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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전방위 아티스트 김용호의 상상력 공장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글·김명희 기자|사진·이기욱 기자, 915인더스트리갤러리 제공

2014. 06. 17

아티스트의 임무는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다. 사진작가 김용호의 연(蓮)을 주제로 한 연작 ‘피안’처럼 말이다. 현상과 욕망, 희로애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한 영역을 구축한 김용호 작가를 뷰파인더 밖으로 불러냈다.

전방위 아티스트 김용호의 상상력 공장
서울 신사동 김용호 작가의 스튜디오는 ‘915인더스트리 갤러리’라는 공식 간판 대신 ‘915전방위문화구락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어쩐지 불온한(?) 뉘앙스를 풍기는 구락부라는 단어는 사실 ‘클럽’의 일본어 음역이다. 일제 강점기 때 미술구락부, 스키구락부처럼 같은 취향이나 지향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했던 이 구락부는 비슷한 시기 프랑스에서 살롱을 대체한 카페 문화와 일맥상통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도 등장하는, 헤밍웨이나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피카소·달리 같은 예술가들이 파티를 열고 논쟁을 벌였던 곳. 그래서 김용호 작가가 머무르는 공간은 그의 작품들과 오버랩되며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스스로 빛나는 존재, 모던 보이

김용호 작가는 구락부 깊숙한 곳에 잘 다듬어진 피사체처럼 단정하게 자리 잡고 앉아 기자를 맞았다. 그로 말하자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스타일리시한 청담동 사람들의 아지트로 지금의 강남 스타일을 탄생시킨 ‘역사적인’ 장소 카페 드 플로라를 운영한 주인공이다. 스튜디오 이름의 915는 그의 정신적인 DNA와도 같은 카페 드 플로라가 있던 청담동 번지수다.

또한 그는 예술과 상업 사진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1990년대 광고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해 1994~96년 대한민국광고대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올해의 포토그래퍼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수많은 여배우들이 그의 렌즈를 거쳐갔다. 2003년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의 후원으로 백남준·차범석·박서보 등 거장 28인 초상을 카메라에 담아 ‘한국문화예술명인전’을 열기도 했으며, 지금도 현대자동차·현대카드·아모레퍼시픽 등 유명 회사들이 그에게 브랜드 이미지나 광고 사진을 의뢰하고 있다.

전방위 아티스트 김용호의 상상력 공장

지난해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드림소사이어티전에 선보인 모던 보이. 작가는 이 모던 보이가 언젠가는 뽀로로처럼 대박을 낼 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그가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1920~30년대, 개화기 지식인의 모습이다. 지난해에는 시인 이상을 주제로 ‘제비다방에 샴팡구락부를 허하라’는 개인전을 열었으며, 얼마 전에는 ‘모던 보이’라는 아트 토이를 선보였다.



“마침 2014년이 모더니즘 탄생 1백 주년이 되는 해예요. 많은 학자들이 모던의 시작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으로 보거든요. 가치관이 충돌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기존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났기 때문이죠. 개인들에게는 좀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허용되고, 문화적으로는 신분 질서가 무너지면서 귀족들이 천재 예술가들을 불러 은밀하게 즐기던 살롱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는 카페 문화로 이동해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발아했죠.”

전방위 아티스트 김용호의 상상력 공장
모던 보이는 20cm 정도 되는 로봇 모양의 세라믹 인형이다. 머리 부분에 전구를 달아 조명 기기로 쓸 수 있는데, 한밤중에 머리맡에 켜놓으면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왠지 모를 믿음이 샘솟는다. 전구를 다는 대신 연필꽂이나 화병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고, 패션이나 광고 등과의 콜래보레이션도 가능하다. 그나저나 작가는 언젠가는 ‘뽀로로’처럼 대박을 터트려 작가의 말년을 꽃방석에 올려놓을지도 모르는 이 신통방통한 오브제에 왜 모던 보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안정된 사회에서 몇 안 되는 빛나는 존재들, 그들도 과거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혼란의 시기를 지나 스스로 빛을 내 현대를 연 모던 보이처럼, 당신과 나의 삶이 지금은 보잘것없어도 언젠가는 빛나는 존재가 될 거라는 의미를 담았죠.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은 자신에게서 답을 찾아야 하죠. 스스로 빛을 내 미래를 밝힐 수 있어야 인생이 가치 있어지니까요.”

스토리텔링의 귀재

모던 보이처럼, 김용호의 작품들은 저마다 서사를 담고 있어서 그것이 껴안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게 만든다. 특히 2009년 루이비통의 의뢰로 촬영한 ‘불국루비통’이라는 광고 사진을 보면 그가 스토리텔링의 귀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에 담긴 이야기는 이렇다. 1백 년 전 조선 여인 청담녀는 불국(프랑스) 신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그는 고국으로 떠나고 둘의 러브 스토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정인을 잊지 못해 그가 남기고 간 가방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어깨에는 ‘불국루비통(佛國漏悲痛·프랑스 남자를 떠나보낸 후 비통의 눈물을 흘린다)’이란 문신이 새겨져 있다.

