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Interview

초딩 남편·달인 아내? 성우 안지환 정미연 부부

연상연하 커플로 결혼해 온갖 갈등 극복하고 ‘두 번째 신혼’ 즐기기까지…”

글 임윤정‘자유기고가’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8. 24

결혼은 소리를 조율하는 과정과 닮았다. 다른 음역과 음색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화음을 맞춰가는. 결혼 15년 차 안지환·정미연 부부 역시 싸우고 화해하고, 희생하고 인내하는 숱한 불협화음의 과정을 거쳐 이제야 비로소 조화로운 화음으로 다듬어졌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더 두근거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초딩 남편·달인 아내? 성우 안지환 정미연 부부

앤티크 가구로 꾸며진 서울 목동 한 카페에서 만난 성우 안지환(41)·정미연(46) 부부. 자연스런 손때나 흠집이 멋스러운 앤티크 가구는 세월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한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애틋한 사이가 돼간다니,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다. 지금처럼 되기까지 물론 쉽지 않았다.
SBS ‘TV 동물농장’에서 재치 있고 익살스런 해설로 프로그램에 감칠맛을 더하는 안지환, ‘감바의 모험’ 등 애니메이션에서 주로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맡아온 정미연. 서로 다른 목소리만큼이나 인상도 사뭇 다르다. 안지환은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면서 부드러운 인상이고, 아내 정미연은 약간 차가워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부터 거의 모든 것이 다른 두 사람이 한 가족이 되기 위해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대끼며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세월이 15년. 심한 농담에도 상처받지 않고 허허실실 웃어넘길 수 있는 내공이 이제는 생겼다.
두 사람은 MBC 공채 성우 선후배 사이다. 정미연이 한 기수 선배고, 나이도 다섯 살 연상이다. MBC 애니메이션 ‘시간탐험대’를 함께 작업하면서 가까워진 이들은 사귀는 1년여 동안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만났을 정도로 열렬하게 사랑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해 그해 연말 급속도로 가까워진 계기가 있었다. 해돋이를 보러 경포대에 놀러간 두 사람. 마침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자랑 이벤트가 열렸는데, 안지환이 정미연을 위해 기타를 치며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불렀다. 노래 제목처럼 연인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죄다 보여준 것이다.
“여자는 기타 치고 노래하는 남자에게 약한 것 같아요. 지금 들으면 얼마나 느끼한지 몰라요(웃음). 그래도 그 당시 노래는 참 잘했어요. 다르게 보이는 순간이었죠. 나만을 위해 불러준 노래니까. 창밖으로 펼쳐진 백사장 위로 눈이 흩날리는 분위기도 한몫했죠. 내 생애 기타 치며 노래 불러준 남자가 처음이었거든요. 결혼하기 전 숱한 남자를 만나봤지만(웃음).”
아내의 농담에 질세라 받아치는 안지환. “진짜? 내가 처음이었어? 그럼 그전 남자친구들은 장구 치며 배뱅이타령이라도 불러줬었나?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웃음). 그래도 무대에 오르는 건 대단한 용기였어요. 지금도 가끔 불러주는데, 이제는 시끄럽대요. 드라마 봐야 하니까 그만 하라고.”
농담 섞인 말을 주거니받거니하는 부부의 표정에서 행복했던 그때의 여운이 언뜻언뜻 비쳐든다. 아내는 단 하루 동안의 프러포즈로 평생을 버틸 수 있고, 남편은 평생 생색내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요즘에야 연하남·연상녀 커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15년 전에는 달랐다. 게다가 성우 선후배 사이라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을 많이 받았다.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았다. 오직 사랑 하나만 믿고 시작한 결혼. 남들이 전세 아파트로 시작할 때 ‘술 한 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술이 벌떡 깨는’ 산꼭대기 달동네에 신혼집을 차렸다. 사귀는 내내 싸움 한 번 하지 않던 잉꼬 커플이었음에도 처음 6개월 동안은 숱하게 싸웠다. 하지만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다. ‘우린 잘 살아야 된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힘든 시절을 함께 견딘 부부. 그들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해를 넘기면서 더 가슴 두근거린다고. 결혼 15년 만에 찾아온 두 번째 신혼인 셈이다.
안지환·정미연 부부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초딩 남편, 달인 아내’로 불린다. 그들이 최근 출연한 부부 토크쇼 ‘스타 부부쇼 자기야’에서 정미연이 남편은 항상 뭔가를 사달라고 떼쓴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초딩’으로 전락해버린 안지환이 강력하게 변론한다.
“성우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그걸 풀기 위해서 취미생활을 많이 하죠. 그중 하나가 서바이벌 게임이에요. 그래서 총을 사달라고 했죠. 그러다 아내가 하도 못하게 해서 방송국 내 검도 동호회에 들어갔어요. 이번엔 죽도가 필요하잖아요. 그걸 가지고 총 사달라, 칼 사달라 그런다고 하니. 앞뒤 딱 자르고 들으면 완전 얘기는 맞아요. 총싸움하더니 다시 칼싸움하러 다닌다. 그래서 같이 하러 다니자고 하면 또 안 따라 나서요.”

