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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글·김수정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2008. 08. 22

조경란이 다섯 번째 소설집 ‘풍선을 샀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4년간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여자로서 늙어간다는 두려움으로 슬럼프를 겪었다는 그에게 방황했던 지난날과 독신으로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해마다 장편이나 단편소설집을 발표해온 ‘부지런한’ 작가 조경란(39)의 작품활동이 뜸해진 건 4년 전 소설집 ‘국자 이야기’를 펴낸 후부터였다. 1년에 한두 차례 단편을 발표했지만 예전보다 집필 속도가 더뎠고, 작품에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극중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공황장애, 우울증을 겪거나 타인에 대한 불만과 불신에 싸여 있었다.
“선배들이 종종 ‘그렇게 쉬지 않고 쓰면 지친다’ ‘10년 차에 접어들면 슬럼프가 온다’고 조언했는데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문단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씁쓸함이 들었고, 자신감도 잃어버렸죠. 스스로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작업실이 무조건 싫은데도 책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죠.”
중년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도 컸다고 한다.
“제게 늙는다는 건 두 가지 의미였어요. 하나는 예술가로서의 정신이 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흔에 가까워진다는 점이죠. ‘남편과 자식도 없이 오로지 소설만 써왔는데 도대체 내 위치는 어디일까’ 하며 혼란을 느낀 것 같아요.”
그의 이런 불안정한 정신상태는 가끔 꿈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어느 날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어깨뼈를 삽으로 내리찍으며 “너는 늙고 실패했다!” 하고 외치는 악몽에서 깬 그는 밤새 소리내 울었고 “늙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이때의 기억을 신작 ‘풍선을 샀어’ 속 ‘형란의 첫 번째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슬럼프는 꽤 오랜 시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고 한다. 서울의 한 대학에 겸임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한 학기 만에 교수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자신은 한 줄도 쓰지 못하면서 꼬박꼬박 학생들에게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순을 느낀 것.
“강의 첫날 ‘소설을 쓴다는 건 나라는 벽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것이다. 자신이 글에 드러나는 것을 겁내지 말라’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부터 알려줬는데,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서 정작 제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그래서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 하루라도 빨리 벽돌로 새로운 집을 짓고 싶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싶었거든요.”

고뇌하고 방황하는 소설 속 인물에 자신의 모습 담아
그는 3년 가까이 베를린·암스테르담·파리·도쿄 등을 전전했다고 한다. 여행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다고. “여행용 트렁크를 덜덜덜 끌고 다니는 동안 낯선 이국 땅에 끌려다니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그곳에서도 왜 글을 쓸 수 없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책상을 피해 도망쳐왔지만 매 순간 눈앞에 책상이 떠오르더라고요. 술도 많이 마시고 울기도 했어요. ‘이빨로라도 책상을 물고 늘어지라’는 카프카의 말이 ‘치열한 열정이 없으면 포기하라’는 말로 들려 괴로웠고요. 베를린에 위치한 ‘문학의 집’에 두 달 머물면서 ‘소설을 완성하기 전까진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독일에 있는 작가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두려움을 깼다고 한다.
“한 친구가 ‘베를린에서 뭘 하면서 지내니?’ 하고 묻기에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어’라고 답했더니 ‘그러지 말고 그다음 문장부터 시작해봐. 첫 문장은 글을 쓰는 동안 찾아오지 않겠니?’ 하고 충고하더라고요. 또 작가를 아버지로 둔 한 친구는 ‘너는 지금보다 더 깊은 고독 속에 빠져들 거야. 그러나 이겨낼 거라고 믿어. 우리 아버지도 너처럼 고독하고 삶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이겨내셨거든’ 하고 위로해줬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어요. 친구들에게 위로받으면서 저도 남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어요.”

