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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 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글·김민주 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WKBL 제공

입력 2014.02.17 17:17:00

폭풍 오열을 하고 있는 남자와 꽃다발을 한 가득 안고 서 있는 여자.
여자의 얼굴을 보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남자는 왜 눈물을 쏟고 있는 걸까.
농구를 운명처럼 사랑하는 여자 박정은, 그녀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남자 한상진 그들의 러브 스토리.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 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아내의 사진 촬영이 끝나자 준비했던 커피를 건네는 한상진. 그는 아내가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늘 이렇게 자상하게 외조를 했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 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박정은 선수가 은퇴하던 날 펑펑 울고 만 한상진.

운동선수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아내는 많아도 남편의 외조를 받는 여자 스포츠 스타는 드물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11월 11일 은퇴한 삼성생명 블루밍스 박정은(37) 선수는 운이 좋았다. 촬영 스케줄까지 조정해가며 코트에 나와 응원해주는 든든한 남편 한상진(37) 덕에 기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박정은은 부산 동주여상 졸업 후 1995년부터 19년간 삼성생명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통산 4백86경기에서 6천5백40점을 기록하고, 한국 여자 농구 사상 처음으로 3점 슛 1천 개를 달성했다. 또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중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팀을 4강에 올려놓으며 여자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주역이다. 이에 구단 측은 박정은의 등 번호 11번을 영구 결번시키기로 했다.

1월 초 박정은을 만나 특별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늘 경기장에 나와 아내를 응원했던 한상진은 이날도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따라왔다. 간식까지 사들고 사진 촬영 중인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 민낯에 유니폼 입은 아내의 모습만 봐왔던 한상진은 메이크업을 하고 모델처럼 차려입은 박정은을 보는 순간 “우와, 누구세요? 내가 알던 박정은이 맞나요?”라며 웃으며 좋아했다.

“사실 여성지에 저희 부부가 인터뷰하는 건 처음이에요. 아내가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촬영하는 모습을 보시면 부모님들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이런 날 제가 안 올 수가 있나요?(웃음)”

하지만 그는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혹여 아내가 신경을 쓸까 봐 구석에 숨어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역시 소문난 ‘외조의 왕’이 분명했다.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은 두 사람. 박정은이 “찐~ 커피 좀 줘”라고 하자 “아메리카노로 사왔어”라며 살갑게 커피잔을 건네는 한상진의 모습이 아직도 달콤한 신혼 같다. 은퇴식 때 펑펑 울며 꽃다발을 건네던 모습이 찍힌 사진 이야기를 꺼내자 한상진은 부끄럽다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저희 소속사 식구들이 그걸 보고 2013년 가장 웃겼던 사진이라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같이 있던 매니저는 우는 제 모습에 창피하다고 도망갔어요(웃음). 눈물을 글썽인 것도 아니고 대성통곡을 했잖아요. 아휴, 저도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워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남편이 아내의 은퇴식에 와서 왜 그렇게 오열을 할까 궁금해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한상진에게 그날 은퇴식의 주인공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2002년 박정은을 처음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코트 밖에서 아내와 함께 뛰어왔기 때문이다.

“아내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는데, 뭐랄까… 믿기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요? 그만큼 저도 아내의 농구를 사랑했나 봐요.”

한상진이 박정은을 처음 본 것은 1994~95년 농구대잔치 때였다. 이상민·우지원 같은 남자 선수들이 오빠 팬을 몰고 다니던 시절, 한상진 역시 농구에 푹 빠져 있었고 농구대잔치에서 당차게 3점 슛을 던지던 얼짱 선수 박정은을 눈여겨보게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2년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던 그의 앞에 운명처럼 박정은이 나타났다.

“공연을 하는데 관객석에 박정은 선수가 앉아 있는 거예요. 제 눈을 의심하며 후배에게 ‘헛것을 본 것 같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자신이 초대했다고 하더라고요. 절친이라면서요. ‘그럼 당장 내일 자리 한번 마련하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정말 다음 날 아내가 이미선 선수와 함께 나타났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몰라요(웃음).”

박정은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한상진의 속내와는 달리, 박정은이 받은 그의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음식 때문이었어요. 보통 운동선수들은 식당에 가면 여러 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시켜놓고 같이 먹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혼자 ‘저는 생과일 주스 주세요. 설탕은 빼고~’라고 말하더라고요. 다이어트 때문이라고는 했지만,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했죠.”

“남편은 아버지가 보내준 사람 같았어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 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이후 보여준 한상진의 자상한 모습은 박정은의 마음을 활짝 열리게 만들었다. 숙소 생활을 하던 그녀를 위해 떡볶이 같은 음식을 배달시켜주거나, 집밥을 그리워하는 팀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해 직접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을 키워가던 2003년 어느 날, 두 사람은 생애 최초로 스캔들에 직면했다.

“3대 스포츠 일간지 1면에 저희 기사가 나온 거예요. ‘미녀 농구 스타 박정은, 배우와 열애 중’이라는 타이틀로요. 당시 아내는 스타였고, 저는 무명 배우였기 때문에 아내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리고, 저는 구석에 작게 나왔어요. 양쪽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죠. 부모님들은 저희가 만나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거든요.”

