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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라라’로 우리 사회 금기에 또다시 도전하는 마광수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10.21 14:55:00

‘야한’ 성적 상상력으로 내놓는 작품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켜온 ‘광마’ 마광수 교수가 새 소설 ‘발랄한 라라’로 돌아왔다. ‘즐거운 사라’를 연상시키는 제목부터 좀 더 음란하고 거침없는 묘사까지, ‘발랄한 라라’는 ‘사라 사건’ 이후 10여 년간 검열의 공포에 억눌려 살아온 그가 우리 사회의 금기를 향한 제2의 싸움을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발랄한 라라’로 우리 사회 금기에 또다시 도전하는 마광수

“미술에서는 한 작가가 평생 한 소재에 집착하면 ‘줄기찬 추구’라고 칭찬합니다. 한 번 물방울을 그린 작가는 일생 동안 물방울만 그려요. 그런데 문학에서는 같은 소재를 변주하면 ‘재탕한다’고 욕을 먹죠.”
평생 한 소재에 집착하면서 ‘욕을 먹고’ 있는, 심지어 구속·해직에 사회적 왕따까지 당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소재를 변주’하고 있는 마광수 연세대 국문과 교수(57)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9월 중순 출간된 그의 단편집 ‘발랄한 라라’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성(性)을 향한 ‘줄기찬 추구’를 하고 있는 책. 노골적인 성묘사와 금기를 뛰어넘는 상상력이 곳곳에서 넘실댄다. 남녀 성기를 가리키는 순 우리말도 거침없이 등장한다. ‘19세 미만 구독 불가’ 딱지가 붙은 채 비닐에 씌워져 발매된 이 책의 메시지는 ‘야한 것이 아름답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손톱을 길게 기르고, 30cm 높이 하이힐을 신고, 짙은 화장을 한 채 ‘오늘을 즐기자. 야하디야하게!’라고 외치는 듯하다.
새빨간 손톱과 높은 하이힐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발랄한 라라’를 들고 마 교수의 자택을 찾았을 때, 그는 마침 같은 메시지가 담긴 또 다른 소설을 막 탈고한 뒤였다. ‘발랄한 라라’보다 더 야한, 다시 잡혀갈까봐 겁이 나는 소설이라고 했다.
“‘사랑의 학교’라고, 젊은 시절 홍대 교수하면서 여학생 여섯 명하고 연애한 얘기예요. 진실이 절반, 뻥이 절반쯤 되죠. 교정하느라 다시 읽어보니, 내가 봐도 너무 야해요. 혹시 또 문제가 생길까 싶어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내용을 고치기는 싫어서 남들이 뭐라 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19금’ 딱지를 붙이기로 했어요. 서문에 ‘소설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이라는 말도 넣고요(웃음).”
‘이 정도면 끄떡없겠지’ 하는 표정으로 ‘하하하’, 웃는 품이 딱 장난치고 재미있어하는 꼬마 같다. 사실 거의 팔리지도 않는 ‘19세 미만 구독 불가’ 책을 계속 내는 것만 봐도 그가 ‘어른스러운’ 판단 아래 행동하지 않는 건 분명해 보였다.
“‘19금’ 소설을 내면 중소 규모 서점에서는 아예 들여놓지도 않아요. 대형 서점에서도 대부분 진열하지 않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고객이 와서 찾는 경우에만 팔죠. 그래서 그런지 ‘발랄한 라라’는 나오자마자 거의 모든 신문에 소개됐는데도 책이 전혀 안 팔린대요. 출판사가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고 울상이에요.”
그런데도 그가 ‘19금’ 소설을 쓰는 건 “얼마나 팔리는지에 상관없이 쓰고 싶은 책을 꾸준히 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발랄한 라라’로 우리 사회 금기에 또다시 도전하는 마광수

