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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진짜 사나이

양준혁이 梁神(양신)이라 불리는 이유

‘남자의 자격’으로 예능 신고식

글·김명희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KBS 제공

2011. 07. 15

주말, TV로 방영되는 야구 중계에서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양준혁. 그가 또 다른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찾았다.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을 통해서다. 예능감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32년 동안 단 한순간도 한눈팔지 않고 야구에만 매달렸고, 앞으로도 야구만 생각하겠다는 양준혁. 우직함으로 따지자면 그는 남자 중의 남자가 분명하다.

양준혁이 梁神(양신)이라 불리는 이유


프로야구 팬이라면 지난해 9월19일 양준혁(42)의 은퇴 경기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날 양준혁은 SK 에이스 김광현 투수를 상대로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김광현은 프로 데뷔 첫 무대에서 양준혁에게 홈런을 맞았던 투수. 하지만 이날 양준혁을 향해 야유를 보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92년 프로에 데뷔해 18시즌 동안 2천1백35경기 출장, 안타 2천3백18개, 홈런 3백51개, 타점 1천3백89점, 득점 1천2백99점, 사사구 1천3백80개, 3천8백79루타. 7개 부문 모두 최다 기록이다. 이렇게 양준혁은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세우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준 채 도도한 장강의 앞 물결처럼 물러났다.

가장 마음 통하는 이는 ‘태원이 형’
그라운드를 뒤로한 양준혁은 이후 방망이 대신 마이크를 잡고 야구 해설을 시작했다. 지난 4월부터는 KBS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을 통해 더 많은 팬들과 만나고 있다. 이전에도 ‘무릎팍도사’ ‘1박2일’ 등에 출연해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지만 당시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것이었다면, ‘남자의 자격’은 그 자신이 밥상을 차려야 하는 처지. 그래서 초반에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양준혁은 몰래카메라에 호되게 당하고도 웃어넘기고, 무인도 미션에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식탁을 차리는 등 순박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6월 중순 양준혁과 직접 만났다. 방송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큰 체구에 일단 압도당했다. 프로필에는 키 188cm, 몸무게 95kg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그 이상인 듯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를 알아본 팬들이 ‘와, 양신이다’ 하며 환호를 보냈는데 그때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양준혁은 수줍은 아가씨처럼 얼굴을 붉혔다.

▼ ‘남자의 자격’ 합류 후 반응이 뜨겁습니다. 출연하게 된 과정부터 말씀해주세요.
“헤헤헤, 글쎄요. 그냥 해보는 거죠. 제작진이 ‘무릎팍도사’나 ‘1박2일’에 출연한 모습을 좋게 본 것 같습니다. 처음 제의를 받고 고민을 좀 했지만 무언가에 도전해 하나씩 이뤄나간다는 콘셉트가 좋아서 받아들였습니다.”
▼ 야구 홍보 차원에서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하던데요.
“지난해 프로야구 관중이 6백만 명이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마니아층은 형성됐지만 7백만 명을 넘어 1천만 관중 시대를 열려면 마니아만으로는 부족하고 여성 팬들이 많이 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처음부터 룰이 복잡한 야구에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으니까 제가 ‘남자의 자격’에 출연해 야구를 알리면 관중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 거죠.”
▼ 처음에는 야구 알리기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하다 보면 예능에 욕심이 생길 법도 한데요. 강호동씨를 롤 모델 삼아 예능인으로 성공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지금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저는 궁극적으로는 야구라는 틀 안에서 움직일 생각입니다. 지금 제가 강호동처럼 되겠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강호동은 십수 년 동안 산전수전 겪으며 노하우를 쌓아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건데, 제가 그 자리를 쉽게 넘볼 수 있겠습니까.”
▼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요.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공통점에 체격도 비슷한데.
“아, 아닙니다. 입담이나 순발력, 모든 면에서 강호동을 따라갈 순 없죠.”

