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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송화선 기자의키워드 토크

박경림

꿈을 좇아 달려온 10년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4. 24

박경림에게는 늘 많은 사람과 웃음이 따라다닌다. 데뷔 초기 작은 키·네모난 얼굴·쉰 듯한 목소리 탓에 ‘비호감’의 대명사로 통하던 그는,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마당발이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 프로그램을 두 개나 진행하는 인기 MC가 됐다. 박경림을 만나 여러 핸디캡을 딛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기울인 남다른 노력과 앞으로의 꿈, 신혼생활에 관해 들었다.

박경림

“오늘 신문 보셨어요? 세상이 너무 무섭죠. 며칠 전 (노)홍철이 병문안 갔다 오면서도 참 무섭다 했는데…. 아유, 세상이 참….”
박경림(30)과 인사를 나눈 뒤 마주 앉았을 때 그가 꺼낸 첫마디는 ‘세상 얘기’였다. 전직 야구선수가 저지른 끔찍한 살인사건이 언론을 뒤덮은 날이었다. 인터뷰도 잊은 채 그와 ‘무서운 세상’에 대해 한참 얘기를 나누다 문득 어느새 박경림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우리는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First keyword ; 사·람
“모든 만남에 최선 다하는 게 넓은 인간관계의 비결”

박경림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마당발이다. 지난해 7월 그의 결혼식에는 이명박 당시 유력 대선후보,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부터 유명 연예인까지 각계각층 인사가 모여들었다.
“무슨 의도를 갖고 사람을 관리한 게 아닌데, 결혼식 이후 그쪽에 초점이 맞춰져서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잡지에 ‘박경림식 인간관계 10계명’이라는 기사가 실리고, 출판사 8곳에서 인맥관리법에 대한 책을 내자는 제안서를 보내왔죠. 저를 잘 모르는 분들이 ‘박경림은 계산적으로 사람을 만나는구나’라고 생각할까봐 걱정됐어요.”
그는 “사실 결혼식 하객 가운데는 초등학교 동창부터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친구와 선후배,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까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았다”며 “그날 오신 분은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똑같이 내가 지금껏 만나고 마음을 나눠온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경림

그 많은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될 수 있는 건, 언제 누구를 만나든 “최소한 나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상대가 즐겁게 하자”는 마음을 갖고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는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오늘 박경림을 만나 즐거웠다’고 생각하길 바라요.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요. 한 번의 만남에서 서로 좋은 기억을 갖게 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도 반갑고 친근하게 느껴지잖아요. 서로 연락이 없어도 ‘그 사람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일 생기면 도와주고 싶어지고…. 그게 바로 친구 아닌가요?”
연예인 친구가 많은 이유도 “방송 때 즐겁게 만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과는 대부분 친구가 된다. 녹화할 때뿐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계속 얘기를 나누기 때문.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기자에게 ‘무서운 세상’ 얘기를 꺼냈듯, 그는 자신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사소한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나눈다고 했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박경림의 ‘친구’가 되는 이유다.
박경림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는 전화번호는 모두 1천2백 개. 그 가운데는 제주도의 한 횟집 아주머니와 청담동 카페의 발레파킹 청년 연락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오며가며 만난 분들의 전화번호를 입력할 때는 이름만 쓰는 게 아니라 주변 상황을 조금씩 메모해둬요. ‘제주도 어느 횟집 아주머니’, ‘무슨 카페 총각’ 하는 식으로 써놓으면 나중에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도 분명히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종종 휴대전화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다 누군지 잘 기억나지 않는 이름이 보이면 메모를 읽으며 기억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이 생각나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건다고.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거는 거니까 얼마나 좋아요. 서로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이라도 그렇게 한 번 통화를 하고 나면 금세 다시 친해지죠. 보고 싶고 궁금해하는 제 ‘진심’이 인간관계를 더 오래 유지시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박경림 곁에는 그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사람도 많다. 2003년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2년간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 그는 매달 한 상자씩 우리나라에서 오는 누룽지를 선물받았다고 한다. 그의 단골 식당 주인 할머니가 유학 소식을 듣고는 주소를 수소문해 보낸 것이다. 박경림은 “밥 먹으러 갈 때마다 인사드린 것 말고는 한 게 없는데, 내가 누룽지를 맛있게 먹던 걸 기억하고 보내주셨다”며 “그 소포를 받을 때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박경림은 그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자신이 MC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 자신의 인간관계를 소개하는 책을 쓰고 있다. 제목을 ‘사람’으로 정한 이 책은 흔히 알려진 ‘인맥관리 교본’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지금껏 만나온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박경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자서전 같은 책이 될 것”이라며 “책을 읽고 난 뒤 사람들이 ‘아, 친구를 사귀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를 배우는 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이렇게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변화시켰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경림

