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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ORY OF CEO

여성의 마음을 읽는 마술사 한경희

스팀청소기부터 진동 파운데이션까지

글·김명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11. 10. 21

스팀청소기로 대박을 터뜨린 여성 경영인 한경희. 그는 이 명함 한 장을 위해 IOC 직원, 호텔리어, 교육부 사무관 등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숱한 명함을 버렸고 때로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제는 성공을 자축하며 샴페인을 터뜨려도 될 것 같은데 그는 가전에서 뷰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돛을 올렸다. 가늠하기 힘든 그의 꿈과 도전정신의 원천은 무엇일까.

여성의 마음을 읽는 마술사 한경희


패션이 성공의 척도는 아니지만 종종 옷차림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47)는 유행을 타지 않을 것 같은 초록색 원피스 차림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노란색 블라우스로 한 번 갈아입었는데 이 역시 꽤 오래된 듯 빛이 바랬다. 옷을 살 시간조차 없이 바쁘거나 검소한 성격 둘 중 하나일 거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평일엔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면서 일에 매달리고, 주말엔 아이들(중2, 초등 6학년)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쇼핑할 여유가 없어요. 모처럼 시간을 내 쇼핑에 나서도 비싼 옷이나 가방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한경희’라는 이름은 여성들에게 부러움의 대명사다. 그는 무릎 꿇고 걸레질하는 게 힘들어 스팀청소기를 착안했고,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 대박을 터뜨렸다. 그의 성공 신화를 듣노라면, ‘매일 똑같이 걸레질하면서 나는 왜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며 무릎을 치게 된다. 그의 통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서 다림질하면 허리가 아픈데, 다림질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라는 생각이 스팀다리미로, ‘건강에 안 좋은 알루미늄 팬, 잘 눌어붙는 스테인리스 팬을 대체할 신소재 프라이팬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마그네슘 프라이팬으로, ‘아침마다 메이크업하는 시간이 아까운데 빠르고 편하게 메이크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최근 또다시 대박을 낸 히팅 뷰러 마스카라와 진동 파운데이션 개발로 이어졌다. 어쩌면 이렇게 여성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지 감탄사가 절로 난다.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의 연속,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그의 성공이 결코 아이디어 하나로 일군, 쉬운 승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스팀청소기가 제품으로 만들어져 시장에 유통되기까지,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미국, 중국에 진출하기까지 숱한 역경과 절망을 맛봐야 했다.
그는 원래 사업과 거리가 멀었다. 이화여대 불문과 출신인 그는 해외 취업이 드물던 1986년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둔 국제올림픽기구(IOC)에 취직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걸 알고 미련 없이 그만뒀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리어, 부동산 개발회사 등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다가 1996년 귀국해 5급 공무원 특채시험에 합격, 교육부 사무관으로 근무했다. 99년 누구나 부러워하는 화려한 스펙과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그의 나이 서른다섯.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말렸지만 단 한 사람, 당시 사업을 하던 남편 고남석씨(53·한경희생활과학 부회장)만은 “당신은 사업가 자질이 있다. 시작이 반”이라며 응원해주었다.
▼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날씬하다(사실은 말랐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인가.

여성의 마음을 읽는 마술사 한경희

한경희 대표의 책상 위에는 몇년 전 아들이 접어준 종이학이 놓여 있었다. 그는 “아들이 이걸 꼭 보면 좋겠다”고 했다.



“아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다. 저녁밥 두 번만 잘 먹으면 금세 1kg이 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IOC에 합격해 스위스에 갔는데 음식이 바뀌고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3개월 만에 몸무게가 10kg이나 늘었다. 그걸 빼려다가 요요현상 때문에 5kg이 더 쪘다. 결국 15kg을 다 빼는 데 3년이 걸렸다. 굴러다니다시피 했던 그 당시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이후론 살찌지 않으려고 관리한다.”
▼ 모든 일에 그렇게 완벽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다.”
▼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식당이나 가게에 가면 남의 주머니 계산을 했다. ‘이 가게는 손님이 몇 명이니 하루에 매상이 얼마, 한 달이면 얼마를 벌겠다’라는 식으로.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10여 년의 해외 생활 이후 국내에 들어와 결혼을 한 후 직장 생활과 가사노동을 병행하면서부터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 엎드려서 마룻바닥을 닦으며 뜨거운 물이 나오는 대걸레가 나오면 정말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아니다’ 싶으면 아무리 대우가 좋은 곳이라도 미련 없이 그만뒀다. 교육부에서 근무할 때는 일도 재미있고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입안한다는 점에서 보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업을 택한 건 내가 아니고서는 우리나라 주부들을 가사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웃음). 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여성의 마음을 읽는 마술사 한경희

