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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부부 살아가는 이야기

인문학 서점 낸 한명숙·박성준 전 총리 부부

글·김명희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7. 17

한명숙 전 총리와 박성준 교수 부부는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동안 사랑을 지켜낸 것으로 유명하다. 출소 후 정치인 아내를 외조했던 박 교수가 최근 서울 통인동에 인문학 서점을 내고 본격적인 ‘바깥일’을 시작했다. 책을 매개로 한 나눔과 소통을 꿈꾸는 박 교수와 남편의 뒤늦은 창업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전 총리를 만났다.

인문학 서점 낸 한명숙·박성준 전 총리 부부


서울 종로구 통인동,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에서 나와 자하문길로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옹기종기 화분들이 놓인 작은 골목이 눈에 띈다.‘길담서원’이라는 간판이 걸린 가게의 문을 열자 기분 좋은 나무 냄새와 책 냄새가 코끝에 스며든다. 이곳의 주인은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68). 오랫동안 정치인 한명숙의‘안사람’으로 살아온 그는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지난 2월 이 서원을 냈다. 여성부장관, 환경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5월 임기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온 한명숙 전 총리(64)는 “남편이 언젠가는 이 일을 할 줄 알았다”며 웃었다. 지난 68년 금지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베껴 쓴 게 빌미가 돼 13년간 옥고를 치른 그는 수감생활 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출옥 후에도 책을 벗 삼아 살아왔다.

“책은 첫째 마누라, 아내는 둘째 마누라예요”
“평소 남편은 책을 첫째 마누라, 저를 둘째 마누라라고 했어요(웃음). 좋은 책을 보면 혼자 읽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걸 좋아했죠. 한꺼번에 책을 1백권이나 사들이기도 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방을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박 교수에게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정치인의 남편으로 살면서 무엇 하나 조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책방을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것.
“정치인의 남편이 편한 자리가 아니더라고요. 중요한 자리에 오를 때는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 그때마다 제가 쓴 글이나 강의 내용 등이 도마에 오르곤 했죠. 2년 전에는 서원을 내려고 계약까지 했다가 국무총리 인준을 앞두고 있어 포기하는 바람에 계약금 6백만원만 고스란히 날리기도 했어요.”
‘길담’이라는 이름은 뒤늦게 얻은 아들 한길(23)과 후배 부부 아이의 이름 ‘담’에서 글자를 따 만든 것인데 짓고 보니 의미나 울림이 무척 좋아 마음에 든다고.
“아들의 길이라는 이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는 성경 글귀에서 가져온 것인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 같은 의미를 담고 있죠. 반면 담은 길을 가다 잠시 쉴 수 있는 보금자리,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공간 등의 의미가 있고요. 특히 우리사회는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새롭게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외형적 성장에 맞는 깊이를 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담서원이 그 길목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고 정신을 맑게 하는 옹달샘이 되면 좋겠어요.”
그가 운영하는 책방은 책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차는 여느 서점과는 다르다. 책은 2천 권 남짓에 지나지 않으며 대신 토론이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부방과 테이블,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 코너가 적잖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감상을 위한 시설도 갖추어져 있으며 차나 커피도 판매한다. 한 전 총리는 사람을 만날 일이 있으면 가끔 이곳에 들른다고 한다.
“이름 모르는 도예가가 찾아와서 자기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모임을 갖고 싶다고 하면 공부방을 빌려주기도 하고 음악감상실이 됐다가 영화감상실이 되기도 하고…. 작은 공간을 요모조모 쓰임새 있게 나눠 쓰는 게 참 좋더라고요.”
서점 한쪽에는 박 교수가 수감생활을 하던 중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로 엮은 서간집 ‘사랑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가 놓여 있었다.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혼인신고도 못한 채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져 13년 동안 그리워하며 살았던 부부의 애틋한 그리움과 그 와중에도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마음 등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그 시절 저는 편지를 먹고사는 새댁이었어요(웃음). 편지는 안부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 서로에게 힘을 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죠.”
교도 당국의 검열을 통과해야 했기에 정치적인 내용들은 삭제됐으며 때로는 전달이 안 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당신들 편지는 왜 정치적인 이야기가 없이 밋밋하냐’고 묻기도 하지만 이들은 숱한 시대적인 고민들을 은유적인 표현에 담아 주고받기도 했다고.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는 편지의 행간을 보며 아내가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27세의 젊은 청년이던 박 교수는 41세 중년이 돼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인생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30대를 오롯이 감옥에서 보낸 그의 소회는 어떨까.