Second keyword ; 노·력
“세상 누구든 꿈을 갖고 최선 다하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 되고 싶어요”



실제로 박경림은 변했다. 97년 데뷔 당시 작은 키, 각진 얼굴, 쉰 목소리로 눈길을 끌던 ‘비호감 소녀’에서 인기 MC가 됐고, 외모도 눈에 띄게 예뻐졌다.
“어릴 때 많이 가난했어요. 무시도 많이 당했고…, 데뷔한 뒤엔 연예인같지 않은 얼굴과 목소리 때문에 ‘너는 절대 안 돼’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죠.”
그가 처음 ‘MC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고 한다. 소풍을 갔다가 사회를 맡기로 했던 옆반 반장이 아파 대타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오락시간 내내 분위기를 띄우다가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깨달은 것이다. “MC가 되면 평생 사회를 보며 살 수 있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그는 “MC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박경림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상이 군인. 해병대로 참전했다가 팔에 탄환 관통상을 입고, 다리엔 파편이 박힌 몸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장애가 있는 몸으로 온갖 장사와 일용직 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살림은 계속 어려웠고, 박경림이 태어날 무렵에는 서울 구파발에 무허가로 짓고 살던 집이 철거되면서 생활이 ‘극빈’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자라는 내내 가난에 시달린 박경림에게 ‘MC의 꿈’은 힘겨운 오늘을 버티며 당당하게 살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고 한다.
“학교 오락시간 사회는 제가 도맡아 했고, 6학년 때는 전교 회장도 했어요. 어린 마음에 집은 가난해도 다른 면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게 좋았죠. 좋은 MC가 되려면 깊이 있는 사람이 돼야 할 것 같아 그때부터 신문 사설을 스크랩해가며 공부도 했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인근 학교의 축제무대에 초청 MC로 설 만큼 이름을 알리던 박경림이 정식으로 데뷔한 건 수능시험을 치른 뒤 이문세가 진행하던 MBC 라디오 프로그램 ‘두 시의 데이트’에 5분짜리 고정 코너를 맡으면서부터. 그의 엉뚱한 입담이 차츰 알려지면서 TV로까지 영역을 넓히게 됐다.

“하지만 그때는 제가 MC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뭔가 특이하니까 여기저기서 한 번씩 출연시켰을 뿐이지, 참 많이 무시했어요. 제 앞에서 대놓고 ‘네가 뜨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는 분도 있었고, 프로그램에 섭외됐다가 같이 출연하기로 한 스타가 ‘박경림 나오면 안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막판에 빠진 적도 있죠. 그럴 때면 사람이 뜸한 화장실 칸에 들어가 혼자 울곤 했어요. 방송국마다 거의 제 ‘지정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렇게 남몰래 울고 나면 다시 ‘한 번 더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죠.”
박경림은 지금 자신의 모습은 그 용기와 노력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면 더 악착같이 해내는 ‘독기’로 그는 음반을 내고, 연기를 하고, 라디오 DJ도 맡았다. 지난 2003년엔 ‘더 많이 공부하기 위해’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당시 박경림은 7~8개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인터넷 팬클럽 회원 수가 1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잘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 게스트가 나오면 영어로 인터뷰할 수 있는 MC’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뉴욕 도착 뒤 처음 치른 랭귀지 스쿨의 레벨 테스트에서 가장 하급 단계인 ‘레벨 1’을 받았을 정도로 영어 실력이 형편없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대화는 문제없을 만큼 영어 실력에 자신이 있다.
“미국에서도 정말 독하게 공부했어요. 그렇게 노력해도 잘 안됐으면 많이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운이 좋았죠. 노력하면 꼭 결실이 생겼으니까요. 그 무렵부터 ‘내가 참 많은 걸 누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변화가 그에게 꼭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아니다. 박경림의 변화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 박경림은 스스로 “지금이 내 방송 인생의 ‘고비’인 것 같다”고 했다.
“유학 다녀온 뒤부터 저에 대해 좀 불편해하는 시선이 생긴 것 같아요. 지난해 결혼 뒤엔 그런 게 더 커졌고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 중에는 박경림에게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다시 예전의 서민적이고 부담 없는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하지만 박경림은 “지금의 내가 데뷔 때와 달라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순간의 인기를 위해 내 지금 모습을 감추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요. 지난 10년 동안 부족한 저를 아끼고 사랑해준 많은 분들 덕분이죠. 그분들 덕분에 돈을 벌어 빚을 갚았고, 더 좋은 방송인이 돼 보답하려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어요. 이젠 이 모습 그대로, 아무리 부족하고 가난한 사람도 많은 이들의 사랑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로 인정받고 싶어요. 예전엔 부담 없고 편한 ‘친구’였다면, 이젠 뭐든지 이해하고 조언해줄 수 있는 ‘언니’가 되고 싶은 거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가슴이 뜨거워지게 만드는 토크쇼를 진행하고 싶어요.”

