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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해피토크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길

입력 2009.08.01 12:00:00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길

한윤정_남은음식_21.6×27.9cm_메뉴지 위에 오일파스텔, 연필_2008


최근 김모 할머니의 존엄사 시행이 화제다. 뇌사상태에서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는 순간 떨어진 눈물 한 방울. 그 후로 계속 호흡하고 있는 김 할머니의 사례는 존엄사는 물론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반백년을 살고도 나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준비를 한 적이 없다. 막연한 두려움만 갖고 있을 뿐이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쓸쓸하게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슬퍼하거나 죽은 뒤 지옥에 갈 것이 두려워 종교에 귀의해볼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 전부다.
스스로 죽음의 방식 선택한 김수환 추기경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로 3년을 고생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10년간 치매를 앓다 간 친정엄마,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흘 만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88세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며칠 만에 눈을 감으신 시아버지…. 양가 부모님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생각을 하긴 했다.
결혼 전 갑작스레 닥친 친정아버지의 죽음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시어머니는 건강하실 때 활동적이셨는데, 그런 분이 반신불수로 누워계신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저런 불편한 몸으로 더 살고 싶어 하실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철없던 30대 때의 이야기다.
반면 친정엄마는 계속 살아계셨으면 했다. 큰오빠는 치매가 심해져 마지막 무렵엔 앙상한 몸에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두고 “엄마의 영혼은 이미 떠났으니 남은 육신에 연연하지 말고 편히 보내드리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라도 뺨에 볼을 비비고 말을 걸고 싶었다.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온 겨울 출근길. 나는 “엄마, 내가 그동안 내 생각만 하고 엄마 발목을 잡아 미안해요. 이제 보내드릴게요”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날 오전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마치 내가 한 말을 기다린 듯이. 죽음은 꼭 의학적으로만 판정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그때 알았다.
올해 우리 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은 정말 존경스럽다. 김 추기경은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했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사전의료지시서(갑작스런 죽음에 대비해 의료진에게 자기가 원하는 치료와 원하지 않는 치료를 미리 밝혀두는 서류)와 유서를 미리 쓴 뒤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고 편안하게 가셨다. 품위 있는 죽음의 선례로 꼽을 만한 것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프랑스 문화장관을 역임한 프랑수아 지루 여사의 마지막 모습도 부러웠다. 평생 치열하게 살며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60대 후반에 계단에서 굴러 뇌진탕으로 사망했다.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며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보다 이렇게 세상과 작별을 하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내 인품으로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차분하게 맞이하기 힘들 것 같아서다.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길

한윤정_과일가게_21.6×27.9cm_메뉴지 위에 오일파스텔, 연필_2008


잘 죽어야 성공한 인생
탤런트 김혜자씨는 해마다 영정 사진을 바꿔 준비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영정 사진을 보면서 슬픔은 물론 자신을 알아서 기뻤다는 마음을 가져주길 바라서라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보다 생전에 함께 나눈 추억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지인들. 최고의 장례식 풍경이 아닐까.
죽음은 끝이 아닌 삶의 일부이자 세상의 일부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애써 모른 척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린다. 한림대에서 죽음학을 강의하는 오진탁 교수는 “죽음문화, 죽음의 질, 죽음 준비교육, 임종방식 등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우리 사회 죽음의 질이 낮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죽음에 대한 자각과 준비 없이 불행한 임종을 맞는다는 것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남은 가족들과 충분히 대화하며 그들의 슬픔을 위로해야 하는데, 자신의 슬픔조차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 교수는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장이자 삶의 완성이라는 걸 진정으로 이해해야 ‘웰다잉(well-dying)’ 할 수 있어요. 죽음은 삶의 마무리이자 생의 결론입니다. 어떤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잖아요. 아무리 잘 살았더라도 세속적인 성공은 두고 가는 겁니다. 잘 죽지 못한 인생은 결코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죠.”
올해 세상을 떠난 장영희 교수의 글도 기억에 남는다.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한 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인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내가 가진 물건은 물론 내 몸도 영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남에게 준 사랑, 내가 준 봉사만이 온전한 내 것이다.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하루하루 아름답게 베풀며 사는 것과 같다. 나를 존중하며 산다는 의미다. 부질없는 욕심과 대책 없는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들볶는 대신 자신을 사랑하며 사는 것. 지인들에게 안부전화라도 하면서 사는 것. 이처럼 하루의 충실함이 만족스러운 죽음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길

▼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여성동아 2009년 8월 5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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