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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피아니스트 아내, 연출가 전 남편 납치 청부 사건

글·진혜린 | 사진·문형일 기자, 채홍덕 진상규명위원회 제공

2014. 02. 14

얼마 전 20대 남성 3명이 40대 남성을 납치, 살해 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가다가 검거됐다. 납치를 사주한 사람은 그와 사실혼 관계에 있다가 헤어진 여성. 사건이 보도된 후 사망한 남성은 꽤 이름이 알려진 공연 연출가, 여성은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더군다나 고인의 유가족은 전처가 이번 사건에 납치 청부 이상으로 깊숙히 개입돼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

피아니스트 아내, 연출가 전 남편 납치 청부 사건
피아니스트 아내, 연출가 전 남편 납치 청부 사건

2010년 8월 채홍덕 씨와 이씨의 결혼사진. 고인의 사망 후 중앙대 연극영화과 동문들은 자발적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 서명운동을 하는 등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밝히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공연예술가로 활동하던 채홍덕(40) 씨가 살해당한 것은 지난 1월 4일. 영화 음악감독 제의를 받고 나간 자리에서 남성 3명에게 납치돼 끌려가던 중 납치범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눈을 판 사이 도주를 시도하다 납치범들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납치범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다 검거 됐지만 망자의 죽음은 허망하기만 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이모(26) 씨 등 남성 3명은 심부름센터의 소개로 채씨를 납치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그들이 납치 의뢰자로 지목한 사람은 2010년 채씨와 결혼해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 2012년 헤어진 피아니스트 출신의 이모(41) 씨. 이들은 이씨에게 1백85만원을 받고 채씨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채씨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에 검거된 이씨는 “살인을 청부하지 않았다”며 살인 교사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 만남부터 돈을 노린 계획적인 범죄다?

고(故) 채홍덕씨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미국에서 3D 홀로그램영상미디어를 공부하고 돌아와 모교에서 강의를 하며 공연예술의 꿈을 키워왔던 인물이다. 그는 2010년 같은 아파트 옆집에 살던 피아니스트 이씨를 만나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채씨의 가족들은 이씨를 미국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유명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알았다고 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은 결혼 2년 만인 2012년 11월 이씨가 위자료 명목으로 채씨에게 7천만원을 지불한다는 공증서를 작성하며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두 사람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 응한 채씨의 외삼촌인 정문기 씨는 “이씨는 학력, 재산내역, 경력, 결혼경험, 출산경험 등 어느 것 하나 진실인 것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정씨와의 인터뷰.

▼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나.



택배가 잘못 배달돼 돌려주는 과정에서 만났다더라. 당시 고인의 모친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씨가 고인에게 상속받은 재산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더라. 두 사람이 만나기 전 복도에서 고인과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을 이씨에게 직접 들었다. 고인의 형제들이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서울에 소극장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부친의 유산을 고인에게 양보했다. 그게 수십억원이다.

▼ 이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고인에게 결혼경험이나 출산경험 등을 다 숨겼더라. 결혼하기 3일 전에 고인에게 고백했다고 하던데, 그것도 다 말한 게 아니었다. 친정 재산이 얼마고, 출신 학교가 어디고 하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

피아니스트 아내, 연출가 전 남편 납치 청부 사건

이씨와 채씨가 함께 작성한 인증서. 이씨가 채씨에게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는 것을 인정하며 사실혼 부당파기에 대한 위자료 지급에 합의했다.

▼ 돈을 노리고 처음부터 접근했다는 건가.

상견례를 할 때부터 이상했다. 이씨의 모친은 결혼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결혼식장 비용도 안 내고, 혼수도 없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이씨가 모친에게 커피숍을 차려달라고 해서 그것도 차려 줬다.

▼ 이씨는 자신이 피아노 레슨을 해서 생활비를 댔다고 하던데.

고인의 상속 재산 중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월세 등의 수입만 8백50만 원이 넘는다. 이씨가 생활비를 댔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 고인이 남긴 10시간의 녹취록과 사진, 메모가 있다던데.

결혼 4개월 만에 별거한 걸로 안다. 그 뒤로 여러 가지에 대해 속았다는 걸 알았는지 조카가 이씨와 통화한 내용과 이씨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 등을 녹취해 보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씨의 범행동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 납치 이유를 무엇으로 보는가.

최종 납치 장소인 경북 안동은 고인의 모친이 거주하는 지역과 가깝다. 또한 고인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과도 인접해 있다. 굳이 서울에서 먼 안동을 납치 장소로 정했다는 것은 이씨가 고인의 재산을 노린 추가 범행을 계획했다는 정황이라고 생각한다.

# 이씨 측,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납치 사주?

반면 이씨는 납치를 의뢰한 동기에 대해 “채씨의 심리적 괴롭힘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용인동부경찰서 주진화 과장은 여성동아와의 통화에서 “이씨는 전 남편이 이혼 후 계속 자신을 찾아와 괴롭혔으며 지난해 9월 나쁜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경제적인 요인도 있었다. 이씨는 생활 능력이 없는 채씨를 대신해 자신이 피아노 레슨을 해 번 돈으로 채씨를 먹여 살렸다고 주장했다. 혼수 비용과 생활비를 포함해 1억원 가량이 채씨 측으로 건너갔다는 것. 이에 덧붙여 위자료와 생활비 명목으로 한 달에 70만원씩 채씨에게 건넸다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양 측의 주장이 180도 다른 상황. 이씨의 변호인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돈을 목적으로 (납치를) 사주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 측이 주장하는 이씨의 배경에 관한 의문점에 대해서는 “아직 사생활에 관해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범행동기를 입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확한 진술을 통해 변호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주진화 형사과장은 “이씨가 납치와 감금, 폭행을 사주한 혐의는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금품을 요구하는 등 강도와 상해의사가 있었다고 판단돼 강도·상해교사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하지만 상해 부위가 허벅지인 것과 상해 과정이 우발적이었다는 점을 보아 살해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납치범들은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1월 13일 사건은 수원지검으로 송치됐고, 유가족은 고인이 남긴 녹취록, 메모, 사진 등을 취합해 검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수사결과가 망자의 넋을 위로해 줄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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