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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착한 예능’으로 승부 ‘아빠! 어디가?’ 김유곤 PD

“아이에게 소홀한 아빠가 만든 아빠 성장 프로그램”

글·권이지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MBC 제공

2013. 03. 25

‘런닝맨’과 ‘1박2일’ 사이에서 고전하던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을 살린 건 뜻밖에도 고사리손의 어린이들이다. ‘아빠! 어디가?’는 눈물 콧물 빼면서 웃으며 보다가도 자신은 어떤 부모인지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자극적인 소재들이 넘쳐나는 방송가에서 겁 없이 착한 예능으로 승부수를 띄운 김유곤 PD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착한 예능’으로 승부 ‘아빠! 어디가?’ 김유곤 PD



MBC ‘일밤 - 아빠! 어디가?’는 아빠와 아이 단둘이 떠나는 여행을 통해 아빠와 아이의 성장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등장인물은 총 10명. 성동일과 아들 준, 김성주와 아들 민국, 이종혁과 아들 준수, 송종국과 딸 지아, 윤민수와 아들 후가 주인공이다. 익숙한 엄마 품을 떠나 평소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얼굴 보기 힘든 아빠의 손을 꼭 잡고 걷는 아이. 뒷모습에서 어색함이 묻어나온다. 시청자들 눈에도 아빠와 아이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참 없어 짠한 생각마저 들 정도. 하지만 ‘아빠! 어디가?’는 그 관계에 집중하고 리얼리티를 살려 첫 방송 시청률 5%로 출발해서 5회 만에 시청률 10%를 돌파하고, 끊임없이 이슈를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아빠! 어디가?’를 책임지는 김유곤(40) PD는 2월 초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반응이 놀랍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겸연쩍어 했다. 아직 프로그램 초기라 성공을 속단하긴 이르다는 뜻이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휴대전화는 잇따른 인터뷰 요청으로 끊임없이 진동했다.

뜻밖에 불편하고 어색한 아빠와 아이들
‘세바퀴’ ‘나는 가수다’ 등을 연출한 김유곤 PD. 얼마 전까지는 그 역시 아홉 살인 아들과 단둘이 있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다 2012년 MBC 파업이 장기화되자 불쑥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분신인 줄 알았던 아이와 같이 있어보니 어색하기만 하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아들과 친해지려고 날을 잡아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장난감박물관을 방문했다 우연히 딸 민서의 손을 잡고 온 개그맨 박명수를 만났다.
“박명수 씨가 딸을 데리고 와 있는 것을 보니 웃기더라고요. 아이와 아빠 모두 표정이 안 좋았거든요. 억지로 나온 것처럼 피곤해 보이고요. 기분은 좋지 않은데 사람들이 지나가니 인사하고 사인도 해주고. 이런 거친 사람도 아빠 노릇 하려고 짜증을 참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상황 자체가 재미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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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는 아들 민국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이후 파업이 끝나 방송에 복귀한 김 PD는 ‘나는 가수다 2’ 후속을 위한 기획회의에서 박명수의 모습이 생각나 ‘좋은 아빠 되는 법’을 아이디어로 내놨다. 중년 아빠들의 가장 큰 고민이 ‘돈 벌어오는 기계’가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당당히 인정받는 것임에 주목한 것이다. 프로그램의 세부 기획을 준비하며 아빠놀이학교의 권오진 씨를 만났다. 권씨는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에 출연한 바 있는 자녀 교육 전문가다. 권씨가 진행했던 프로그램 중에는 아빠와 아이의 1박2일 무인도 체험이 있었다고 한다. 무인도에 가면 아이가 낯선 환경에 당황하는데, 극한 상황을 인지하면 아이는 아빠에게 의지하게 되고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대화를 하며 가까워진다고 했다. 무인도 체험에서 힌트를 얻은 제작진은 ‘아빠! 어디가?’의 여행 콘셉트를 잡았다. 낯선 환경 속에서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면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유독 적은 연예인 가족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은 어디 나가서 아이가 떼쓰고 고집부리면 화를 내기 마련인데 연예인들은 이미지 관리 때문에 그럴 수 없잖아요. 보통 사람들보다 3배쯤 더 힘들다고 보면 돼요. 방송 스태프들과 함께하면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여행 다닐 수 있으니까 서로 좋을 거라 생각했죠.”
알아보는 사람도 드문 데다 편안함에 익숙한 아이들이 불편투성이인 곳을 방문하면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빠밖에 없기에 시골 오지 마을을 선택했다.
김 PD는 프로그램을 위해 수많은 스타와 그들의 자녀들을 만났다. 중점적으로 살핀 것은 아이들의 인성과 아빠와의 관계였다. 윤민수는 ‘나는 가수다’를 연출할 때 알게 됐는데, 그의 아들 후가 독특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섭외했다. 김성주는 김 PD와 MBC 입사 동기. 김성주 자신이 EBS ‘부모’의 MC를 맡을 만큼 육아에 관심이 많지만 사실 가부장적인 보통의 40대 아빠인 점에 주목했다. 송종국은 딸 바보인 점이 인상적이라 합류를 요청했다. 섭외에 가장 공을 들인 사람은 성동일이었다. 김 PD는 “성동일 씨는 아이와의 관계가 원체 서먹해 꼭 합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성동일 씨는 아이를 방송에 노출하지 않겠다고 딱 잘라 거절했어요. 방송에 출연하면 아이들의 태도가 변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였죠. 아이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야 자연스러운데 어른들 사이에 있으면 아이 같지 않게 된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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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지속될수록 아빠와 아이 사이는 돈독해진다. 처음에는 다소 서먹하더라도 아빠와 아이는 결국 가족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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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겐 추억을, 아빠에겐 치유를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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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눈밭에 누운 성동일·준 부자.



