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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여기자 복싱 입문기

4전5기 영원한 챔프 홍수환에게 배우다

체력 강화, 다이어트, 스트레스 해소까지… 1석3조 복싱

글·김민지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5. 17

3월, 배우 이시영의 전국 아마추어 복싱대회 챔피언 등극은 단연 화제였다. 사각의 링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는 복싱의 진가를 제대로 알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남녀 불문 복싱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기자도 이시영을 가르친 홍수환 스타복싱 체육관 관장의 지도를 받아 복싱의 세계를 체험했다.

4전5기 영원한 챔프 홍수환에게 배우다


4전5기 영원한 챔프 홍수환에게 배우다


1ROUND ‘타고난 복서’ 이시영과 챔프 홍수환의 만남
여배우와 복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배우 이시영(29)은 3월 제7회 전국여자신인아마추어 복싱선수권대회 48kg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벌써 세 번째 우승이다. 지난해 11월 KBI 전국 생활체육 복싱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올 2월 제47회 서울 신인 아마추어 복싱전 우승까지 합해 3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제 배우이자 복서라 불리는 이시영 덕분에 국내 복싱계도 오랜만에 웃고 있다. 복싱 침체기가 계속되면서 스타 선수가 없던 시점에 그의 아마추어 복서 데뷔 성공기는 대중들에게 다시금 복싱 열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시영이 복싱을 배우게 된 건 여타 여배우들과 비슷한 계기였다. 한 TV 단막극에서 복서 역을 맡기로 해 그동안 지나다니다 눈여겨본 체육관을 찾았다. 지난해 6월 초였다.
“난 처음에 누군지도 몰랐어요. 코치가 와서 ‘누군지 정말 모르세요?’ 하고 다시 묻더라고. 탤런트라고 하는데, 그냥 한두 번 흥미로 들락날락하다 말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더라고.”
신예 챔피언 이시영 뒤엔 70년대 한국 복싱계를 대표하는 4전5기의 챔피언 홍수환 관장(61)이 있었다. 이제 그의 눈엔 “이시영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배우이자 수제자”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홍 관장은 이시영이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복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타고난 녀석”이라고 답했다.
“여자치고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지만 ‘설마 제대로 배우겠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드라마 출연이 무산되고도 계속 체육관에 나오는 거예요. ‘왜 자꾸 나오냐’고 물으니까 기왕 이렇게 시작한 거 생활체육 복싱대회에 출전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어요. ‘어디 해봐라.’ 그리고 두 달 준비하고 나간 대회에서 판정승으로 졌어요. ‘왜 졌을까’ 궁금해서 진 이유를 찾아보니까, 시영이가 질 만한 게임이 아닌데 억울하게 졌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지난해 11월에 다시 도전해 첫 챔피언이 됐죠. 그때 내가 말했어요. ‘이것 봐라, 전엔 네가 질 게임이 아닌데 심판들이 잘못한 거야’ 하니까 시영이가 웃으며 말합디다. ‘만약 첫 대회에서 지지 않았다면 오늘 절대로 못 이겼어요. 첫 대회의 실패로 오기가 생겨서 복싱을 더 열심히 한 거예요’라고요. 이렇게 시영이는 복서로서 꼭 필요한 근성이 있었어요.”
지고는 못 사는 성격. 이것만으로도 이시영이 복서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홍 관장은 말한다. 여기에 그의 조언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는 이시영의 성실한 태도는 챔피언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복싱은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운동이에요. 아마추어 여자 선수의 경우 2분짜리 4라운드를 뛰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복싱 기본기를 익히는 것만큼 체력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시영이는 군소리 없이 해냈죠.”
홍 관장은 타고난 승리욕과 성실한 체력 관리, 시합에 대한 집중력까지 갖춘 이시영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복싱계가 ‘이시영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체육관 외에도 전국적으로 “복싱을 배우고 싶어하는 여성 회원 수가 부쩍 늘었다”며 “내가 17년 강연 다니면서 복싱 전도한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2ROUND 홍 관장의 코칭 “3개월만 버텨봐”

4전5기 영원한 챔프 홍수환에게 배우다

홍수환 관장은 이시영에 대해 “집중력, 체력, 승리욕 등 복서의 3박자를 갖췄다”고 극찬했다.





