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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인생 후반전

아나운서에서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 변신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마크 리부 사진전 제공

입력 2012.06.05 15:46:00

김범수 아나운서의 방송 이력은 참 독특하다. 서울대 경영대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입사했다가, 서른셋에 뒤늦게 SBS 공채에 합격해 아나운서가 됐다.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던 2004년엔 훌쩍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 가장 늦은 나이에 입사해 가장 이른 나이에 퇴사한 셈. 그로부터 다시 8년, 당시 선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김범수의 인생 후반전


약속한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김범수(44) 아나운서가 인터뷰 장소로 뛰어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수염이 거뭇하고, 귀밑으론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인다. 화면 속 반듯하고 매끈한 모습만 보다가 이런 인간적인(?) 모습과 마주하고 보니 그가 뛰어온 속도만큼이나 확 가까워진 느낌이다. 2004년 프리랜서로 독립한 그는 요즘 문화 콘텐츠 회사 코바나컨텐츠에서 공연·전시 기획자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2009년 ‘앤디 워홀전’, 2010년 12월 ‘샤갈전’, 2011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선보인 문화 행사다.

마크 리부의 삶과 예술에 빠지다
그는 인사 후 숨을 몰아쉬고는 바로 자신이 준비 중인 사진전 이야기로 또 내달렸다. 코바나컨텐츠는 5월 26일부터 8월 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에펠탑의 페인트공-마크 리부 사진전’을 연다. 마크 리부(1923~ )는 현대사진 1세대의 마지막 생존자로, 서정성과 현장감을 겸비한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대표작은 ‘에펠탑의 페인트공’(1953)과 ‘꽃을 든 여인’(1967). 안전장치 하나 없이 에펠탑에 페인트칠을 하는 페인트공의 모습은 춤추는 곡예사를 닮았다. 1967년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당시 총검 앞에서 꽃을 들고 평화를 호소하는 여인을 찍은 사진은 반전평화시위의 상징이 됐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한국전으로 대표작 1백90점을 선보인다. 김범수 아나운서는 전시에 앞서 사진을 고르기 위해 마크 리부가 살고 있는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
“원래 올여름에 ‘고흐전’을 하기로 했는데, 그게 미뤄지면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전시를 찾던 중 우연히 마크 리부를 접하고 빠져들게 됐어요. 3년 전 파리에서도 전시를 했는데 대성공을 거뒀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는 커미셔너 서순주 박사님과 제가 작품을 일일이 고르고 전시 레이아웃도 했죠.”
그는 마크 리부의 따뜻함에 매료됐다. 리부의 할아버지는 은행가, 아버지는 철강회사 사장, 큰아버지는 건강식품을 만드는 다국적 기업 다논의 CEO였다. 리부는 세계일주를 한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쓰던 카메라를 물려받은 것을 계기로 사진과 인연을 맺었고, 작품 활동을 통해 평생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리부의 사진 속에는 근본적으로 따뜻함이 있어요. 항상 역사적 현장에 갔지만 이벤트를 찍은 게 아니라 그 옆의 주변인들을 찍어서 은유적·상징적으로 상황을 표현했죠. 여자로 치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고급 명품을 입었지만 어떤 브랜드인지 티가 하나도 안 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파리에 갔을 때 그는 리부의 아내를 인터뷰해, 리부의 삶과 각각의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자신이 직접 녹음한 전시 오디오 가이드에 녹여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리부도 기적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지금은 건강이 안 좋아서 프랑스 미디어에서도 그를 만나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제가 갔을 때는 마침 컨디션이 좋았어요. 그분이 야윈 손으로 제 손을 꼭 잡더니 ‘드디어 내 사진의 울림이 한국에까지 전해졌느냐’고 묻는데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처음 털어놓는 결혼과 이혼에 관한 오해

김범수의 인생 후반전




그는 도록을 한 장씩 넘기며 사진마다 배경 설명을 해줬다. 그의 설명은 윈스턴 처칠, 마오쩌둥, 피델 카스트로를 아우르고 러시아,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넘나들었다. 와이셔츠 소매까지 걷어붙이며 열심히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졌다. 2004년 프리랜서 선언 후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서른셋의 늦은 나이에도 도전할 만큼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니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구들은 회사에서 차장, 부장, 임원으로 승진하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데 ‘나는 뭔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어요. 당시 전세 보증금도 필요했었고….”
뜻밖이다. 김 아나운서는 2001년 11세 연상의 강모 씨와 결혼했다가 2008년 이혼했다. 당시 그의 전처는 상당한 재력가의 딸로 알려져 있었다. 소문대로라면 굳이 돈 때문에 프리랜서로 전향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오해가 생긴 이유가 전처가 저보다 나이가 위고 아이가 있어서였던 것 같은데, (재벌가의 딸이라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고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어요. 처음엔 누나 동생 사이였다가 결혼까지 하게 됐죠. 모두 반대하는 결혼이어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더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서 면목이 없어요. 다만 그것도 제 삶에서 성장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도 후회도 없고요.”
그는 방송하는 동안 ‘접속 무비 월드’, ‘금요컬처 클럽’ 등 문화 예술 관련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던 것이 인연이 돼 2008년 코바나컨텐츠에 합류했다. 코바나컨텐츠는 문화익인(文化益人·문화로 사람을 이롭게 한다)을 모토로, 미술 전시·뮤지컬 공연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처음에는 음악이나 미술 전공자가 아닌 자신이 문화 사업을 잘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늦바람이 무서운 것처럼 그는 정신없이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김범수의 인생 후반전


