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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버지와 아들

개그계 샛별 최효종이 말하는 ‘나의 아버지’

“꿈에 날개 달아준 아버지, 더 큰 성공으로 보답하고 싶어요”

글·이혜민 기자 사진·지호영 조영철 기자

2011. 03. 17

“네 생일엔 명품가방 달라더니 내 생일엔 십자수 주냐!” “아니 왜들 그래요? 사랑받지 않고 사는 사람들처럼”. KBS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최효종이 이런 멘트를 날릴 때면 객석에선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온다. 어릴 때부터 개그맨의 꿈을 키운 그에게 오늘의 행복이 있기까지는 아버지 최록진씨의 남다른 교육법이 있었다.

개그계 샛별 최효종이 말하는 ‘나의 아버지’


“어릴 때부터 개그맨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렇게 상을 받아 행복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유머집을 1백권 이상 사주면서 개그맨의 꿈을 키워주신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웃음).”
2010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데뷔 4년 만에 코미디 부문 신인상을 받은 최효종(25). KBS ‘개그콘서트’의 장수 코너 ‘봉숭아학당’에서 ‘행복전도사’로 활약하는 그가 수상소감을 통해 남다른 가정교육을 밝혀 화제다. 도대체 자식을 개그맨으로 성공시키는 가정교육의 비결은 뭘까? 직접 만나서 물어보기로 했다.
큰 상을 받은 직후였지만 최효종은 겸손했다. 1년 6개월간 많은 사랑을 받은 행복전도사란 타이틀을 버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해야 하는 신인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리라. 스트레스 탓에 몸도 좀 불었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개그맨이 되기 전까지 매일같이 가던 대학로에 다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새로운 개그 코너를 기획하고 연기하느라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는 그는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기 위해 드라마, 쇼 프로그램, 뉴스를 빠지지 않고 챙겨 보는 편이다. 그 덕분에 최효종은 최근 종영된 ‘개그콘서트’의 ‘최효종의 눈’ 코너에서 예리한 관찰력을 과시한 바 있다. MBC 프로그램 ‘놀러와’ 제목을 왜 반말로 지었나, SBS 드라마 ‘자이언트’는 왜 특정 야구단을 홍보하는가 등등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것들을 포착해 ‘진지하게’ 묻는 그의 개그는 의외의 웃음을 유발했다. 이런 식으로 기존 프로그램을 풍자한 최효종식 개그가 연일 화제였다. 다음은 ‘최효종의 눈’이 해부한 MBC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의 일부.
“안녕하세요. ‘최효종의 눈’ 최효종입니다. ‘무릎팍도사’에는 중간에 ‘액~션~!’이란 음악이 나와서 흐름을 끊는데요. 이거 왜 나오는 겁니까! 안 웃으면 네가 감이 없는 거다, 안 웃으면 네가 바보다, 뭐 그런 뜻입니까! (중략) ‘무릎팍도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말이죠. 스타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겁니다. 그런데요, 전혀 명쾌하게 고민을 해결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여운혁 PD-그래도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그럼 저도 무릎팍도사처럼 한번 해보겠습니다. 여운혁 PD! 고민 한번 말씀해주시죠. (여운혁 PD-저는 아들딸 잘 크고…) 네! 그럼 이렇게 해주는 식이죠! ‘여운혁 PD! 아들딸 고민 말고 본인이나 잘~해라~~! 팍! 팍!’ 고민이 또 뭐예요? (여운혁 PD-저… 시청률이 잘 나왔으면…) ‘여운혁 PD! 시청률 걱정하지 말고 웃음과 감동으로 승~부하라~~! 팍! 팍!’”
이 짧은 대사를 ‘치기’ 위해 순발력만 있으면 될 성싶지만 수차례 수정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한 편의 대본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최효종은 “관객을 웃길 때보다 대본을 완성한 뒤 더 기쁘다”고 말한다.
“완벽한 대본을 볼 때 가장 행복해요. 정작 무대에 서면 대본대로 말하느라 관객들을 살필 겨를이 없거든요. ‘이렇게 하면 좋을까’ ‘저렇게 하면 재미있겠지’ 하는 고민을 모두 끝내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확신 속에 대본을 프린트하면 정말 뿌듯하죠(웃음).”
최효종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대본에 목소리를 얹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말투는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약장수처럼 유난스럽지 않은 것이 장점. “능청맞으면서도 밉지 않게 이죽대는 장경동 목사의 말투를 흉내 냈을 뿐”이라고 겸손해하지만 ‘말재주’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개그맨 자질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나타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당시 유행하던 ‘세일러 문’ 분장을 하기도 하고, ‘허리케인 블루’가 돼 립싱크를 했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엄청 좋았죠. 담임선생님께서도 ‘효종이는 개그맨 해도 되겠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고요. 여기에서 힘을 얻었는지 어느 날 부모님께 ‘KBS 공채 개그맨 시험 붙어서 ‘개그콘서트’에 나가고 ‘해피투게더’ 진행을 맡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가 개그맨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친구들을 잘 웃기니까 이 일을 하면 성공하겠다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래서 “이왕에 하는 일이라면 잘하는 일을 택해서 성공하자” 싶었다.

