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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색다른 변신

증권맨에서 작가로 변신해 화제 모으는 우영창

글·정혜연‘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2008. 05. 23

전직 증권맨이 작가로 변신해 화제다. 증권가를 배경으로 현대인의 욕망을 다룬 장편‘하늘 다리’를 집필해 계간 ‘문학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은 우영창씨를 만났다.

증권맨에서 작가로 변신해 화제 모으는 우영창

(P회사의 주식이 소폭 올라 30% 처분했는데 이후 가격이 이보다 조금 더 올랐다) 여기가 투자자들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70%가 남아 있으니 오른 걸 기뻐해야 이치에 맞지만 상당수는 30% 판 주식에 미련을 갖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부유층은 자기 돈이 위험해지고 돈의 성격이 노출되는 작전 게임에 뛰어들지 않는다. 작전 세력의 돈은 비싼 이자 물고 끌어들인 돈이거나 다단계처럼 불법 모금한 돈일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내부자 거래는 일급정보에 접근해 있는 관료나 기업체 임원들의 전유물이다. 차명 계좌로 호재가 있는 기업의 주식을 끌어모으고 재료가 뉴스를 타면 고점에서 조용히 팔고 나간다.

위의 글은 22년 경력의‘전직 증권맨’ 우영창씨(51)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하늘 다리’에 등장하는 내용들. 그는 이 작품으로 계간 ‘문학의 문학’이 주최한 5천만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됐다. 그의 소설은 하루 수조원의 돈이 오가는 주식시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더불어 이곳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를 잘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문학계에 20~30대 도시 여성의 삶과 욕망을 솔직하게 그리는 소설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이를 비하하는 시선도 있는데 저는 그런 소재를 순문학 쪽으로 끌어들여 균형 있게 그려내고 싶었어요.”
‘하늘 다리’는 골드미스인 미모의 증권사 직원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그린 국내 첫 본격 증권소설. 30대 여성 펀드매니저‘맹소해’는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직장 상사와 불륜관계를 맺고, 성공을 위해 남자 고객과 쉽게 몸을 섞는다. 양성애자인 그는 여자친구와도 동거를 하고 있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주변에는 불륜·배신·음모가 일상적인 일처럼 판을 치지만 맹소해는 그 모든 것에 시종일관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제목인‘하늘 다리’는 두 개의 고층건물을 잇는 통로이자 현대인의 욕망을 상징하는 장치라고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소해와 자신의 실제 모습이 닮았느냐고 묻자 우씨는 “오히려 그 반대”라며 “나는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맹소해’가 실존 인물이냐고 묻는 분이 많이 있는데 그런 건 아니지만, 그가 겪는 에피소드 가운데는 실제 제가 증권가에서 일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많아요. 소설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들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구성했을 뿐이죠. 한 회사의 주식이 오를 것이라는 소문만 듣고 찾아와 무작정 거래하겠다는 마담도 있었고, 주식투자를 한 아내가 춤바람 나서 도망갔다고 당장 거래를 중지시켜달라며 찾아온 남편도 있었어요.”

증권맨 22년 경력, 소설에 고스란히 녹여내
증권맨에서 작가로 변신해 화제 모으는 우영창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돌고 돌아 문학의 길로 돌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우씨는 처음 증권가에 입문했던 이유에 대해 “대학 졸업 후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기 싫은 직업을 지우다 보니 증권사가 남았다”고 답했다.
“졸업생 대부분 교직 이수를 해 교사가 되거나 홍보·광고·출판 분야로 진출했는데 그런 방면으로는 왠지 자신이 없었어요. 남은 곳을 보니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전신인 경제연구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81년 입사해서 4년 동안 조사 관련 업무를 하다가 영업부로 옮겨 퇴직하기 전까지 그쪽에서 일했죠.”
“우연히 하게 된 일치고는 적성에 잘 맞았던 덕분에”그는 제법 잘나가는‘증권맨’이었다고 한다. 그가 일하던 영업장이 전국 증권사 지점 가운데 수익률 5위에 오르기도 했다는 것. 그가 증권가에서 일하던 22년간 2천 달러가 채 못 되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어섰고 주가지수는 10배 이상 올랐으며 주가가 폭등해 벼락부자가 된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슬픈 사연도 부지기수다. 특히 IMF 외환위기 당시 주가가 폭락하면서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을 수도 없이 많이 접한 그는 그 시기를 기점으로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돈을 중심으로 인간의 희비가 극단으로 엇갈리는 것을 더 이상 보기가 힘들었고 상장기업의 수가 분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지자 퇴직을 생각하게 됐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많은 회사를 분석해 시장을 따라가기 벅찼거든요.‘이제 그만두고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죠. 나와서 3년 동안은 증권사에서 일하며 느꼈던 감정을 시로 풀어냈고 2년 전에 묶어서 시집으로 발간했어요. 그러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쌓이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어 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을 통해 “불온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익명의 존재들이 사랑하고 고독을 느끼며 또다시 사랑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우씨는 독자들이 “기분 나쁘지만 참고 읽었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준다면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선도 중요하지만 대중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소설이 되길 바랐어요.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고독한 존재인데 사실 돈이나 사랑이 근원적 고독을 치유해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세태를 그리고 싶었는데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읽고 ‘그래, 그렇지’라며 고개 끄덕여준다면 좋을 것 같네요.”
우씨는 현재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를 무대로 스케일이 큰 소설을 쓰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미국 월 스트리트, 영국 런던증권거래소,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 쪽으로 직접 나가 자료를 수집해볼 생각이에요. 첩보물이나 추리물을 쓰려는 건 아니고 세계 증권시장을 무대로 ‘하늘 다리’와 마찬가지의 순문학 작품을 써보고 싶어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계속 순문학을 추구하고 싶기 때문에 그 틀 안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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