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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상 수상한 울리츠카야 용서와 치유의 문학을 말하다

“페미니즘은 투쟁이 아니라 남성과 동반하는 것”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현일수 기자, 비채 제공

입력 2012.12.17 16:38:00

훌륭한 예술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감동을 주는 힘이 있다.
올해 2회째를 맞는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는 러시아 여성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이역만리에서 날아온 이 벽안의 노작가의 글에서 고 박경리 작가가 떠오른 건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박경리문학상 수상한 울리츠카야 용서와 치유의 문학을 말하다


“어느 곳에서 살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항상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고통, 이별, 죽음, 아이들이 부모의 뜻을 어기고 힘들게 할 때도 많고(웃음)…. 독자들이 내 글을 읽고 위안을 받고 해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난해 최인훈 작가에 이어 제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Ludmila Ulitskaya·69)가 선정됐다. 수상을 위해 10월 말 한국을 찾은 그의 첫인상은 고 박경리 작가와 닮았다는 점이다. 깊고 움푹 파인 눈매, 나이에 비해 고운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 선하고 인자한 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인한 아우라 등, 울리츠카야는 여러모로 생전의 박경리 작가를 떠올리게 했다.
두 사람은 비단 외모뿐 아니라 딸로 태어나 어머니가 되고 척박한 환경에서 삶의 고난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현재를 일궈낸 여성의 삶에 천착한 문학적 색채 또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작가 중 그를 수상자로 점찍은 심사위원들의 혜안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수상작 ‘소네치카’는 1992년 발표한 중편으로, 울리츠카야는 이 작품으로 그해 러시아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프랑스 메디치 상과 이탈리아 주세페 아체르비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다른 상을 받을 땐 후보에 올라 수상을 하느냐 마느냐로 마지막까지 마음을 졸였는데 이번 상은 선정되고 나서 연락을 받았죠. 깜짝 선물 같다고 할까요? 굉장히 놀랍고 기뻤습니다. 수상 직후 한국에서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을 보내줘 읽어봤어요. 내가 쓴 소설들과 공통점이 많더군요. 다른 시대를 살아도 인간의 본질은 다 똑같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다른 점이라면 박경리 씨가가 저보다 더 위대한 작가라는 점이죠(웃음).”

박경리문학상 수상한 울리츠카야 용서와 치유의 문학을 말하다

선하면서도 강인한 인상이 박경리 작가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마흔 넘어 문단에 데뷔한 그는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다.



소설 ‘소네치카’는 소비에트 시절 이전에 살았던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원형으로 한 작품이다. 평범한 외모에 책벌레였던 소네치카(소냐)는 자유로운 화가 로베르토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소냐가 여성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희생으로 가난을 이기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사이 남편과 딸은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고 남편은 결국 젊고 아름다운 딸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소냐는 이해와 헌신으로 갈등을 이겨내고 끝내 희생과 용서로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소네치카’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용서의 의미는 사람의 마음이 넓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삶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였어요. 주인공 소네치카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어요. 독서 등에 몰두하며 남의 삶만 봐왔죠. 스스로 느낀 행복의 대가로 고통도 감수할 수 있게 된 거죠.”
이 소설을 썼을 때 모스크바에 아내, 또 다른 젊은 여자와 함께 한 아파트에 사는 화가가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들을 모델로 삼은 것은 아니에요. 그저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를 쓴 것이죠. 다만 당시 러시아 화가들은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돌아오지 않거나 새로운 삶을 산 경우가 많았죠. 샤갈도 그중 한 명인데 그런 시대 상황을 반영하기는 했어요.”
소냐가 남편의 불륜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은 현대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다. 책이 발간된 후 러시아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이 들고일어난 일화도 있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화낼 일도 아니지만 극히 비현실적인 일이기도 하죠.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투쟁이 아닌 남성과 동반하는 여성주의입니다.”

금서 읽다 해고당한 후 마흔 살에 글쓰기 시작



박경리문학상 수상한 울리츠카야 용서와 치유의 문학을 말하다


1943년 옛 소련 우랄 연방지구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자란 울리츠카야의 문학적 자양분은 두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 문학과 문화다. ‘소네치카’에는 톨스토이, 푸시킨 등 러시아 대문호들의 작품과 미술, 음악, 건축, 과학, 철학, 신화 등 다양한 텍스트들이 녹아 있다. 하지만 정작 울리츠카야는 다양하고 굴곡 많았던 삶을 가장 큰 문학적 자산으로 꼽았다.
그는 모스크바국립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유전학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지하 출판물’을 읽는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당시 그가 읽었던 책은 외국 작가의 순수 문학 같은 작품들이었지만 당시 공산주의 체제였던 구소련에서는 그마저 금지돼 있었다.
“그 당시 소련에서는 성경 자체를 구할 수 없어서 베껴 쓴 것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요즘 청년들이 책을 안 읽는데 ‘만약 책을 읽는 것을 금지하면 오히려 몰래 숨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합니다(웃음).”
연구소를 나온 뒤 9년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그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두 아들이 태어났고 남편과 이혼했다. 그가 이런 개인사들로 세월을 보내는 사이 유전학은 급속히 발전했다. 그래서 그가 다시 연구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피를 분석하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히브리어 극장에서 각본가 및 감독으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40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궁극적 목적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문학의 공부 대상 역시 인간이죠. 생물학이 현미경을 도구 삼아 인간의 외부를 연구하는 것이라면 문학은 펜을 들고 인간의 내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연구자와 작가로서의 삶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련한 작가는 이국땅에서도 사람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한옥의 기와는 무엇으로 만드는지, 한국 사람들이 많이 쓰는 ‘아줌마’라는 단어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해했다. 그가 느낀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여성들이 부드러워 보이고, 패션 스타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옷에 대한 센스가 뛰어난 것 같아요. 또 나라가 전체적으로 깨끗하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도심에서도 쓰레기를 볼 수 없었고, 시외로 나가 보니 추수한 들판도 깨끗하게 정리돼 있더군요. 한국인은 땅에 대한 애착이 많은 민족인 것 같습니다. 높은 과학 기술 발전과 함께 주변에 대한 배려나 환경에 대한 의식도 조화롭게 성장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작가는 열흘간의 한국 일정을 마치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여성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했던 작가는 앞으로도 그런 글을 써나갈 작정이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 울리츠카야의 작품은 ‘소네치카’와 ‘스페이드의 여왕’ 등 중·장편을 묶은 ‘소네치카’(비채)와 ‘쿠코츠키의 경우’(들녘) 두 권이 출간돼 있다.

여성동아 2012년 12월 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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