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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밀착 취재

박태환의 교생실습 동행 취재기

마린보이 교단에 서다

글·구희언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2011. 10. 21

‘마린보이’ 박태환은 차려입은 모습보다 벗은 모습이 익숙하고, 땅 위에 서 있을 때보다 물에 젖은 상태가 친근하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에 나타났다. 학생이 아닌 선생님으로. 교생실습 3주차에 접어든 초보 선생님의 체육 수업.

박태환의 교생실습 동행 취재기


단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4학년인 박태환(22)은 9월5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단국공업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고 있다. 교생실습은 대학 졸업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과목. 그는 대학 입학 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두 차례의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렀다. 그러다 보니 수업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지만 대학 측의 배려로 체육특기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졸업 학점을 착실히 채워 나갔다. 애초 4~5월경 교생실습이 예정돼 있었으나 7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11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훈련 때문에 9월로 미뤄졌다. 그 때문에 이번에 그는 단국공고에 부임한 나홀로 교생이 됐다.
1학년 5반 부담임을 맡은 그는 매일 오전 8시경 학교에 나와 1~4교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2012년 런던올림픽 대비를 위한 훈련에 참가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9월16일 오전 10시40분부터 11시30분까지 단국공고 체육관에서 진행된 수업에는 취재진만큼이나 많은 학생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렸다. 이날 수업은 1학년 4반 체육 시간을 이용해 이론과 실기를 병행한 공개수업 형태로 진행됐다.

한 명씩 질문하고 아이컨택 하는 초보 선생님
“와~ 안녕하세요~!”

박태환의 교생실습 동행 취재기


차에서 박태환이 내리자 운동장 스탠드와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괴성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왔다. 이날 박태환은 하얀 셔츠에 말쑥한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손에는 자료를 한가득 들었다. 그가 체육관 내 강의실에 들어서자 반장이 벌떡 일어났다.
“차렷, 박태환 선생님께 경례!”
남학생 30여 명의 인사를 받으며 박태환은 “잘 있었어? 출석체크 먼저 할게”라는 말로 화답했다. 그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학생들은 굵은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다. 그의 뒤엔 하얀 화면에 ‘수영 지도법’이라고 적힌 PPT가 떠 있었다. 출석 체크를 마치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수영 잘하는 사람?”
교실이 조용하다.
“다 못해?(웃음) 선생님이 나눠준 프린트에서 ‘수영의 역사’ 부분을 펴봐.”
수업 분위기는 차분했다. 그는 경기에 임하기 전처럼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프린트를 손에서 놓지 않고 수업했다. 수영의 역사와 특성, 수영 시설 등에 대한 내용이 이어졌다. 선생님도 긴장했지만 학생들도 굳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실 뒤편에선 취재진의 자리 싸움이 한창이었다. 마린보이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취재 경쟁이었다. 학생들이 별다른 반응 없이 굳어 있자 그가 말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해. 카메라가 있으니까 신기해?”
학생들의 겸연쩍은 웃음소리와 함께 수업 분위기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여기 이 그림을 봐. 수영하고 있지. 과거의 수영은 현대 수영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몇몇 학생이 대답했다. “옷 입고 수영해요.” 박태환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옷을 입었다고? 지금은 뭔데?”
그의 웃음보를 터뜨린 한마디. “벗고 해요!” 그는 연방 “벗고 해? 수영을 벗고 한다고?”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평영 몰라? 왜 몰라~.” “수영 못해? 안 해봤어? 이제부터 좀 해(웃음).”
초보 교사 박태환의 특징은 학생과 눈맞춤을 하려고 노력하고, 한 학생을 콕 집어서 되묻는 방식으로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이었다. 다만 긴장해서인지 설명할 때 프린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는 교실 가운데로 난 복도를 오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학생들의 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프린트에 난 오타. 아이들이 “오타 났어요~”라고 카메라 앞에서 외쳐대는 통에 박태환은 “선생님 실수다, 미안해”라며 민망한 듯 웃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미친 수영’이라 소개
초보 선생님에게 이날만큼은 기록 경신에 대한 압박보다 두려운 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학생들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학생들의 1차원적 대답은 박태환도 웃게 했다. “다이빙이 뭘까?” “뛰어내리는 거요.” “그냥 뛰어내리는 거야?” “멋있게 뛰어내리는 거요.”
“수영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레크리에이션 수영은 너희가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을 말하고. 선생님이 하는 수영을 ‘미친 수영’이라고 하는데, 기록하고 경쟁하는 수영이야.”

