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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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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독일인 주부 유디트의 좀 다른 시선

기획 | 한여진 기자 글 | 유디트

2012. 07. 09

친구야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제 독일로 돌아오는 게 어때? 고향이 그립지 않니? 우리가 가까이에서 살면 얼마나 좋겠니?” 요즘도 독일의 내 친구는 통화할 때마다 독일로 돌아오라고 나를 열심히 설득한다. 내가 대답 대신 한숨을 쉬면, 친구는 내가 또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래, 나도 네가 정말 보고 싶어. 진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친구와 가까이에서 살고 싶은 마음과 한국을 떠나기 싫은 마음, 이 딜레마를 친구에게 설명하려고 지금까지 나는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딜레마의 한쪽 편 때문에 나는 여전히 힘들다. 나는 독일에 있는 친구와 가족이 정말 보고 싶다. 한국 생활을 아무리 좋아해도 독일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이 무척 그립다. 한국에서 산 지 12년 된 지금,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향수병도 거의 없어졌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 한국과 독일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독일과 한국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는 대신 주말에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다.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얼굴을 보고 수다 떨면 좋겠다. 반면 나는 친구에게 내가 왜 한국에 머물고 싶어 하는지 다른 한쪽의 딜레마에 대해 이해시키고자 많이 노력한다. 한국에 정이 들었다고, 한국생활을 좋아한다고, 예쁜 나의 집도 떠나고 싶지 않다고. 여러 방식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친구를 이해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일을 불평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가족과 친구를 일 년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다는 것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여름에도 나는 독일로 간다. 매년 그랬듯이,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친구다. 서로를 잘 알고 있고, 같이 있으면 항상 즐겁다. 이 친구와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다른 친구들은 한국에 놀러 온 적이 있지만, 제일 친한 이 친구는 아직 한국에 오지 못했다.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친구가 올해는 한국에 꼭 한 번 오겠다고 한다. 친구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계획을 빨리 세우자고 친구를 졸랐다. 나와 친구는 이번 여름 독일에서 만나 한국 여행 계획을 자세히 짜기로 약속했다. 아마도 늦은 여름 어느 날 친구는 한국을 방문할 것이다. 드디어 나의 딜레마 한쪽을 이해시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가 왜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친구에게 모든 것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친구에게 어디를 보여줄지 이미 다 결정했다.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인 경복궁, 창덕궁 후원, 민속촌, 서울N타워, 남대문시장, 명동 거리, 설악산 등은 그 리스트에 들어 있지 않다. 그곳도 흥미 있는 관광지지만, ‘내가 사랑하는 한국의 모습’에는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용감하게, 경복궁과 민속촌 대신 내가 사는 우리 집을 보여주기로 했다. 나는 친구에게 아궁이와 온돌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온돌방의 아늑한 분위기를 체험하게 할 것이다. 하루에 한 번만 불을 피워도 24시간 동안 따뜻하게 유지되는 온돌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친구에게 이런 난방법을 본 적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집의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이다. 지금 부엌이 있는 자리에 원래 외양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강원도는 추운 지역이라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소와 함께 살았다는 설명도 해줘야 한다. 그다음 우리 집 기둥과 마루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줄 것이다. 백 년 전 어느 시골 목수가 이 집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만들었다고 말이다. 예전에 목공예를 배운 적 있는 친구에게 기둥과 마루를 직접 만져보라고 할 것이다. 친구가 한국의 옛날 모습을 피부로 느끼고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생활이 지난 몇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도 알려줄 것이다.

창덕궁 후원과 설악산 대신 친구에게 내가 가꿔놓은 우리집 꽃밭에 앉아 건너편에 보이는 육백산을 바라보라고 말할 것이다. 내 꽃밭은 창덕궁 후원보다 훨씬 작고 소박하지만 나에게는 내 꽃들이 온 세계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육백산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친구 같은 산이라 말할 것이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육백산의 넓은 산 정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견고함과 넉넉한 인상이 볼수록 매력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친구에게 매일 아침 직접 육백산과 인사를 나누라고 할 것이다.



친구야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리고 서울N타워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는 대신 친구와 함께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로 갈 것이다. 통일전망대에 처음 올라가서 비무장지대를 봤을 때 나는 감탄했다. 그 순간 나는 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인지 깨달았다.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그곳에서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원래 모습은 낙원을 닮았다. 통일전망대에 갔다 온 후부터 내 눈에는 도시의 콘크리트 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빠르게 움직이는 디지털 코리아에서 한국의 옛날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통일전망대에 올라, 친구가 나처럼 한국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남대문시장과 명동에서 쇼핑하는 대신 우리 동네 5일장에 가기로 했다. 시끄러운 5일장에서 우리는 채소, 과일, 고기, 옷, 농기구, 꽃 등을 살 것이다. 값을 깎으려고 조르거나 수다 떠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도 똑같이 해볼 예정이다. 불법 복제 테이프를 파는 곳에 잠깐 머물면서 내가 좋아하는 트로트가요도 듣고 빨간 대야 두 개를 앞에 펼쳐놓고 앉아 장사하는 할머니한테서 산나물을 사야지. 점심으로는 맛있는 장터국밥을 먹을 것이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자고 싶다. 저녁 해가 우리 집 뒷산을 넘어갈 때쯤 마당에서 삼겹살을 굽고 텃밭에서 쌈채소를 따다 고기를 싸서 먹을 것이다. 여러 가지 한국 음식도 차릴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은 꼭 친구에게 선보이고 싶다. 친구의 입맛에 잘 맞지 않더라도 다 한 번씩 먹어보라고 강요(?)해야지. 따뜻한 온돌방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친구와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 것이다. 친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온돌방에서 실컷 잠을 자고 일어난 후, 아침식사를 하면서 친구에게 물을 것이다. “이제 내가 왜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니?”

친구야 내가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는…


유디트(41) 씨는…
독일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 온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으로 왔다. 현재는 강릉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강의를 나가면서 강원도 삼척에서 남편과 고양이 루이, 야옹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일러스트 | 한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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