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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Letter from Beijing | 한석준의 유학 에세이

고전문학 조기교육이 중국의 저력

5~6세 유아도 당시(唐詩) 1백 수는 거뜬!

글&사진·한석준

2011. 07. 08

고전문학 조기교육이 중국의 저력

중국 베이징 대형 서점 ‘왕푸징’ 모습과 유아 및 어린이용 교재들.



베이징에 머물면서 실감하는 것이 중국의 교육열이다. 영어나 수학 조기교육은 기본이고, 유치원 수준의 아이들까지 당시(唐詩)와 같은 중국 고전문학을 배우는 모습에 입이 벌어졌다. 중국 아이들은 그냥 시를 읽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모조리 암송을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두보나 소식, 이백 등이 지은 시의 첫 소절을 들려주면 그 다음 구절을 녹음기처럼 술술 읊는다.
중국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당시 3백 수’를 의무적으로 외워야 한다. 그래서 서점의 초등학생 코너에는 이와 관련된 책은 물론이고 테이프, CD, DVD가 엄청나게 많다. 유아를 위한 당시 1백 수 교재도 있다. 나는 기왕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으니 한시까지 배워보자는 생각에 ‘5~6세용 당시 1백 수’ DVD를 구입했다. 처음엔 3백 수에 욕심이 났지만 자신이 없어 유아용을 구입했는데, DVD를 보고 나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수준에는 5~6세용이 딱 맞았다. 그 덕분에 매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열심히 당시를 외우고 있다.
DVD의 구성은 이렇다. 우선 시를 아주 천천히 정확한 발음으로 한 번 읽어준다. 그리고 다시 한 소절 한 소절씩 풀어서 설명하고, 다시 한 번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준다. 이 모든 과정엔 시의 내용을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이 곁들여져 있다.

온 국민이 대화나 글에서 자연스럽게 시를 인용
이런 교육을 통해 중국 아이들은 유아기에 당시 1백 수, 초등학교에서 3백 수를 그 내용과 앞뒤 상황까지 파악하며 외운다.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공부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대화하거나 글을 쓸 때도 자연스럽게 시구가 나온다.
정부 관리들은 브리핑이나 인터뷰에서 자주 당시를 인용한다. 중국의 외교부 관리가 한국의 남북관계에 대해 ‘본시동근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동생 조식을 죽이려 할 때 조식이 지은 칠보시(七步詩 : 일곱 걸음 만에 지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중 ‘본시동근생 상전하태급(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 :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어찌 서로 그리도 들볶는가)’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고등교육을 받은 외교부의 고위 관리가 이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 자체는 특별할 게 없다. 내가 정말 놀란 대목은 TV나 신문 등 대중매체들이 이 구절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인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누구나 그 구절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를 이와 같이 표현한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다섯 글자로 온 국민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중국인의 문화적 저력에 감탄했다. 이 모든 것이 선조들의 지혜를 공부한 덕분이다. 이런 중국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역시 선조들로부터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이를 계승, 발전시켜 현대 사회에 맞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이 우리 젊은 엄마들의 교육열이면 좋겠다.

고전문학 조기교육이 중국의 저력


한석준 아나운서는… 2003년 KBS에 입사. ‘우리말 겨루기’‘연예가중계’‘생생 정보통’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007년 연예대상 MC부문 남자신인상을 받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당시 현지 경기 중계를 하며 중국에 관심을 가진 후 기회를 엿보다 올 2월 중국 칭화대로 연수를 떠났다. 직장인에서 학생으로 돌아간 그는 중국에서의 유학생활 중 느낀 점을 매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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