홍 관장은 강연이 없는 날이면 체육관을 들른다. 인터뷰 당일도 마찬가지였다. 체육관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에 맞춰 도착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회원들도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여자 회원이 확실히 많았다.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이틀 전부터 다녔다는 여대생이었다. 홍 관장은 초보 회원임을 눈치채고 복싱 입문자에게 필요한 조언을 건넸다.
“아니, 줄넘기는 조금 무거운 걸로 골라야지. 그렇지. 처음엔 힘드니까 그냥 가볍게 점프만 하라고.”
여대생이 홍 관장의 얘기대로 줄을 넘는 순간 벽 한쪽에 붙은 공(Gong)이 ‘땡!’하고 울렸다. 홍 관장의 체육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체육관은 각 라운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운동한다. 3분 뛰고, 30초 쉬고. 변하지 않는 복싱의 룰이다.
“세상에서 복싱만큼 좋은 운동이 없어요. 장비 때문에 돈이 드나, 배우는 게 어렵나. 맨몸으로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복싱이란 말이죠. 복싱의 기본 스텝은 계속 뛰는 것이기 때문에 유산소 운동인 데다 상체를 휘두르는 펀치 동작은 근력 운동인 무산소 운동과 연결돼 단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전신 운동이죠.”
이렇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이용해 운동하다 보니 체지방이 쉽게 연소된다. 뱃살, 옆구리 살, 종아리 살 등 안 빠지는 부위가 없다. 자연히 심폐 기능도 좋아진다. 홍 관장은 샌드백을 툭툭 치면서 말을 이어갔다.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다 보면 펀치의 진동을 느낄 수 있어요. 순간적인 힘을 모아 ‘쾅’하고 치면 온몸에 떨림이 오죠. 그 떨림이 몸의 혈액 순환을 도와 심장을 튼튼하게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왕년의 챔프 홍 관장이 “복싱의 효과는 직접 느껴보는 게 최고”라며 지도에 나섰다. 간편한 운동복 차림에 운동화로 갈아신으니 홍 관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오케이! 준비운동 시작”을 외쳤다.
초보자는 곧바로 복싱 동작부터 배우는 게 아니다. 체력 관리의 기본이 되는 준비운동부터 시작한다. 먼저 간단한 스트레칭인 발목 풀기, 무릎 운동, 허리·팔·목 돌리기 등을 하고 달리기나 줄넘기로 몸을 푼다. 이때 소요되는 시간은 약 30분 정도. 하지만 초보자일수록 기초 체력을 만들기 위해 1시간 내외로 몸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스트레칭만으로도 구슬땀이 흘렀다. 어느 정도 상기된 모습을 본 홍 관장은 드디어 복싱의 필수 동작인 스텝을 알려주겠다고 다가섰다. 어깨 너비만큼 다리를 벌리고 무릎은 약간 구부린 채 양손을 허리에 놓거나 가슴 쪽으로 잡아당겨 살짝 뛰는 동작이었다. 홍 관장은 “‘복싱은 주먹이 아니라 발로 한다’는 말이 있다”며 스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텝이 돼야 공격도 할 수 있고 방어도 할 수 있어요. 스텝이 중심이 되는 만큼 복싱은 하체 운동이에요. 어떤 공격에도 하체가 쓰러지지 않아야 하거든. 나는 74년 멕시코 선수 알폰소 자모라한테 두 번 지고 나서 하체 힘을 키우려고 2m 넘는 통나무를 사다놓고 그 앞에 서서 매일 오른손, 왼손 2백 번씩 도끼질을 했다니까요. 그래서 카라스키야한테 네 번 쓰러지고도 이긴 거 아니겠어요?”
홍 관장은 77년 남미 파나마 헥토르 카라스키야 선수와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자리를 두고 벌인 경기를 일생일대의 빅 매치로 기억했다. 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놀드 테일러 선수를 판정승으로 이겨 WBA 밴텀급 챔피언이 된 그는 알폰소 자모라에게 연이어 두 번이나 진 후 카라스키야와 맞붙었다. 당시 11전 11KO승인 카라스키야는 그보다 열 살 어린 선수였다. 누구도 홍수환이 이길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경기할 땐 워낙 정신이 없어서 내가 그렇게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다시 일어났는지도 몰랐어요. 강도 높은 하체 훈련의 힘이었죠. 그리고 또 하나 잽과 원투스트레이트가 비장의 무기였죠.”
복싱의 기본 동작만으로 세계를 제패했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홍 관장은 체육관 벽 한가운데 붙어 있는 ‘왼손으로 세계를 제패하자’는 문구를 가리키며 잽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잽은 오른손잡이일 경우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가볍게 쭉 뻗는 동작을 말해요. 이렇게 앞손인 왼손으로 잽을 자주 해야 뒷손인 오른손이 펀치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거죠. 이걸 연속해서 하는 게 원투스트레이트예요. 자, 해봅시다. 잽, 잽, 원투!”