계속 ‘야한 소설’ 발표하는 건 성에 대한 이중잣대 거부하는 평화적 저항
“저는 제 소설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 반사회적이다 하는 소리만 들으면 아주 짜증이 나요. 인터넷에 접속하면 온갖 동영상과 야설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말이 되냐는 거죠. 극장에 나가 보면 19세 미만 관람불가 영화가 얼마나 많아요? 그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 말 안 하면서 소설이 ‘19금’이라고 하면 일단 이상하게 봐요. 우리 사회의 그런 이중잣대가 싫어서 더 씁니다. 지금은 인정받지 못하지만, 내 작품이 머지않아 분명히 재평가될 거라고 믿어요. 그때를 위해, 어떻게 말하면 내 소설들을 역사에 남기고 있는 거죠.”
그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도 출간 당시에는 외설물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세계 명작으로 통한다”며 “행복한 예술가는 살아서 명성을 얻는 사람이지만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되겠나. 애드거 앨런 포도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했고, 스탕달은 완전히 무명이었다”라고 했다. 한때는 살아서도 행복했던 피카소를 꿈꿨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스탕달이 되겠다는 것이다.
마 교수는 야한 소설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런 ‘급진성’ 때문에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다. 여대생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다룬 소설 ‘즐거운 사라’를 썼다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긴급체포와 구속(92년)을 당했고, 대학에서 해직(95년), 복직(98년), 재임용 탈락(2000년), 강의 복귀(2003년) 등 한바탕 소용돌이도 겪었다. 지난 2006년에는 ‘즐거운 사라’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죄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그 사이 스물일곱 살에 명문대 교수로 임용될 만큼 재기 넘치는 학자였던 그의 명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참담했어요. 우울증에 시달리고 당뇨도 오고…. 그때 건강이 완전히 상해서 아직까지 회복이 안되고 있죠. 머리가 빠진 것도 다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즐거운 사라’로 대법원까지 갔는데, 그 작품이 유죄인 이유가 ‘건전한 일반인의 성관념을 해칠 가능성’을 갖고 있어서래요. ‘가능성’ 때문에 사람을 잡아 가두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마 교수는 “야한 걸로 따지만 ‘즐거운 사라’보다 전작 ‘광마일기’나 ‘권태’가 훨씬 더 야했다”며 “도무지 검열의 기준을 모르겠다”고 했다.

‘발랄한 라라’로 우리 사회 금기에 또다시 도전하는 마광수

명문대 교수이자 촉망받는 학자로 ‘야한 여자’들의 연애 제의가 끊이지 않았던 40대 시절의 마광수 교수.


“야한 생각 말하는 게 죄가 된다면, 순결지상주의 주장하는 것도 똑같이 죄가 돼야 해요”
‘사라 사건’으로 마 교수는 작가로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도 이게 문제되지는 않을까, 아니 이 정도까지는 괜찮은가 하며 끝없이 자기 검열을 한다.
“소송문제로 거의 10년을 고생했으니 또 잡혀갈까봐 늘 무섭죠. 또 실형을 다시 받으면 학교에서 진짜 잘리거든요. 그럼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니까 큰일나요.”
그는 ‘즐거운 사라’ 전과로 인해 교수 퇴직 뒤 연금 수급자격을 박탈당했다. 학교에서마저 해직되면 83세 노모와 살 도리가 없다. 재작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또 기소됐을 때는 덜컥 겁이 나서 바로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한다.
‘발랄한 라라’는 마 교수가 지금껏 그를 억압해온 이 같은 공포를 향해 ‘우습다’고 말하는 시작점이다. 소설집에 실린 ‘슬픈 사라를 쓴 죄’ ‘심각해씨의 비극’ 등을 통해 그는 ‘즐거운 사라’를 단죄한 세상을 비웃고 조롱한다.
‘발랄한 라라’로 우리 사회 금기에 또다시 도전하는 마광수

