에게 두근대지 않고 ‘좋은 남자’에게 두근대도록 ‘내 심장을 바꾸는 것’이다. 평소 데이트 폭력에 관한 자료도 찾아보고 강좌도 들으며 ‘나쁜 남자’를 골라낼 ‘촉’을 키우자.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는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태라면 집 주소·가족 관계같이 구체적인 개인 정보를 다 공개하지 않는 게 좋다. 피해 여성 상당수가 가해 남성을 오래 만났음에도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어디 사는지, 심지어 미혼·기혼인지 등 기초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남자를 만날 때 관계를 주도하고 상대방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지나치게 남자의 경제적인 면에 의존하는 데이트도 추천하지 않는다. 데이트 비용을 일방적으로 남성이 부담하거나 과도한 선물 공세를 하는 관계라면, 그런 사람이 가해자로 돌변했을 때 경제적인 부분이 협박의 수단이 되는 경우도 흔히 본다. 가해자는 돈을 되돌려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상대를 괴롭히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Q.데이트 폭력 피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데이트 폭력은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전문 기관의 도움이 필수다. 피해를 입었다면 상담소에 전화하거나, 주위에 피해를 당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면 후일 법적 대응할 때 힘이 된다. 가해자는 상대를 협박할 수 있는 증거를 굉장히 잘 모으는 반면, 피해자는 이런 대비가 부족하다. 매번 때리고 나서 용서를 비는 남자친구라면 고소할 생각이 없더라도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는 등 증거를 확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가해자는 애초에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상황까지 시뮬레이션해서 찾아온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떼인 돈을 받으러 왔다’며 통장 사본을 준비해 오는 치밀한 가해자도 있을 정도다. 상담소에서 상담받은 기록, 병원 진단서, 내용 증명, 단호한 의사 표시(녹음 파일) 등이 나중에 ‘강압적인 협박으로 지속된 관계’임을 증명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반드시 112에 신고해 경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경찰 신고 기록 자체로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데이트 폭력에 대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피해자 자신의 안전이다. 위험 상황에서 내 현재 위치를 전송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을 휴대전화에 깔고, 가해자가 찾아올 것 같거나 위험이 느껴진다면 미리 주변에 ‘몇 시까지 연락이 안 되면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말을 해두는 등 안전확보를 위한 조치를 해둬야 한다.

데이트 폭력 상담을 원한다면

▶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데이트 폭력 상담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02-2263-6465) 이메일 상담 counsel@hotline.or.kr

▶‘데이트UP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을 휴대전화로 다운로드하면 건강하고 평등한 데이트와 데이트 폭력 예방을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도움말·한국여성의전화 조재연 활동가, 유범희정신건강의학과의원 유범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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