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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남자가 꿈꾸는 섹스

침대 위 편견 깨야 진정한 행복 찾아온다

안 되는 게 어딨어?!

글 신동헌‘섹스 칼럼니스트’ 사진 문형일 기자, Rex 제공

2009. 11. 09

편견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인생을 재미없게 만든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희열, 섹스 앞에서라면 그 어떤 편견도 존재해선 안 된다.

침대 위 편견 깨야 진정한 행복 찾아온다


편견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시야를 좁게 만든다. 섹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못 말리는 수준의 편견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설픈 지식으로 어설프게 섹스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섹스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섹스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배울 기회가 왜 없는 걸까? 고등학교야 그렇다고 쳐도 대학교에서는 왜 ‘섹스’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 걸까?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꼭 배워야 할 게 섹스인데 말이다. 우리는 왜 20대 때나 40대 때나 지루하고 똑같은 패턴으로 섹스를 즐겨야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제대로 섹스 하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지 않을까? 왜 그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그저 쉬쉬하면서 덮어두려고만 하는 걸까? 아마도 ‘섹스는 창피한 것’이라는 편견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편견이다. 누구나 하고 있는 일, 우리가 태어난 계기가 된 일, 사랑하는 남녀 간 행위가 창피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아마도 종교적인 이유 아니겠냐고? 그것도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다. 세계 최대 포르노 도서관이 바티칸에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교황이 살고 있는 바티칸에는 3만 권의 포르노 도서, 판화를 중심으로 한 11만 점의 포르노 미술품 등 총 14만 점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도서관이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포르노를 소장하고 있는 곳은 영국 대영박물관인데, 소장하고 있는 물품은 바티칸의 4분의 1 정도 된다. 바티칸이 포르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섹스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다. 옛날부터 바티칸은 가톨릭 교도들을 선도(?)하기 위해 금서(禁書) 목록을 작성해왔는데, 그 목록을 작성하려면 모든 섹스에 관한 책과 자료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섹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금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침대 위 편견 깨야 진정한 행복 찾아온다

인류의 가장 첫 번째 섹스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은 후 어떤 체위로 ‘첫 경험’을 했을까? 선교사 체위 혹은 정상위로 불리는 그 자세? 아니면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후배위? 물론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자체가 신화이니 증거는 없지만 예전의 사료를 바탕으로 추측해보면, 아담과 이브는 ‘여성 상위’로 섹스를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대인들은 여성 상위 체위, 중세인들은 야외 섹스 즐겨
‘체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자료는 기원전 32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것으로 거기에는 여성 상위로 섹스를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페루·인도·중국·일본 등 고대 문헌에 등장하는 섹스는 시대와 대륙을 통틀어 여성 상위가 압도적으로 많다. 요즘은 위로 올라가기를 꺼려하는 여자들이 많지만(?), 고대의 여자들은 자기 힘으로 쾌감을 찾고 섹스를 리드하는 데 익숙했다는 얘기다. 우리가 ‘정상위’라고 부르는 자세가 등장한 것은 불과 2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던 19세기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 여자들이 남자 위로 올라가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여성 상위는 여성이 쾌감을 느끼는 부위와 강도, 자세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세게 밀어붙이는 것밖에 모르는 단순무식한 남자들로부터 여성의 몸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아마도 고대의 남자들은 현대의 남자들보다 더 짐승(?) 같았을 텐데, 그러다 보니 움직임을 남자들에게 맡겼다가는 몸이 남아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고대의 여성들은 스스로 섹스를 리드하는 현명함을 보였던 것이다.
‘신사의 나라’로 유명한 런던 거리에 가면 수많은 SM클럽(새디즘-마조히즘 클럽)을 볼 수 있다. 때리고 맞으면서 성적 쾌락을 느끼는 SM은 흔히 ‘변태’라고 불리지만 모자 상점, 마사지 숍으로 위장한 SM 클럽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의 상류층 자제들은 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도 가정교육을 받았다. 당시에는 체벌이 일반화됐고, 잘못을 저지르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짧은 체벌용 채찍이나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아야 했다. 맞는 데 익숙해진(?) 소년들은 신사가 되어서도 맞거나 때리는 데서 쾌감을 얻었다.
이제 어느 정도의 섹스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오늘 밤 남편과 함께 색다른 밤을 보내볼까?’하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면, 이는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다. 왜 밤에만 섹스를 해야 한단 말인가. 중세 유럽에서는 낮에, 그것도 야외에서 섹스를 즐겼다. 그건 동물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아니다. 당시에는 오히려 밤에 집 안에서 섹스를 하는 게 동물 같은 짓으로 여겨졌다. 당시의 집이란 ‘방’이라는 개념이 없이 온통 트여 있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섹스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게다가 당시에는 여러 가구가 한 공간에 사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집 안보다는 야외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방’이라는 개념이 생긴 건 17세기에 이르러서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 불과 3백 년전에는 상식이었다.
조선시대만 우리 역사가 아니듯 유교적 가치만이 우리의 잣대가 될 수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좀 더 오래전 시대를 살았던 조상들로부터도 유익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섹스도 아는 만큼 그리고 편견을 버리는 만큼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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