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삼성그룹 대표 선수, 작지만 큰 사람 이지영의 열정樂서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첫인상, 작은 키가 제게 준 선물이죠”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2012. 10. 16

110cm의 작은 키. 가연골무형성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이지영 삼성테크윈 대리에게 ‘장애’는 그저 또 다른 ‘경험’에 불과했다. 삼성그룹 직원 대표로 1만 명 앞에서 특강을 펼친 이 대리의 인생 이야기.

삼성그룹 대표 선수, 작지만 큰 사람 이지영의 열정樂서


2010년 삼성그룹이 젊은이들과 소통하고자 만든 강연 행사 ‘열정락서’가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시즌3를 기획하며 공모를 통해 강연할 그룹 내 일반 직원 10명을 뽑았다. 지원자 2백20명 중 서류심사와 오디션 등을 거쳐 선정된 사람 중 한 명이 삼성테크윈 인사팀 인재개발그룹 이지영(28) 대리였다.
9월 18일 이씨가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열정락서’ 행사에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 김난도 서울대 교수, 역도선수 장미란과 함께 연사로 섰다. 삼성그룹 전 직원을 대표해 1만 명의 청중 앞에 선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작은 키였다. 희귀병인 ‘가연골무형성증’을 앓는 이씨의 키는 110cm에 불과했다.

한 번 보면 누구나 기억하는 사람
이튿날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아담한 체구에 또렷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사내 공고를 보고 행사 취지도 좋고 회사 다니며 느낀 점을 대학생에게 전달해준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지원했다”고 밝혔다.
“강연하던 날 맨 앞줄에서 농아 학생들이 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울더라고요. 소박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제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2007년 8월 삼성테크윈에 입사한 이씨는 경력사원과 신입사원 앞에서 강의하고, 교육과정을 기획·운영하는 일을 맡고 있다. 올해엔 삼성그룹 신입사원 교육에서 후배들의 멘토 노릇을 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첫인상 덕에 이 대리는‘누구나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는 “작은 키가 내게 준 선물이다”라며 웃었다.
“제가 나와서 교육하면 놀라거나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교육 막바지에는 자신이 가졌던 편견을 깨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죠. 저도 평범한 사람인걸요.”
대학교 3학년 때 호주로 떠난 어학연수.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지 못해 뒤에서 밀어야 했고, 엘리베이터 버튼이 너무 높아 누르기 어려웠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와는 조금 달랐다.
“정말 편견이나 동정 어린 눈빛 없이 있는 그대로 저를 바라봐주는 모습, 노약자와 여성을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를 보며 ‘아 이게 선진국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마음의 상처가 있었던 터라 열심히 하면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었죠. 친구도 많이 생겼고요.”
어릴 적 이씨의 꿈은 라디오 PD였다. 학창 시절 공부하며 들었던 라디오는 또 하나의 친구였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이야기가 많은 TV와 달리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꼈다고. 2002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 그는 학내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언론사 준비반에 들어갔다. 매 학기 성적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우수졸업상을 받으며 사회에 나왔다.
하지만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취업의 문은 장애가 있는 그에게 유독 더 좁았다. 60군데 원서를 넣어 12곳에서 필기시험을 보고, 7곳에서 면접을 봤지만 모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장애인이 고객 응대를 어떻게 하겠냐”는 면접관의 말이 비수처럼 그를 찔렀다. 아예 질문을 못 받고 면접장을 나선 적도 있었다. 면접장에서 굴욕을 맛본 그는 더 강해져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평소 쓰던 카메라 제품의 매력에 끌려 삼성테크윈에 낸 원서가 그를 최종 합격의 길로 이끌었다.

드라이브, 마라톤, 강연까지 이 대리의 무한도전

삼성그룹 대표 선수, 작지만 큰 사람 이지영의 열정樂서

이지영 씨의 가족사진.





이씨가 두세 살 무렵의 일이다. 다리가 휘고 또래에 비해 잘 걷지 못하는 딸을 데리고 서울대병원을 찾은 부모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왜소증이란 진단이었다. 정확한 병명이 ‘가연골무형성증’임을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유전자 이상으로 연골이 없어서 뼈가 자라지 않고 다리가 휘는 병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모두 키가 큰 편이어서 충격은 더욱 컸다. 세 살 터울인 언니의 키는 172cm나 됐다.
“유치원 때 놀림을 당해 괴로웠어요. 화장실에도 잘 못 갔던 기억이 나요. 중·고등학교 때는 버스 타는 게 두려웠죠. 짧은 시간에 급하게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거든요.”
당시보다 발달한 의학의 힘을 빌릴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사지연장술이나 호르몬 요법이 있긴 한데 일부러 키를 늘이려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수술을 받을지 고민했어요. 주위에서 그런 분들을 많이 봤죠. 하지만 수술 후 회복을 위해 병원에서 1년여의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거든요.”
“늘 자신을 괴롭히는 타입”이라는 이씨는 영락없는 워커홀릭이다. 도전도 즐긴다. 손운전을 배워 운전면허증을 땄고, 달리기도 한다. 희귀질환자 돕기 마라톤에서는 2시간 만에 5km를 완주했다.
“뭔가 계획하고 시도하는 걸 좋아해요. 새로운 걸 했다는 것 자체를 즐기죠. 최근엔 신입사원들의 멘토가 된 걸 저 자신을 다지는 계기로 삼았어요. 직장 생활 5~6년 차라 해이해졌는데 그런 자신을 재정비하고, 신입사원들의 열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죠. 그들과 함께하며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진 것 같아요. 가장 최근의 도전은 역시 ‘열정락서’ 무대였달까요.”

