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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잃어버린 10년, 이경영 긴 침묵을 깨다

“비록 만신창이 됐지만 영화로 돌아올 수 있어서 행복하다”

글 | 김명희 기자, 전형화 스타뉴스 기자 사진 |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2. 12. 18

한창 활동할 나이에 ‘미성년자 성매매’라는 불미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대중 앞에서 사라졌던 이경영이 돌아왔다. 백발이 성성한 그의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배우로서 생명이나 다름없는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됐는데 정작 그가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족, 부와 명예는 공중분해됐지만 인생의 쓴맛도 배우 인생엔 약이 됐다. 그의 연기가 한층 깊어졌다.

1990년대 한국 영화계는 이경영(52)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아다다’로 데뷔한 그는 지적인 이미지와 따뜻한 외모로 각광받으며 ‘세상 밖으로’ ‘그 여자 그 남자’ ‘하얀 전쟁’ 등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2002년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면서 배우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 2004년 법정 공방 끝에 무혐의로 판명이 났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10년 전 사건 무죄 판결 받았지만 그 일 이후 아들 얼굴 못 봐

잃어버린 10년, 이경영 긴 침묵을 깨다


이경영은 그 뒤 영화 ‘써니’ ‘부러진 화살’ ‘후궁’ 등에 간간이 강한 인상을 주는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배우로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잊히는 듯하던 그가 11월 22일 개봉한 영화 ‘남영동 1985’로 다시 관객들과 만났다.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고문을 당한 실화를 다룬 영화. 이경영은 실제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을 모델로 한 이두한 역을 맡았다. 관객들은 아내의 미장원을 걱정하며, 스톱워치를 들고 죽지 않을 만큼 시간을 재며 ‘사무적으로’ 고문을 자행하는 이근안을 연기하는 이경영을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역시 또 다른 폭력의 희생자였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경영은 영화 개봉에 맞춰 케이블 채널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해 10년 전 사건으로 인해 겪었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는 “원조교제도 하지 않았고 영화를 핑계로 그러지도 않았다. 당시에는 그 친구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변명하지 않았던 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놓으면서 “몇 해 전 김수현 작가님이 SNS에 내 복귀를 바라는 글을 올리셨을 때 그 친구가 싸이월드 쪽지에 ‘(그렇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을 못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 내 명예 회복을 위해 도울 수 있다면 돕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그렇게 매듭지어졌지만 이경영은 그로 인해 잃은 것이 너무 많다. 특히 아들에겐 여전히 죄인 같은 아빠다. 이경영은 “그 사건’ 전 이혼했으며 아들은 전처가 키우고 있다. 그는 “가끔 아이 엄마가 소식을 전해주긴 하는데 마주 앉아 대화한 지 10년 정도 된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지인들에게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다가 ‘저 친구 이경영이랑 눈빛이 참 닮은 것 같다’ 하는 청년을 만나면 ‘네 아빠가 너 참 많이 그리워했다’고 말해달라고 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 ‘용서 받지 못한 자’로 떠돌며 영화계를 떠났던 이경영은 2005년 ‘종려나무 숲’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작품에서의 존재감은 그 누구보다 컸지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피해왔다. 그랬던 이경영이기에 ‘남영동 1985’로 언론 앞에 서는 건 반갑기도 했지만 우려도 앞섰다. 다시 사람들 입에 그때 그 사건이 오르내릴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었다.

▼ 이번에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하는 이유가 영화 홍보 때문인가, 아니면 그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전자다. 이번 영화는 여러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다들 몸으로 뛰고 발로 뛰어 영화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나 역시 그래야 했다.”



