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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주부 울리는 손목터널증후군

청소, 설거지 잦은 여성이 남성의 6배

글 | 최영철 신동아 기자 사진제공 | REX

2012. 08. 07

손목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거나 불편하다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다. 손목터널증후군은 50대 전업주부들에게서 주로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이급증하면서 젊은 층에서도 환자 수가 늘고 있다. 이 질환의 원인과 대처법을 알아봤다.

주부 울리는 손목터널증후군


#1 전남 흑산도에 사는 김순희(가명·55) 씨는 수년 전부터 시작된 양 손의 타는 듯한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밤이면 심해지는 통증으로 더운물과 찬물을 받아놓고 번갈아 손을 담그며 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으면 한밤중에 손을 흔들며 흑산도 마을을 마치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경추 디스크가 의심돼 종합병원에서 척추 사진을 찍어봤지만 이상이 없었다. 그는 결국 서울에 올라와서야 병명을 알았고 수술을 받은 후 지긋지긋한 통증에선 벗어났지만 뒤늦게 치료를 한 탓에 손가락의 운동성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2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이강수(가명·33) 씨는 어느 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쥐려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못에 찔린 듯한 손바닥 통증 때문에 소리까지 질렀다. 다음에는 마비 증상까지 왔다. 손이 저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조차 없었다. 손을 주무르면 증상이 덜해지고 일을 하면 심해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결국 이씨는 휴가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 진단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치료는 간단했다. 손목에 주사를 몇 번 맞았는데 증상이 훨씬 완화됐기 때문이다.

가사노동, 컴퓨터 사용이 주원인
흑산도 아주머니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괴롭힌 이 질병의 이름은 ‘손목터널증후군’이다. 의학적 명칭은 수근관증후군. 수근관이란 손목 앞쪽 피부 조직 안에 뼈와 인대(횡수근 인대)로 둘러싸인 작은 통로, 쉽게 말하면 손목 안의 터널이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정중신경이 지나가는 이 통로가 좁아지거나 내부 압력이 증가하면서 신경이 손상돼 손바닥과 손가락에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평생 이 질환에 걸릴 확률이 50% 이상으로, 팔에서 발생하는 신경질환 중 가장 흔하다.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이 중 10~20%에 불과하다.
정중신경은 팔의 말초신경 중 하나로, 뇌에서 척추를 거쳐 팔과 손가락 끝으로 이어진다. 손바닥의 감각을 뇌로 전달하고 손가락과 손목을 움직이는 운동 기능을 담당한다. 수근관을 덮고 있는 인대가 두꺼워지면서 신경을 압박하는 경우가 가장 흔한 발병의 원인이다. 인대가 두꺼워지는 이유는 손목의 반복적 사용 때문이다.
실제 환자 대부분이 설거지나 청소, 칼질, 컴퓨터 마우스 작업 등으로 평소 손목을 많이 쓰는 이들이다. 환자 중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가사노동을 오래 하거나, 식당 주방에서 오랜 세월 일한 사람 가운데 이런 증상을 한번쯤 경험한 이들이 많다. 어부나 농부, 컴퓨터 업종 종사자에게서도 많이 발병한다. 30~60세 사이, 그중에서도 중년(50대) 이후 과체중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대 여성 환자가 남성의 6배에 달했다.
인대가 두꺼워지는 것 외에도 감염이나 외상에 의한 부종, 골절 후 부정 유합(뼈가 정확하게 붙지 않은 것), 종양(혹), 잘못된 수면 자세, 진동 기구의 과다 사용 등도 손목터널증후군의 원인이 된다. 비만증이나 당뇨병,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있어도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가장 흔한 증상은 손목 부위의 통증과 함께 엄지, 검지, 중지 및 손바닥 부위의 타는 듯한 통증, 저림, 감각 저하다. 일단 이런 증상이 있다면, 그것도 밤에 심해진다면 손목터널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저림 증상은 특히 1~2분 동안 손목을 굽히고 있거나 두드릴 때 나타난다.



마비, 저림… 심하면 단추 끼우는 것도 힘들어

주부 울리는 손목터널증후군


심한 경우는 밤에도 손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껴 잠에서 깨기도 하는데 간혹 손목을 터는 동작을 하면 통증이 가라앉기도 한다. 통곡을 할 정도로 아프다고 해 ‘야간 통곡’이라고도 하는데, 흑산도 아주머니가 한밤중에 손을 흔들며 다닌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간혹 정중신경 압박이 심한 경우 저림이나 감각 저하 증상을 넘어 엄지 근육이 쇠약해져 마비 증상이 올 수도 있다.
손가락 및 손바닥이 부은 것 같은 느낌을 호소하는 환자도 있다. 찬물에 손을 넣거나 날씨가 추우면 손끝이 유난히 시리고 저린 증상도 흔히 관찰된다. 질환을 방치해 최악의 상태에 이르면 정중신경이 마비돼 엄지와 검지 사이의 근육이 오그라들면서 단추를 끼우는 동작조차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증상들은 손목터널증후군뿐 아니라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과 검사가 중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디스크탈출증이다. 정중신경이 지나가는 손목의 신경을 손가락으로 누르거나(신경 타진 검사), 손바닥을 안쪽으로 향하게 해서 손목을 약 1분 동안 심하게 꺾은 후(수근 굴곡 검사) 손바닥이나 손가락에 통증이나 이상 감각이 있다면 손목터널증후군이 의심된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근전도 및 신경전도 검사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목 디스크나 그 외의 신경 관련 질병인지도 구분할 수 있다.
손가락의 운동 기능이 어느 정도 저하됐는지 파악하는 것도 치료의 관건이 된다.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신경 자체의 변성이 진행된다. 이 상태가 되면 수술로도 증상이 완전히 호전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운동 기능 저하는 주로 손바닥에서 엄지쪽 두툼한 부분의 근육이 약화되거나 마비되면서 발생한다. 엄지와 새끼손가락를 마주 대고 힘을 준 상태에서 이 부분을 눌렀을 때 탁구공을 누르는 듯하면 정상이고 물렁거리면 이상이 생긴 것이다. 만약 이 부분이 두툼하지 않고 눈으로 봐서 움푹 들어가 있으면 이미 질환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이 정도면 수술을 해도 완전히 회복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치료는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증상이 심하지 않고 근육 수축이 없는 경우에는 보존적 치료를 해야 한다. 초기에 약물 또는 물리치료를 해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보조기 등으로 손목을 고정하거나 수근관 내에 주사를 놓는 시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존적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 증상이 너무 심하거나, 10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 손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거나 근육의 수축이 있는 경우에도 수술적 치료를 해야 한다. 수술은 부분 마취하에서 피부를 2cm 이내로 절개한 후 횡수근 인대를 절개하고 정중신경이 눌리지 않도록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수술로 증상이 호전되지만 신경 변성이 심각한 경우는 일부 증상이 남을 수 있고 수술 때 신경 손상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수술을 결정하는 게 좋다. 조재현 제일정형외과병원 원장은 “대부분의 병이 그렇듯, 손목터널증후군도 조기에 정확하게 진단하면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도움말 | 조재현 제일정형외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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