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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위대한 멘토

이은미의 냉정과 열정 사이

‘칼날 심사평’으로 화제 몰고 다니는

글·이혜민 기자 사진·현일수 기자, MBC 제공

2011. 03. 16

전 국민 애창곡 ‘애인 있어요’를 부른 22년 차 가수 이은미. 그에게 맨발은 곧 무대에 대한 열정을 의미한다. 그가 요즘 ‘칼날 심사평’으로 한국 가요계를 자극하고 있다.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무대가 얼마나 냉혹한 곳인지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은미의 냉정과 열정 사이


“감정 표현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본인이 자신 있게 선곡한 노래를 부르면서도 감정이 완벽하게 들어간 모습을(목소리를) 단 한 차례도 들을 수 없었다는 거예요. 소리를 한 번에 쭉 밀어올려야 하는데, 들었다가 (멈추고) 번쩍 들듯이 내요.”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이하 위대한 탄생)에서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22년 차 가수 이은미(45).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맨발의 디바’가 이번엔 그 열정을 가수 지망생들에게 쏟아붓고 있다. 그의 날 선 평이 시작되면 참가자들은 감전이라도 된 듯 꼼짝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린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은미는 자신의 생각을 단호하게 말하는 TV 속 모습 그대로였다. 일주일에 세 번, 적게는 10시간, 많게는 15시간씩 ‘위대한 탄생’을 녹화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예술에는 점수를 매길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이거든요. 그런데 이 일을 맡았으니 자괴감이 많이 들죠. 참가자들의 사연이 저마다 각별해서 그런지 간절함이 느껴져요. 그래서 행여 제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한 사람을 잘못 판단할까봐 심사하는 내내 집중해서 들어요. 선곡을 잘못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4, 5곡까지 불러보라고 권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오랜 시간 집중해서 듣다 보니 소리에 사람이 지치네요.”
‘위대한 탄생’의 목표는 오디션 참가자들의 경합이면서 동시에 심사위원들의 경쟁이다. 참가자들이 특정 심사위원의 지도를 받아 실력을 향상시킨 뒤 최종 우승을 겨루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심사위원의 멘토 능력이 평가되는 건 당연하다. 그에게 이런 일련의 과정이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구에게 가수 되라는 말 쉽게 못해”
“저는 애초부터 우승에 관심이 없었어요. 단기간에 트레이닝해서 1등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거든요. 다만 재능 있는 친구들이 첫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죠. 용기를 내 이 자리까지 온 참가자들에게 메시지 하나라도 제대로 전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바람입니다.”
예리한 심사평을 남긴 것은 이런 마음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다시금 그가 남긴 충고를 떠올려본다. “성대 근처에도 살이 찝니다. 체중을 줄이면 더 깨끗한 소리가 날 거예요.” “흐느끼듯 부르는 창법은 좋은 창법이 아니에요.” “지금처럼 목에 힘을 많이 주면 목에 무리가 가서 콘서트도 레코딩도 불가능해요.” “어깨를 올리고 부르는 바람에 목이 눌려서 (소리를 내는 바람에) 노래를 몰입해서 듣기 어려워요.” 얼핏 들으면 상대를 비난하는 것 같지만 곱씹어보면 그 안에 해결책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옌볜 출신 참가자 백청강에게 콧소리를 지적하자 “이은미는 유난히 콧소리에 민감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편집 과정에서 그 부분이 부각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한국말은 받침이 많기 때문에 가수가 복근을 사용해서 소리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상대에게 노래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 풍부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콧소리만 내면서 한쪽 주파수만 쓸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프로 뮤지션으로서 부연 설명을 잊지 않았다.
그가 야속하리만큼 콕 집어 심사를 하는 이유는 참가자들 대부분이 ‘제대로’ 듣지 못하는 까닭도 있다.
“가수는 노래를 잘하기에 앞서 귀가 좋아야 해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노래방 에코장치에 익숙해지고 이어폰을 끼고 생활해서인지 귀가 나빠져 섬세한 소리를 잘 못 들어요. 심지어 자신의 잘못된 목소리마저 느끼지 못하죠.”

이은미의 냉정과 열정 사이


특정인의 창법을 무조건적으로 답습하는 것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다.
“시작 단계에서 모창을 할 수는 있어요. 저도 특정 가수와 비슷하게 부르면서 이 음역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호흡량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배웠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인 창법을 낸다는 데 문제가 있죠. 누군가와 똑같이 노래를 부르려고 가수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수는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사람이니까요.”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가수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이은미.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가수를 꿈꾸는 이들을 경계했다. 한국 가요계가 열악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누구에게도 쉽게 가수가 되라고 권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음악 프로그램도 줄어들고 음반 시장도 좋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가수의 1%만 살아남는 구조예요. 게다가 살아남은 가수는 계속 살아남기 위해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통을 겪죠. 재작년과 작년에 전국을 돌면서 꼬박 2년 동안 쉼 없이 공연했을 때 아등바등하면서 버틸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프로니까요. 이미 스케줄은 정해져 있고, 제가 그만두면 스태프 1백여 명이 같이 손을 놔야 하잖아요. 평소 많은 관객들과 마주해서 그런지 힘들 때면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책이나 영화를 보고 때로는 해인사에 가서 마음을 달랬어요. 제게 허락된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무대 밖에서의 시간들은 무대에 서기 위한 ‘소모전’이라고 생각하면서 견디는 거죠. 가수가 되고 싶은 분들이라면 ‘자신이 진심으로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면 좋겠어요.”



