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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슈퍼스타

데뷔 40주년 기념공연 여는 조용필

글·김명희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2008. 05. 23

한국 음악계의‘살아 있는 전설’조용필이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대규모 기념공연을 준비 중인 그를 만나 오로지 음악에만 매달려온 지난 세월과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애환을 들었다.

데뷔 40주년 기념공연 여는 조용필

조용필(58)이 올해로 음악인생 40년을 맞았다.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불혹. 그 사이 기타 하나를 들고 세상과 마주한 열여덟 살 청년은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큰 별이 됐고 ‘오빠’를 외치던 팬들은 중년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조용필은 “40년이라는 건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35주년 공연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렀네요(웃음).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은 들지만 제게 음악은 언제나 진행형이라 ‘데뷔 몇 년’이라는 타이틀은 쑥스러워요. 패티김 선배가 올해 50주년을 맞았다고 하는데 그분에 비하면 저는 아직 어린아이죠.”
지난 68년 미군 부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 긴 수련의 시간을 끝내고 76년‘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데뷔한 조용필은 탁월한 가창력과 쉼 없는 실험정신으로 한국 가요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창밖의 여자’‘고추잠자리’ ‘허공’ ‘그 겨울의 찻집’‘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등 그의 히트곡은 시간을 초월해 아직까지도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다. 데뷔 이후 그는 늘 인기 정상을 달렸다. 81년 발표한 ‘비련’의 도입부 ‘기도하는∼’의 다음 가사는 팬들의 환호인 ‘꺅∼’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 조용필은 이 모든 성취를 팬들의 공으로 돌렸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지나간 세월은 굉장히 빠른 것 같아요. 그동안 좌절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지만 이만하면 평탄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지켜봐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꿈’을 자신의 대표곡으로 꼽았다.
“어떤 노래를 가장 아끼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난처하긴 하지만(웃음)… 인생을 살다 보니 멜로디보다 가사를 생각하게 되는데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꿈’이 가장 대표적인 곡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부른 노래라고 해도 세상에 나온 뒤에는 대중의 것이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앞서 두 곡은 대중의 공감을 가장 많이 얻어낸 작품이기도 하고요.”
도무지 음악 외에 ‘외도’라는 걸 모르는 그의 고집스러운 면모는 개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94년 미국에서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던 안진현씨와 결혼, 단란한 가정을 꾸렸던 그는 지난 2003년 아내와 사별 후 지금까지 재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2년 전 한 방송인과 열애설이 돌았을 때 그는 “하늘에 있는 아내가 화낼 것”이라며 소문을 부인했다. 그가 외로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가까운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한다. 소문난 애주가임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고 하자 그는 “오늘은 약간 분장을 했다”며 웃었다. 사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올해 발표하기로 한 19집 앨범도 60%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중단하고 내년으로 연기했다고.
“지난해 몸이 좋지 않아 고생했는데 올해부터 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오래전부터 골프를 쳤고 의사의 조언에 따라 몇 가지 간단한 운동을 하는 게 제 나름의 건강 비결이죠. 절대로 무리는 하지 않고요.”

대표곡은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꿈’, 무대에서 내려올 땐 언제나 두려워
2003년 35주년 기념 콘서트 때 우리나라 단일 공연 사상 최대 관객인 5만 명이 모인 가운데 공연을 열었던 조용필은 이번에도‘The history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부제가 붙은 공연을 연다. 이번 콘서트는 5월24일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 내 올림픽 주경기장을 시작으로 12월까지 20여 개 도시에서 열리며 8월에는 미국 LA와 뉴욕에서도 공연을 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에는 70억~80억원의 비용을 들여 대규모 무대장치를 설치할 예정인데 무대 양쪽에 40m 높이의 거대한 영상 타워를 세우고 콘서트용으로 제작된 3D 애니메이션 등을 투사할 계획이라고.
“무대에 서면 조명이나 사운드 등 여러 가지가 신경 쓰이지만 애써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고생할 때 가장 안타까워요. 공연 중 태풍이 온 적도 있고, 2003년·2005년 서울 잠실에서 공연을 할 때는 비가 많이 와 고생을 했죠. 그럼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던 관중들에게 감사하고, 평생 잊지 못할 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보답 차원으로 팬들에게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로 공연을 기획했어요. 영상 타워는 지난 40년 동안 마주 보고 살며 서로에게 힘이 돼준 저와 팬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데뷔 40주년 기념공연 여는 조용필

잠실에서 공연을 할 때 두 차례나 비 때문에 고생을 한 후 공연계에는 ‘조용필 잠실 공연에는 꼭 비가 온다’는 속설이 생겼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번에는 비가 오더라도 공연에 지장이 없도록 무대장치에 모두 방수처리를 했다고. 내용 면에서는 40곡의 노래를 부를 예정이며 밴드 느낌을 최대한 살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초기 분위기에 가깝게 가려고 한다고.
그가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공연에 투자하는 것은 가요계의 맏형으로 우리나라 공연문화의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아울러 매번 공연을 할 때마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라고 한다.
“나훈아씨가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다음에는 더 나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두렵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이죠. 그렇다고 무대 위에서 노래 아닌 다른 퍼포먼스를 할 수도 없고(웃음)…. 미국도 보니까 공연 규모가 점차 축소되는 것 같더라고요. 전에는 대규모 야외 공연도 많았는데 요즘은 실내 공연이 대세고요. 과거에는 음악이 거의 유일한 오락이었는데 요즘엔 다른 즐길 것들이 많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해요. 공연 역사가 길지 않은 걸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공연 수준도 그리 열악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신승훈·이승철 같은 후배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쌓이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40년을 돌아보면 아쉬운 일이 더 많지만 그것이 인생이라는 결론 내렸어요”
“노래를 잘하려면 많이 불러야 해요. 꾸준히 연습하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노래해서는 노래를 잘할 수 없겠더라고요.”
한 음악평론가는 조용필에 대해 “가수로서 핸디캡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놀라운 점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부적합한 신체 조건을 자신에게 맞게 완벽하게 재구성해낸 점”이라고 평했다. 조용필 역시 타고난 목소리의 한계와 노력을 자신의 최고 장단점으로 꼽았다.
“목소리가 미성이라 외국 여러 음악을 소화할 수 없어 탁성을 내려고 연습을 많이 했어요. 연습을 안 하면 안 되게끔 타고난 목소리가 제 단점이지만 그 덕분에 피나는 연습을 하게 됐죠.”
조용필은 “지난 40년을 돌이켜볼 때 열 가지 일 가운데 기뻤던 일이 한 가지라면 나머지 아홉 가지는 슬픈 일, 아쉬운 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자책도 많이 했지만 “그게 인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슬럼프를 겪을 때는 바닥까지 밀린다는 각오로, 그리고 폭풍우가 지나간 뒤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이겨냈어요. 자신만만하게 쓰러져야 자신만만하게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음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글쎄, 음악 외엔 다른 걸 못해봐서, 음악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인생 그 자체이고,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한 조용필.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허전하기에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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