4전5기 영원한 챔프 홍수환에게 배우다


원투스트레이트의 기본 자세는 왼쪽 발이 앞으로 나간 상태에서 오른쪽 발이 뒤로 빠진다. 그렇게 비스듬한 11자 모양을 만들고 왼쪽 무릎을 약간 굽혀 체중을 싣는다. 이 상태에서 스텝 동작대로 몸을 흔들며 왼손으로 잽을 날린다. 라이트 스트레이트는 어깨와 골반이 왼쪽으로 약간 틀어지면서 잽을 날린 자리로 주먹을 뻗는데 이때 왼발은 고정돼야 한다. 분명 쉬워 보였는데 막상 따라 하니 어려웠다. 힘 없이 축 늘어진 팔 동작은 어설픈 태권도 같고, 주춤대는 발동작은 막춤이 따로 없었다. 이런 모습에 홍 관장은 “1주일만 거울 보고 꾸준히 따라 하면 다 할 수 있어”라고 허허 웃으며 말했다.
“강연하다 보면 내가 말하는 복싱의 매력에 빠져서 배우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는데, 다들 3개월이 고비인가 봐요. 그 기간을 못 넘기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복싱 기본 동작 배우고 샌드백도 쳐보고 그러다 링 위에서 스파링도 해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최소 3개월이 필요하거든요.”

3ROUND “사는 게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글러브를 껴라”
홍 관장이 복싱 입문자인 기자에겐 가당치 않지만 “특별히 오늘 링 위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며 링으로 끌어들였다. 왕년 챔프의 특별 배려로 처음 오른 사각의 링은 유난히 넓어 보였다. 둘 다 글러브를 꼈지만 현저한 실력 차 때문에 스파링 대신 홍 관장의 호령소리에 맞춰 이날 배운 잽, 원투스트레이트, 훅과 어퍼컷을 신나게 날렸다.
“거 봐요. 이렇게 복싱을 하면서 잽과 펀치를 날리면 스트레스가 확 사라진다니까. 요즘 직장 여성분들도 많이 와서 배우는데 이렇게 샌드백을 치거나 스파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더라고요.”
체육관의 최연소 회원은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이다. 복싱은 거칠고 부상의 우려가 많은 운동으로 여기나 이렇게 생활체육으로 즐기는 복싱은 크게 위험할 일이 없다. 연습용 헤드기어나 마우스피스, 글러브, 가슴보호대 등 보호 장비도 늘 상비돼 있다. 오히려 어렸을 때 복싱을 배우면 뛰고, 뻗는 동작을 하면서 성장 발육에 도움이 된다.
홍 관장은 “이제라도 대중에게 관심 받는 복싱이 돼서 행복하다”고 했다. 생활체육으로 모두가 즐기는 복싱이 되다 보면 언젠가 프로 복싱도 예전의 인기를 회복할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벌써 세계 챔피언이 다섯 명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 명도 없어요. 비인기 스포츠가 돼버린 게 너무 안타까워요. 주변에서 복싱을 되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고 호응도 해줘야 하는데, 프로 복싱계의 문제도 심각하고 상황이 안 좋네요. 일단 시영이를 기점으로 이렇게 대중들이 복싱을 일상 속에서 접하기라도 한다면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을 10라운드라고 놓고 봤을 때 자신은 이제 5라운드에 돌입했다는 홍 관장.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서 매 라운드를 견뎌내다 보면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강연할 때마다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해요. 엄마 배 속에서 열 달 동안 사랑받다 태어났는데 왜 사는 게 힘들다며 포기하느냐고요. 그렇게 힘들면 복싱을 해보세요. 복싱은 자신을 단련시키고, 자신을 극복하게 만드는 운동이에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상대와 맞붙어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복싱 속에 인생의 답이 있어요.”

복싱 기초, 이렇게 따라 하라

1 복싱 용어
라운드 경기의 한 회를 지칭하는 말. 1라운드의 경우 프로는 3분, 아마추어는 2분간 진행한다.
스파링 글러브를 끼고 실제 경기와 동일하게 상대와 3분씩 끊어서 하는 연습 경기.
펀치 타격. 기본적으로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스윙 4종이 있다.
섀도 복싱 가상의 상대를 그리며 공격, 방어 등 여러 기술을 혼자 연습하는 것.

2 복싱 준비물 & 체육관 이용료
편한 트레이닝복, 운동화만 있으면 OK. 대부분 한 달 체육관 이용료는 10만원 내외. 글러브는 4만원대, 헤드기어는 5만~6만원대이나 보통 체육관에 구비돼 있다.

3 복싱 기본 동작
4전5기 영원한 챔프 홍수환에게 배우다

4 집에서 따라 하는 복싱 스트레칭 동작
복싱을 배울 때는 몸을 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집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10~15회 정도 이 동작을 반복한다.

4전5기 영원한 챔프 홍수환에게 배우다


의상협찬·아디다스(02-547-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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