‘슬픈 사라를 쓴 죄’의 주인공은 작가. 변태적인 성생활을 즐기던 여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후회하고 자살한다는 내용의 ‘슬픈 사라’를 썼다가 하느님 앞에 붙잡혀간다.
“하느님은 지엄한 목소리로 나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선량한 대중을 선동해 금욕생활을 부추기니 너의 죄는 중하도다! … 성관계는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행동이다. 너는 아주 못된 서양 중세기의 종교재판관 같은 놈이구나.’”
‘심각해씨의 비극’은 한층 노골적이다. 성과학대학 용설(用舌)학과 심각해 교수는 ‘이성(理性)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책을 썼다가 체제전복 혐의로 구속당한다. 그가 구속된 이유는 “신성하고 자명한 섹스윤리를 부정하고 … 섹스란 … 결혼제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 …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 것”. 소설을 읽다 “본 검사는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심각해 피고인에게 국가보안법 제244조를 적용하여, 법정최고형인 20년간 섹스금지형을 구형하는 바입니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웃음이 난다.
마 교수는 “성(性)에 대한 관점을 이유로 사람을 처벌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보여주기 위해 쓴 단편”이라며 “읽는 사람마다 ‘기막힌 작품’이라고 칭찬한다”고 했다.
‘발랄한 라라’에는 마 교수가 고등학교 때 쓴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30편이 모여 있는데 고2 때인 1967년 발표한 단편 ‘손톱’도 눈길을 끈다. ‘손끝으로 길게 뻗어나간 손톱을 보면 정말로 야릇한 쾌감이 왔다’ 등 곳곳에서 손톱에 대한 페티시(몸의 일부, 옷가지, 소지품 따위에서 성적 만족을 얻는 취향)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 마 교수의 손톱에 대한 집착은 지금도 계속돼 ‘발랄한 라라’에 수록된 최근작의 주인공들도 보통 손톱을 30cm쯤 기른 ‘매혹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설집을 묶으려고 예전 작품을 뒤지다가 ‘손톱’을 보고 저도 놀랐어요. 내가 손톱을 40년이나 좋아해왔구나 생각하니 그 지조가 놀랍더라고요(웃음). 60년대 후반이면 우리나라 GNP(국민총생산)가 5백 달러도 안 됐을 텐데, 그렇게 가난한 나라, 그중에서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살면서 손톱 타령을 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돌아보면 그때 또래 친구들은 다 야한 사진 나오는 잡지 구해보느라 열을 올리는데, 저 혼자 ‘보그’ 같은 패션잡지를 본 것 같아요. 그러다 가끔씩 화려한 손톱이 나오면 열광했죠. 당시에는 손톱 사진이 워낙 드물었기 때문에 어쩌다 발견하면 오려서 책상 앞에 붙여두곤 했어요.”
그는 지금도 긴 손톱을 보면 미칠 듯이 좋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는 모든 게 내 맘이니까 15cm고 30cm고 마음대로 묘사하지만, 현실에서는 3cm만 돼도 좋다”고 했다. 소설 ‘슬픈 사라를 쓴 죄’에 나오는 주인공 ‘마 교수’의 이상형은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덱스 옷감으로 된 빨강색 쫄쫄이 초미니 원피스를 입고 위에는 뱀가죽 코트를 느슨하게 걸친’ 여자. 발에는 뒷굽이 15cm 정도 되는 황금색 하이힐을 신고, 하얗고 긴 손에는 무려 15cm나 되는 손톱이 달려 있다. 말 그대로 ‘야한 여자’고, 마 교수 본인의 이상형이다.
“손톱 집착을 ‘변태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런 말에 동의 안 해요. 밤에는 룸살롱 다니고 원조교제하면서 낮 동안 점잖은 척하는 게 더 변태적인 거죠. 저는 긴 손톱 좋아하고, 물고 빨고 할퀴는 거 좋아하지만 돈을 주고 여자를 사거나 원조교제를 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아무리 외로워도 야하지 않은 여자와는 만나지 않을 생각
그는 심지어 지난 90년 이혼 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다고 했다. ‘즐거운 사라’로 인해 ‘금쪽같은’ 40대를 암흑으로 보낸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너무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야한 여자’들은 어느새 훨씬 젊은 남자들과 놀기 시작했다.
“학교 복직하고 몇 년 사이에 연애를 두 번 했는데, 다 딱지를 맞았어요. 내가 열심히 꼬신 한 명은 자기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나하고는 거의 서른 살 차이 나는 남자한테 시집갔고, 손톱까지 길게 기르고 찾아왔을 만큼 나를 열심히 따라다니던 또 한 명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젊은 놈한테 갔어요.”
마 교수는 “젊고 잘나갈 때는 여자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는데 늙고 머리까지 빠지니 연애가 쉽지 않다”며 허탈해했다. 그가 ‘마 교수’를 화자로 하는 소설을 많이 쓰는 것은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되새겨보거나,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판타지를 대리 만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제 다시는 야한 여자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상상 속의 여인은 훨씬 더 야한 모습으로 그를 휘감는다. 하지만 “아무리 외로워도 야하지 않은 여자와는 만나지 않을 생각”이다. 그건 일종의 끝까지 지켜야 할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손톱 길고 머리도 긴 여자, 둘 다 안 되면 그중 하나라도 되는 여자가 다가와 연애하자고 하면 진짜 찐한 연애를 하고 싶어요. 지금은 너무 답답해서 가발을 안 쓰지만, 연애만 하면 가발도 쓸 생각이에요. 그러면 훨씬 젊어보일 텐데…. 내가 사라 사건 나기 전까지만 해도 늘 동안이라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끝내주는 연애를 영영 못하게 될지라도, 야한 소설은 계속 쓸 생각이다. 야금야금 더 야하게, 언젠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작품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마 교수에 따르면 야한 것은 ‘도덕보다 본능을, 과거보다 미래를, 전체보다 개인을, 질서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것’. 나이가 들어도 절대 ‘나잇값’은 하지 않겠다는 그는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여전히 야했다.

여성동아 2008년 10월 5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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