글쓰기,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극복하고 신작 펴낸 작가 조경란

책을 쌓아놓고 읽거나 좋은 구절을 낭송하기를 즐긴다는 조경란은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고독하면 고독한 대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글에 담았다고 한다. “고독에 직면하고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자기 세계를 당당하게 펼친 철학자 니체와 작가 버지니아 울프, 화가 반 고흐 등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그는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작가의 가장 간절하고 밀접하고 뜨거웠던 감정을 털어놓기 마련”이라고 고백했다. 그 무렵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도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풍선을 샀어’ 속 대부분의 화자는 ‘나’이고, 30대 중반의 여자다.
“넉 달 동안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 지난해 말 장편소설 ‘혀’를 펴냈지만 그건 이미 10여 년 전 구상한 작품이기 때문에 슬럼프의 잔재는 대부분 ‘풍선을 샀어’에 남아 있어요. ‘형란의 첫 번째 책’의 경우 ‘경란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하면 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제목을 바꿨고, ‘마흔에 대한 추측’에 등장하는 마흔을 앞둔 주인공도 글을 쓴 지 오래된 모습이나 사람들과 사귀는 게 쉽지 않은 모습이 저를 닮아 있어요.”
그에게 글은 창문과 같다고 한다. 자신이 있는 곳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밖에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공간을 비추기도 하기 때문.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자습시간에 담을 넘어 서울 광화문 헌책방으로 달려가 책에 파묻혀 지냈고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가까이에 두는 일을 하겠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 작가를 꿈꾸진 않았죠.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책 속에 미래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방황하면서 거듭 대학입시에 실패한 그는 독방에서 책만 붙잡고 살았고, 6년 동안 홀로 습작과 필사를 반복한 뒤 스물여섯의 나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지난 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해서 금방 스타작가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웃음). 얼마 동안 백수로 지내다가 ‘뭘 좀 해보자, 몸을 움직이다 보면 소설이 쓰고 싶을 거야’하는 생각에 요리학원에 다녔어요. 그렇게 해서 쓴 소설이 ‘식빵 굽는 시간’이죠.”
‘식빵 굽는 시간’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그는 이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돌이켜보면 작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운도 따랐다고 생각해요. 사실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전업작가로 산다는 게 쉽지 않아요. 소설을 쓴다고 해서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과 생활패턴이 달라 어려움을 겪죠. 다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든지 주어진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서울 봉천동에서 부모와 살고 있는 그는 얼마 전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옥탑방·고시원 등에서 집필해왔는데 ‘혀’를 펴낸 뒤 자기만의 공간을 갖게 됐다고. 그의 집필실에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전화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만 꺼놓으면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글쓰기에만 몰입할 수 있다고. 방 한 칸에 15개의 책장이 놓여 있는데 그는 “뜨거운 책, 엄격한 책, 자유로운 책, 다 읽은 책, 다시 읽을 책 등으로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이 즐겁고,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한다.
“글이 잘 안 써지면 시집을 50~60권 정도 쌓아놓고 한꺼번에 읽어요. 큰소리로 좋은 구절을 낭송하기도 하고요. 저는 위로받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는 것은 책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전업작가로서 살면서 힘들 때 있지만 책 읽고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해요”
그는 왜 가정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는 “모든 걸 충족하고 살 수는 없다. 신이 남자, 좋은 집, 글쓰기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망설이지 않고 글쓰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랑하는 게 글쓰기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10년 전 제 모든 것을 걸 만큼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실연의 아픔을 겪었어요. 그로 인해 무척 힘들었지만 비로소 성년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일을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그에게 지혜를 듣고 싶고 이해를 바라는 건데, 어쩌면 아주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죠.”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결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그는 “10분 후의 일도 어찌될지 모르기에 인생을 단정지을 순 없다. 다만 결혼하더라도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 전 사주를 봤는데 초년에 고생하고 마흔에 대기만성하는 팔자를 가졌대요. 제 별자리가 염소자리인데, 염소자리는 맨발로 바위산을 오르는 기질을 가졌거든요. 고독하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결국 꼭대기에 오르는 형국이죠. 사주와 꼭 들어맞는 것 같아요. 염소자리는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많대요. 예전에는 ‘염소자리라 내가 힘들게 사는구나’ 싶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든든하고 좋아요.”
그는 오는 9월 ‘UC버클리·대산문화재단 한국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잠시 떠날 예정이다. 그곳에서 강의를 열고 작품 발표회를 가지면서 새 소설을 구상할 생각이라고. 차기작은 삼각관계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사랑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저는 글쓰기 전에 반드시 스케치를 해요. 해가 어느 쪽에서 떠서 어느 쪽으로 지는지,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사는 지 같은 걸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니까 그곳에서 축척지도를 만들고, 잡지를 보면서 소설 속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을 거예요. 저는 소설 쓸 때 배우가 됐다는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 어떤 인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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