김 PD는 성동일에게 아이와 함께하고, 여러 가족이 함께 다니며 친해질 시간을 만드는 것이 프로그램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성동일이 합류를 결정했다. 김 PD는 아무래도 성동일의 부인이 출연하라고 옆구리를 찌른 것 같다며 웃었다. 성동일 덕에 그의 절친인 이종혁까지 섭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동일 씨가 아이돌 스타 저리 가라 할 만큼 바빠요. 드라마를 촬영할 땐 4~5일에 한 번씩 집에 들어간대요. 3일 동안 5~6시간밖에 못 자는 것도 예사고요. 그리고 욱하는 성격이라 준이가 아빠를 무서워해요. 성동일 씨도 그런 점 때문에 고민하다 준이와의 관계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출연을 결정한 것 같아요. 1회에 성동일 씨가 아들 준이랑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의 집까지 단둘이 가는데 참 어색했어요. 떨어져서 걷더라고요. 무슨 말을 하겠어요. 우리도 아버지와 있으면 어색하잖아요. 처음 준이를 만났을 때 아이가 참 조용했어요. 어린아이가 다크서클이 있어요(웃음). 얼굴에 할퀸 상처가 있었는데 동생이 그런 거래요. 그래도 준이는 화를 안 내요.”
‘아빠! 어디가?’를 통해 아빠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김성주는 어린 시절 자신을 바라보던 가부장적 아버지의 모습과 지금 자신이 민국이를 대하는 모습이 같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시작 전에 자신은 중간쯤 가는 아빠라고 생각했는데 네 번의 여행을 통해 그 생각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도 발견해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그 덕에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방송에서는 좋은 아빠로 비쳐지는 윤민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25세에 결혼하자마자 아빠가 됐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온전히 알기엔 이른 나이였다. 후가 다섯 살 때 ‘아빠는 반딧불이야. 밤에만 빛나요’라고 시를 썼을 만큼 아이와 소원했다. 하루는 윤민수가 아침이 돼서야 집에 들어왔는데, 후가 엄마에게 “엄마! 이 이상한 사람 또 왔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김유곤 PD는 윤민수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뜻에서 출연을 결정했기 때문에 더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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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탐방 중인 윤민수·후 부자.



“윤민수 씨 부인이 방송을 보더니 ‘집에서는 저런 적이 없었다’며 어이없어 했대요. 후가 아빠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으니 뭔가 하자고 조른 적도 없다는 거죠. 그런데 방송에 출연한 후 후가 숙제해달라고, 놀자고 조른대요. 민수 씨 부인이 ‘얼마나 가나 보자’고 벼르고 있다더군요(웃음).”
2주에 한 번씩 1박2일 촬영 일정이 잡혀 있으니 아빠에게는 아무리 바빠도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된다. 꾸준히 관계를 개선할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4번의 여행, 8일의 시간,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김유곤 PD는 변화를 봤다. 가장 큰 변화는 성동일 부자에게서 나타났다. 성동일은 요즘 “준이가 집에 오면 ‘엄마, 아빠 있어?’라고 찾을 만큼 아빠에게 관심을 보인다”며 뿌듯해했다고 한다.
“준이가 학교에서 인성 검사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성동일 씨를 불러서 ‘아버지가 화를 많이 내 아이가 주눅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대요. 선생님 말씀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대요. 어느 정도로 무섭게 준이를 혼내냐 하면 성동일 씨가 화를 내면 ‘성준!’하고 부르는데 옆에 있던 김성주 씨가 자기한테 화내는 줄 알고 화들짝 놀랐을 정도래요. 여행 몇 번 만에 준이한테 화를 덜 내니 많이 변했죠.”

