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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압도적인, 너무나 압도적인 이상화

올림픽 2연패

글·구희언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제공

2014. 03. 14

양 손톱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빙속 여제’ 이상화는 러시아의 얼음 위를 총알같이 날았다. 압도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압도적인, 너무나 압도적인 이상화
언제부턴가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25)에게는 적수가 없었다. 그는 늘 과거의 자신과 싸웠다. 지난해에만 세계 신기록을 네 차례 경신하며 ‘빙속 여제’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한 그는 2월 11일 밤,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1, 2차 레이스 합산 74초 70의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2연패를 기록했다. 1000m 경기까지 마친 2월 14일(한국 시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상화는 올림픽 2연패 달성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압도적인, 너무나 압도적인 이상화
▼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고 2연패를 한 기분은 어떤가.

4년 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정말 좋다. 이 기쁨을 많이 누리고 싶다. 500m에서 금메달을 딴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1000m 경기를 준비해야 해서 제대로 기뻐하질 못했다. 1차 레이스에서 아쉬운 감이 있었는데, 2차에서 만회해서 굉장히 좋았다. 엄청난 부담감이 있었는데 그걸 이겨낸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낀다.

▼ 메달 세러모니를 할 때 많이 울던데.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애국가가 나오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2연패를 했다는 사실 외에도 그간의 노력과 부담감을 이겨낸 것 등 힘든 기억이 스쳐 지나가서 끊임없이 눈물이 흐른 것 같다. 아마 다른 선수들도 그 자리에서 애국가를 듣는다면 눈물을 흘릴 것이다.



▼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인가.

지난해 월드컵 1차 대회 때 세계 신기록을 세웠는데, 초반에 세계 신기록을 세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신감을 얻은 게 굉장히 컸다. 세계 신기록도 세웠는데 뭔들 못하겠느냐는 마인드로 경기에 임했다. 올림픽이 올 시즌 가장 중요한 대회라 많이 준비했는데, 체중을 많이 감량한 게 도움이 됐다.

▼ 시즌 초기에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자신감도 생겼지만 부담감도 있었을 것 같다.

올림픽이 가까워지면서 시즌 초반에 잘했는데 정작 올림픽에 가서 못하면 어쩌나 긴장했다. 그런 것이 부담감으로 밀려와 힘들었다.

▼ 감기도 걸렸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는데 이겨낼 수 있었던 비결은.

약 먹고 쉬면 나을 거라 대수롭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기를 회복해서 운동하면 되니까. 날씨가 워낙 추워 다른 선수들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하지정맥류를 어떻게 극복했나.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이런 고통이나 병을 갖고 있다. 하지정맥류는 아팠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걱정이 됐다. 지난해에는 훈련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올 시즌은 올림픽 시즌이어서 무리한 운동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릎이 지금껏 버텨준 것 같다.

▼ ‘여제’라는 별명이 마음에 드나.

좋다. 기록으로 승부하는 경기라 여왕보다 여제라는 느낌이 잘 맞아떨어진다. 처음엔 ‘뭐지’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게들 불러주시니 마음에 든다.

▼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족의 희생과 헌신이 있던 것으로 안다. 가족이 어떤 동기 부여를 했나.

오빠와 어릴 때 함께 스케이트를 배웠다. 오빠도 스케이트를 하고 싶어 했다는 걸 나중에 대표팀에 발탁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걸 생각하면 미안하다. 이렇게 성공해서 메달도 획득했으니 가족과 함께 기쁨을 누리면 오빠도 행복해할 것 같다. 가족이 뒷바라지를 많이 해줘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만두고픈 생각이 사라졌다.

압도적인, 너무나 압도적인 이상화

1 태릉선수촌에서 훈련에 매진 중인 이상화. 2 이상화의 굳은 살 박인 발은 부단한 노력으로 얻은 훈장이다.

▼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10 밴쿠버 올림픽 이후 2011~12 시즌이 가장 힘들었다. 금메달을 획득하고 정상에 있었기에 2, 3등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 걸 고치려 노력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

▼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노력, 이상화는 어떤 비율로 이뤄져 있나.

50:50. 타고난 건 50%인데 거기에 노력을 50% 더한 것 같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순발력이 굉장히 좋은 편인데, 기술을 겸비해서 더 좋아진 것 같다.

▼ 2018 평창 올림픽에 도전할 생각이 있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모)태범이나 (이)승훈이는 출전할 것 같은데, 그 친구들이 보여주면 될 것 같다. 아직은 소치에서 기쁨을 더 누리고 싶다.