양준혁이 梁神(양신)이라 불리는 이유

1 지난해 9월 은퇴 경기 후 카퍼레이드를 하는 양준혁. 2 그는 전현무와 함께 ‘남자의 자격’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 ‘남자의 자격’ 멤버들은 어떤가요. 전현무씨는 다들 너무 착해서 자신이 ‘한 번 흔들어놓겠다’고 말하던데.
“그 말이 맞아요. 정말 너무 착합니다. 그래서 현무가 잘 들어왔어요.”
▼ 최근 9박10일간 호주에 다녀왔죠? 그 얘기도 궁금합니다.
“저희가 갔던 곳이 서호주인데요, 사막도 있고 협곡도 있고 밀림도 있고 아주 희한해요. 도시 하나만 지나면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올 법한 미지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그곳에서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3000km를 달리며 다큐멘터리를 찍었죠. 뭐, 좋았습니다. 태원이 형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 두 분 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함께 있으면 얘기는 누가 하나요?
“모르시는 말씀. 태원이 형 말 잘합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예능 2년 하더니 달변가가 됐습니다. 그리고 태원이 형과 제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군중 속 고독,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데, 형이나 저나 그런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분야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도 비슷합니다. 예능이 종착점이 아니라 형은 예능을 통해서 음악을, 저는 야구를 알리고자 하는 거니까요. 가끔은 둘이 생각이 똑같아서 깜짝깜짝 놀랍니다.”
▼ 예능이라 아무래도 웃겨야 하는 부담이 있죠?
“그런 부담은 덜합니다. 웃음을 기대했다면 개그맨을 뽑지, 저를 뽑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작진이 제게 기대한 것은 진솔한 모습으로 미션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남자의 자격’을 통해 꼭 해보고 싶은 미션이 있다면.
“야구죠. 관람하는 거 말고 직접 경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1박2일’ 팀과 한 판 붙어보면 어떨까 합니다(웃음).”

1루까지 전력질주 하는 삶, 양준혁은 피곤하다
대구 남도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양준혁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글세를 전전하면서도, 비가 새는 단칸방에 살면서도 야구를 향한 꿈을 놓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프로야구 시대가 열렸고 잘만 하면 집 한 칸 마련해 부모님을 편하게 모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이를 악물고 야구를 했다. 현역 시절, 땅볼을 치고도 1루를 향해 전력질주 하는 그를 향해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열심히 뛰나요?” 그는 답했다. “제게 야구는 생존입니다.”
양준혁은 매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4~5개 되는 타격 폼을 개발해 정규 시즌 중 가장 맞는 걸 적용했다. 꾸준히 사랑받는 명품도 매 시즌 신상품을 내놓는 것처럼 늘 연구하고 노력해야 발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역 시절 그는 이종범, 이승엽이라는 걸출한 스타에 가려 늘 2인자였다. MVP, 홈런상 등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은 신기하리만큼 아슬아슬하게 그의 손을 비껴갔다. 그렇게 18년 동안 묵묵히, 그러나 꾸준히 조연 노릇을 하다 보니 그는 어느새 최다 홈런·안타·사사구 기록을 갖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를 ‘양신(梁神)’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어릴 때부터 승부에 대해 남다른 욕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야구를 통해 집안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결핍이 만들어낸 근성 같은 거죠.”

양준혁이 梁神(양신)이라 불리는 이유


▼ 양준혁 선수 스스로 자신은 2인자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어떤 때는 실력이 돼도 운이 없어서 상을 놓쳤고, 어떤 때는 정말 아쉽게 상을 못 받았습니다. 그 당시 1인자가 못 됐던 심경은?
“실력이 월등했다면 MVP를 받았겠죠.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많이 서러웠습니다. 2등 정도면 만족할 만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기분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릅니다. 올림픽대회 시상식에서도 동메달 딴 사람은 웃지만 은메달 딴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입니다.”
▼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1인자가 됐습니다. 질긴 사람이 이긴다는 걸 직접 보여준 거죠. 그래도 1등 한 번 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1인자가 되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고, 마지막엔 1등이 됐으니까 제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
▼ 양준혁 선수 이미지는 전력질주입니다. 사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슬렁슬렁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했을 텐데.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뛰었나요.
“사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거든요. 야구 선수가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합니까. 남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저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 그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 것, 힘들지 않나요.
“아, 내 삶은 피곤합니다. 많이 피곤하고요(양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어떻게 보면 ‘그냥 뉴욕 가서 코치 연수 받고 돌아와 정해진 순서대로 살면 될 텐데 왜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사는 건 또 제 스타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옛날에 야구 좀 했다고 그것으로 평생 먹고사는 데 만족할 수는 없잖아요. 이제 저도 그라운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니 또다시 전력질주를 해야죠. 물론 팬들이 양신이라는 별명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하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에만 머물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그래도 지금은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 스트레스는 덜 받겠네요.
“맞습니다, 저는 야구를 즐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긴장하면서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은퇴하고 얼마간은 우울하고 외롭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편합니다.”

