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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수 그녀가 빛나는 이유

베니스의 여신, 흑발의 마리아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문형일 이기욱기자 김기덕 필름 제공

입력 2012.09.27 15:46:00

요즘 영화계의 화두는 단연 ‘조민수의 재발견’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로 생애 첫 베니스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그는 행사 내내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며 심사위원들을 흥분시켰다.
결국 김기덕 감독의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여우주연상은 불발됐지만, 조민수의 살아 있는 연기는 오랫동안 진한 여운을 남긴다.
조민수 그녀가 빛나는 이유


영화 ‘피에타’의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는 축제 분위기다. 베니스 영화제 비경쟁 부문 진출은 ‘친절한 금자씨’ 이후 7년 만의 일. 더군다나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여주인공 조민수(48)다.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들 또한 만장일치로 조민수를 여우주연상감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하지만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이 기타 주요 부문 수상을 할 수 없다는 영화제 규정에 따라 실제 그는 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조민수 연기에 대한 현지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고 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첸커신 감독과 배우 사만다 모튼 등 올해의 심사위원들이 조민수를 찾아와 그의 연기에 대한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영국 유명 여배우 사만다 모튼은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감동적인 연기였다. 작품에 스며든 조민수의 연기에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9월 11일 김기덕 감독, 이정진과 함께 베니스에서 돌아온 조민수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여우주연상 불발에 대한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섭섭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현지에서 영화 시사 후 KBS 파리 특파원이 오셔서 여우주연상 수상이 확실하니 소감을 미리 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경우에 없는 일인 것 같아 거절했는데, 그때 인터뷰 안 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만약 했으면 망신스러울 뻔했어요(웃음). 폐막식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 난 뒤 감독님, 배우를 비롯해 한국 영화 스태프 모두 현지인들로부터 상상 이상의 환대를 받았어요. 비록 여우주연상은 불발됐지만 심사위원들이 제 손을 잡으며 건네는 눈빛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답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을 묘사한 미술 양식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피에타에 드러난 성모 마리아의 감정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겪는 상실과 고통에 비유되며 미켈란젤로, 고흐 등 예술가들에 의해 재탄생돼왔다. 영화 ‘피에타’ 포스터를 보더라도 이정진을 안고 있는 조민수의 모습이 예수, 마리아와 오버랩된다. 김기덕 감독 역시 조민수를 ‘흑발의 마리아’라 평했다.

“김기덕 감독에 대한 편견 존경심으로 바뀌어”

조민수 그녀가 빛나는 이유


영화는 청계천 주변 철공소 밀집 지역에서 시작된다. OO정공, OO공업사 등 쇠를 깎고 용접해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소규모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여기저기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어두컴컴한 가게 안에는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자영업자들이 있다. 그리고 짐승처럼 악랄한 방법으로 그들의 돈을 뜯으며 사는 남자, 강도(이정진). 그는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상해보험을 들게 한 뒤 기계로 손을 절단 내거나 다리를 부러뜨려 보험금을 가로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조민수)가 나타난다. 조민수는 자신이 엄마임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강도가 내민 그의 살점을 표독스럽게 씹어 먹고, 살아 있는 닭과 장어를 맨손으로 잡아 아들에게 요리를 해주며 악마 같은 강도를 아기처럼 보듬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강도는 30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모성애를 느끼고, 격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두 사람은 결국 예고된 비극을 맞는다.
영화 마지막에 낡은 건물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엄마, 그리고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회개하듯 ‘잘못했어요.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하고 외치는 강도의 모습에서는 영화 ‘피에타’의 주제인 진정한 용서와 자비,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추락하기 전 조민수가 내뱉는 ‘강도도 불쌍해’라는 말 한마디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김기덕 감독님의 작품은 한 신 한 신 생각을 안 하고 흘려보내면 놓치는 부분이 많아요. 그 추락 장면을 촬영할 때는 ‘결국 인간은, 어떤 사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다 불쌍한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도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거든요.”
조민수는 ‘피에타’에 출연하기 전에는 김기덕 감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김 감독 영화 특유의 잔인함과 비주류적 성향에 공감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촬영에 들어가자 김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기존의 김기덕 감독님 작품은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는 아니었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김 감독님의 영화는 끝나고 난 뒤 깊은 고민에 빠져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이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게 사실이죠. 처음 감독님으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고민이 싹 사라졌어요. 여태껏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죠. 실제로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제 안에 있는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끌어내주셨어요. 스크린 주연 복귀는 굉장히 오랜만인데 이 영화로 베니스까지 다녀오고, 제가 줄을 참 잘 선 것 같아요(웃음).”
베니스에 머무는 동안 조민수는 해외에서 김 감독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딜 가나 김 감독을 알아보고 존경을 표하는 이들 덕분에 덩달아 배우를 비롯한 한국 스태프 모두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고. 그곳에서 주류냐 비주류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조민수 그녀가 빛나는 이유

조민수는 베니스에서 다양한 의상을 소화하며 단아한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사진 왼쪽부터 도나카란 투피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퍼블리카아뜰리에의 블랙 롱 드레스, 돌체앤가바나의 블랙 탱크톱 드레스.