▼ 국내에서 5월 결혼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결혼은 조금 아닌 것 같다. 1000m를 타기 전 그런 기사를 접했다. 중요한 경기였는데 그런 추측성 기사가 나와 당황스럽고 놀랐다. 향후 계획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소치 올림픽에 집중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 다가오는 시즌이 힘들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이겨낼 건가.

이제는 힘들지 않을 것 같다. 경험이 있고, 그것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세계 신기록도 세우고 올림픽 2연패도 했는데 뭔들 못하겠느냐는 마음으로 임하겠다.

압도적인, 너무나 압도적인 이상화
1만 시간의 법칙, 이상화를 만들다

얼음같이 쿨한 성격&무서운 연습벌레


“슬럼프는 자기 내면의 꾀병이죠.”

이상화가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한 말이다. 그가 어떻게 ‘여제’의 자리에 올랐는지, 내면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과거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학교 2학년 여름,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둘까 싶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노력이 아까웠다”며 “부족한 점 많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끊임없는 노력 덕”이라고 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을 좋아하는 이유는 “노력한 만큼 기록이 정직하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500m에서 금메달을 따고 온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그는 그 해 말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는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했다. 사람들이 아시안게임은 되게 쉽다고 생각하더라. ‘금메달을 못 따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잠도 못 자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이 같은 두려움을 떨쳐낼 처방전으로 택한 게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훈련은 기록으로 응답했다. 소치 올림픽을 준비하며 자세를 더 낮췄고, 단점으로 꼽히던 초반 스피드도 케빈 오벌랜드 코치와의 훈련으로 향상시켰다. 그 덕에 이상화는 이번 500m 경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첫 100m를 출전 선수 중 가장 빨리(10초17) 통과할 수 있었다.

평소 이상화는 훈련량이 많기로도 유명한데, 이규혁·모태범·이강석 등 남자 빙속 선수들이 그의 연습 상대다. 이상화는 MBC ‘스포츠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오빠들과 같이 운동하면 오빠들이 80%의 힘으로 스케이트를 탈 때 150% 힘을 내야 한다. 매일매일이 힘든데, 그래도 그래야 실제 시합 때 속도감이 난다. 힘들어도 그냥 참는다”고 밝혔다. 굳은살 박인 발은 노력의 산물이다. 이상화는 “주위에서는 ‘영광스러운 발’이라 하지만, 그게 싫어서 크림도 바르고 마사지도 받으며 발 관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고난 기량&꾸준한 식단 조절

이상화 하면 ‘허벅지’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굵은 허벅지는 폭발적인 스케이팅을 가능케 하는 엔진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아직 꽃다운 20대, 이상화는 그런 허벅지가 ‘콤플렉스’라고 했다.

“밴쿠버 올림픽 때 꿀벅지에 금벅지, 철벅지 얘기까지 나오더라고요.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허벅지만 부각되니 조금 (기분이) 그래요(웃음).”

그는 “과거에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는 몸집이 크고 다리도 두꺼워야 하는 추세였지만 지금은 선수들이 과거보다 날씬해졌다. 체중 감량이 되면 몸이 가벼워지고 스케이팅도 수월해지니 선수들이 체중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도 꾸준한 체중 감량으로 기록 갱신에 성공했다.

주로 태릉선수촌에서 밥을 먹을 일이 많은 이상화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엄마가 해준 집밥. 음식은 가리지 않지만 특히 회를 좋아한다. 시합 전에는 많이 먹었다가 체할 것을 우려해 주로 시리얼과 비타민으로 영양을 보충하는 데 그친다. 여기서 잠깐, 소치 올림픽 프로필에 기록된 그의 몸무게 62kg은 2010 밴쿠버 올림픽 때 체중이라고 한다. 그는 “그때보다 체중을 더 뺐다”고 했지만 얼마나 감량했는지는 비밀에 부쳤다.

올림픽 이후 ‘이상화 효과’ 어떨까

이상화가 올림픽 2연패로 받을 포상금은 얼마일까.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이상화에게 6천5백만원을 포상금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6천만원을 전달하기로 했고, 대한빙상경기연맹이 확정한 포상금은 3천만원이다. 여기에 기업들의 후원이 이어지면 이상화가 받을 포상금은 2억원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부수적인 광고 수입도 기대할 수 있다. 이상화는 현재 기아자동차와 KB금융지주의 전속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광고업계에 따르면 몸값은 1년 전속 계약 기준으로 2억~3억원 수준이라고. 이번에 소치 올림픽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따낸 금메달로 그의 몸값도 더 뛸 것으로 보인다. 빙판을 가르는 강인한 여제의 이미지 외에도 미모에 끼를 갖췄기에 메달리스트들이 통상적으로 출연하던 자동차, 금융, 기업 이미지 광고 외에도 뷰티나 패션 등 다방면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상화 어머니 김인순 씨 인터뷰
“금메달은 딸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 자랑스러워요”

압도적인, 너무나 압도적인 이상화

이상화가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자 환호하는 가족들. 가운데가 어머니 김인순 씨다.