Third keyword ; 살·림·의·여·왕
“결혼을 통해 얻은 안정, 엄마가 되고 싶은 꿈”

박경림의 새로운 도전에 함께해줄 든든한 친구는 남편 박정훈씨(29)다. 그가 진행하던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만남을 시작해 1년 열애 끝에 결혼한 박씨는 “그동안 스캔들이 났던 연예인 19명의 장점을 모두 모아놓은 괜찮은 남자”라고 한다.
박경림은 “결혼하니까 참 좋다. 인간적으로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세상 모든 인간관계를 집안에서 다 경험하는 것 같아요. 아직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 이런 얘기 하긴 그렇지만, 매일 같은 사람과 부딪히고 이해하면서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어려운 일 아닐까 싶거든요. 가정만 잘 꾸리면 세상에 못할 일 없다는 뜻에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나왔나봐요(웃음).”
그는 일주일에 주말 이틀은 ‘남편과 보내는 날’로 정하고 남편 박씨와 단둘이 지낸다. 스케줄도 잡지 않고, 아무 약속도 없이 주중에 못하는 일을 다 함께 하는 시간으로 보낸다고. 처음엔 결혼 뒤에도 예전처럼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남편이 그런 자신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경림

“남편이 제가 친구들만 챙긴다고 오해를 했어요. 언제든 전화가 오면 달려나가고, 힘든 일이 있다고 하면 밤을 새워 얘기를 들어주니까 어느 날 제게 ‘식구나 남편도 좀 그만큼 생각해봐’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너무 남편에게 바라기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부부라는 게 서로 이해하고 도와줘야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기만 하면 안 되잖아요.”
그 뒤로 주말이면 둘이 함께 청소를 한 뒤 맛있는 요리를 해먹는다고 한다. 부추잡채·닭볶음·부대찌개 등 다양한 요리를 할 줄 아는데, 그중 가장 자신 있는 건 된장찌개라고. 박경림은 “남편이 된장찌개만큼은 내가 만든 게 제일 맛있다고 한다”며 “아직 서툴지만 집안일을 하면서 조금씩 아내가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방송일을 정말 좋아하지만, 일에 매달려 ‘빵점짜리 주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일과 가정을 50대 50씩,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려고 하죠. 결혼 전 남편에게 ‘일하느라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다. 시간 날 때마다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건 꼭 지키려고요. 지금은 남편이 저보다 요리나 청소를 더 잘하는 것 같지만, 저도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웃음).”
박경림은 최근 OBS 경인TV에서 생활정보 프로그램 ‘살림의 여왕’ MC를 맡았다. 미국의 ‘마사 스튜어트 쇼’처럼 가정 살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직접 체험도 해보는 프로그램인데, 그는 “요리·청소·인테리어 등을 다 다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의 바람은 “조만간 ‘살림의 왕자’인 남편 못지않은 ‘살림의 여왕’이 되는 것”이라고.
박경림의 또 다른 소망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다. 두 사람 다 아이를 좋아해서 결혼할 때부터 1년간 신혼생활을 즐긴 뒤엔 바로 아이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산부인과에서 산전검사를 받는 등 본격적으로 임신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예쁜 딸을 낳으면 좋겠지만, 아들이어도 정말 기쁠 것 같아요(웃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지겠죠. 그렇게 또 한 번 성장해서 지금보다 훨씬 폭넓고 따뜻한 MC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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