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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사람

이경영 ‘절반의 복귀’가 아쉬운 이유

글·김유림 기자 사진·박해윤 기자

2011. 02. 17

이름 석 자는 여전히 친숙하나 대중 앞에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들이 있다. 보통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거나 불미스런 사건으로 쫓겨나듯 존재를 감춘 경우인데, 배우 이경영은 후자에 속한다. 지난 10년간 인터뷰는 물론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를 영화 ‘죽이러 갑니다’ 기자시사회에서 만났다.

이경영 ‘절반의 복귀’가 아쉬운 이유


드라마 ‘불꽃’ ‘푸른 안개’를 통해 중년남성의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로맨스를 선보였던 이경영(51). 그의 모습이 TV에서 사라진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2001년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입건되면서 활동을 접은 그는, 훗날 당시 사건이 성매매가 아니었음이 밝혀졌음에도 한번 찍힌 낙인을 쉽게 지우지 못했다. 그동안 스크린을 통해 간간이 얼굴을 비췄지만 완벽한 ‘복귀’는 아니었다. 그 자신이 대중 앞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고, 대중 역시 그를 포용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그가 출연한 영화 ‘죽이러 갑니다’ 개봉에 맞춰 영화 제작사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No’. 그나마 개봉 직전 열린 기자시사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감독·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이경영은 오랜만의 나들이가 어색한 듯 멀리 관객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회색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흰 머리카락은 그간의 공백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경영은 “이런 자리가 너무 오랜만이라 쑥스럽다”며 10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원래 어떤 작품도 하지 않으려고 빼고 있었는데 한지승 감독으로부터 박수영 감독을 소개 받아 선술집에서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시다 젊은 감독이 가진 영화관에 매료돼 출연을 결심했다”며 출연의 계기를 밝혔다.

연기 잘하는 배우보다 철든 배우 되고 싶어
박수영 감독의 첫 장편영화 ‘죽이러 갑니다’는 엄사장(강병춘)의 회사에서 해고당한 노동자 김씨(이경영)가 엄사장 가족에게 복수를 펼치는 코믹스릴러. 김씨는 산중 별장으로 여행을 온 엄사장 가족들의 팔과 다리를 난도질하며 “이렇게 잘리나 저렇게 잘리나, 잘리는 건 다 똑같은 거야”하고 광기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머리에 ‘노동해방’이라 적힌 띠를 두른 채 장총으로 가족들을 위협하는 모습은 소름끼치면서도 안쓰럽기도하다.
박 감독 역시 김씨를 ‘측은지심’이 느껴지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이경영은 “박 감독이 그렇게 느끼는 건 내가 사연이 많아서인 것 같다”며 농담으로 넘겼다. 그러면서 그는 “그간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와 연기 패턴이 처음에는 고민스러웠는데, 단내 날 정도로 열심히 해 달라는 박 감독의 주문에 최대한 맞추려 노력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지친 상태에서도 감독의 요구대로 잘 연기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발판으로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재개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그렇게 거창할 것까지는 없다. 그동안 작품을 계속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나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고,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면 출연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이경영은 최근 4편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했다. 인터뷰나 공식적인 자리가 없었을 뿐 연기활동은 꾸준히 이어왔다. 그가 출연한 작품 리스트를 읊어보자면 이선균·서우 주연의 ‘파주’, 주진모·송승헌 주연의 ‘무적자’, 그리고 이현승 감독의 ‘푸른 소금’, 황정민이 기자로 출연해 음모론을 파헤치는 ‘모비딕’ 등 그 수가 적지 않다. 다만 비중의 문제인데, 사건 후 그는 가까운 영화인들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연기를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둔 채 짧게 스크린에 모습을 비췄다.

이경영 ‘절반의 복귀’가 아쉬운 이유


하지만 그에게 드라마 출연은 여전히 뛰어넘기 힘든 벽이다. 이경영은 2009년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촬영을 다 마친 상태에서 방송국으로부터 출연정지를 받자 자신의 미니홈피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당시 그는 “때론 내 지난 시간에 분노하는 이들에게 항변하고 싶었다. 난 성범죄자가 아니라고. 때로는 지난 시간에 항소를 했더라면 부끄러움은 씻지 못하겠지만 범죄자의 오명은 씻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했다. ‘엄마님’께 불효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맘 아프게 하고, 실망시킨 죄로 받겠다고 했던 게…” 하며 침묵으로 일관해 온 지난날을 후회하는 듯 사건과 관련해 처음으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드라마 ‘불꽃’으로 인연을 맺은 김수현 작가도 그의 복귀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나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그를 출연시킬 계획이었으나 공고한 금지령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 이와 관련해 이경영은 최근 한 영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나는 이제 드라마는 꿈도 안 꿔요. 김수현 선생님한테도 다른 사람들이 다 반대하는데 선생님은 왜 그러시냐고 했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경영씨는 가만히 있어.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그러셨어요. 그렇게 선생님께서 계속 밀고 나갔지만 잘 안 됐나봐요”하고 덤덤하게 말하기도 했다. 또 인터뷰에서 그는 “연기를 잘하기보다 철든 배우가 되고 싶다. 내 나이에 맞는 주름을 잘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다면 이경영의 ‘온전한 복귀’는 언제쯤 이뤄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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