“타고난 실력도 감동을 주기엔 부족”
그는 오디션 열기에 대해 “‘학습하면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한다. 평소 ‘예술가는 타고난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실제로 대중에게 감동을 줄 만큼 재능 있는 가수는 극히 소수인 까닭이다.
‘위대한 탄생’에서 각각의 심사위원들 재량으로 합격자를 추가시켰을 때 이은미만 이를 거부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는 “제가 여러분을 탈락시킨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만들 분이 이 자리에서 꼭 나오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참가자들의 ‘근성’을 부추긴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응원이면서 동시에 근성 없는 그들에 대한 질책이었다.
“멘토의 충고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느냐를 가장 중요하게 봤는데, 탈락한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추가 합격을 시킬 수 없었던 거죠. 물론 그중 재능 있는 친구들은 있겠지만 그런 자세로는 프로가 될 수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 근성으로 덤비면 성공할 수 있겠죠.”
이은미는 이런 냉혹한 과정을 거치면서 다시금 “선생님은 아무나 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고 한다. 10년 전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강사로 2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 자신이 무언가를 가르칠 만한 능력이 있는지 회의가 들어 그만뒀다. 그는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이 된 것 역시 솔직히 “후회한다”고 했다.
“오래 알고 지낸 MBC 예능국장님이 ‘신중현 헌정 공연’을 해보라고 삼고초려를 하셨는데 거절한 적이 있거든요. 당시 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그분이 이번에 ‘은미씨 좀 도와줘’란 문자를 보내셨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MBC 예능국 차장님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달라고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꾸미지 않는 제 모습을 보이는 조건으로 출연하기로 했죠. 누군가에게 아버지 같은 스승이 될 자신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서 청을 수락했는데 역시나 어렵네요.”

가수의 길 열어준 선배들의 마음으로

이은미의 냉정과 열정 사이

MBC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인 김태원, 방시혁, 이은미, 신승훈, 김윤아(왼쪽부터).



그러나 일단 심사를 맡기로 한 이상 선배 가수로서, 프로 음악인으로서 참가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심사 과정에서 얼핏 이은미가 ‘마산 1급수’라고 호평한 김혜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모창 하는 사람들만 보다 자신의 느낌대로 노래하는 이를 만나 반가웠을 뿐”이라며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어떤 참가자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으며, 심정적으로도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게 그의 원칙이다. 게다가 심사위원들끼리 견해차가 거의 없어 공평하게 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에게 가수의 길을 열어준 선배들의 마음으로 후배들을 돌볼 요량이다. 사실 이은미는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선배에게 자연스럽게 발탁된 케이스. 기획사가 적던 그 시절에는 그렇게 가수가 되는 이들이 많았다.
“기타 치던 한 선배가 ‘목소리에 재능 있는 것 같다’면서 가수 되라고 꽤 오랜 시간 설득한 뒤 음반을 한 장 줬어요. 그 음반을 듣고 노래 연습을 하면서 ‘나한테 재능이 있나 보다’ 싶었는데, 그 노래로 기립박수를 받으며 89년에 신촌블루스의 객원 싱어로 데뷔했죠. 선배들이 음악 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이 음악 꼭 한번 들어보라’며 좋은 음반도 주면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선배, 들국화의 허성욱·최성원 선배도 마찬가지고 (전)인권이 오빠, 광고 음악 하던 이승희 오빠도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죠. (김)광석이 오빠도 그랬고요. 그분들하고 ‘잼’하고 놀면서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어요. ‘음반이 내 선생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홀로 음반을 들으며 공부하기도 했지만요.”
그가 유명해진 것도 선배 덕이다. 이은미가 캐나다에서 만든 1집 음반에 수록된 ‘기억 속으로’를 듣곤 당시 드라마 ‘모래 위의 욕망’ 음악을 담당하던 강인원이 ‘황신혜 테마곡’으로 추천한 것이다. 공연을 마치고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도 선배들이 그를 살렸다.
이런 까닭에 이은미는 ‘위대한 탄생’ 녹화 중 휴식시간에도 ‘탈락자의 방’에 가서 충고를 하고, 유해인과 모이다밴드의 음반 제작을 하며 자신이 받은 것 이상의 사랑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애정을 많이 느끼는 사람에게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밴드를 만들어 16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그간 함께한 친구들 중에서 저 때문에 안 울어본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만큼 혹독하게 대하니까요. 무대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되 연습은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대가 얼마나 냉혹한 곳인지 잘 아니까 그걸 알려주고 싶은 거죠. 애초부터 돌려서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돌려서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핵심을 바로 얘기하죠. 물론 그 말은 과연 상대방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고민한 뒤에 어렵게 하는 거예요.”
22년째 제자리를 지키며 가수로 버텨온 이은미. 그는 이 길이 운명이란 걸 안다. 수없이 많은 위기가 찾아와 노래 부르는 일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이 길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어려움의 길목에서 언제나 ‘사람’을 만나 힘을 얻었다는 이은미가 그토록 ‘사람’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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