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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폭파범 김현희

은둔 12년 만에 모습 드러낸

글 이영래 기자 |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김현희 기자회견 공동취재단

2009. 04. 22

지난 3월11일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참여정부 시절 자신의 삶을 ‘피난 생활’에 비유하는 등 지난 세월동안 겪은 신산의 일단을 비췄다. 그녀의 지난 삶을 취재했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

지난 87년 모습(오른쪽)과 비교해볼 때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미모는 여전해 항간에 떠돌던 성형수술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47)가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 3월11일, 일본 외무성 주관으로 이루어진 일본인 납북피해자 다구치 야에코씨 가족과 KAL기 폭파범 김현희 면담 및 기자회견이 계기가 됐다. 이날 기자회견은 인원 제한을 뒀음에도 내외신 기자 200여 명이 참석,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의 큰 관심을 반영했다. 도대체 다구치 야에코는 누구고, 왜 이들의 만남이 이토록 관심을 모았던 것일까?
지난 87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KAL 858기 폭파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위조된 일본 여권을 들고 있던 두 명의 유력한 용의자가 바레인에서 체포됐다. 남자는 독약이 든 앰플을 마시고 현장에서 자살했으며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마유미’란 이름의 미모의 20대 여성은 음독을 시도하는 순간, 경찰관이 덮쳐 미처 죽지 못하고 체포됐다. 일본명 ‘마유미’란 이름으로 처음 알려졌던 이 여성은 훗날 북한에서 보내진 공작원이라고 자백했고, 그녀의 실명도 밝혀졌다. 바로 김현희였다. 1백15명의 승객을 죽음으로 내몬 테러리스트가 미모의 20대 여성이란 사실에 전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당시 뉴스의 초점이 됐다. 3심끝에 지난 90년 사형이 확정됐던 그녀는 보름 만에 특별 사면돼 풀려난 뒤 수기를 출간하는 등 공개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곧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런 그녀가 다시 화제를 모은 것은 지난 97년 자신의 신변보호를 담당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 정모씨와 결혼하면서였다. 세기의 테러리스트에서 10년 만에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온 그녀의 극적인 인생역정은 전세계적인 뉴스 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12년이 흐른 지금,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사실 김현희에 대해 현재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쪽은 일본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동북아 외교무대에서 외톨이가 됐던 일본 고이즈미 수상은 지난 2002년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외교적 주도권을 찾아오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는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해결이었다. 일본인들은 북한이 자국민들을 납치해 공작원 교육에 이용해왔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해왔으며, 이 문제의 해결 없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는 일본 국내 정서상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본인 납북 피해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김현희만큼 중요한 증인은 없다.
김현희는 KAL기 폭파 사건으로 체포된 후 안기부 조사에서 “공작원 훈련을 받는 동안 리은혜라고 불리는 일본인 여성과 같이 살면서 일본어와 일본풍습을 배웠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김현희의 진술이 발표된 88년, 일본 경찰은 이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어 전국에 배포했고, 78년 6월경 22살 나이에 도쿄에서 실종된 다구치 야에코란 인물의 사진을 확보해 김현희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김현희가 “(사진 속 인물이) 리은혜가 맞다”고 확인하면서 본격적으로 납북자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던 것.
여기까지라면 다시 김현희가 거론될 이유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지난 2002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이즈미 수상이 방북했을 때 “일본인 13명을 납치했는데 그 중 8명이 숨지고 5명이 살아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북측은 다구치 야에코가 리은혜라는 사실은 극렬히 부정했지만, 당시 북한측이 납치 사실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게든 북일 관계를 개선하려 했던 북일 양측의 노력이 일궈낸 큰 성과라고도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북일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여중생 때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갔다 사망한 요코다 메구미의 것이라며 북측이 일본에 보내준 유골이 DNA 검사 결과, 요코다의 것이 아닌 것으로 결론나면서 일본에서 반북 감정이 고조된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북측이 죽었다고 주장한 납북자 8명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죽었다고 북측이 주장한 8명에는 바로 문제의 다구치 야에코도 포함된다. 북측 설명에 따르면 ‘다구치 야에코는 지난 84년 다른 납치 피해자 하라 다다아키와 결혼했고, 86년 7월 남편이 ‘간경병’으로 사망하자 정신적 위안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송환을 거부하기 위해 북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던 일본인들에게 “북한을 떠나오던 87년에 이은혜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김현희의 주장은 무엇보다 소중한 증언인 셈이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