한경희 대표는 가전에 이어 화장품 사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최근 출시한 진동 파운데이션은 1분 동안 4천 회 진동하며 자동으로 메이크업을 해준다.



▼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을 담보로 회사를 차리고 제품 개발에 나섰는데 처음 만난 기술자는 5천만~6천만원을 들이면 6개월 만에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 안에 제품을 만들긴 했지만 안전성 등에서 문제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 정도면 출시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완에 보완을 거듭하다 보니 시간도 예상보다 오래 걸렸고 자금도 8억원 이상 들었다.”
▼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힘드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길바닥에 나앉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 돌아보면 무모했던 것 같다.”
▼ 예전으로 돌아가 그 과정을 다시 밟는다면, 그래도 사업을 하겠는가.
“하루하루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지만, 결국 성공할 걸 알기 때문에 다시 할 것이다. 물론 나라고 실패 앞에 당당하지만은 않다. 어느 순간 나약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실패하라.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말이다. 부딪히고 깨지는 한이 있어도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사업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말없이 집문서 내준 양가 부모
당초 시나리오에는 없던 난항이 길게 이어졌다. 금방 ‘짠’ 하고 완성될 것 같았던 스팀청소기는 돈을 빨아들이는 괴물이 됐고, 그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대느라 ‘걸어 다니는 민폐’가 됐다. 이때 힘이 돼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2001년 제품 개발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시아버지가 급한 불을 끄라며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줬고 친정아버지도 “믿는다”는 말과 함께 집문서를 내줬다. 그런 부모의 절대적인 믿음은 흔들리는 그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저러다 말겠지’라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부모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과 사람됨이었다. 끈질기게 사업에 매달리고 바쁜 중에도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집과 친정을 오가며 살림을 돕는 그를 보며 어른들은 ‘저런 성실함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 모두 그의 성공을 지켜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꼽아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5년은 매일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간 것 같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래도 일단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만 하면 사람들이 줄 서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품이 좋아도 판로가 없으니 속수무책이었다. 제품을 만들고 유통망을 확보하기까지 5년이 걸렸는데 그동안 직원들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다. 경영자로서 가장 큰 의무는 직원들 월급 주는 것인데, 월급날이 될 때마다 속상하고 직원들한테 미안했다.”
▼ 위기의 순간,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의 도움이 컸던 것 같다.
“두 어른의 정신적 물질적 도움이 없었더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잘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대박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때는 쌀 살 돈이 없어 끼니 걱정을 했던 적도 있다. 이젠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좋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췌장암으로 투병을 하셨는데 마지막에 무엇을 해드릴까 하다가 자동차로 함께 여행을 했다. 수중에 돈 한 푼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카드 빚을 내서 한 거다. 아버님이 미식가라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셨는데 좋은 식당에서 양껏 대접하지 못했다. 그래도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더 이상 원이 없다’고 하셨다. 두 분 아버님이 살아 계셨다면 이제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시는 건 뭐든 다 해드릴 수 있을 텐데…, 그게 달라진 점이다.”
▼ 보통 바깥일을 하면 집안 대소사에 소홀하게 되는데 일을 하면서 시집과 친정도 알뜰하게 챙긴 것 같다. 양가 어머니를 모두 모시고 산다고 하던데.
“결혼을 늦게 해서 아이들도 어리고 하니 어른들이 예쁘게 봐주셨던 거지, 특별히 잘한 건 없는 것 같다. 양가 어머님을 모신 것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얹혀산 거다. 어머님들이 계시면 아무래도 살림이나 아이들 키우기가 수월하고 마음도 든든하다. 두 분이 자매처럼 잘 지내셨는데 최근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사를 하면서 시어머니만 모시고 살게 됐다. 친정어머니는 살던 동네에 정이 들어서 떠나기가 싫다고 하시더라.”