개그계 샛별 최효종이 말하는 ‘나의 아버지’

최효종의 아버지 최록진씨는 아들에게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부모는 개그맨이 되겠다는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육법은 정반대였다. 어머니 민연옥씨(53)가 엄격하면서도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일종의 ‘방임형’이라면, 아버지 최록진씨(56)는 아들이 개그맨으로 성공할 때까지 온갖 뒷바라지를 한 ‘적극개입형’. 가족들의 식사도 아침은 어머니, 저녁은 아버지가 나누어 맡았다. 그러나 막상 교육법에 대해 묻자 최록진씨는 “특별한 게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아이들 엄마가 엄하다 보니 저는 자연스럽게 친구 같은 존재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한 교육을 시키기보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권하는 편이었죠. 혼내지도 않았어요. 괜히 사내 녀석들 기만 죽일 것 같았거든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카네기 인간관계론’ ‘대화의 법칙’ 등 화술 관련 책을 수시로 건넸다. 논리력을 쌓으라며 신문 사설을 스크랩해주기도 했다. 스무 살에 상경해 금은방 일을 해온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정성’뿐이었다.
“아버지가 늘 책을 사주셨는데 받기만 했지 사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지하철역 간이서점에서 아버지를 봤어요. 엄청 추운 날인데 검정 코트를 입은 아버지가 이 책 저 책 들춰 보면서 제게 줄 책을 열심히 고르고 계신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그 후로는 아버지가 주신 책을 더 소중하게 여겼는데 지금도 그 책들을 제 방에 고이 모셔놓았어요. 그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삼국지’예요. 출판사별로 ‘삼국지’를 모두 소장하고 있을 정도죠. 아버지가 주신 책의 내용이 모두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가끔 ‘벌(bee)이 ‘비’하고 날아간다’ ‘곰(bear)이 나무를 ‘베어’갔다’는 연상법이 떠오르는 걸 보면 그때 읽은 내용들이 지금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나봐요(웃음).”

매일 아침 유머 들려주고 ‘개콘’ 녹화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뒷바라지는 점점 구체화됐다. 매일 아침식사 자리에서 그날의 유머를 들려주었고, ‘개그콘서트’를 녹화해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도록 했다. 최효종은 그 녹화 테이프를 수차례 반복해 보면서 유머 코드를 찾았다. 때론 아버지가 PD가 돼 “개그를 따라 하기만 하지 말고 애드리브를 만들어보라”며 예행연습을 시켰다. 미래의 그가 서게 될 연예대상 시상식 현장을 녹화해주며 목표 의식을 심어준 적도 있다.
“효종이에게 롤모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고등학생이 되니까 서울시나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MC대회에서 상을 타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이런 아버지도 그가 일찌감치 개그맨이 되겠다며 고등학교를 그만두려 하자 결사반대했다. 어머니도 이때만큼은 ‘방임’을 접고 “사람들을 웃기려면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봐야 한다”며 아들을 설득했다. 부모의 간곡한 설득에 학교로 돌아갔지만 이후로도 효종은 종종 조퇴를 하고 대학로로 달려갔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아버지는 묵묵히 바라봐주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효종이 새벽에 일어나 목욕탕에 가는 취미가 생기자 아버지는 아들의 목욕탕 친구를 자처하며 몇 달간 이른 새벽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고, 2007년에는 꿈에 그리던 KBS 코미디언 공채 22기가 됐으니 아버지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부모님은 공채 개그맨 된 것이 사법고시 붙은 것보다 더 좋다고 하셨어요(웃음). 그리고 첫 방송에 나왔을 때 더 좋아하셨죠. 어느 날은 아버지가 갑자기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를 갖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참에 저는 새것을 장만하려고 제가 쓰던 휴대전화를 아버지께 드렸는데, 인터넷으로 ‘개그콘서트’ 다시보기를 해서 제가 나온 코너를 동영상으로 찍어두셨더라고요. 자식은 저밖에 모르는데 부모는 자나깨나 자식 생각만 하시니… 그 순간 울컥했죠.”



