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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스타 특강 릴레이

충무로의 남자 박중훈 영원한 오락부장으로 살다

글·구희언 기자 사진·문형일 기자

2011. 07. 18

박중훈은 여운을 주는 배우다. ‘라디오 스타’의 최곤, ‘해운대’의 김휘와 ‘내 깡패 같은 애인’의 동철, ‘체포왕’의 황재성 등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스크린이 꺼진 뒤에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배우로 26년째 살아온 그는 조만간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충무로의 남자 박중훈 영원한 오락부장으로 살다

1966년생<br><b>데뷔</b> 1986년 영화 ‘깜보’<br><b>대표작</b>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내 깡패 같은 애인’ ‘체포왕’ 외 다수<br><b>연기철학</b> 배우 자신이 그 상황을 믿지 않으면 절대로 관객을 납득시킬 수 없다.



‘의식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 그가 말한 대로였다. 5월31일 서울 양천구 목동 SBS 13층에서 영화배우 박중훈(45)과 함께한 ‘스타 특강-아름다운 청춘에게’는 자유롭고 위트 넘치는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름을 걸고 TV쇼를 진행한 경력 때문인지 박중훈은 달변가였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해 배우 생활을 한 지 올해로 26년째. 41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광고는 2백여 편 정도를 찍었다. 그간 받은 상만 제27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50여 개나 된다. 그는 “저도 제 경력을 이야기하면서 깜짝 놀라고 있는 중”이라며 웃었다. 특강은 청중이 질문하면 그가 대답하는 방식으로 배우 박중훈뿐만 아니라 인간 박중훈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집에 가니 여동생이 팔이 모두 잘린 채 죽어 있고, 병원을 가다가 삼중 추돌사건이 나서 내리니 17년 전 헤어진 원수를 만나서 배를 찔린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영화에선 있습니다. 제가 세 아이의 아빠인데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을 연기할 때 잠자는 아이와 아내 목을 벨 생각을 하며 한 달 동안 고통스러웠습니다. 평생 한 번 쓰지도 않을 감정을 꺼내서 쓰는 사람이 배우입니다. 스스로 그 상황을 믿지 않으면 절대로 관객을 납득시킬 수 없어요.”
연기를 하며 각각의 캐릭터를 차별화하는 그만의 비법은 뭘까. 그는 “일기예보와 달리 연기는 이성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라며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상황을 충실히 믿는 자기 최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전성기인 1980~90년대에는 흡인력과 카리스마 있는 연기 방식이 인기였다. 그는 “2000년대 들어서며 송강호, 설경구와 같이 사실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가 사랑받게 되자 스스로의 연기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2000년대부터 저라는 배우에 대해 관객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굉장한 딜레마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관객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실적인 연기를 하자고 마음먹고 한 영화가 ‘라디오 스타’ ‘내 깡패 같은 애인’이었습니다.”
박중훈은 자신에게 배우로서의 소질이 있는지 알았을까. 그는 “처음 배우가 되겠다고 충무로에 나왔을 때는 하얀 벽으로 사방이 갇힌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 길이라고 믿고 걸었기에 길이 된 것”이라며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다음부터는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의 영화를 광신도처럼 좋아한다는 그는 자신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는 철저하게 ‘관객’ 박중훈이 된다. “제가 출연한 영화지만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두 번은 안 본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고.
수많은 영화를 찍은 그에게도 탐나는 작품이 있을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답은 간단합니다. ‘아저씨’”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어

충무로의 남자 박중훈 영원한 오락부장으로 살다

‘내 깡패 같은 애인’ (왼쪽) ‘라디오 스타’ (오른쪽)



“모든 배우에게는 적역이 있습니다. 더스틴 호프먼과 말론 브랜도가 모두 ‘대부’에 출연했지만, 관객은 말론 브랜도의 ‘대부’를 보길 원합니다. 관객은 박중훈의 ‘투캅스’를 보고 싶어 하고 원빈의 ‘아저씨’를 사랑합니다. 어떤 역할을 두고 배우가 똑같이 경쟁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날 특강에는 배우 지망생도 여럿 참여했다. 그들은 박중훈이 말하는 배우의 덕목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배우를 스포츠맨에 비유했다. 배우는 관객과, 선수는 관중과 만나기 때문에 백일하에 능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렇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지와 더불어 소질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최민수씨는 영화에서 보면 터프하고 멋있죠. 사람을 긴장시키는 좋은 매력이 있는데 직접 만나도 그래요. 연기는 배우 본인을 보고 싶어 하는 거라서 좋은 배우가 되려면 매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해요. 안성기 선배는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매너가 좋습니다. 불 같던 20대 때 제 이정표가 된 분이죠.”
오랜 시간 배우로 살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뭘까. 16년 전 대마초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 그는 진솔한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관객에게 환호받다가 버림받고 그러다 보면 성질도 나고, ‘나를 좋아하던 사람은 다 어디로 간 거야’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 영화계를 확 떠나는 ‘악수’를 두는데, 저는 그러지는 않았어요. 한자리에서 인내한 것이 오랜 시간 배우를 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조만간 영화감독으로 깜짝 데뷔할 예정이다. “마흔 언저리까지는 세상에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는 그는 “영화감독에게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에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충족될 때 메가폰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작가와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라며 “한 오만한 남자의 성공과 몰락”에 대한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이날 특강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조언을 바라는 팬도 많았다. 그는 “40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나이 드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며 말을 이었다.
“배우에게 주름은 훈장입니다. 그 인생을 살아내야만 얻을 수 있죠. 나이 드는 건 아주 근사해요. 보는 시각이 넓어지는 것은 큰 축복이죠. 보통 여성들은 40~50대에도 20대 여성을 라이벌로 보는데, 그건 박중훈이 현빈을 라이벌로 여기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먹어서도 삶을 풍요롭게 사는 느낌과 자신감이 있다면 절대로 10~20대가 따라올 수 없습니다.”
20대 때부터 그의 꿈은 오로지 ‘출세하는, 성공하는 배우’였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인디언 기우제’에 비유했다.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온다는 것 아닙니까.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드리기 때문이죠. 20대 때에는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습니다. 사냥의 묘미는 잡을 때가 아니라 쫓을 때 있다고들 하잖아요. 박중훈 정도면 만족하겠지가 아니라 계속해서 꿈꾸고 있습니다. 이제는 행복한 사람, 행복한 배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박중훈은 학창 시절 오락부장을 도맡았다. 70여 명의 학생이 자신에게 오락 시간을 준 것이 정말 행복했다는 그는 이제 사회에서 ‘배우’라는 오락부장을 하고 있다. 특강이 끝난 뒤 팬들의 요청으로 ‘라디오 스타’의 삽입곡 ‘비와 당신’을 불러 박수를 받은 그는 마지막으로 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천만 명이 제 영화를 보면 그들의 2천만 시간을 제게 위임해 준 겁니다. 저는 평생 만질 수 없는 시간을 위임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박중훈의 영화로 힘든 삶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릴 수 있다면 어마어마하게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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