부와 명예를 넘어 더 큰 성공을 꿈꾼다

여성의 마음을 읽는 마술사 한경희


한경희 대표는 2008년 월스트리트 ‘주목할 만한 여성 기업인 50인’에 선정됐고, 회사의 한 해 매출이 1천5백억원에 이른다. 맨손으로 시작해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것이다. 이즈음에서 샴페인을 터뜨릴 법도 한데, 그는 또다시 모험에 나선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 2007년 계열사인 ㈜에이치케어를 설립하고 가전제품의 기술력과 화장품을 접목시킨 스마트 화장품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10월 말 두 회사를 통합하고 사명도 ‘한경희 뷰티’로 바꿀 예정이다.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여성을 위한 최고의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것. 그러려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 우수한 조직과 인재가 뒷받침돼야 한다. 옷이나 가방 같은 걸 살 때는 몇만원에도 덜덜 떨지만 연구개발비로는 수억원을 턱턱 쓰고, 대기업 못지않게 직원 복지와 사회공헌 활동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경희생활과학 사무실에 들어서면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그의 열정 바이러스가 직원들에게도 전염된 것이다. 한경희 대표는 최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꿈을 담아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가제, 동아일보사)라는 에세이를 썼다.
▼ 예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고 하는데 생활이 풍족해지지 않았나.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이 단출한 살림이나 낡은 가구를 보고 놀란다. 아이들 옷도 소매가 해지거나 작아져야 새로 사 입힌다. 왜 이렇게 사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도 월급 받아 생활하기 때문에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도 아이들 학원비는 왜 이렇게 비싼지, 학원 안 보내고 공부시킬 방법은 없는지 그런 거 고민한다.”
▼ 충분히 성공한 것 같은데, 화장품 사업은 왜 하나.
“우리 회사 고객들이 주로 여성들이다. 어떻게 하면 여성들을 행복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일까라는 고민을 계속했다. 여성들의 공통적인 소망 중 하나가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걸 돕고 싶었다.”
▼ 화장품은 스팀청소기처럼 개발 과정이 힘들지 않았나.
“모든 제품이 부단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나온다. 화장을 하는데 가장 힘들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것이 바로 두드리는 과정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 따르면 이걸 잘해야 화장이 잘 먹는다고 한다. 진동 파운데이션을 개발할 때 어느 정도 두드리는 게 이상적인지 연구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 현재 제품은 1분에 4천 회 정도 진동한다. 히팅 뷰러의 경우에도 눈썹을 태우지 않으면서 잘 말려 올라가는 적정 온도를 찾기 위해 눈썹 태워 먹은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
▼ 주부로서 자신의 회사 제품 중 가장 유용하게 쓰는 것은 무엇인가.
“다 유용하다(웃음). 올여름은 장마가 유난히 길어서 침구 살균 청소기 덕을 톡톡히 봤다. 요즘 가습기 청결제의 안전성 문제가 대두됐는데 우리 집에선 살균수 제조기로 살균한 물을 가습기에 넣는다. 스팀다리미와 진동 파운데이션도 편해서 매일 쓴다. 회사에 나와 보면 여직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걸로 얼굴을 두드리고 있다.”
▼ 아이들은 어떻게 키우나.
“전업주부들처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늘 미안하다. 주말에는 영화도 보고 음식도 만들어 먹고 보드 게임도 하며 되도록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 자신이 여러 직업을 거쳐 꿈을 이룬 만큼, 아이들을 키우는 철학도 남다를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일이나 직업이 중요하다. 자신이 잘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일찍 찾는 사람도 있지만 중년이 돼서도 자기 길을 모르고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또 사회생활 하다 보니 스펙보다 사회성, 인성이 중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그래서 착하고 성실하고 사회성 있는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한다. 공부 면에서는 다른 엄마들보다 좀 더 관대한 것 같다(웃음).”
▼ 뒤늦게 사업을 하고자 하는 이들, 또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꿈의 크기, 믿음의 크기가 당신의 크기라는 것이다. 모든 일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스스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 어떤 난관에 부닥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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