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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ory #interview

뽀빠이 이상용의 씩씩한 인생 2막

EDITOR 두경아

2018. 08. 20

‘뽀빠이(Popeye)’는 원래 미국 만화의 주인공이지만 우리는 ‘뽀빠이’ 하면 이상용을 떠올린다. 그 이미지 그대로 여전히 다부지고, 씩씩한 이상용을 만났다.

뽀빠이 이상용(74)은 얼마 전 고향인 충남 서천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행사나 강연을 위해 일주일에 몇 번씩 KTX를 타지만, 휴가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무 일만 하는 것 같아서 휴가를 다녀왔어요. 지금 제 나이에 비해 일이 너무 많아요. 찾는 사람이 많아서 좋긴 한데, 절제하는 게 정말 쉽지 않네요.” 

이상용은 여전히 전국 지역 축제나 행사의 단골 MC이며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현역 MC로 활동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나를 세워놓으면 (관계자들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지방 행사를 다닌 지 50년이 됐어요. 전국에 안 가본 지역과 축제가 없죠. 전 야외 전문이에요. 야외만 나가면 힘이 나는데, 이것도 팔자겠죠. 늘 대본 없이 무대에 서는데, 한창 방송을 할 때도 대본대로 안 했어요. 방송 작가들이 젊기는 한데 나보다 현장 경험이 없으니, PD들도 내가 즉석에서 하는 것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인기를 끈 게 ‘우정의 무대’고요.” 

지방을 다니다 보니 잊지 못할 추억도 생긴다. 얼마 전에는 중년 남성이 “산에서 산삼을 캐왔다”면서 산삼주를 건넸고, 할머니들은 직접 담근 된장을 퍼다 주기도 한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너 주려고 까치도 감 근처에 못 오게 했다”며 가져온 감이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그분들이 저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건 ‘우정의 무대’ 덕분이에요. ‘우정의 무대’의 ‘그리운 어머니’ 코너를 진행할 때 ‘가슴을 후벼 파도록 진행을 잘 했다. 정말 눈물이 많이 났다’고 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요. 시골이 좋고, 할머니가 좋고, 촌스러운 거 좋고….”

국민 MC에서 횡령 혐의 받고 나락으로

1973년 ‘유쾌한 청백전’으로 방송에 데뷔한 이상용은 1989년 ‘우정의 무대’로 국민 MC 반열에 올랐다. 1996년까지 8년간 전국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방송을 진행해 그 시절 ‘군통령’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1996년 자신이 운영하던 심장병 어린이 재단의 기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받으며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쳤고, ‘우정의 무대’는 몇 달 뒤 종영됐다. 이후 3개월 만에 무혐의로 결론 났으나, 한번 나빠진 이미지는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당연히 방송 일도 못 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15일 만에 눈이 안 보이고, 20일 만에 머리가 하얗게 샜어요. 정말 미치는 건 25년 넘게 5백67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을 수술해줬는데 ‘한 명도 수술하지 않았음’이라고 보도된 거죠. 제 집이 40억원짜리고, 벤츠를 몰고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전세로 살고 있었고, 차는 36년 탄 지프였는데도 말이죠. 정말 놀랐던 건 누군가 악의적으로 제보한 잘못된 이야기가 그대로 기사화됐다는 거예요.”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에게, 가진 거라곤 4백만원이 전부였다. 그 중 2백만원을 아내에게 주고 미국으로 떠난 그는 그곳에서 관광버스 가이드로 생활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1~2년 정도 가이드 생활을 하면서 9천만원을 벌었어요. 귀국해서는 그 돈으로 딸 시집보내고, 9평(30㎡)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죠. 무죄라는 게 밝혀졌는데도 달라지는 게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을 했어요. 꿋꿋하게 버텨준 아내가 고맙죠.” 

그 시절을 견디게 한 힘은 신앙이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에게 고 김수환 추기경은 “눈이 왔다고 해서 빗자루로 쓸어내려 하지 마라. 떠나라. 봄이 오면 눈은 녹고, 너는 나타난다”고 위로했다. 

“너무 억울했지만,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 스님이 기도해주시면서 ‘너는 더 크게 쓰일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명예 회복은 10년이 지나도 다 안 되더군요. TV에 나가 많이 이야기하고 해서 그런지 이제는 (오해가) 많이 씻겼어요. 이렇게 앉아 있는 것조차 행복하고 고맙죠. 그 덕분에 지금은 한창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하루 책 한 권과 운동 2시간, 평생 절제된 삶

고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처럼 봄이 온 것일까? 그는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이 있다”면서 자신이 깨달은 인생의 지혜를 강연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이 덕분에 그의 강의는 어딜 가나 인기 만점이다. 7월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10월에는 일본 오사카에서도 강연 일정이 잡혀 있다. 일흔 중반에 찾아온 두 번째 전성기인 셈이다. 강연 소재는 무궁무진하지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위해 매일 책을 읽으며 공부한다. 하루에 최소 책 한 권, 한 달이면 70권을 읽는다는 그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수첩이 따로 있을 정도다. 

“어제 아침에 책을 읽었는데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아침에 일어나 이불 속에서 먹는 밥이 있다. 지혜 한 숟갈, 용서 두 숟갈, 사랑 두 숟갈을 넣어서 비벼 먹는다. 그러면 하루가 알차고 멋져진다.’ 저는 행복한 걸 좋아해요.
꽃 속에 앉아 있거나 아기들 가운데 앉아 있는 거,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죠.” 

그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다. 절제된 생활과 식습관 덕분이다. 평생 술과 담배뿐 아니라 커피까지도 입에 대지 않았다. 대신 과일을 하루 종일 먹는다고 한다. 기상 시간은 새벽 3시. 그 시간에 일어나 오전 6시까지 책을 읽고, 6시 30분 명동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드린다. 미사가 끝난 후 헬스클럽에서 2시간 동안 운동을 마치면, 비로소 그날의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오후 6시 30분, 늦어도 10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산 지 벌써 50년이 됐다. 그는 “기차표를 사러 가면 ‘65세가 넘었냐’고 묻는다”면서, “어쩔 때는 고마워서 일반표를 사기도 한다”며 웃는다. 몇 살이라도 어려 보이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그는 마냥 지난 시간에 머물러 있지는 않으려 한다. 70대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버리는 습관’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옷이 2천 벌이 넘었는데, 가만 보니 계절별로 두세 벌만 입게 되더라고요. 누구에게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감사패가 몇 자루나 되고요. 지난번에 이사를 하면서 죄다 정리했어요. 다 읽은 책은 두 수레나 버렸고, 감사패도 모두 버렸죠. 옷도 몇 벌만 남기고 모두 성당에 기증했어요. 그러고 보니 짐이 얼마 안 되더라고요. 동물도 털갈이를 하는데, 앞으로는 가볍게 살고 싶어요.”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홍태식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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