지난 87년 KAL기 폭파사건 직후 모습.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김현희의 입을 통해 ‘다구치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언이 나오면 일본 내부와 세계 각국의 여론을 모을 수 있고, 납북자 문제 해결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지난 5년간 일본 정부와 다구치씨 가족은 줄기차게 김현희와의 만남을 우리 정부에 요청해왔던 것.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참여 정부 하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 정부 들어 “한 살 때 헤어진 어머니(다구치)와 한동안 같이 생활했던 김현희를 만나고 싶다”는 아들 고이치로의 바람을 우리 정부가 인도주의 차원에서 수용, 드디어 만남이 이루어졌다.
“며칠 전부터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이치로씨가) 어머니를 닮아서 많이 핸섬해요. 가족들이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면 다구치씨가 얼마나 기뻐할까, 이 자리에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민갈 것 권고받고, 타 지역으로 이주할 것 강권 당했다” 주장
짧은 머리에 검은색 바지정장을 입고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현희는 중년 부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세월의 흔적이 쌓여 젊은 시절 미모는 많이 퇴색했지만, ‘숨어 살기 위해 성형을 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듯했다. 김현희는 다구치씨의 장남과 오빠를 만나자 잠시 어색해하다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다구치씨의 장남 고이치로씨에게 “어머니는 살아있으니 희망을 가져라. 내가 (북한에 있는 친어머니 대신) 한국의 어머니가 되겠다”고 덕담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다구치씨의 행적에 대해 “(내가) 87년 마카오에서 돌아와서, 1월부터 다시 10월까지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들었던 것은 다구치씨가 어디로 갔는데 어디 갔는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사망한 것은 아니고 다른 데 간 것으로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이 날 김현희의 기자 회견 내용 중 무엇보다 우리 쪽의 관심을 끈 것은 그녀가 ‘지난 정부에서 탄압을 받았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부분이었다. 비공개로 다구치씨 가족과 면담을 가진 후 기자회견에 나선 김현희는 “97년 결혼하고, 사실은 사회와 거리를 둔 채, 돌아가신 유가족의 아픈 마음도 헤아리고 조용히 살려고 했다. 아시다시피 지난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이 자리에선 말하기 그렇지만, 현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하고 있다고 하니 기다리고 있다”, “자꾸 여러 의혹을 제기하는 데 난 가짜가 아니다”며 우회적으로 지난 정권 하에서 자신이 겪어야 했던 일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김현희는 지난해 11월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 포럼 상임대표에게 편지를 전해 2003년 국정원 등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편지에서 그녀는 “97년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로서 평범한 생활을 해왔으나 2003년부터 여러 가지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이민갈 것을 권고 받았고, 담당 경찰간부로부터 2년 정도 타 지역에 거주할 것을 요구받았다. MBC와 SBS 등이 집을 촬영, 방송하는 바람에 살던 보금자리를 떠나 피난 생활을 해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 후 국회 외통위 소속 구상찬 의원(한나라당)은 ‘KAL기 폭파 사건 조작 위혹’등과 관련, 4월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고,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 ‘KAL기 폭파사건’을 조작하려는 등 용공은폐 조작사건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관련 상임위를 열어 사건의 진상을 빨리 알아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국회 정보위를 열어, 관련보고를 들은 뒤 정보위나 외통위 중 한곳에서 청문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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