레드카펫 의상은 한국 디자이너 드레스로 선택

조민수 그녀가 빛나는 이유


그동안 조민수는 스크린에서 주목받던 배우는 아니었다. 필모그래피를 보더라도 영화 주연작은 단 4편, 그나마도 1995년 여균동 감독의 ‘맨’이 최근작이다. 대신 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했던 그는 2005년 결혼 후 한동안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2008년 이혼 후에도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2010년 SBS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로 복귀한 뒤 연달아 SBS 드라마 ‘내 딸 꽃님이’에 캐스팅돼 박상원과 중년의 로맨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2년 김기덕 감독을 만나면서 그는 말 그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다.
스크린에서 조민수는 절제된 연기뿐 아니라 외모 면에서도 빛이 난다. 마흔 후반의 나이임에도 여배우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는 것. 실제로 그는 연기자로서 공식적인 행사 무대에 설 때는 늘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이며 당당한 아름다움을 뽐내왔다. 그렇다고 나이 드는 걸 거부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그는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 출연해 외모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기자가 아니었다면 저도 예뻐지려고 부단히 노력했을 거예요. 하지만 배우는 주름도 연기를 해요. 희로애락을 표현하려면 자연스러운 얼굴이 필수거든요. 특히 요즘 서클 렌즈를 끼는 후배들이 많은데, 연기할 때 붕어와 얘기하는 것 같아 불편해요. 동공이 움직이지 않으니 눈빛을 읽을 수 없고 교감하기 쉽지 않죠. 그 모습을 보면 제 감정도 덩달아 안 나와서 속상할 때가 있어요.”
베니스에서도 조민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행사마다 단아한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기자간담회에서는 흰 블라우스에 황금빛 스커트를 매치한 도나카란의 투피스를 입었고, 이어진 공식 기자회견과 포토콜에서는 돌체앤가바나의 블랙 탱크톱 드레스를 선보였다. 영화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레드카펫 행사에서는 해외 유명 브랜드가 아닌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퍼블리카아뜰리에’의 블랙 롱 드레스를 선택했다.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한국 디자이너의 의상을 꼭 입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과거 맡았던 배역과 외모에서 풍기는 강렬함 때문인지 조민수의 이미지는 강단 있고 카리스마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 그는 언제나 소녀 같은 사랑을 꿈꾸는 천생 여자. 비록 결혼 생활은 실패로 끝났지만 여전히 그는 사랑을 기다린다.
“드라마와 영화의 기본은 사랑인데, 배우로서 그 부분이 없다면 무척 슬퍼요. 우리 나이에도 사랑을 하고 그걸 더 성숙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 들면 사랑을 못한다’는 편견에 대한 오기랄까, 그런 것에 대한 발버둥으로 사랑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2012년 세계가 주목한 여배우 조민수. ‘피에타’ 이후 그에게 어떤 연기 인생이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다.

청계천 노동자에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우뚝 선
김기덕은 누구?

대중에게 김기덕이란 이름은 결코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그는 비주류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이다. 1960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김기덕은 어려운 가정 환경 탓에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공식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농업학교를 나와 결국 최종 학력은 중졸이 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위해 그가 처음 뛰어든 곳은 한국 산업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구로공단과 청계천. 그곳에서 그는 노동자의 고된 삶을 직접 체험했다. ‘황금사자상’ 수상 후 김기덕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수상 당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누구였나’는 질문에 “청계천에서 무거운 구리 박스를 들고 다니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인생은 해병대 제대 후 무작정 건너간 프랑스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한때 대학로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돈을 벌었던 김기덕은 프랑스 남부의 한 해변에서 초상화 그리기로 생계 유지를 하며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32세 처음으로 본 영화 두 편, ‘양들의 침묵’과 ‘퐁네프의 연인들’을 통해 그도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인의 삶이 시작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무작정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그는 1995년 ‘무단횡단’으로 영화진흥공단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뒤 이듬해 첫 영화 ‘악어’를 연출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야생동물보호구역(1997)’ ‘파란대문(1998)’ ‘섬(1999)’ ‘실제상황(2000)’ ‘수취인불명(2001)’ ‘나쁜남자(2001)’ ‘해안선(2002)’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2)’ ‘사마리아(2003)’ ‘빈집(2004)’ ‘활(2005)’ ‘시간(2006)’ ‘숨(2007)’ ‘비몽(2008)’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 초청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것. 특히 ‘사마리아’와 ‘빈집’은 각각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겨줬다. 이어 ‘활’이 칸 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고, 2007년에는 ‘숨’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 김기덕은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한국 최초의 감독이 됐다. 또한 이번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그는 한국 영화 사상 첫 국제영화제 최고상 수상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김기덕은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을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 대부분은 자본주의의 황폐함과 ‘구원’이라는 주제를 품고 있다. ‘피에타’ 역시 돈 때문에 파괴되는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여성동아 2012년 10월 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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