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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중국영화로 칸 찾은 송혜교

글&사진·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신화통신 제공

2014. 06. 18

송혜교가 중국영화 ‘태평륜’으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많은 배우들이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릴 동안 그가 중국에 시선을 고정한 이유는.

중국영화로 칸 찾은 송혜교
“능력이 안 되는 상황에서 무조건 간다고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까요.”

무심한 듯 꺼낸 말이었지만 솔직했다. 배우 송혜교(32)는 한 때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았다. 아시아 한류스타로 인정받으면서 뒤따른 관심이다. 많은 배우들이 ‘넓은’ 미국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욕심을 내는 분위기도 마치 그의 미국행을 당연시 여기게 했다. 하지만 송혜교는 달랐다. 그의 눈은 중국으로 향해 있었다. 벌써 10년이 넘은 이야기다.

송혜교가 제67회 칸 영화제를 찾은 이유도 중국과 손잡은 영화 ‘태평륜’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작품은 1949년 1월 27일 중국에서 발생한 태평륜호 침몰 사건을 다룬다. 그는 “(할리우드에는) 욕심이 없다”고 말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또한 “흘러가는 대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는 가치관도 한몫 했다. 프랑스 칸에서 만나, 묻고, 들은 송혜교의 생각이다.

한국시각으로 5월 18일 오후 10시. 칸 현지시각으로는 오후 3시. 지구 반대편 칸의 날씨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태양이 내리쬈다. 한낮 해변 카페에서 송혜교를 만났다. 영화 ‘태평륜’ 주연 자격으로 칸을 찾은 그는 전날 장쯔이와 금성무 등 동료 배우들과 제작발표회를 가졌고 이튿날인 18일에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취재진과의 인터뷰를 소화했다. 실내와 야외를 오가며 진행된 인터뷰에서 송혜교는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채 나섰다. 뜨거운 햇볕은 그의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태양쯤은 익숙한 듯, 그는 눈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먼저 왜 ‘중국영화’였는지 물었다.

“스무 살 때 운 좋게 중국에 제 이름이 알려졌어요. 그 뒤론 꾸준히 일을 해왔죠. 거창하게 해외 진출을 꿈꾼 건 아니에요. 저는 흐르는 대로 가는 게 좋거든요. 그렇게 여기까지 왔어요. 기회가 올 때마다 최선을 다하면서요. 그동안 존경해왔던 감독님들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도 없었죠.”



영화 ‘태평륜’은 송혜교가 주연으로 나선 두 번째 중국영화다. 지난해 개봉한 첫 주연영화 ‘일대종사’는 그해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그리곤 이번엔 칸 영화제다. 이들 두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중국을 넘어 세계에서 ‘거장’으로 통하는 우위썬(오우삼)과 왕자웨이(왕가위). 송혜교는 이들과 작업한 뒤 “배우로 성숙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칸

중국영화로 칸 찾은 송혜교

5월 16일 프랑스 칸에서 영화 ‘태평륜’을 선보인 송혜교.

송혜교는 두 감독과 나눈 신뢰의 깊이를 드러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태평륜’의 우위썬 감독은 “아버지”에 비유했고, ‘일대종사’왕자웨이 감독은 “마치 외삼촌 같다”고 했다. “두 감독의 나이만 놓고 비교한다면 그렇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우위썬 감독은 한국 촬영 현장의 감독들과 비슷한 스타일이에요. 일단 촬영 시기가 정해지면 그 기간에 예정한 일정을 모두 소화하니까요. 중국 현장에선 외국인이던 제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가장 많이 배려해준 사람도 감독님이었죠.”

반면 왕자웨이 감독은 촬영장에서 수 없이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제가 기존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이 조금이라도 엿보일라치면 가차 없이 ‘컷’을 외쳤어요. 아마도 감독님은 제게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찾아내려고 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세심하게 저의 내면을 이끌어냈죠.”

촬영 기간에 비해 출연 비중이 적었던 ‘일대종사’와 달리 ‘태평륜’에서 송혜교는 중국 스타 장쯔이와 함께 이야기를 이끄는 한 축을 이룬다. 현재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영화는 제작비만 6백억 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193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했다. 한국인 배우가 중국의 역사적 사실을 곁들인 시대극에서 중국인 역할로 주연을 맡는 건 이례적이다.

‘태평륜’에서 송혜교는 티 없이 자란 금융가의 딸이자 맑고 밝은 성격의 여인 저우윈펀을 연기했다. 그렇다고 평면적인 인물은 아니다. 남편을 잃고 겪는 시련 속에서 점차 성숙해가는 인물이다. 모든 대사는 중국어로 소화했다. 중국 영화는 100% 후반 녹음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굳이 촬영 때 완벽한 중국어를 구사할 필요가 없었지만 송혜교는 “욕심이 났다”고 했다.

“처음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죠. 자신감이 없으니까 목소리도 작게 나오더라고요. 그래도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니까 해내고 싶었어요.”

정확히 6년 전 5월, 송혜교는 칸을 처음 찾았다. 그 때도 우위썬 감독과 함께였다. ‘태평륜’의 제작을 처음 알리는 자리. 당시만 해도 당장 영화 촬영을 시작할 줄로 알았지만 여러 이유로 제작이 지연됐다. 6년 만에 다시 칸을 찾은 그는 영화의 완성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솔직히 저도 사람인데 이러다가 영화를 못 찍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불안하지 않았냐고요? 전혀요. 제작 상황이 바뀔 때마다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이해하면서 기다렸어요.”

이제 송혜교의 눈은 다시 국내로 향한다. 당장 9월에 주연한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을 내놓는다. 최근까지 이 작품 촬영에 몰두한 그는 함께 주연으로 나선 배우 강동원과 함께 모성과 부성 그리고 사랑으로 얽힌 한 편의 휴먼 드라마를 완성했다. 두 사람은 2010년 장준환 감독이 만든 작품 ‘러브 포 세일’에서 처음 만나 지금껏 우정을 나누고 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을 끝낸 송혜교는 “일하는 재미가 이제야 생기는 것 같다. 쉬고 싶지 않다”고 했다.

“국내에서 한 작품을 끝내고 중국에서 영화를 찍고, 다시 돌아와 연기 활동을 하는 게 좋아요. 지금 제게는 중국이든 한국이든 상관없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게 가장 중요해요.”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그는 “무협 영화에 욕심이 난다”고 했다. 몸을 혹사하는 와이어 액션이 들어가는 무협 영화는 여배우들이 꺼리는 대표적인 장르. 그의 말대로 “일하는 재미”가 없다면 선뜻 욕심내기 어려운 장르다. 그는 몇 번이나 무협 영화를 향한 의욕을 보이며 “더 늙기 전에 (하고 싶다)”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칸에서 3박 4일을 보낸 송혜교는 제작발표회와 인터뷰 등 각종 행사를 소화하느라 마음 놓고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일정을 마친 그는 곧바로 파리로 향했다. 예정된 화보 촬영을 소화하기 위해서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송혜교가 내심 꿈꾸는 ‘칸에서 보내고 싶은 하루’는 그저 소박하다.

“해변에 누워서 하루 종일 책을 보고 싶어요. 저에게도 그런 여유가 있는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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