전방위 아티스트 김용호의 상상력 공장

연잎을 주제로 한 사진 ‘피안’ 앞에 선 김용호 작가.

김용호 작가가 이 사진을 발표하고 나서 1년쯤 지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레이디 블루 상하이’라는, 비슷한 맥락의 크리스찬 디올 광고 영화를 제작했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중국 남자와 사랑을 나누다 헤어진 여자(마리옹 코티아르)는 호텔방에 들어갔다가 남자가 놓고 간 디올 백을 발견한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내 사진을 보고 광고를 만들었을 리는 없겠지만 흥미롭더군요. 상업 광고지만 소비자가 생산자 때문에 우는, 그런 힘의 역학 관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욕망이나 희로애락 같은 추상적인 감정들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는, 그래서 카메라 셔터만 누를 줄 알면 예술가로 ‘자칭’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올까.

“글쎄, 책을 많이 보고 신문도 하루 2~3가지를 정독해요. 세상 돌아가는 일도 알고,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어떤 공연을 보고 뭘 하면서 놀까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고. 그렇게 꾸준히 새로운 정보들을 입력하면 그것들이 퍼즐 조각처럼 머릿속을 돌아다니다가 적절한 순간에 새로운 이미지나 단어로 툭 튀어나오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접하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수많은 일상, 그리고 생각의 조각을 발견하고 ‘그래 바로 이거야!’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

일찍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재미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라고 일갈했듯, 김용호 작가의 창의력은 경계와 분야를 넘나들 때 발생하는 혼란과 무질서를 즐기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어떻게 하면 고등 룸펜처럼 살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범속하다”고 표현했지만 바꿔 말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창작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는 대신 호기심을 품고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며, 돈이나 성공 같은 세속적인 가치보다 스스로의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그가 사진을 본업으로 하되 시와 소설을 쓰고, 주역과 기호학을 공부하고, 책을 만들고, 카페를 운영하고, 플루트를 배우는 등 끊임없이 딴짓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안의 또 다른 세계, 피안

전방위 아티스트 김용호의 상상력 공장
김용호 작가는 지난 5월 7일부터 닷새간 열린 서울오픈아트페어에 연을 주제로 한 ‘피안’ 연작을 선보였다. 그의 카메라 렌즈를 통과한 연잎에선 싱그러운 자연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6~7년 전쯤 경복궁 고궁박물관에 조선 민화전을 보러 갔는데, 거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연이었어요. 비가 와도 흐트러지지 않고 흙탕물이 튀어도 더러워지지 않으며, 부부 화합과 장수, 건강 같은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연을 한번 찍어보자’ 하고 그때부터 부여 궁남지와 전주, 부안, 양평, 일산 등 전국의 유명하다는 연꽃 군락지를 다 다녔죠.”

연못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꽃이 부각되도록 찍은 사진은 흔하지만, 연못 안에 들어가 위를 올려다보고 찍은 사진은 그가 처음이다. 물 아래에서 본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과 또 다르다. 짙은 초록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던 연잎의 혈관이 투명하게 드러나며 생명의 경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처음부터 물에 들어갈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현장에 갔다가 우연히, 즉흥적으로 들어가게 됐죠. 제 작업 과정을 돌아보면, 그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책을 읽는가 같은 우연한 만남 혹은 사건들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변수에서 대박이 나기도 하고, 바보 같이 한 행동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요.”

‘피안(2011-001)’은 2011년 처음 전시됐을 때 현각 스님이 갤러리 바닥에 누워서 감상한 것이 화제가 돼 더 유명해졌다. 물속에 들어간 작가와 그 마음을 헤아린 스님, 지음(知音)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현각 스님이 대단하신 게, 물속에서 찍었다고 했더니 그럼 작가의 시점에서 봐야겠다며 주저 없이 바닥에 누우시더군요. 그 이후론 그렇게 관람하는 게 유행이 돼서 아예 작품 앞에 요가 매트를 깔아놓았었죠.”

이제야 말이지만 그가 운영하는 광고 회사 도프앤컴퍼니의 ‘Doff’는 ‘나는 개구리의 꿈(Dream of Flying Frog)’의 약자다. 연잎에서 드디어 영원의 안식을 찾았나 싶은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꿈꾸는 개구리 같은 작가는 또다시 다른 주제를 찾아 모험을 떠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광고 사진을 찍다보면 예술 사진은 자연히 뒤로 말리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단다.

“밤을 새워서 일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어요. 오히려 여유 있게 하는 편이죠. 커머셜이 가장 급하지만 파인 아트에 스폰서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내 스스로 언제쯤 한다는 약속을 하고 거기에 맞춰서 꾸준히 작업을 하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진보하며 자신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가는 이 행복한 예술가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고뇌가 있을까.

“사람은 저마다 힘든 점이 있잖아요. 저는 혼자 사니까 외롭고 쓸쓸하다는 거, 그거죠 뭐. 잘 아는 분이 지금 이탈리아 주재 한국 대사로 나가 계신데, 나중에 퇴직하면 요리를 배워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몸을 움직여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얻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즐거움을 주고. 그게 무엇이 됐든 저의 앞으로의 바람은 장르 구별 없이 제가 즐길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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