하지만 스캔들 기사를 계기로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깊어졌다. 양가에 인사를 드린 후, 공식적인 만남을 이어갔고 2004년 자연스럽게 결혼 수순을 밟게 된 것. 조건만으로 보면 한상진이 한참 기울었지만 박정은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한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태릉선수촌에 있었거든요. 저희 엄마는 일찍 출가(?)해 있는 딸을 늘 신뢰하셨어요. 그래서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도 ‘그래? 빨리 집에 데리고 와봐~’라고 믿어주셨어요. 주위에서 가난한 연극배우와 결혼하는 것이 불안하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보셨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제가 농구를 하는 동안 남편도 좋아하는 연기로 꿈을 펼치도록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박정은이 이렇게 한상진을 믿었던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농구 선수 출신인 박정은의 아버지는 그에게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 남자가 나타나 아버지가 하던 모든 것을 똑같이 해주고 있었다. 박정은의 오빠는 그런 한상진을 두고 “아버지가 보내준 사람 같다”고 했다.

“남편은 저희 팀 동료들을 가족들보다 더 열심히 챙겼어요. 상대편 감독님과 선수들, 팬과 기자에게도 늘 깍듯하게 인사를 했고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신기할 정도였어요.”

이 때문에 방송가에서는 한상진과 작품을 하려면 박정은의 경기 일정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방송 관계자들 모두 그가 아내의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한상진 본인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방송가에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감사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는 왜 꼭! 아내의 경기를 직접 관람해야 했을까.

“농구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아내가 다칠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을 거예요. 연애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보러 간 날, 상대방 선수의 팔꿈치에 맞아서 아내의 눈가가 찢어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병원에 데리고 가서 20바늘이나 꿰매는 것을 봤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아무리 운동선수라도 여자잖아요. 지금까지 눈가만 4번 찢어졌고, 손등 뼈와 치아도 한 번씩 부러지고, 종아리 근육도 파열됐죠. 언제 어떻게 다칠지 몰라 불안하기 때문에 경기장에 자꾸 가게 돼요.”

남편이 경기를 보러 오는 날이면 박정은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긴장하는 바람에 다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고 한다. 한상진은 2007년부터 드라마 ‘이산’ ‘솔약국집 아들들’ 등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얻은 이후에도 되도록이면 아내의 경기는 직접 관람하려고 노력했다.

“아내가 무명 배우인 저와 결혼할 때 별의별 소문이 많았어요. 결혼 생활이 3년 이상 못갈 것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죠. 제가 가난한 배우일 때나 지금이나 아내에 대한 마음은 똑같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아내의 경기는 꼭 직접 보고 싶어요. 아내가 저를 믿어준 덕분에 결혼 후 저는 일이 더 잘 풀렸어요.”

“2세 계획요? 선물처럼 찾아오겠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농구스타 박정은, 그리고 그녀의 남자 배우 한상진
서로를 믿고 지켜주며 어느덧 결혼 11년차가 됐지만, 아직까지 남들처럼 평범한 결혼생활은 해본 적이 없다. 결혼하자마자 박정은이 아테네 올림픽 합숙훈련에 들어갔다가 곧바로 다음 시즌 준비를 하는 바람에 신혼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박정은은 지금까지도 요리, 빨래, 청소 등을 거의 해본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 한상진은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웃는다.

“선수로 살아온 아내가 집안일을 못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내에게 바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 믿으며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거든요. 아내는 20년이 넘도록 1등만 하면서 살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늘 사람이 많다는 건, 이 사람이 정말 매력이 넘친다는 증거죠. 동료들뿐만 아니라 상대편 선수들까지 인정해주는 모습을 보면, 제가 다 가슴 뭉클해질 정도예요. 농수 선수가 아니라도, 정말 좋은 사람이죠.”

물론, 부부싸움은 한다. 시시콜콜한 일로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부부싸움도 서로의 스타일을 알고 나니까,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절대로 몸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점!

“아내가 100kg이 넘는 흑인 용병도 몸으로 막아내던 선수였잖아요. 힘으로도 남자한테 절대 밀리지 않거든요. 도둑이 들어와도 걱정이 안 돼요. 오히려 그 도둑이 아내에게 혼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박정은은 은퇴 후, 선수 이름표 대신 ‘코치’ 타이틀을 달았다. 자신이 선수로 뛰었던 삼성생명에서 지도자로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한 것. 정장을 차려입고 코치로서 선수들을 가르치다 보니, 부족한 점도 드러나고 반성하게 되는 부분도 많다고.

“코치로서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받은 사랑을 후배 선수들에게 돌려줘야 할 시간이 온 거죠. 제가 가진 노하우를 어떻게 하면 후배들에게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을지 고민과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박정은의 은퇴로 두 사람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마음 편히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던 두 사람은 이제는 다른 커플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고백한다. 여기에는 2세 계획도 포함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금처럼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으면 ‘선물’처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잖아요. 여행도 다니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아오겠죠?(웃음)”

운명처럼 서로를 향해 올인하는 두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결혼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며 웃는다. 그때 한상진이 “다시 태어나면 농구 선수 박정은이 아니라, 여자 박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운을 뗐다. 농구 선수 박정은의 남편도 행복했지만, 다치는 모습을 다시는 지켜보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역시, 두 사람은 다음에 또 태어나도 서로를 꼭 다시 찾아내지 않을까 싶다.

스타일리스트·이그네

여성동아 2014년 2월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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