박태환의 교생실습 동행 취재기


“경기 시작 전에 올라서는 발판은 선수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려고 거칠게 만들어놨어.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발바닥에 피가 나기도 해.”
선생님으로서 마린보이의 가장 큰 장점은 경기 경험을 투영시켜 일반인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전한다는 점이었다. “26℃의 물은 많이 차가울 것 같지만, 시합 때는 긴장해서인지 별로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데 연습할 때는 많이 추워” 같은 식이다.
영법에 대해 설명하다 “선생님, 평영도 하시느냐”는 질문에 박태환이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 시합 나가서 평영 하면 꼴찌해~ 선생님 꼴찌 하길 원해?”(웃음)
알다시피 그는 자유형 선수다. 이론 수업이 끝나갈 무렵 박태환이 말했다.
“여기 나온 걸 다 말로 설명해줄까, 아니면 선생님이 경기 뛴 영상을 볼래?”
학생들의 대답은 예상 가능했다. 그는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획득 당시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서 소리가 안 나왔지만 의연하게 대처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선생님이 몇 레인에 있을 것 같아”라거나 “노란 옷을 입은 선수는 지금은 은퇴한 선수야” “저 선수가 당시 은메달을 딴 선수인데, 약물 복용으로 메달을 박탈당했어”라는 식으로 부연 설명을 했다. 영상 속 마린보이가 막판 50m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그랜트 해켓, 우사마 멜룰리 등을 추월하자 교실 곳곳에서 “오오~” 하는 탄성이 나왔다. 5번 레인의 박태환이 1위로 들어오며 화면에 ‘1’과 ‘PARK’이 뜨자 다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에 흐뭇한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선생님 잘하지?” “예!!” “고맙다~(웃음).”

체육복 갈아입고 드리블과 패스 시범, 영락없는 체육 교사

박태환의 교생실습 동행 취재기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박태환이 미니 농구 게임 심판을 보고 있다.



다음은 농구 실기. 박태환은 하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 강당으로 나왔다. 정장 차림일 때보다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기준! 양팔 좌우로~.”
박태환과 학생들은 국민체조로 몸을 풀었다. 농구 실기 시간. 그는 드리블과 패스를 보여주더니 2명씩 짝을 지어 연습하도록 도왔다. 중간 중간 시계를 보며 수업 시간이 넘어가지 않도록 점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그는 학생들을 빨간 유니폼과 노란 유니폼 팀으로 나눠 간이 농구 게임을 시키고 본인은 심판을 봤다. 실기 수업 도중 그를 보러 다른 반 학생 40여 명이 체육관 2층과 1층 문 주변에 몰려들었다. 학생들은 농구공을 든 박태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개수업을 마친 그는 교내 식당에서 학생들과 점심을 먹은 뒤 훈련을 위해 태릉선수촌으로 향했다.
이날 공개수업에 참여한 전현우군(16)은 “박태환 선생님은 정말 착하고 잘 챙겨주셔서 존댓말만 할 뿐 친구 같았다”며 “학생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면 무섭게 해야 할 텐데 너무 착하셔서…”라는 말로 선생님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박태환의 수업을 참관한 체육교사 김원태씨(30)는 “수영장이 없어서 실기 대신 이론 수업을 진행했다”며 “박태환 선생님은 한 달 동안 1학년 5학급, 2학년 5학급 수업을 가르친다”고 했다. 선생님으로서 박태환의 단점은 뭘까. 그는 “주변 학교들도 그렇고 박태환 선생님이 워낙 인기가 많아 선생님부터 학생까지 그의 수업을 보려고 몰려드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라며 웃었다.
공개수업을 마친 박태환은 “첫 수업 때 학생들 반응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벽 보고 5분 말하기’가 참 힘들잖아요. 그것보다 더 힘들더라고요. 반응이 나은 여학생들이 있는 학교에 가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학생들과 소통하는 법을 알아가면서 재미도 많이 느끼고 있어요.”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선생님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알 것 같다”고 한 그는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오후에 훈련하다가도 아이들 생각이 나서 집중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내일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생각하곤 해요. ‘학교 선생님을 계속할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예요. 목표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어려운지 얘기 해주면 열심히 듣더라고요.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하루하루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감사해요. 처음에 부모님이 ‘선수 생활이 끝나면 교수를 하라’고 권하셨을 때 ‘내가 무슨 교수야?’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가르치는 것에서 보람을 느꼈어요. 어렵지만 꿈과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공부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해서 교수가 되는 걸 목표로 나아가보려고요. 실습이 끝나도 가끔 찾아와서 학생들을 격려해줄 생각이에요.”
교생실습을 마치면 박태환은 10월 중순경 호주 브리즈번으로 건너가 마이클 볼 코치와 함께 런던올림픽 대비 본격 훈련에 돌입한다. 이날 수업을 참관하며 세월이 지나고 ‘역사의 산증인’으로 교단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선생님 박태환의 모습을 자연스레 그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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