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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가수 배인순 차남의 갑작스런 죽음

글·진혜린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3. 08. 26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하던 가장이 물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그의 두 번째 아내 배인순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최은혁 학교법인 공산학원 상임이사의 안타까운 부고였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가수 배인순 차남의 갑작스런 죽음

최원석 전 회장의 차남은 가족과 물놀이 중 갑작스런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지인인 가수 이승철(오른쪽)이 운구를 돕고 있다.



# 평화로운 토요일에 찾아온 악몽
장내에는 적막만 감돌았다. 곡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 눈물조차 마른 듯, 넋을 잃은 표정의 젊은 미망인에게는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인의 나이 이제 겨우 서른여섯 살.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큰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건장한 젊은이가 허망하게 운명을 달리했다. 가족과 함께 주말을 즐기던 여유로웠던 아침에 그토록 끔찍한 악몽이 찾아들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7월 6일 최원석(70) 전 동아그룹 회장의 차남인 고 최은혁(36) 상임이사는 가족과 함께 별장이 있는 경기 가평군 미사리 홍천강에서 물놀이를 즐기다 사고를 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오전 10시 55분경 강에 뛰어들었던 최 이사가 갑자기 의식을 잃어 119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됐으며 구리한양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4시간여 만에 숨졌다.
경찰은 고인이 평소 수영을 잘 했으며 선착장에 있는 보트 상하차 기계에 누전이 발생한 것을 토대로, 고인이 강에 입수하자마자 감전을 당한 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유족들 또한 고인을 구하러 물속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전기가 흐르는 것을 감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 최은혁 이사는 최 전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2011년 3월 공산학원의 상임이사직에 오른 뒤 아버지 최 전 회장(현 공산학원 이사장)의 법인 운영을 도왔다.
공산학원은 최 전 회장의 선친인 고 최준문 전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세운 학교법인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후 동아그룹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해 1998년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최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강제 퇴진한 후 2004년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재판 중 법정 구속되는 동안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 바로 이 공산학원이다. 현재는 대구에 위치한 동아마이스터고와 경기 안성에 위치한 동아방송예술대를 경영하고 있다. 최 전 회장의 아들 네 명 중 고 최은혁 이사만 유일하게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최 이사는 국내 증권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시카고 한미 TV의 앵커로 활동하는 등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갔다. 그러던 중 2008년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가 교육 협력을 제안하자 아버지 대신 리비아를 방문해 교육 사업을 추진하며 공산학원과 연이 깊어졌다. 공산학원 상임이사로 선임되던 2011년까지 동아방송예술대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며 학교 실무를 직접 돌봤다.
동아방송예술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까지 최 이사는 아버지 최 전 회장을 대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교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고, 적극적이며 열성적으로 학교를 보살폈다. 후학 양성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던 분”이라고 전했다.

# 아버지에게 신장 떼 준 효자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최 이사지만 아버지에 대한 효심만큼은 누구보다 특별했다. 2006년 신장 이상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선뜻 자신의 신장을 내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세 번 결혼해 세 번 이혼한 최원석 전 회장. 1960년대 당대 유명 배우였던 김혜정과의 사이에선 1남1녀를 뒀다. 그 후 1976년 ‘커피 한잔’으로 유명한 펄 시스터즈 멤버 배인순과 결혼해 슬하에 3남을 낳고 22년간 부부로 살았다. 고 최은혁 이사는 최 전 회장에게는 둘째 아들이지만 가수 배인순에게는 첫째 아들이다. 1998년 최 전 회장과 이혼한 배인순은 2003년 자전적 소설을 발표하며 최 전 회장의 사생활을 공개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고 최은혁 이사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고 기자들과 만나며, 적극적으로 소설 속 이야기가 아버지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 편지 속에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에 대한 효심 또한 절절히 묻어나 감동을 주기도 했다.
고 최은혁 이사는 2003년 결혼해 초등학생인 딸과 유치원생인 아들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자, 늙고 병든 아버지를 곁에서 지키며 제 몸의 일부를 내주던 착한 아들이었다.
고인의 발인이 진행된 7월 9일. 아버지 최 전 회장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사건 당일 충격을 받고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아들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배인순은 발인 예배가 예정된 오전 8시 30분을 조금 앞둔 상황에서 또 다른 아들의 부축을 받고 나타났다. 그는 흰 블라우스에 검정색 치마를 입고 초췌한 표정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발인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목 놓아 찬송가를 부르며 고인의 아내를 위로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 가수 이승철 고인과 남다른 인연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가수 배인순 차남의 갑작스런 죽음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왼쪽) 가수 배인순(오른쪽)





뜻밖의 인물도 발인 예배에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가수 이승철과 개그맨 박명수, 현대 비에스앤씨 정대선 대표가 자리를 함께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이승철과 박명수는 자녀들의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 지금까지 특별한 인연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철은 고인이 몸담았던 동아방송예술대에서 특별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최근 발매된 ‘마이러브’에 동아방송예술대 실용음악과에 재학 중인 정수경이 만든 노래 ‘40분 차를 타야해’를 수록한 것도 이런 인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승철은 맨 앞에서 운구를 들며 발인을 도왔고, 장지인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용인공원묘원까지 발걸음을 해 유족의 아픔을 달랬다.
많은 비가 내렸음에도 많은 조문객이 장지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사건 현장에 함께 있던 고인의 두 자녀도 장지를 찾았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던 큰딸은 상황을 인지한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 어린 둘째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아버지의 무덤을 바라보기도 해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에 든든한 아들과 남편, 아버지를 잃은 유족들의 심경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부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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