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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여덟 번째 | 내 인생의 플랜B

“늦었다고 조급해 마라, 계속 가면 기회는 온다”

네이처에 표지논문 게재한 과학자 남구현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2012. 06. 25

하필 고3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빚쟁이들이 학교까지 찾아왔다. 전교 수석을 다투던 성적도, 멘사 회원인 우수한 두뇌도 돈 앞에선 무기력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단에서 용접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한 번도 부모를 원망한 적은 없다. 서른두 살, 과학자 남구연 씨 이야기다.

“늦었다고 조급해 마라, 계속 가면 기회는 온다”


“요즘이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 같아요. 하하.”
과학계에서 일생에 한 번 논문 저자로 등록되기만 해도 영광으로 여긴다는 세계적 과학 저널 ‘네이처’. 거기에 젊은 한국 과학자의 논문이 표지를 장식했다. 주인공은 남구현(32) 씨. 30대 한국 과학자가 ‘네이처’에 표지논문을 게재한 게 그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남씨가 ‘균열 제어를 통한 형상 구현(Patterning by controlled cracking)’으로 5월 10일자 표지를 장식하며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로 네이처에 논문이 실린다는 확답을 들은 날을 꼽은 남씨. 두 번째로 기뻤던 날은 논문이 표지에 게재된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고 한다.
네이처 게재 논문의 80%가 생명공학 논문인 상황에서 고체역학을 주제로 한 논문이 표지로 채택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제1 저자인 남씨가 주도하고, KAIST 고승환 교수와 이화여대 박일흥 교수팀이 참여한 연구는 균열 현상을 이용해 나노 구조물을 손쉽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균열을 완벽히 제어한 최초의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학창 시절 천체물리학자가 꿈이던 남씨는 멘사(고지능자 모임) 회원인 데다 고등학교(대구 능인고) 때도 성적이 줄곧 상위권이었지만 외환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빚쟁이에게 시달렸다. 여기서 인생 첫 번째 분기점을 맞이한다. 남들 다 간다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했고, 이어 인천 남동공단에서 병역특례로 레미콘 회사에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다. 레미콘 조작부터 용접, 삽질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영장이 나와서 군대에는 가야겠는데 채권자가 쫓아다니는 상황이라 남아 있을 가족들 걱정에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레미콘 회사에 들어갔죠. 그땐 왠지 모르게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괜찮다고 해도 부모님께선 항상 미안해하셔서 오히려 죄송해요. 제가 부모님께 죄책감을 들게 한 게 아닌가 싶어서….”

어렵던 시절, 펜 놓고 공구 잡은 청년

“늦었다고 조급해 마라, 계속 가면 기회는 온다”

남구현 씨는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도와준 이들로 가족과 친구를 꼽았다.



2002년 2월 병역특례를 마치고 다시 아르바이트 생활로 돌아갔다. 잡지사 ‘월간항공’에서 3년간 기자로 일하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촉연구원으로도 3개월간 있었다. 당시 인연을 맺은 고(故) 황명신 한국항공대 교수의 권유로 남씨는 200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년 동안 커뮤니티칼리지(단기 대학)를 다니다 2005년 버클리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해 5년여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야말로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 한 차례 쉬어갈 만도 한데 남씨는 요즘도 네이처와 사이언스 지에 낼 다른 논문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그는 이번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새로운 ‘동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인문학과 공학, 딱 두 분야만이 아니라 인문학도 과학처럼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서 같이 연구하는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남씨가 이렇듯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게 해준 건 가족, 특히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를 “아프지 않은 채찍질”에 비유했다. 아버지는 절대 칠 생각도 없고 치지도 않으시겠지만 그 스스로 아버지라는 채찍에 맞고 있는 느낌이라고.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한 생활 신조는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을 것 같다”는 기자의 지레짐작에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세 명이 길을 가다 하나가 쓰러지면 두 명이 일으켜 세워야죠. 부모님이 힘드시면 저라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네게 힘든 일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고, ‘너는 뭔가 하면 끝까지 하는 아이니까’라며 믿어주는 사람도 있었죠.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레미콘 회사에 다닐 때 서울대 물리학과에 다니던 친구에게 ‘너희가 배우는 책 좀 가져다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정말 어려운 책을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너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 해야 한다’고 격려해줬어요. 기름때 묻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감동이었죠. 나태해지고 싶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어요.”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몰다 보면 뜻하지 않게 유턴해야 할 때가 온다. 그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으라”고 조언했다.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으면 좌절하기 쉽죠. 컴퓨터 게임을 하는데 끝판까지 깨야겠다, 그런데 자꾸 캐릭터가 죽고 시간에 쫓기면 당연히 마음이 조급해지죠. 하지만 시간이 넉넉할 때는 계속하면 되잖아요. 제가 처음 대학에 간 게 스물다섯 살 때예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수소문해서 고등학생들 틈에서 AP 테스트를 받는데 처음엔 부끄럽더라고요. 레미콘 회사에 다닐 때도 세상이 내게 태클 거는 것 같고 누가 나를 벌주나 싶었는데 막상 미국에서 3일 넘게 밤샘 공부를 하다 보니 회사에 다니면서 단련돼 버틸 힘이 생겼구나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남보다 입학이 늦었다고, 취업이 늦었다고 해서 이후에도 계속 뒤처지는 것은 아니에요. 당장은 실패 같아도 지나보면 그게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한 계단 같은 것이었죠.”



장소협조 | 카페 두나미스(02-826-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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