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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다시 뛰는 남자

120km 도보여행 다녀와 화제 모은 아나운서 김완태

글·정혜연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2008. 08. 22

김완태 아나운서는 최근 방송을 통해 강원도 횡성에서 서울까지 120km를 걷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그가 이런 색다른 도전에 나선 이유와 아나운서로서의 포부, 결혼생활 등을 들려줬다.

120km 도보여행 다녀와 화제 모은 아나운서 김완태

“부부가 궁합이 잘 맞아야 하듯 직업도 궁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저는 운이 좋았어요. 처음 응시한 시험에서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아나운서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어요.”
지난 95년 MBC에 입사해 올해로 방송 경력 13년 차가 된 김완태 아나운서(39). 경희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그는 재학 중 회계사가 되기 위해 고시원에서 1년간 시험을 준비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학교로 돌아왔다고 한다. 막막한 상태에서 4학년을 맞은 그는 우연히 방송사 아나운서 채용정보를 보고는 스스로 경쟁력 있다고 생각해 시험에 응시했다고.
“그때 최종적으로 세 명이 사장단 면접에 올라갔어요. 신동진 아나운서도 있었는데 저만 합격하고 신동진 아나운서는 다음해 후배로 들어왔죠. 훗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해 예능국에서 MC로도 기용 가능한 아나운서를 뽑으려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형화된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지니지 않은 제가 뽑힌 것 같아요.”
입사한 뒤 5개월 만에 방송에 투입된 그는 “지금도 첫 방송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회사 내부 문제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상태에서 당시 인기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를 진행하게 됐는데 방송 직후 녹화한 테이프를 보고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매일 방송을 모니터링하며 노력했고 2000년 인기 아나운서의 자리에 올랐다.
“혼자 프로그램을 8개나 진행했으니 얼마나 바빴을지 짐작이 가시죠? 그러다가 한 번 과로로 실신해 구급차에 실려갔어요. 그날 이후로 방송이 줄더라고요(웃음). 농담이고 그 뒤로 저와 스타일이 비슷한 김성주, 임경진 아나운서가 들어오면서 그쪽으로 조금씩 넘어갔어요.”

“도보여행 위해 며칠간 회사 떠나 있으면서 일의 소중함 새삼 깨달았어요”
한때 황금시간대를 종횡무진하던 김완태 아나운서는 어느 순간 자기관리를 잘 못해 살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입사 2년 차에 ‘현장고발’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스태프와 전국을 돌며 촬영한 뒤 거의 매일 술자리를 갖다 보니 몸무게가 13kg이나 불었어요. 이후로 조금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로 바뀌더라고요. 처음엔 살이 찌는 걸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방송에 나온 제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죠.”
2006년 박혜진 아나운서와 함께 ‘생방송 화제집중’을 진행할 때는 인터넷 게시판에 ‘뚱뚱한 아나운서 보기 답답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상처받기도 했다고 한다. 6개월 뒤 책임PD가 바뀌면서 자연스레 후배 아나운서에게 바통을 넘겼을 때도 ‘살이 쪄서 그렇다’는 식의 구설에 올라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한다.
“방송일이 즐겁지만 자기관리를 못하면 철저히 외면당하는 생리가 무섭기도 해요.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요. 아나운서는 언제나 선택당하는 입장이잖아요. 물론 어떤 직업이든 동료와 경쟁해야 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지만 방송은 그런 모든 것의 결과가 바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 냉정한 것 같아요.”
그는 요즘 ‘잘나가는’ 오상진·서현진 같은 후배들을 보면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입사할 때와는 달리 방송이 다양해져 기회도 많아진데다, 입사와 동시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요즘 새벽방송과 심야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업무량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도 친구들이 ‘요즘 어느 방송에 나오니?’라고 물으면 속상하죠. 마흔 즈음의 직장인은 대체로 ‘낀세대’로 분류되잖아요. 제 또래의 다른 분들도 올라오는 후배들, 역량 있는 선배들 사이에서 ‘내 경쟁력은 무엇인가?’라는 고민 많이 하실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마흔 살의 아나운서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중 그는 도보여행을 떠나게 됐다. MBC 교양 프로 ‘네버엔딩 스토리’ 작가와 논의한 끝에 2박3일 동안 행군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한 것. 지난 5월 그는 강원도 횡성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12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흘 동안 날씨가 기가 막히게 도와주더라고요(웃음). 첫날에는 폭우가 쏟아지더니 이튿날에는 해가 쨍쨍하게 내리쬐고 그러다 또 비가 내리고… 정신없었어요.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 ‘세상에 미운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네요.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니 넓은 마음을 갖고 살자는 다짐을 했죠.”
김완태 아나운서는 도보여행을 하던 중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 날 도로공사 현장에서 일흔을 넘긴 노인을 만났는데 그가 ‘내 인생의 점수는 90점을 넘는다’고 말해 놀랐다고.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는 노인을 보며 그는 “나도 일흔을 넘어 내 인생에 후한 점수를 주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20km 도보여행 다녀와 화제 모은 아나운서 김완태