개그계 샛별 최효종이 말하는 ‘나의 아버지’


하지만 개그맨 공채 합격이 곧 개그맨으로서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았다. 아니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솔직히 최효종은 초기에 선배들로부터 ‘재능 없다’ ‘개성 없다’라는 평을 들으며 방송에 나갈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때마다 그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다 큰 아들에게 여전히 뽀뽀를 해주고, 뒷머리가 뻗치면 검지와 중지로 뻗친 머리를 감아 안으로 말아주며 늘 ‘아들 편’인 아버지.
“제 동기가 박성광·박지선·박영진·허경환이니까 얼마나 쟁쟁해요. 살아남으려면 개성이 있어야 했죠. 그런데 저는 목소리도 외모도 특별하지 않잖아요. 코너를 새로 만들어도 저를 불러주지 않으니까 안타까웠죠.”
최효종은 ‘뛰어난 관찰력’을 무기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소한 것까지 선배와 동료들에게 묻고, 때로는 그들에게 아이디어까지 제공하자 언제부턴가 그에 대한 평판이 달라졌다. 최효종은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에게 ‘너 정말 열심히 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보통 금요일에 각 코너를 검사하는데 제가 16주 연속으로 코너를 만든 적이 있어요. 주변에서는 ‘이제 좀 쉬라’고 했지만 저는 여전히 아쉬워서 계속 준비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안에서 맛깔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누구나 공감하는 얘기 속 시원히 말하자 웃음 터져
이런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쳐 최효종은 공채 2년 만에 ‘행복전도사’를 탄생시켰고, 그 여세를 몰아 ‘남성인권보장위원회(남보원)’ ‘최효종의 눈’ 등에서 활약했다. ‘남보원’ 진행 당시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 중이라 생생한 소재를 제공할 수 있었던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얘기를 듣고 “맞아, 저거 내 얘기인데”라며 웃을 수 있는 ‘공감 개그’를 추구했다.
“그냥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남보원’은 여자친구한테 서운한 것이 있지만 속 좁아 보일까봐 하지 못했던 말을 뽑아내는 것이 핵심이죠. ‘네 생일엔 명품가방 달라더니 내 생일엔 십자수 주냐’ 외치면서 삭힌 이야기를 시원스럽게 하니까 재밌는 거죠(웃음).”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코너를 같이 진행하던 동료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코너를 폐지할 때는 가슴을 쳤다. 또 ‘행복전도사’ 콘셉트로 ‘아니 표정들이 왜 그래요?’라는 유행어를 만들었지만 원조 행복전도사인 최윤희씨가 자살하자 캐릭터를 중단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그때마다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까 싶었다. 그럴수록 ‘이럴 때가 있으면 저럴 때도 있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정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공개했다.
“풍수지탄(風樹之嘆: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어버이를 여읜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란 말이 있잖아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 해드리고 싶어요. 물론 지금도 살갑게 굴지는 못해요. 말하다 보면 힘든 일을 알리게 되니까 되도록 말을 아끼죠. 그렇지만 아버지가 할머니께 그랬듯이 저도 효도하고 싶어요. 부모님이 많이 고생하셨거든요.”
그러나 무엇보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는 개그맨으로서 성공하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다.
“어릴 적 소망대로 ‘해피투게더’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죠. 사람들은 흔히 누가 누구를 잘 만나서 잘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인간성만 좋아도 안 되고 실력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죠. 둘 다 있어야죠.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해도 슬퍼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신에게 떳떳할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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