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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당당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트랜스젠더 슈퍼모델 최한빛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박해윤 기자

2009. 09. 23

과연 이루지 못하는 꿈은 없는 걸까. 얼마 전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슈퍼모델이 탄생했다. 지난 7월 말 2009 슈퍼모델선발대회 본선진출 티켓을 따낸 최한빛은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도전해 꿈을 이뤘다. 그 뒤에는 언제나 따뜻하게 그를 감싸안아준 부모가 있다.

당당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트랜스젠더 슈퍼모델 최한빛


지난 7월28일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 열린 ‘2009 슈퍼모델선발대회’에서는 뿌리 깊은 편견 하나가 깨졌다. 91년 대회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트랜스젠더 후보가 본선에 진출한 것. 31명의 후보와 함께 당당히 예선을 통과한 최한빛(22)은 이로써 본선 입상 여부와 상관없이 슈퍼모델 자격을 얻게 됐다.
최한빛은 지난 2005년 SBS ‘유재석의 진실게임’에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진짜 여자를 찾아라’ 코너에 최한진이라는 이름으로 여장 남자로 출연해 섹시 댄스를 선보인 것. 당시 남자였던 그는 2006년 성전환수술 후 호적 정정과 개명 신청까지 마쳤다고 한다.
슈퍼모델 최종예선전에서도 최한빛은 자신의 주특기인 댄스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날 심사를 맡은 이상수 SBS 미디어넷 팀장은 “트랜스젠더 최한빛이 아닌 모델 최한빛을 보고 점수를 줬다. 한국무용을 전공해 몸이 부드럽고 유연한 점과 몸에 남자 체형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9월25일 열리는 본선을 앞두고 의욕으로 가득 차 있는 최한빛을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만났다. ‘볼쇼이 아이스쇼’ 피날레 행사에 9명의 슈퍼모델들과 함께 초대받은 것. 쇼 마지막에 모델들과 함께 일렬로 무대에 입장한 최한빛은 스케이트로 가볍게 얼음을 지치며 연기자에게 다가가 꽃을 전달했다. 그에게 “원래 스케이트를 탈 줄 아냐”고 물었더니 “어릴 적 몇 번 타본 적은 있지만 수준급은 아니다. 다행히 운동신경이 나쁜 편은 아니라서 며칠 동안 열심히 스케이팅을 익혔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최근 자신에게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에 대해서는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본선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 생각 안 하고 무조건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조만간 합숙 훈련이 시작되는데, 동료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쳐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랄 뿐이에요.”
어려서부터 그의 꿈은 슈퍼모델이었다. 해마다 TV로 슈퍼모델 선발대회를 지켜보며 무대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예선을 통과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던 날, 그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고 행복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당당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트랜스젠더 슈퍼모델 최한빛

동료 슈퍼모델들과 ‘볼쇼이 아이스쇼’ 피날레 행사에 참석한 최한빛(가운데).


“성전환수술 시켜준 부모님과의 약속 지키기 위해 대회에 출전했어요”
그가 성전환수술 후 법적으로 완전한 여자가 되기까지, 부모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 성전환수술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여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던 그는 부모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았다고.
“처음 말씀 드렸을 때 부모님께서 많이 놀라셨어요. 몇날며칠을 방에서 울기만 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제게 오시더니 ‘네가 어떻게 되든 너는 내 자식이다. 그렇게 움츠러들 필요 없으니 평소처럼 행동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러고는 ‘사랑한다. 우리 셋째 딸’이라고 하셨죠.”
그의 부모는 성전환수술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수술 후 트랜스젠더라는 편견 속에 갇혀 지낼 것을 두려워하던 그에게 용기를 심어줬다고. 결국 부모의 격려 속에 수술을 결심한 최한빛은 수술대에 오르기 전 한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고 당당히 세상과 맞서겠다고. 그는 “이번 대회에 출전한 것도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당초 최한빛의 슈퍼모델대회 참가를 놓고 자격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SBS 측은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네티즌의 악플은 한동안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는 “‘부모님 생각은 안 하고 네 생각만 하냐’는 내용의 글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부모님은 제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길 바라세요.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자랑스러워하시고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당당하게 살 거예요. 사실 대회 출전을 두고 응원해주신 분들도 많아요. 친구, 선후배들은 ‘넌 혼자가 아니다.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며 용기를 줬어요.”
앞으로 연예계에 진출할 의향은 없는지 궁금한데,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연예계 진출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일을 하든 저의 끼와 열정으로만 평가받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당당하게 저 자신을 표현하는 모델이 되고 싶어요. 광고모델이나 패션모델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똑같은 인간으로서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사회의 편견이 조금이나마 없어지길 바란다고도 했다.
본선까지 정해진 교육에 충실히 임하며 동료들과의 우정도 쌓고 싶다는 최한빛. 꿈을 향해 조심스레 한 발짝 내디딘 그가 앞으로 어떤 빛나는 행보를 보일지 참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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