여덟 살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김완태 아나운서 부부.


“마지막 날 여의도에 도착해 만난 청년도 기억에 남아요. 바텐더가 되기 위해 한 시간가량 땀 흘리며 병 돌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죠. 서른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지만 그걸 떨쳐버리기 위해 더 열심히 연습한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여의도로 들어와 MBC 앞에 섰을 때 그는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한다. 며칠간 회사를 비우며 일의 소중함을 곱절로 느꼈기 때문.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는 그는 자기관리에 실패한 아나운서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방송을 더 열심히 준비하고 꾸준한 운동으로 체중을 줄이는 중이라고 한다.
도보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그를 가장 반갑게 맞아준 사람은 아내 김문경씨(31)였다. 현재 스튜어디스로 일하는 부인과는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99년 12월에 만났는데 지금도 그날을 정확히 기억해요. 신동진 아나운서와 명동에서 칼국수를 먹고 있었는데 친구와 둘이 들어와 옆 테이블에 앉는 아내를 보며 ‘저런 여자가 내 여자친구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더라고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술 한 잔 하자’고 했죠(웃음).”

“스튜어디스로 일하는 아내와 7년 전 결혼, 내년에는 꼭 아이 갖고 싶어요”
그날 그는 김씨를 집까지 데려다줬고 두 사람은 2001년 여덟 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가 참 대단해요. 대학생이 서른 넘은 아저씨와 결혼할 생각을 했으니 말이에요. 하도 신기해서 ‘그때 무슨 생각이었냐?’라고 물었더니 ‘그러게’라고 답하더라고요(웃음). 한번은 부부싸움을 하다 아내가 홧김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때는 정말 가슴 아팠어요.”
두 사람은 한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었는데 당시 병원에서 태아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120km 도보여행 다녀와 화제 모은 아나운서 김완태

“태명을 ‘까꿍이’라 지어주고, 매일 함께 태교 책을 읽으며 행복에 젖어 있었죠. 그러다 일이 그렇게 돼 굉장히 마음 아팠어요. 아내는 자기 몸으로 직접 겪었던 일이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병원에서 시간을 두고 아이를 가지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쉽게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요.”
아픔을 겪고 난 뒤 두 사람은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아이는 없지만 둘만으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내가 요즘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아이 낳는 것을 보고는 몹시 부러워해 내년에는 꼭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한다.
그는 현재 2008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 중계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스포츠 중계는 평소 꾸준히 준비했다가 한꺼번에 역량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공부할 때가 많다고.
“지난해 돌아가신 송인득 선배는 좋은 스포츠 캐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지 보여주신 분이었어요. 프로야구 캐스터로 일하며 매회 정리한 노트만 해도 수백 권에 달했으니까요. 올림픽 중계는 그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나간 자료를 찾아 돌려보며 공부하고 있어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김완태 아나운서다”라고 말해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과거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힘을 얻어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연을 보내준 한 수험생의 편지를 13년 방송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로 꼽은 김완태 아나운서. 그는 지금까지 많은 시청자와 함께했듯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아나운서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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