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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상하이 특종기

‘덩신밍’ 여인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

한국 외교관의 ‘상하이 스캔들’

글·김지현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11. 04. 15

중국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영사들이 줄줄이 부도덕한 스캔들에 휘말렸다. 2명의 영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국내로 조기 소환됐고, 앞서 한 명은 임기가 끝난 뒤 귀국했지만 뒤늦게 감찰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모두 상하이를 떠나게 된 것은 중국 여성 덩신밍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부터다. 지난해 상하이에서 덩씨 여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놀라운 사건을 파헤쳤다.

‘덩신밍’ 여인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

최근 중국 국적의 여인 덩신밍씨가 2~3년 사이 상하이 주재 한국 영사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의혹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2011년 3월, 덩(鄧)씨 성을 지닌 중국 유부녀 한 명이 대한민국을 온통 뒤흔들었다. 단발 파마 머리에 큰 눈, 작은 체구의 이 여인은 한국 외교가 사상 초유의 스캔들을 일으킨 데 이어 국가기밀 유출 의혹까지 받고 있다. ‘상하이 스캔들’의 주인공 덩신밍씨(鄧新明·33) 이야기다.
이번 사건이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2011년 2월24일. 주중 상하이 한국총영사관에 파견 근무 중이던 법무부 출신 전 영사 H씨가 덩씨와 불륜 관계를 맺고 이중 비자를 발급해줬다 적발돼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 소식이 알려지던 날 밤 동아일보 편집국으로 충격적인 제보 한 통이 들어왔다. 덩씨가 H 전 영사뿐 아니라 상하이 영사관 소속 다른 영사들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료를 유출해왔다는 것. 거짓말 같던 이야기는 이후 약 2주에 걸친 기자의 취재 결과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상하이 영사들 줄줄이 스캔들에 휘말린 전말
지난해 11월 H 전 영사는 상하이 영사관에서 함께 근무하던 지식경제부 출신 K 전 상무관과 함께 국내로 소환됐다. 두 사람 모두 임기를 각각 9개월과 1년 9개월 넘게 남긴 상황이었다. 같은 영사관에서 2명의 영사가 조기 귀국을 당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 대체 지난해 상하이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는 ‘영사 2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현지 근무가 어려운 상태이니 조기 귀국을 희망한다’는 김정기 전 총영사의 다급한 공문을 한 부 받았다. 외교부에서 급히 현지 진상을 파악한 결과 두 영사 모두 유부녀인 덩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영사관 주요 자료를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비자 발급 업무를 맡고 있던 H 전 영사는 불륜 관계인 덩씨에게 ‘이중 비자’를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이미 비자를 갖고 있던 덩씨에게 관광 비자를 추가로 만들어줬던 것. 당시 덩씨와 영사들과의 불륜설은 이미 교민 사회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덩씨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한국행 비자를 불법으로 남발한다는 내용의 투서가 대사관에 접수되기까지 했다.
같은 시기 K 전 상무관은 덩씨를 H 전 영사에게 빼앗긴 뒤 복수를 위해 의도적으로 H 전 영사의 부인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도 받고 있었다. 해당 내용과 K 전 상무관의 사진을 담은 벽보 수십 장이 상하이 영사관 인근 한인 타운에 나붙었던 것. 당시 영사관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일일이 벽보를 떼어내야 했다.
두 영사 모두 영사관 차원의 기초 조사 당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총영사는 “개인적 해명에 관계없이 두 영사 모두 더 이상 상하이에 남아 있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각자 한국의 소속 부처로 복귀시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귀국으로 모두 마무리되길 바라던 총영사관의 기대와 달리 파장은 오히려 더 커졌다. 덩씨가 이 두 사람뿐 아니라 김 전 총영사를 비롯해 이들에 앞서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외교부 소속 P 전 영사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온 것으로 의심되며, 이 과정에서 영사관의 주요 자료까지 유출됐다는 제보가 올해 초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과 법무부 등으로 접수된 것이다.
덩씨의 한국인 남편 진모씨(37)가 부인의 금고와 컴퓨터 등을 뒤져 직접 찾아냈다는 자료에는 의혹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충분했다. H 전 영사와 덩씨가 동거하던 집 내부 사진을 비롯해 P 전 영사가 덩씨와 얼굴을 맞댄 채 서울 남산과 택시 안에서 친밀한 포즈로 찍은 사진도 있었다. K 전 상무관의 경우 “나는 다시는 덩씨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으로 6억원과 제 손가락 하나를 잘라 드리겠다”며 직접 자필로 작성하고 서명까지 한 각서가 발견됐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활동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원이던 현직 한나라당 의원들의 휴대전화번호 등 현 정권 주요 관계자 연락처 2백여 개와 영사관의 월별 비자 발급현황과 내부 연락망 등도 고스란히 덩씨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한국 영사들 휘어잡은 덩신밍은 대체 어떤 사람?
이 사건에 연루됐거나 덩씨를 알고 지내던 상하이 영사관 출신 영사들은 하나같이 덩씨가 정식 공무원은 아니나 실제 상하이시 정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덩씨가 상하이시 정부와 관련된 민원을 손쉽게 해결해줬다는 것.
K 전 상무관은 개인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덩씨를 처음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는 “발령 당시 내 이삿짐이 밀수품으로 오인된 일이 있었다”며 “영사관 차원에서도 해결이 안 돼 중국 수사당국의 조사까지 받을 뻔했는데 덩씨의 전화 한 통으로 극적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감사 인사차 시내 한 고급 음식점인 ‘시자오빈관(西郊賓館)’에서 덩씨를 처음 만났다.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앉아 있는데 한눈에도 ‘포스’가 느껴졌다는 게 그가 말하는 덩씨의 첫인상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상하이 엑스포가 열릴 때까지만 해도 민원을 해결해주고 친절을 베풀던 덩씨는 H 전 영사와의 관계가 영사관 내에 알려진 직후 그 유포자로 K 전 상무관을 지목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K 전 상무관은 “지난해 10월 초 덩씨가 차 유리창에 협박 쪽지를 꽂아 놨다”고 말했다.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의 쪽지에는 ‘똥 K**, 아들 2명 다 죽인다. 너네 부부 재수 없다. 18세기야(욕설)’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덩씨는 폭력배를 동원한 채 한 호텔 커피숍으로 그를 부른 뒤 각서를 쓰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했다는 것.
하지만 K 전 상무관과 함께 상하이에서 근무한 영사관 관계자는 “K 전 상무관이 덩씨에게 꾸준히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짝사랑한 것으로 소문이 났다”며 “업무상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은 K 전 영사가 덩씨에게 애정까지 느꼈던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 전했다.
K 전 상무관에게 덩씨를 처음 소개한 K 전 경찰영사는 “나도 2008년 이전 한 선배로부터 덩씨를 소개받아 알게 됐다”며 “덩씨가 소문처럼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사기꾼도 확실히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2009년 8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 현재 국내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 중이다. 그는 “처음에는 덩씨를 상하이 한국 교민사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 정도로 알고 지냈다”며 “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정체가 불분명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H 전 영사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우연히 덩씨를 만났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말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H 전 영사의 지인은 “가족들과 떨어져 상하이로 먼저 떠난 지 6개월 만에 공산당원 한 명과 친해졌다고 기뻐했다”며 “그 이후로 급격하게 사람이 변하기 시작해 도청을 당하고 있으니 전화를 하지 말라고도 했고, 12억원짜리 아파트를 6억원에 살 수 있게 됐다며 급히 돈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전했다.