▼ 악역인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망설임은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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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을 맡는 것에 대한 주저는 1초도 없었다. 정지영 감독님이 알리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울림이 너무 컸다. 또 이 역을 마다할 배우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다만 작업을 하면서 막막해지더라. 첫 장면부터 박원상을 고문하는데 ‘안 돼, 안 돼’라고 진정으로 외치더라. 박원상이 다치지 않게끔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박원상은 고 김근태 고문 역을 맡아 촬영 도중 실제 고문을 받는 상황이 됐다. 찍는 사람도, 연기하는 사람도 고문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하나씩 실험해볼 수밖에 없었다. 고문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경영은 도대체 물을 언제까지 먹여야 할지, 박원상이 얼마나 참을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가 박원상 다리를 찍을 때는 감각적으로 얼굴에 물을 안 뿌리다가도 다시 카메라가 얼굴을 찍기 시작하면 물을 뿌려야 했다. 이경영은 “박원상이 물을 뿌릴 때보다 얼굴이 수건으로 가려질 때 더 공포스럽다고 하더라”며 “혹시라도 박원상에게 후유증이 없도록 극도로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경영은 고문 장면 촬영 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할 때면 피로가 극심하게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같은 장소에서 계속 촬영해서 이렇게 지치나라고 생각했다”며 “나중에야 그 장면 촬영이 내 영혼을 극심하게 지치게 하는구나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과 나눈 피보다 진한 우정
이경영과 정지영 감독은 한국 영화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하얀 전쟁’(1992)을 함께 만들었다. 이 영화는 군사정권 시절 금기나 다름없었던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여러 행적을 담은 작품이다. 그랬던 두 사람이 한 명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다른 한 명은 1990년대 중순부터 일기 시작한 한국 영화 르네상스 붐에 편승하지 못해 영화계에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정 감독은 올해 ‘부러진 화살’로 13년 만에 신작을 내놨고, 그 신작에 보란 듯이 이경영을 출연시켰다. 이경영은 “감독님이 ‘부러진 화살’을 할 때 주위 분들에게 얼마나 내 칭찬을 하던지 부끄럽기까지 했다”며 웃었다. 정 감독은 이두한 역을 캐스팅하면서도 “이경영 말고 다른 배우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그에 대한 믿음이 컸다. 쉰두 살 배우와 예순여섯 감독의 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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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침묵 끝에 작품 활동을 재개했는데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컸나, 연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갈망이 컸나.
“안 믿을지 모르지만 둘 다 아니었다. 세월이 가는 대로 놔뒀다. 분노와 부끄러움도 쌓이고, 어느 때는 다 털어버리기도 하고. 그럴 때 정 감독이 많이 불러주셨다. 당신도 많이 힘드셨을 때다. ‘나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면 ‘그냥 사는 거지, 뭐’라고, 그런 말 주고받지 않아도 그렇게 느끼도록 해주셨다. ‘나, 너 아직 사랑한다’라는 느낌을 주셨다.”

▼ ‘남영동 1985’로 이경영이 온전히 영화계에 복귀한 듯 보인다.
“VIP 시사회 뒤풀이를 갔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영화인들이 일어나서 박수로 나를 맞이해주더라. 권해효가 깊게 포옹해주면서 ‘형, 충무로 원대 복귀 축하해요’라고 하더라. 정 감독이 영화 촬영 전 보낸 메일에 ‘네가 이 영화로 충무로 복귀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처음과 끝이 그렇게 맞아떨어지니 정말 고맙고 미안하더라.”
정 감독은 뒤풀이에서 영화인들이 이경영에게 박수를 쳐주자 “배우에게 뭔 놈의 박수를 이렇게 치냐”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 ‘남영동 1985’는 여러모로 배우 이경영에게 남다를 것 같은데. 뭔가 해방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다시 돌아온 영화라는 숲에 내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더라. 해방은 너무 거창하고 체기가 가신 느낌이 든다. 김대승 감독이 ‘하얀전쟁’ 때 스크립터였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후궁’으로 만났다. 나를 다시 카메라 앞에 서게 해준 감독들에게 정말 고맙다. ‘남영동 1985’는 그런 나를 꽃피우게 해줘서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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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다시 고향에 돌아온 듯 편안한 느낌

베트남에서 ‘하얀전쟁’을 촬영할 당시 너무 힘들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김대승 감독에게 이경영은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를 읊어줬다.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에게 낭만이 넘치는 시를 소개하면서 “다 그런 거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경영은 “난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김대승 감독이 ‘후궁’ 할 때 그 이야기를 꺼내더라. 영화판의 낭만이라는 걸 느꼈다나”라고 말했다. 인연은 돌고 돌아 이경영은 김대승 감독의 ‘후궁’에서 내시 역을 맡았다.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 감고 귀 닫고 입 막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낭만은 그렇게 이경영을 카메라 앞에 다시 서게 했고, 그 결실들이 꾸준히 이어져 이경영이란 배우가 다시 설 수 있었다.
이경영은 예전에도 연기를 재면서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영화 속 인물에 더욱 충실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남영동 1985’에서 이두한이라는 인물의 공과를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이 하는 일이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또 고문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직장인을 생각했다. 이경영이 연기한 이두한은 그래서 더욱 잔인한 괴물 같았다.

▼ 시사회에서 ‘다시 연기를 하니 순수하게 접근하게 됐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앞뒤 계산 없이 순수해지더라. 오로지 그 목적만으로 연기를 대했다. 이 영화와도 잘 맞았다. 내가 이 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배우로서 임무를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 ‘남영동 1985’를 한 사람에게만 보여준다면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나.
“돌아가신 어머니다. 막내아들이 다시 동료들에게 박수를 받는 모습을 못 보고 돌아가셨으니깐.”
이경영은 아직도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가 “막내야, 김치찌개 해놨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은 흐르고, 추억은 깊어져만 간다. 이경영은 그렇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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