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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했습니다

히말라야 매력에 푹 빠진 작가 박범신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1. 23

박범신씨는 지난 한 해 두 번이나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돌아왔다. 지금 연재하고 있는 두 편의 소설도 모두 히말라야에 관한 내용이다. 스스로를 ‘히말라야 중독자’라고 말하는 그를 만나 히말라야에 가는 이유와 그 곳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 들었다.

히말라야 매력에 푹 빠진 작가 박범신

박범신씨(62)는 히말라야의 사나이다. 2007년 8월부터 그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는 소설 ‘촐라체’는 해발 6440m 히말라야 고봉에서 조난당했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산악인에 대한 이야기. ‘촐라체’와 동시에 한 스포츠신문에 연재 중인 소설 ‘엔돌핀 프로젝트’ 역시 히말라야 산을 소재로 삼고 있다. 90년대 초 처음 히말라야에 올랐다가 설산의 매력에 빠져 10여년째 히말라야에 ‘중독’돼 살고 있다는 그를 만나러 교수 연구실을 찾았을 때 사방 벽에는 눈 덮인 산봉우리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지난 10년 사이에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같은 히말라야 고봉을 8~9회 오른 것 같습니다.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지난해에는 2월에 가서 한 달 있다가 돌아와 10월 말에 또 한 번 올랐죠.”
예순을 넘긴 작가가 히말라야를 올랐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들이 많은데, 그는 “내가 하는 것은 히말라야 ‘정복’이 아니라 트레킹”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히말라야 사람들에겐 산을 정복한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꼭대기에 올라야 산에 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산에 겸손하게 의지하면서 산의 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히말라야 트레킹도 그렇습니다. 일정한 목표는 있지만 몇 미터까지 올라가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산에 의지해 산의 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데 주안점을 두는 여행이에요.”

“히말라야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신성(神性) 간직한 사원 같은 곳”
그는 젊을 때부터 산을 좋아했다고 한다. 문학을 막 시작한 60년대 후반, 전북 무주에서 초등학교 선생으로 일하던 그는 “피 뜨거운 스물한 살 젊은이가 어디 기운 쓸 데도 없고 해서” 매주 일요일마다 적성산, 덕유산에 올랐다고 한다. 지금 기운이 스무 살 그 시절과 같을 리 없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단련된 몸은 웬만한 젊은이들을 거뜬히 이길 만큼 강인하다고.
“히말라야 트레킹은 근육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 한 사흘은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장대한 젊은이들이 제 앞에 서서 가지만 며칠 지나면 오히려 저보다 뒤떨어져요. 인내심, 자연과 더불어 일체가 되려는 마음이 저만 못해서 그런 거죠(웃음).”
그는 “내겐 늘 일상에 없는 무엇인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 그리움이 나를 산으로 이끄는 힘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박씨는 글을 쓰기 위해 지난 2005년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직을 잠시 물러나 한동안 ‘삼식이(집에서 하루 세 끼를 다 먹는 남편)’ 또는 ‘장로(장기간 노는 사람)’로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히말라야에 두 달가량 머무르며 혼자 수천킬로미터를 걸었다고 한다. 아무 계획도 없이 히말라야 이곳저곳을 떠돌며 그가 얻은 건 “산은 거대한 사원과 같다”는 깨달음. 박씨는 그곳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진 상태로 인간의 본성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히말라야 매력에 푹 빠진 작가 박범신

“인간은 신성(神性)을 품고 살아야 삶의 유한성에서 오는 고통을 극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신에게 가는 길을 잃어버렸잖아요.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문명의 이기들과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을 벗고 히말라야에 가면 잃어버린 신성을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산이 거대한 사원 같다는 거죠.”
평소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주량은 세지 않다는 그는 히말라야에서 마시는 원주민의 술 이야기도 들려줬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다 보면 내내 빈약한 식사와 침낭 잠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져요. 그런 상태에서 원주민 술을 한 잔 마시면 고산 증상이 더해지면서 무념무상의 상태가 됩니다. 보통사람이 여러 해 면벽 훈련을 해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히말라야에서는 일주일만 있으면 절로 이를 수 있는 거죠. 그 상태에서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설산이 사방에 둘러쳐져 있는 길을 걷다보면 저 설산은 영원하고 초월적인 세계이고, 내가 걷는 이곳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현실 같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 불멸의 꼭대기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고 싶은데 그런 사다리는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은 때로 눈물이 쏟아질 만큼 아픈 경험이라고 한다. 영원하고 초월적인 것에 대한 열망, 그러나 결코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슬픔은 그의 문학을 평생 이끌어온 화두이기도 하다.
“제가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저잣거리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죠. 상처 없는 사랑이라든가 세상에 영향 받지 않는 자유라든가…. 그런 것들에 대한 열망이 삶 속에서 잦아들지 않고 더 커진다는 것이 가끔은 쓸쓸하고 서글퍼요.”
그는 무척이나 슬픈 어조로 ‘사랑’과 ‘그리움’,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젊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토록 그를 몰아붙이는 그리움이 없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결코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랑에 대한 열망은 늘 제 마음속에 있어서 마치 거대한 낙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죠. 잠시라도 방심하면 그것이 생살을 찢고 나와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 히말라야로 떠났다가 다시 삶의 구심력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유랑과 회귀의 반복으로 굴러가는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삶임을 깨달을 때면 때로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해지는데, 그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소설 쓰기뿐이라서 평생 소설을 쓸 것이라고 한다.
‘자유’를 말하면서도 목소리에 슬픔이 어려 있고, ‘사랑’을 말할 때조차 쓸쓸해하는 작가와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는 선물이라며 책 한 권을 건넸다. 그가 지난 11월 결혼한 외동딸 아름씨(32)와 함께 펴낸 산문집 ‘맘먹은 대로 살아요’다. 그의 글과 아름씨의 그림이 함께 들어 있는 이 책 속에서 박씨는 “내용보다, 이 책의 제목 하나를 아름다운 꽃바구니 삼아 시집가는 아름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아름이에게, 세상의 모든 젊은 딸들에게 말하고 싶은 한마디는 바로 이것이다. 맘먹은 대로 살아라”라고 말한다.
“딸아이의 귀가가 늦을 때면 ‘여자친구(그는 아내를 이렇게 부른다)’와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자꾸만 현관께로 눈이 가곤 했어요. 그 아이가 이제 결혼해 다른 집으로 돌아갈 걸 생각하면 쓸쓸하죠. 하지만 인간은 시간과 함께 살아가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 떠나게 마련이고요. 그래서 요즈음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주제는 시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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