“제가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어요.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 기자는 대본을 보지 않고도 영화 계보를 술술 읊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저는 작가가 써준 대로 읽으려니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시청자한테도 그건 예의가 아니겠다 싶어 그 후 1년 반 동안 개봉 영화란 영화는 거의 다 봤어요. 심지어 하루 4편씩 보기도 했죠. 그렇게 데이터가 쌓이니까 저도 대본을 보지 않고 할 이야기가 생기더군요. 코바나 일을 시작하면서도 모르는 게 있으면 무조건 현장으로 달려갔어요. ‘미스 사이공’을 할 때는 공연만 스무 번을 봤어요. 어떤 날은 VIP석에서 보고, 어떤 날은 맨 뒷자리에서 보고, 어떤 날은 음향만 듣고, 어떤 날은 의상만 보고…, 그렇게 하고 지난해 8월 뉴욕 브로드웨이, 올 초 영국 런던에 가서 뮤지컬을 하루에 2~3편씩 봤더니 눈이 뜨이더라고요. 이제는 프로듀서의 시각에서 각각의 공연이나 전시의 장점과 허점이 보여요. 유럽이나 미국의 문화 트렌드를 보면 여러 장르의 콜래보레이션(협업)이 활발해요. 한 예로 파리에서 ‘드뷔시 전’을 보러 갔는데 그와 관련된 미술 작품을 전시하면서 음악을 연주하는 식이죠. 이런 협업이 가능하려면 기본이 탄탄해야 하는데 우리도 이제는 다양성을 넘어 깊이를 추구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는 만큼, 금방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라잡을 것으로 봐요.”

치열한 야생의 세계에서 시작하는 제2의 인생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아나운서 시절이 온실이었다면 지금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은 야생이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해도 되는 방송에 비해 지금은 영업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아쉬운 부탁도 해야 하고, 부하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도 해야 한다. 지난해 ‘샤갈 전’을 앞두고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는 “아무래도 회사 얘기 좀 해야 됩니다”라며 샤갈에 대한 책을 가지고 와 MC들에게 돌렸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도 배우고요. 방송국에서 나와서 두 가지를 깨달았어요. 첫 번째는 잘 안 되는 일은 모든 게 내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는 것, 두 번째 잘되는 경우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다는 거죠.”
전시 준비가 막바지로 치닫는 요즘, 퇴근 시간은 보통 새벽 한두 시. 부모님과 함께 살지만 현관까지 달려 나와 따뜻하게 맞아줄 반려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간절하다. 그는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세 살짜리 판다곰’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감정이 풍부하다.
“아직 만나는 사람은 없지만 결혼은 해야죠. 부모님도 많이 기다리시고, 지혜롭고 현명하고 제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지난번 유럽에 가서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혼자 보기 아깝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낳으면 키우고 싶은 도시까지 봐놓았다니,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어디 하나 숨겨놓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결혼식장에 둘보다는 셋이 함께 들어가는 게 좋지 않겠나”며 웃는다. 물론 농담이다.
“이번 ‘마크 리부 전’은 제 인생 후반전의 출발점이에요. 지난 5년의 경험과 투자로 이 분야에서 제 나름의 노하우를 쌓게 됐고, 그걸 토대로 어디로 얼마큼 더 나아갈지를 가늠해 볼 생각이거든요. ‘대표작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마크 리부는 ‘내일 찍을 예정’이라고 대답했답니다. 저 역시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삶을 살 겁니다.”

★ 마크 리부 사진전 Best photo 3

김범수의 인생 후반전


1 꽃을 든 여인, 1967 베트남 반전평화시위가 벌어지던 워싱턴 거리에서 총검을 겨누는 군인들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네는 17세 소녀를 포착한 것이다. 이 사진은 이후 전 세계로 확산돼 평화와 반전시위의 상징이 됐다.
2 에펠탑의 페인트공, 1953 페인트공의 이름은 자부다. 안전장치 하나 없이 에펠탑에 페인트칠을 하는 자부의 표정에서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무섭지 않느냐는 리부의 질문에 “무섭지만 애인 생각을 하면 행복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3 비틀스, 1964 1964년 북미 순회 공연 직전, 비틀스 멤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비틀스의 첫 미국 공연은 ‘British Invasion(영국의 침략)’이라고 불릴 만큼 미국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여성동아 2012년 6월 5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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