인문학 서점 낸 한명숙·박성준 전 총리 부부

길담서원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장소를 빌려주기도 하고 전시를 열기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에게는 어떤 역경이든 이겨낼 수 있는 무한한 생명력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처럼 인간은 어떤 극한의 상황도 극복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감옥에 있던 시기는 제 삶을 통틀어 아름다움에 가장 예민했던 때였어요. 아픔, 고통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감정도 절절했죠. 그래서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해요. 제가 보통의 남자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다주지 못하고, 슬쩍 피해줬기에 지금의 정치인 한명숙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웃음).”
어여쁜 신부였던 한 전 총리 역시 남편이 출옥할 때는 37세의 아낙이 돼 있었다. 그는 남편 수감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70년대 말을 꼽았다.
“옥바라지를 한 지 10년 가까이 될 무렵 체력이 바닥난 탓인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어요. 그런 상황에서 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저까지 구속됐죠. 처음엔 고통스러웠지만 극한적 상황이 되니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더라고요. 결국 그 사건이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박 교수는 조선시대 선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의외로 섬세하며 낭만적인 면도 있다고 한다. 가난한 대학생이던 박 교수는 학창시절 늘 교복이나 점퍼차림이었지만 한 전 총리가 대학 축제 쌍쌍파티에 초대, 처음으로 데이트를 청한 날은 양복에 빨간 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났다고.
“남편은 투사형이고 제가 알뜰하게 집안을 챙기며 살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예요. 저는 자잘한 건 건너뛰고 대충대충 하는 성격인데 남편은 잔정이 많고 세세한 것까지 살피죠. 저희가 여느 집에 비해 이사를 많이 한 편인데 그때마다 남편이 집수리며 정리를 다 했어요. 설거지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저보다 잘하고요.”
떨어져 지낸 세월은 결혼생활에서 완충 역할을 해, 이 부부는 웬만한 일로는 서로에게 화를 내거나 부부싸움을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간혹 가사 분담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는 한다고. 박 교수가 여느 남편들에 비해 가사를 많이 돕는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에 쫓겨 살아 온 한 전 총리로서는 섭섭할 때가 적지 않았다는 것.
“본능적으로 여성은 배려를 우선시하는 반면 남성들은 자기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해요. 일반적인 잣대로 보면 남편이 집안일을 많이 돕는 편이지만 제가 여성운동을 한 터라 가사분담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엄격한 편이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조건 날을 세울 게 아니라 좀 더 따뜻하게 남편을 집안일에 동참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박 교수는 한 전 총리가 총리로 재임하던 지난 2006년 프랑스 순방에 동행했다고 한다. 그때 총리 회담이 열리는 동안 박 교수는 ‘부인’ 자격으로 프랑스의 도서관과 학교 등을 방문했는데 체계적으로 조성된 독서 분위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프랑스 학교에서는 꼭 읽어야 할 책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의무적으로 읽도록 하고 있더군요. 우리 사회에서도 책 읽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집집마다 거실을 서재로 바꾸는 등 여러 형태의 독서운동이 일고 있지만 형식 못지않게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식에도 건강을 해치는 인스턴트식품이 있듯 책도 마찬가지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좋은 책을 골라 읽는 흐름이 형성되면 좋겠어요.”



인문학 서점 낸 한명숙·박성준 전 총리 부부


“가사 분담에 대한 기준 높아 남편을 가끔 몰아세운 게 지금 와서는 아쉬워요”

독서의 양 못지않게 질을 강조하는 박 교수가 말하는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일까. 길담서원의 서가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짐작된다. 서가에는 인문학·환경·예술 등에 관한 책이 주류를 이룬다. 도서 정보는 부산의 인디고 서점, 서울 대학로의 이음아트 등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매주 4차례 열리는 ‘콩글리시 서원’은 이 책방의 또 다른 자랑거리. 원서를 소리 내 읽는 것으로 영어공부를 하는 모임인데 주부·학생·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문법 중심에서 회화 중심으로 이동하다 보니 독해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영어공부에 투자하는 막대한 시간을 생각하면 원서를 읽으며 영어공부를 하는 게 일석이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소리 내 읽으면 귀가 틔고 입이 열리게 되죠. 이는 제가 직접 경험을 통해 습득한 영어공부법이기도 해요.”
박 교수는 대학 강의와 서원 운영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비폭력 평화 물결 공동 대표도 맡고 있어 그곳 일도 챙겨야 한다. 반면 한 전 총리는 의원 임기를 마친 터라 이전보다 조금은 한가하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삶이 역전된 셈. 틈틈이 탁구를 치며 함께 건강관리를 한다는 이 부부에게 서로에 대한 바람을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당신이 무척 보기 좋습니다.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듯 당신도 항상 건강하기를 바라요.”
“정치가는 세상의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에 철저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제가 국민의 시각으로 봤을 때 한명숙은 그만하면 괜찮은 정치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쌓은 경륜을 바탕으로 누가 봐도‘한명숙다운’ 일을 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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