야구 꿈나무·전복 키우며 새로운 꿈에 도전
‘남자의 자격’을 통해 예능에 데뷔하긴 했지만 양준혁의 삶은 아직 야구라는 큰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청소년야구대회를 열었고, 올 5월 말에는 양준혁 야구재단을 설립해 야구 꿈나무 양성을 시작했다. 그는 학업 중심의 교육을 받고 자라는 우리 청소년들이 야구를 통해 건강을 지키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청소년 야구 캠프, 우수 선수 장학금, 자선 경기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가 키우는 것은 야구 꿈나무뿐이 아니다. 그는 5년 전부터 재테크 일환으로 포항 구룡포에 야구장만 한 바다를 방파제로 막아 전복 양식을 시작했다. 방송도, 해설도 없는 날엔 포항에 내려가 전복들이 무럭무럭 크는 걸 지켜본다. 그의 마지막 꿈은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야구를 통해 되돌려주는 것. 꾸준한 노력으로 야구 신기원을 이룬 그는 또 다른 꿈을 향해 신발끈을 조여 맸다.

양준혁이 梁神(양신)이라 불리는 이유


▼ 야구 재단은 어떤 취지로 설립한 건가요.
“우리나라 청소년들 너무 공부만 하는 것 같아서 저는 야구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 야구와 인생이 어떤 점에서 비슷한가요.
“야구에는 룰이 있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하고,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하며, 자기를 희생해서 동료를 진루시키는 희생번트도 있습니다. 또 위기를 맞기도 하고, 그걸 해결하는 과정도 있고, 선후배간의 예절도 있어야 합니다. 야구가 국기처럼 돼 있는 일본에서는 아이들에게 기술뿐 아니라 경기 전 인사하고 경기 후 자기가 썼던 땅을 정리하는 것 같은 기본 예절을 아주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지난 3월 일본에서 대지진이 났을 때 국민들이 질서정연하게 대응했던 데는 그런 교육의 영향도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또 야구를 하면 정신이 맑아져서 공부도 더 잘한다고 합니다(웃음). 저는 야구 재단을 통해 박찬호 이승엽 같은 선수도 키우겠지만, 평범한 학생들이 야구를 통해 사회에 더 잘 적응하는 법을 익히도록 돕고 싶습니다.”
▼ 인생을 야구에 비유했을 때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홈런은 무엇인가요?
“저는 인생에서 홈런을 친 적이 없습니다. MVP도 못했고, 홈런왕도 못 받았고….”
▼ 그럼 앞으로는 어떤 홈런을 치고 싶나요.
“홈런을 쳐야만 점수를 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홈런은 기껏해야 1년에 20개를 치면 많이 치는 건데, 안타는 1백50개도 칠 수 있습니다. 홈런을 치면 신문 1면에 나가고 주목받고 좋긴 하지만 결국은 안타를 많이 치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저는 꾸준히 안타를 칠 생각으로 욕심내지 않고 매사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 그렇게 살면 실패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인생에서 병살타라고 할 만한 실패는 없었나요?
“글쎄요, 있겠죠. 분명히 있죠. 많습니다.”
▼ 의외입니다. 실패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세요.
“많은데 말은 못하겠습니다. 치부를 드러내야 하니까. 안 좋은 건 감춰야 합니다(웃음).”
▼ 이제는 여유가 많은 만큼 결혼도 진지하게 생각해야죠?
“때 되면 할 겁니다, 하겠지요 뭐(웃음).”
▼ 운동선수는 미인과 결혼하던데.
“남자들은 누구나 미인 좋아하잖아요(웃음). 저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마흔 넘어서까지 결혼을 안 한 건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결혼을 할 때 그게 전제가 돼야 합니다. 얽매이는 건 싫습니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야구 학교를 세우고 싶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키운 학생들이 그대로 중학교 가고, 고등학교 올라가 좋은 야구 선수가 되는.”
▼ 현실적으로 걸리는 문제도 있고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쉬운 걸 꿈꾸는 건 이미 꿈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꿈입니까. 돈 주고 사면 되지. 당장은 힘들더라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그게 진짜 꿈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일을 찾아 도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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