초딩 남편·달인 아내? 성우 안지환 정미연 부부

알뜰한 아내·낭만적인 남편, 티격태격해도 정겨운 부부
안지환은 경제적으로 당장 여유가 안 되더라도 조금이나마 누리며 살고 싶었던 반면, 정미연은 조금 더 있다 여유가 생기면 즐기기를 바랐다. 이런 일로 몇 년을 옥신각신한 끝에 결국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았다. 바로 골프다. 어느 날 선배부부가 손을 맞잡고 잔디밭을 거니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거다!’ 싶었다는 안지환. 물론 돈 많이 드는 골프는 천원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아내에겐 사치였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하는 취미를 갖고 싶었고, 혼자만 다니는 남편을 보면서 오기도 발동했다. 부부가 함께 즐기는 취미는 돈독한 부부관계를 위한 10계명 중 하나니, 어찌 보면 사치가 아니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로 아내에게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제야 내가 동호회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도 이해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어림도 없었죠. 본인이 겪어보지 않고선 아내들은 다들 의심부터 하니까요.” 곧바로 그녀의 반박이 이어진다. “다는 안 그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야.” “다 그래. 나도 지극히 평범한 남자야.” 주거니받거니하는 두 사람의 대화. 겉으로 보기엔 티격태격하는 것 같지만, 왠지 모르게 정겹다.
안지환은 살림을 알뜰히 꾸려준 아내가 늘 고맙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내조라고 생각한다. 다만 프로그램을 선택한다거나 할 때 같은 성우 입장에서 자신을 믿어줬으면 한다. 그의 바람과는 입장이 다른 정미연. “나는 성우가 아니라 관리자야!” 또 다시 긴 공방이 이어진다. “그렇구나! 관리자였어.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 맞다. 딱 맞아. 이 사람은 나에게 더 일을 시켜야 해. 싸게라도 막 돌려야 해(웃음).” “내가 자기를 ‘초딩 남편’으로 몰아가듯이 나를 너무 돈밖에 모르는 아내로 몰아가지 마.” “이 프로그램은 나랑 캐릭터가 안 맞아. 그러면 당신이 뭐라 그러지?” “그게 얼마짜린데… 당신만 고생하면 우리 가족이 편해(웃음).” “그만큼 당신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하는 거야. 그게 제 내조인거죠.” “이것 봐라. 아무렇게나 막 좋게 말한다(웃음).” “그리고 남편의 외조는 제가 뭘 해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내의 말에 자포자기 상태로 안지환이 응수한다. “거봐. 주종 관계가 딱 형성되잖아. 자기는 내가 뭘 해도 반대하고.” 공방전은 아내 정미연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믿음 아니겠어요? 믿음이에요!” 그녀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짓궂은 농담에도 상처받지 않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론 잘 드러내지 않지만 정미연은 남편을 같은 성우로서 존경한다. 프리랜서 등급을 만들어 성우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남편의 열정에 늘 감탄한다. 하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하다. 특히 연기자로서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을 볼 때 그렇다.
“지금도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근데 거기선 신인으로 다시 출발해야 돼요. 성우로선 최고 등급이지만 배우로선 최하위 등급인 거죠. 얼마 전 아나운서 역으로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는데, 거기서 그래요. 7등급 전속 탤런트 수준인 사람이 뭔 매니저를 데리고 다니냐고.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지만 현재 위치를 다 버려야 하니까 아내 역시 말리고 있는 상황이죠.”

싸워도 함께 자고 얼굴 맞대고 식사하는 원칙 지켜
그들의 15년 결혼생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존재, 바로 딸 예인이다. 아빠는 예인이가 다니는 중학교 인근에 카메라 렌즈를 고정한 채 체육시간에 운동하러 나온 딸아이를 찾곤 한다.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딸은 안지환과 붕어빵처럼 닮았다. 생김새는 물론 양반다리 하고 자는 모습 등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까지 쏙 빼닮았다. 피는 못 속이는 것일까. 성우 부모를 둬서인지 성대모사도 곧잘 한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선 다른 사람 목소리로 속이기도 여러 차례. 언젠가 슬쩍 대사를 시켜봤는데, 리얼하게 연기를 잘해 감정이입돼 운 적도 있다. 딸이 대를 이어 성우가 된다면 반대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단 그 무엇을 하든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가 딸에게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웃자. 기분 나빠도 웃자!’ 웃음 속에는 자신의 기분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배려와 친절,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인내 등 거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일까. 예인이는 구김살 없이 밝고 긍정적인 아이로 커가고 있다.
“어떤 책에서 봤는데, 행복은 눈 밑에 있다고 해요. 치켜뜨지 말고 내려다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거죠. 하지만 이상은 높게 잡아야 해요. 꿈은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요. 아이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그거예요. 네가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그만큼 노력해라. 하고 싶지 않은 걸 시키지는 않는다. 저도 죽을 만큼 노력해서 성우가 된 거니까요.”
천성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안지환. “뭔가 바꾸고 싶지 않다면 큰 병이 났든지 그랬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정미연이 되묻는다. “부인은 안 바꾸네?” “그건 절대 안 바꾸지!”
안지환·정미연은 신혼 초 부부싸움의 룰을 정했다. 아무리 크게 싸워도 반드시 한 침대에서 자고, 얼굴 맞대고 식사하고, 출근할 때 뽀뽀하고, 옷 챙겨주고, 용돈 주기로. 부부싸움이 장기전으로 흐르는 걸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부부간에 기 싸움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터득한 게 한 가지 있어요. 자존심이 필요 없다는 거. 남편이 자존심 상하는 말을 했더라도 그거 가지고 상처받을 필요는 없어요. 꽁하니 담아놓으면 나중에 더 크게 터질 것 같아요.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지나고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3분을 참으면 3시간을 참을 수 있고, 3시간을 참으면 3일을 참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3년이 가고, 10년이 흐른다. 부부의 맞잡은 손에 끼인 결혼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결혼생활 내내 단 한번도 빼지 않았다며 내밀어 보이는 손가락에 반지자국이 선연하다. 마치 지난 15년을 대신 보여주는 듯도 하다. 지금 그들은 반지를 처음 나눠 꼈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