삼성그룹 대표 선수, 작지만 큰 사람 이지영의 열정樂서


‘철의 여인’처럼 느껴져도 사실 야식으로 치킨에 맥주나 만두 넣은 라면을 즐기고 다음 날 얼굴이 부을까 걱정하는 평범한 20대 여성이다. 미용이나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기사는 빼놓지 않고 본다고. 옷은 기성복을 수선해서 입고, 화장은 직접 한다. 잘 다듬어진 눈썹과 아이라인에 감탄하자 “대외적으로 나가면 회사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며 웃었다. “몸매는 안 된다 치고(웃음) 피부에 투자하자는 생각이었다”라는 그는 “세수할 때 뜨거운 물 찬물 번갈아가며 공들여 씻는다”고 피부 관리 팁을 알려줬다.
커피숍에서 편하게 멍하니 있기와 드라이브, 독서를 즐긴다는 그는 특기가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했다. 밖에 나가면 불편한 게 많으니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특정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20여 년 넘게 장애와 오랜 시간 동거하며 생긴 이씨만의 습관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을 나이인 그는 “그전까지는 결혼이 두려웠다”고.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나를 비롯해 아이와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두려웠어요. 결혼은 좀 더 성숙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 겁을 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죠. 호주 여행을 갔을 때 장애가 있는 임신부에게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죠. 아주 당당하게 ‘두렵지 않다’고 대답하는 데 놀랐어요. 사회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장애가 있어도 차별이 없다는 거였죠.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마음 맞는 사람과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는 연애를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시간도 남자도 없어서(웃음).”
인생에 힘이 된 책이나 영화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사람’에게서 많이 배운다”고 했다.
“제 부족한 점에 대한 주변 사람의 조언은 늘 도움이 돼요. 특히 저희 김상욱 그룹장님은 잘한 것은 칭찬해주시고, 부족한 것은 고칠 수 있게 많은 조언을 해 주세요.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람들은 일이 많으면 힘들다고들 하는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늘 배우고 있다고 여긴다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죠.”
“긍정적인 성격이라는 말을 자주 듣지 않느냐”고 묻자 이씨는 “다들 그렇게 말한다”라며 웃었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잖아요. 어느 정도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장애’라는 게 평생 가져가야 할 부분이니까요. 어느 날 불쑥, TV를 보다가도 ‘나도 평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열정락서’에서 강의하면서 ‘평범했다면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겠지’ 싶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글로벌하게 일하는 것이 꿈이다. 그는 “스스로 외국의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통할까 싶고, 키 큰 사람들과 악수는 어떤 식으로 하고 명함은 어떻게 주고받을까 속으로 고민해본다”라며 “영어랑 중국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사회적 성공으로 편견 바꾸겠다던 자신과의 약속 지켜

삼성그룹 대표 선수, 작지만 큰 사람 이지영의 열정樂서


그는 희귀병을 앓거나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에게 “이 얘기를 정말 해드리고 싶다”며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모님이 저를 낳고 자책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단 한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어요. 장애가 그렇잖아요. 저처럼 돌연변이 같은 사례도 있을 수 있고, 부모가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내 잘못으로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힘들게 살겠구나’라는 생각으로 평생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부모님 잘못, 아니거든요. 본인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죠. 최대한 세상을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마음 강하게 먹고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켜야 해요. 자꾸 세상에 내보내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자신감을 심어줘야 해요.”
이쯤 되니 10년 뒤의 이지영이 궁금하다. 그는 “마흔을 앞두고 있을 텐데 뭘 하고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며 한참을 생각하다 “어떤 직급의 누군가가 아닌 나아가는 과정에서 계속 노력하는 마흔이 돼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8년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무 살의 대학생 이지영은 “열심히 노력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그 경험을 장애인과 함께 나누며 편견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말대로였다. 과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작지만 큰 사람’. 이씨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52062;W

장소협찬 | 베이비노리 강남본점(02-3463-2470)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