이상화가 2월 14일 새벽(한국 시간) 소치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000m 경기를 마친 날, 그의 어머니 김인순 씨로부터 경기를 관전한 소감과 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제 딸의 1000m 경기를 보면서 조마조마했겠어요.(이상화는 이날 1분 15초 94로 36명 중 12위를 차지했다.)

원래 상화의 주력이 1000m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끝까지 완주해줘서 정말 고마웠고, 끝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어제 경기 끝나고 상화와 통화했는데 앞으로도 다른 선수들 경기가 많이 남았으니 응원도 열심히 하고, 축제인 만큼 좋은 추억을 많이 쌓고 오라고 했어요.

어머님이 이번 올림픽에서 꼽는 딸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상화가 올림픽 2연패를 하는 순간이었죠(웃음). 진짜 이렇게 되기까지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정말 자랑스럽고, ‘과연 얘가 내 딸인가’ 싶을 정도로 기특해요. 바라만 봐도 정말 흐뭇하죠.

지척에서 딸을 지켜보며 안쓰러울 때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린 아이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잠실종합운동장 가서 연습하는 게 안쓰러워서 ‘새벽에 추운데 나가서 힘들게 운동하지 말고 공부하면 안 되겠니’ 했었어요. 그래도 자기는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더라고요.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돼 엄마아빠 호강도 시켜주고 꿈도 이루고 싶다고요. ‘내 딸이지만 참 속이 깊구나’ 생각하며 열심히 뒷바라지했죠. 그래서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었나 봐요.

훈련 때문에 딸의 몸 상태가 안 좋다고 들었어요.

올림픽에서 메달도 땄으니 편하고 쉬운 길을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힘들게 훈련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 상화가 무릎과 발목도 불편하고 하지정맥류 때문에 고생하고 있어요. 집에 와서도 쉬질 못하고 찜질하고 파스 붙이고 있는데, 그저 다리 주무르고 팔 만져주면서 안쓰러워하죠.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니 여론에서 ‘금메달 따더니 해이해졌다’고 해서 딸이 맘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때도 무릎에 물이 차고 허벅지까지 하지정맥이 올라와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쉬지 않고 연습했어요.

최근 딸이 찍은 ‘에스콰이어’ 화보가 화제였어요.

상화도 그 화보를 정말 마음에 들어 했어요. 어릴 때부터 공주처럼 옷 입고 화장하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도 집에 오면 제 손에 네일아트를 해주고요. 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한창 예쁘게 꾸미고 친구들 만나 놀러 다닐 나이에 얼음판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운동하는데…. 이번에 그 화보를 보면서 어릴 때 엄마 립스틱 바르고 하이힐 꺼내 신고 또각또각 소리 내며 다니던 상화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딸한테 이런 재능도 있구나 생각했죠.

아이를 ‘제2의 이상화’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스케이트가 저학년 아이들이 감당하기에 체력적으로 힘든 운동이에요. 그런데 꼭 하고자 한다면 그 힘든 순간을 참고 이겨야 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상화가 롯데월드 스케이트장에 개인 교습을 받으러 갔는데 밤 11시가 되도록 안 오더라고요. 나중에 코치님과 같이 들어왔는데 얼굴에 반창고가 큼직하게 붙어 있었어요. 앞에 가던 아이 스케이트 날에 얼굴을 찍혔는데, 당시에 응급실이 가까이 없어서 마취도 못하고 산부인과에서 생살을 꿰맸다는 거예요. 그러면 겁나서 그만둘 만도 한데 연습을 멈추지 않았어요. 아직도 얼굴 왼쪽에 흉이 남아 있어요.

딸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려요.

우리 예쁜 딸 상화야, 엄마야. 4년 전 밴쿠버에서도 생각지 않은 큰 선물을 안겨줘서 온 가족과 국민이 함께 울고 웃은 게 엊그제 같아. 그런데 또다시 우리 딸이 큰일을 해냈네.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건 우리 딸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해. 우리 딸 고생했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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