연예인이기 전에 보통의 아빠와 아이들
다섯 가족은 즐겁다지만 카메라 뒤 제작진은 어려움이 가득이다. 출연진 1명당 6mm 카메라 1대씩 총 10대, 어깨에 메는 ENG 카메라와 마을 전체를 찍는 지미집 카메라, 그리고 숙소에 달아놓는 동작 인식 무인 카메라까지 30여 대에 달하는 카메라가 가족들을 따라다닌다. 다큐멘터리 촬영과 맞먹을 정도란다. 이틀의 촬영이 끝나면 다른 예능에 비해 몇 곱절 되는 분량의 결과물이 쌓이고, 7명의 조연출이 붙어 편집한다. 한 번의 여행은 2회 방송 분량으로 편집된다. 만만치 않은 편집이지만 제작진은 다섯 가족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을 수 있어 만족한다.

‘착한 예능’으로 승부 ‘아빠! 어디가?’ 김유곤 PD

캠핑 요리 삼매경에 빠진 송종국·지아 부녀.



일부에서는 다섯 아이와 아빠들의 모습이 ‘대본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김 PD는 한 회를 구성하는 대본은 있지만 각 가족의 행동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말로 의혹을 일축했다.
“보통의 예능이면 민국이가 떼쓰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겠죠. 민국이가 울 때 작가들이 카메라 뒤에서 아이를 달랬을 거예요. 그동안 아빠들은 카메라 앞에서 퀴즈를 풀거나 게임을 할 테고요. 아이들은 여행 도중에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고 아빠와도 수없이 싸워요. 좋다가도 싸우고 또 화해하고. 이런 게 가족의 진짜 모습이잖아요.”
김 PD는 이에 덧붙여 김성주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김성주가 두 번째 여행에서 텐트를 칠 때 순간적으로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보통 예능 같으면 텐트를 이 정도로 못 치고 고생하면 제작진이 와서 도와줄 텐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지켜보는 스태프들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것에 그제야 김성주는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유곤 PD는 화면에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편집이 가미됐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다 보니 현장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면 수습하기가 쉽지 않다. 첫 번째 여행 때는 촬영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찾을 수 없었단다. 흩어져 찾아보니 닭이랑 노는 아이, 마당에서 노는 아이, 마을회관에서 자고 있는 아이까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니 감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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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가?’의 메인 커플 지아와 후.



“민국이가 툭하면 운다고 말이 많더라고요. 저희 프로그램은 ‘우는 민국이’가 아니라 민국이라는 아이를 자연스레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데 편집하다 실수로 선을 넘으면 민국이가 이상한 아이가 되잖아요. 오해를 만들지 않는 선을 판단하기가 참 어려워요. 하지만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연예인이기 전에 보통의 아빠라는 것도요.”
아이들이 순수하게 아빠와의 여행을 즐기도록 MBC 예능국은 아이들의 인터뷰 금지령을 내렸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스스로 유명해졌다는 인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순수함을 잃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아빠! 어디가?’의 지향점이다.

‘착한 예능’으로 승부 ‘아빠! 어디가?’ 김유곤 PD

김성주가 만들어준 짜파구리에 반한 식욕 만점 후.



김유곤 PD는 ‘아빠! 어디가?’ 촬영을 하며 아이들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어른과 있을 때 아이들 모습, 아이들 사이에서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 아이들 세계에서는 울보 민국이가 큰형 노릇을 하며 동생들을 챙겨주고, 후는 형과 동생들에게 아낌없는 배려를 보여준다. 준수는 순수한 미소가 예쁜 애교쟁이, 지아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똑 부러지는 꼬마 아가씨, 준이는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그에 집중하는 똑똑한 아이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의 넘치는 개성은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아를 향한 후의 일편단심이 귀여워 보게 된다는 사람도 적잖게 나올 정도로 ‘아빠! 어디가?’에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후와 지아의 러브라인이다. 하지만 김유곤 PD는 그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이는 아이들의 관계 맺음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빠! 어디가?’를 통해 러브라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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