‘덩신밍’ 여인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

덩신밍씨가 이중 비자를 신청할 때 자택주소로 기록한 밍두청 빌라는 한 채당 우리 돈 30억~50억원에 달해 상하이 최고급 빌라로 꼽힌다. 오른쪽은 2004년 덩씨가 임신했을 당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덩신밍’ 여인을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혹

덩신밍이 연루된 ‘상하이 스캔들’ 파문이 커지자 정부는 3월 중순 상하이로 합동조사단을 파견, 진상 조사에 나섰다.



P 전 영사는 이 사건과 연루된 다른 영사들보다 1년 이상 이른 2009년 8월 한국에 들어왔으나 뒤늦게 일어난 의혹으로 국무총리실 조사를 받고 있다. P 전 영사는 업무상 공항을 자주 출입하는 과정에서 덩씨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상 의전 등을 위해 공항에 자주 다녔다”며 “(덩씨는) 위에 있는 사람이니까 누가 오가는지 보고 관심이 가면 연락을 해오는 식으로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덩씨와의 불륜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덩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던 그는 인터뷰 도중 덩씨를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덩씨를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최고지도자의 손녀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한국 시집에서 본 덩씨, 의문투성이 행각
덩씨가 결혼 전부터 한국 영사관을 드나든 것은 아니었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그는 2001년 결혼을 앞두고 남편에게 자신을 ‘홍콩의 몰락한 사업가의 딸’로 소개했으며 중국 산둥(山東) 성 출신이라고 말했다. 덩씨는 진씨와 경기도 수원시에서 혼인신고를 했으며 결혼식은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올렸다.
2004년 딸을 낳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가정주부이던 덩씨가 변신을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덩씨는 당시 남편에게 “외삼촌이 상하이 당서기로 새로 부임했다”며 “앞으로 상하이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할 예정”이라고 말한 뒤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었다. 귀가가 자정까지 늦어졌고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늘었다.
수원에 살고 있는 덩씨의 시댁 사람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다. 덩씨 부부의 결혼식 당시 ‘부모 역할’을 해줬을 정도로 부부와 친하던 이모 박모씨(61)와 이모부 이모씨(67)는 “(덩씨가) 처음에는 외국인답지 않게 가족에게 싹싹하게 너무 잘했다”며 “그러다 3년 전부터는 아예 시댁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덩씨 부부는 2007년까지만 해도 1년에 두 번 설과 추석 때 이씨 집에 들르곤 했다.
이들의 기억에 따르면 덩씨는 여러 가지 이름을 쓰고 있었다. 이들은 “‘코코’, ‘신디’에서부터 덩신밍이라는 이름까지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쓰는 것 같았다”며 “사실 정확한 이름과 나이도 잘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직업도 올 때마다 바뀌었다. 진씨의 이종사촌 누나 이모씨(38)는 “상하이 부시장 비서가 됐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경찰복을 입고 와서 상하이 경찰 간부라는 소리도 하더라”고 전했고, 이모부는 “(덩씨가) 한국에 올 때마다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도 만나고 식사도 하고 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기억 속 덩씨는 한국에서도 휴대전화 3대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등 바쁜 모습이었다.
덩씨는 미혼이라고 말하기 위해 2004년 직접 낳은 딸을 입양아로 주변에 소개하기도 했다. 진씨의 이모는 “유산을 세 번 하고 낳은 아이라 이전에는 끔찍이도 아꼈다”며 “하지만 H 전 영사와 바람이 난 이후부터 우리에게 전화해 ‘아이를 버리겠다’고 말하는 등 변했다”고 전했다.
시댁 식구들은 덩씨가 국내 한 여대에서 유학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한국어는 조카(진씨)와 사귄 이후부터 배우기 시작했으며 결혼한 이후 한국어가 확 늘었다”며 “그전에 한국어를 공부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덩씨의 한국에서의 행각을 돌이켜보건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덩씨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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